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07
천하제일 시한부 (207)
굉천대부와 나는 곤륜산을 벗어나 사천당가가 있는 사천성 경계까지 빠르게 달렸다.
마교를 막아 내기 위해, 구축한 저지선이었지만 그 수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난 곧장 굉천대부가 이끄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에는 검천신장이 볼품없는 모습으로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적잖은 충격이 휘몰아쳤다.
“왜 이러고 계신 겁니까?”
난 굉천대부를 향해 정중하게 물었다.
“홀로 마교에 잠입했다. 이거 뭔, 스승이나 제자란 놈이나 하는 짓이 어쩜 그리 무모하고 똑같은지…… 쯧.”
굉천대부는 볼멘소리를 내뱉으며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에서도 검천신장을 걱정하는 그의 진실된 마음이 엿보이는 듯했다.
“어찌 됐든, 이제 주씨세가로 향해 가야 한다.”
“마교는 어쩌구요?”
내 말에 굉천대부가 피식 웃었다.
“아직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대도.”
“확실히 묶어 두어야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차라리 가주들을 제가…….”
검을 잡고 나가려는 나를 굉천대부가 붙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움직이지 못할 거다, 넌 우리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스승님의 친우분들이라면…… 뭐, 삼신회의 분들이시겠죠.”
내 말에 굉천대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괜찮다는 거다.”
굉천대부의 묵직한 어조에 난 이내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삼신급의 고수들.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무인을 논할 때, 항상 수좌에 거론되는 이들이다.
그 밑에 삼강이라 불리는 고수들이 또 있다.
하지만 그들은 삼신이 사라지고 난 뒤에 활동한 이들이다.
내가 알기로 삼신은 적어도 삼십 년 이상 무림에서 활동을 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네 스승을 업거라.”
“제가요?”
“그럼 내가 업으리? 다 죽어 가는 이 노친네에게 그런 고생을…….”
“알겠습니다.”
굉천대부의 불편에 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뭐, 다 죽어가긴커녕 쇠심도 통째로 씹어 먹을 것같이 건강해 보이긴 한다마는…….
“한데, 왜 저희 세가입니까?”
“말했잖느냐, 거기가 바로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고.”
굉천대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굉천대부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어머? 네가 주서진이구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다.
단순한 손짓 하나에도 뭇 사내들의 심금을 울릴 만큼 가련키 그지없다.
난 본능적으로 그녀가 나머지 삼신 중 하나임을 알아챘다.
“처음…….”
“인사는 됐다. 처음 보는구나. 검천의 제자야.”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빙그레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내력이 절로 들끓었다.
‘엄청난 고수다.’
같은 삼신이어도 급이 다르다.
스승이 최강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이분이…… 진짜 고금제일인.’
자연스레 말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깃들어 있다.
‘내 내력도 만만찮을진대.’
아예 비빌 수가 없다.
혼란해하는 날 보며 여인이 입을 열었다.
“난 요요라 한단다, 백뢰산장의 장주기도 하고, 훗.”
백뢰산장.
전설로만 들어 봤던 이름이었다.
아니, 이제는 기억에서도 사라진 곳이다.
“어머, 아는 눈치네?”
그녀는 고맙다는 듯 입을 가리고 살포시 웃었다.
“그만 장난치고 얼른 그거나 먹여.”
보다 못한 굉천대부가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그제야 요요는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깨달았다는 듯 아차 싶은 표정과 함께, 들고 있던 약사발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검천의 입을 조그맣게 벌리고는 그 약사발을 들어 내용물을 조금씩 입으로 흘려 넣어 주었다.
“그건 무슨 약입니까?”
내 물음에 요요가 다시금 화사하게 웃었다.
“우리 백뢰산장에서만 나는 백뢰삼이란다. 들어 본 적은 없을걸?”
“음,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보기에는 저래도 내상을 치유하고, 기력을 회복시키는 데는 저만한 것이 없다. 어지간한 영약보다 낫지.”
“…….”
