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3
천하제일 시한부 (243)
“화산파의 골칫덩이라…….”
난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움직인다.
겪어 보지도 않고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그냥 몸으로 겪고 때우는 것이 더 낫다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하지만 그만큼 정보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화산파로 향하기 전, 초영에게 현재 화산파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요구했다.
화산파가 있는 섬서성으로 떠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개방도 하나가 내게 화산파에 대한 정보를 건네주었다.
“들어 봤나?”
난 곁에 있을 묵야를 향해 물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 항시 경계의 끈을 놓고 있지 않은 묵야가 슬쩍 모습을 비추며 입을 열었다.
“무림맹에 화산의 매화자라고 장문인의 둘째 사제가 장로로 있다.”
“매화자? 흠.”
아는 이름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 정파무림과는 그다지 연이 없었으니까.
“아마 화산파의 골칫덩이라면…… 진시현을 말하는 것 같군.”
“진시현?”
“매화이십사수들의 대사형이다. 매화검수들 중에서도 스물네 명만 선발되는 화산파…….”
“그 정도는 알아.”
난 개방도가 전달해 준 정보지를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진시현에 대한 정보도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유명한 놈이긴 한가 본데?”
“적어도 섬서성에서 만큼은 너보다 유명할 거다. 잘생겼지,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그 도사 놈들하고는 확실히 다른 놈이야.”
하지만 칭찬을 하는 묵야의 표정이 어쩐지 떨떠름하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승부욕이 엄청나다. 처음 보는 상대가 있으면 어떻게든 검을 섞고 싶어 안달 나는 녀석이다.”
난 그 말에 피식 웃고야 말았다.
그 정도의 승부욕은 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너도 골치 좀 썩겠군.”
묵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 * *
섬서성, 화음현.
화산의 낙안봉으로 오르는 산의 초입이 바로 이곳에 있다.
난 천천히 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낙안봉을 넘어 연화봉의 정상에 올라야만, 상궁이라 불리는 진짜 화산파가 나타난다.
그렇게 얼마나 올랐을까?
“…….”
난 느껴지는 기척에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정면을 응시했다.
한 사내.
나와 또래로 보이기도 하지만, 확실히 나보다는 젊다.
화산파를 뜻하는 매화 문양이 새겨진 도포를 입을 그 사내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거대한 바위 위에서 잠자듯 가만히 누워 있었다.
‘저거군.’
난 묵야가 말했던 그 진시현인가 하는 놈이 이놈임을 단번에 알아봤다.
‘강하구나.’
과연 화산파다.
그런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상대의 기운은 정갈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세가 절로 줄기차기 뻗어 나왔다.
“화산의 제자인가?”
난 단번에 그자가 진시현임을 알아봤지만, 애써 모른 채 물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저놈 역시 날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장문인께서 말씀하신 손님이시군요, 이거 깜빡 졸았습니다.”
그는 내가 묻기 무섭게 번쩍 눈을 뜨더니, 그대로 바위 위에서 후딱 내려섰다.
그 행동이 어찌나 민첩한지, 마치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싶다.
“근데 왜 초면에 반말이신지?”
역시, 놈은 만만찮다.
내 면전에 자신의 얼굴을 쓱 들이밀고는 새삼 정색하면서 묻는다.
“미안하군, 습관이라.”
“으하하, 장난입니다.”
이내 씩 웃으며 손을 내미는 진시현.
난 그의 손을 잡았다.
우득―!
동시에 놈이 손에 힘을 더했다.
호승심이 대단한 녀석이라길래 기대를 좀 했는데, 이런 장난질이라니…….
“상대를 봐 가면서 장난을 쳐야지 않겠나?”
난 점잖게 타이르듯이 말하며 놈의 잡은 손을 가볍게 풀어 버렸다.
굳이 힘을 빼고 싶지도 않았고, 놈의 장난질에 넘어가 줄 생각도 없었기에.
돌연 시현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순수한 호기심과도 같은 눈빛이었다.
“제 공력을 이렇게 쉽게 풀어내다니, 이거…… 끓어오르는군요. 후후.”
“…….”
미친놈이다.
화산파에서 저런 미친놈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거참, 장문인께서 직접 모셔 오라 말씀하신 분이시니만큼 함부로 하지도 못하겠고. 음…….”
그는 빙글빙글 돌면서 생각에 잠긴 듯,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네가 화산파가 자랑하는 매화이십사수들의 대사형이라지?”
“이런, 절 알고 계셨군요, 하하하!”
진시현이 고개를 번쩍 들고 웃음을 터트렸다.
“한데, 내가 이쪽으로 올 것을 어찌 알고 있었나?”
“보통 손님들은 이쪽으로 오시더라고요. 그것도 장문인의 손님들은.”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놈인 건 틀림없다.
낙안봉은 보통 화산파의 제자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숙소도 있고, 연무장도 있는 화산의 수련장과도 같은 곳이라 보면 된다.
반면 장문인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연화봉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낙안봉으로 올라가면 한 봉우리를 더 건너가야 했다.
즉, 장문인의 손님이라면 더더욱 이곳으로 오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다.
“그걸 간파했다니, 대단하군.”