굉천대부는 부럽다는 듯 입맛을 쩝쩝거리고는 슬쩍 군막의 문을 걷고 밖을 내다보았다.
“아직 조용하군. 뒤는 잡히지 않은 것 같고. 언제쯤 출발할 거지?”
굉천대부의 물음에 요요는 빈 약사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가만히 검천의 장심에 손을 맞대고 기운을 끌어 올렸다.
“언제 출발할 거냐고.”
굉천대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기다려, 검천이 일어날 때까지.”
“언제 일어날 줄 알고?”
“넌 성질 좀 죽여 제발. 주씨세가로 간다고 뾰족한 수가 나는 것도 아니잖아?”
굉천대부의 계속된 재촉에 마침내는 요요도 화가 났는지,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굉천대부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요는 다시금 내게 시선을 두며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가 주씨세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다 보고 있었단다.”
“…….”
음, 그다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마치 누군가 날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찝찝하기 그지없다.
난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세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마교를 벌하는 일?”
“벌한다…… 제가 뭐 누구를 벌하고 말고 판단할 권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들을 내버려 두었다가는 다음번, 그 다음번은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요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변천제도 죽였고, 양천의 줄기도 죽였다 들었다, 맞느냐?”
“음, 맞습니다.”
“그 둘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놈들이란다. 우리도 진즉에 알고는 있었지만, 별로 문제 될 놈들도 아니었기에 내버려 두었지.”
요요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오히려 양천을 손대지 않았다면 그 머리에 근육만 찬 놈들이 알아서 흔적을 다 흘려 주었을 텐데, 그건 조금 아쉽더구나.”
“사륭회…… 그들을 알고 계셨습니까?”
“사륭회라…… 그건 너희가 부르는 이름인 모양이구나, 우린 그들을 천지회라고 불렀거든.”
천지회, 사륭회.
이름은 다르지만, 서로 그들을 대해 생각하는 점은 같을 것이다.
“구천의 하늘을 관장한다는 구천제를 중심으로 모인 나머지 여덟 명의 개자식들.”
요요는 웃는 낯으로 거칠게 말을 쏟아 냈다.
“그 여덟을 잇는 줄기들은 천제의 능력을 배분받고 잎새를 피우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잎새…… 단어가 조금 어렵습니다.”
“쉬워, 구천제를 뿌리라고 생각해 보렴. 그에게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커 갔으니 그는 곧 뿌리.”
근본, 그 자체를 말함이다.
“그에게서 뻗어 나온 여덟 명의 개자식들은 가지가 되겠구나. 세계 곳곳에 뻗어 둔 가지.”
“그럼 줄기라 하신 말씀은…….”
“그래, 스스로를 맥이라 하는 놈들이야말로 그 천제와 구천제를 잇는 가지가 된단다. 어쩌면 진짜배기 정보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놈들일지도 모르지.”
요요의 말에 굉천대부도 이내 그녀의 맞은편에 가만히 앉았다.
계속해서 요요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알아낸 것은…… 그들은 이미 관과 무림에 수십 년도 전부터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는 거란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는 걸 보면 어리숙하기 짝이 없던데.”
난 피식 웃으며 그들을 대놓고 무시했다.
양천맥도 그렇고, 변천도 그렇다.
그들은 너무도 싱겁게 내게 잡혔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 당연하겠지.”
“정확히는 구천제가 그들을 통제하고 있다. 대체 뭘 노리고 있는지 우리가 무림 활동을 끊은 지도 어언 사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번에는 굉천대부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거다. 대체 왜 이따위 짓거리를 벌이는지.”
“그래도 몇 가지 알아낸 것은 있어.”
요요가 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천맹 또한…… 구천제의 작품이란다.”
“…….”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리는 듯한 충격이다.
이건 대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말이 되질…….”
“끝까지 들어 볼래?”
요요가 부드럽게 웃었다.
“정천맹이 활약하는 당시에, 구천제는 없었다. 이미 수많은 줄기들과 가지들이 세상에서 그 영향력을 뽐내고 있었거든.”
“영향력…….”
“정보의 초토화, 하오문과 개방은 이미 구천제의 손아귀에 있단다. 태상방주 노걸개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그가 움직이면 구천제의 귀에 들어가기 때문이거든.”
요요의 말에 난 가만히 노걸개를 떠올렸다.
그는 항상 날 보며 불안해했다.
날 보며 조용히 살아가라 경고했었다.
“뭔가를 알고 있군요, 노걸개 그 양반…….”
“노걸개, 그 아이도 불쌍하지. 잘만 태어났으면 능히 세상을 호령하고 개왕의 칭호를 받았을 터인데.”
“아쉽긴 하지, 내가 제자로 점찍었던 놈이니까, 크흠.”
굉천대부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굉천대부가 노걸개를 어린아이 부르듯 부르는 말을 듣자니, 그들의 나이가 실감이 난다.
“거두절미하고, 우리가 온 이유는 간단해.”
요요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녀의 미간에 고운 주름이 세 개가 잡혔다.
찡그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력이 또다시 요동친다.
“구천제가 깨어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야.”
“뭐가 달라지는 겁니까?”
“달라지지.”
요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양천이나 변천이나 너한테 그렇게 손해를 봤어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지시가 없어서였거든. 또한 콩알만큼의 티도 안 나는 세력이기도 했고.”
“…….”
변천의 재력이 콩알만큼의 티도 안 난다고?
이거 뭔가 과장된 것 같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마교의 준동이 첫 번째다. 다행히 구천제라 하더라도 감히 전 세력을 다 일으키진 못해.”
그건 당연하다.
그가 수십 년간 쌓아 놓은 세력이라면 보지 않아도 엄청날 것은 자명했다.
그런 세력이 들고일어나면 가장 먼저 경계심을 품을 상대는 명백했다.
“황실이 움직이겠군요.”
“그래, 황실.”
굉천대부와 요요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굉천대부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마교를 움직였고, 그건 곧 곤륜의 멸망을 뜻했지. 그들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올 것이다. 정확히는 무림의 자중지란을 유도하는 거지.”
“무림인들이 서로 싸우길 원한다? 왜입니까?”
“그래야 세력이 줄어들거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적절한 숫자를 맞추기 딱 좋다 이거지.”
“고작 그게 이유입니까? 여태껏 이 지랄들을 해 댄 게?”
내 말에 굉천대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내가 말했잖느냐. 구천제의 본 뜻은 정말 그 누구도 모른다고. 우리조차 파악한 바가 없어. 그냥 유추만 할 뿐. 마치 신선놀음처럼 그저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의중을 헤아릴 수가 없단 말이다.”
굉천대부도 답답했던지, 말을 하는 중간중간 은은한 노기가 느껴졌다.
“어찌 됐든, 그가 잘못 생각한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게 뭔…….”
“너.”
굉천대부와 요요가 동시에 날 바라보았다.
“너의 존재를 망각했다는 거다. 아니, 정확히는…… 헌원가의 마지막 후예.”
또다시 나온 이름, 헌원세가.
굉천대부의 말은 아직 끝나질 않았다.
“주군…… 아니, 네 어머니께서 남기신 것이 있다.”
굉천대부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내게 뭔가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한 권의 낡은 비급이었다.
“이게 뭐…….”
난 비급을 만져 보며 더듬거렸다.
굉천대부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삼재검법의 숨겨진 검로다. 네가 배운 삼재검법의 숨겨진 세 개의 검로.”
“…….”
“또한, 뒷장을 펼쳐 보면 마지막 호흡법 역시 서술되어 있을 것이다.”
난 서둘러 비급의 맨 뒷장을 펼쳐 보았다.
호흡법은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그 구결이 적혀 있었다.
“일식호흡…….”
“그래, 일식호흡과 삼재검의 마지막 세 개의 검로.”
굉천대부가 잠시 숨을 죽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마교에서는 그걸 천마삼검과…… 일월신공이라 부른다. 천년마교의 잊힌 천년. 훨씬 더 전에 이어졌던 일월신교의 무공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