“그런 소리 자주 듣습니다. 그나저나 누구십니까?”
진시현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제가 어지간한 분들은 다 알고 있는데, 이 정도로 아예 기척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대는 처음이라서요.”
더군다나 솔직하기까지 하다.
“주씨세가에서 왔다.”
“주씨세가?”
진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주씨세가입니까? 하도 많아서…… 아, 죄송합니다. 실례되는 발언이었습니까?”
진시현의 물음에 난 씩 웃은 채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악안의 주씨세가다.”
“악안 주씨…… 아, 설마?”
진시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남창의 흑도를 모조리 몰아냈다는 그 주씨세가입니까? 강서성의 명문이라고 아주 소문이 자자하던데.”
“…….”
명문은 명문이지, 암.
새삼 화산에서 세가에 대한 칭찬을 듣자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신기검단주라 불렸을 때도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는데 말이지.
“여기까지 소문이 퍼진 모양이군, 맞다.”
“이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씨세가에서 오셨으면 가주님이십니까? 아니지 듣기로는 주씨세가주님은 나이가 좀 있으시다 들었는데…….”
“난 소가주다.”
“아하, 아드님이셨군요.”
“아니, 가주의 동생이다. 형님의 자식들이 아직 너무 어려서.”
내 말에 진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문파에서도 적당한 후계가 없으면 형제가 대신 후계직을 승계하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주씨세가에 대한 소문만 듣고 내가 원래 어디서 왔는지는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주씨세가의 소가주님이시라…… 확실히 귀한 손님이시군요.”
진시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내가 멘 세 자루의 검을 유심히 살폈다.
“보기 드문 명검입니다. 하나하나 예사롭지 않은데요?”
“구경하고 싶나?”
“보여 주신다면 고맙죠, 후후.”
진시현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았다.
“일단 이 자리에서 이러는 것보다 올라가서 편히 보는 것이 낫지 않겠나?”
“아차, 내 정신 좀 봐. 죄송합니다. 제가 이 몹쓸 버릇이 있어서. 하하.”
또 대차게 웃음을 터트린 진시현이 이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흑도들을 모조리 쫓아냈을 때 어떠셨습니까? 듣자 하니, 남창 그 도시를 그렇게 순식간에 정리한 세가는 여지껏 없다 들었는데.”
“남창에 있던 문파들이 다른 곳에 비해 약했을 뿐이다.”
“으흠, 그렇군요. 하기사 알아보니 주씨세가는 이미 과거에도 꽤 명문으로 지역에서 유명했다고 하더라구요.”
거기까지 아는 것을 보니, 내심 조사를 했던 모양이다.
다만 내가 아직까지 누구인지 모르는 것을 보면 개방이 확실히 정보 통제를 잘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후, 이제야 좀 숨통이 트입니다. 저 도사 놈들이랑 있으면 진짜…… 숨이 턱턱 막히고 짜증만 치솟거든요.”
시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부터 화산파 제자들이 내뿜는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넌 내가 알던 화산파의 도사들과는 좀 다르군.”
“으하하, 그렇게 보이셨습니까? 그것 참 감사합니다. 사실 전 도사가 되기 싫었거든요.”
“도사라기보다는 무인이지 않은가?”
“그렇죠, 무인. 하지만 무인이라면 능히 검을 차고 나가 당당히 세상에 부딪쳐 보고 좀…… 그래야 하는데, 이건 뭐…… 에휴.”
이제보니 말이 참 많은 놈이다.
그래도 화산파라 다행이지, 만약 이놈이 소림사 같은 데에 들어가 묵언 수행이라도 했다면…….
아마 자살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어쨌든 화산파는 망했습니다. 빌어먹을 허구한 날 수련만 해서 뭐 하냐고. 산 구석에 틀어박혀서 밥도 드럽게 맛없는 것만 먹이고.”
“…….”
와, 이 새끼 이거.
말이 거침이 없다.
자신의 사문을 욕하는 행위임에도 놈은 아예 그런 의식 따위는 갖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임이 분명했다.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손님을 모셔 오랬더니.”
그 순간 낙안봉 정상에 모습을 드러낸 또 다른 중년인.
그가 도포를 휘날리며 위엄 있게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신기검단주 주서진 대협.”
장문인, 매곡자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매곡자의 성품을 익히 들어봤기에, 마땅히 고개를 숙이고 그에게 공경을 표했다.
“십 년 전에 한 번 뵙고, 이번이 두 번째군요. 매곡자 장문인.”
“에엥? 신기검단주?”
평온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우리와 달리 진시현은 그야말로 놀라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제 사제인 매화자가 키운 녀석입니다. 스승이 무림맹에 가 있으니 제대로 예의란 것을 가르치지 못해 말버릇이 저러합니다. 양해해 주시지요.”
“물론입니다. 저 역시 말버릇이 그다지 좋지는 않거든요.”
난 이내 씩 웃으며 진시현을 바라봤다.
그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치 한판 비무라도 벌이고 싶은 그런 눈빛이다.
“듣자 하니, 신기검단주께서는 빙 돌려 말하지 못하고, 겉치레가 담긴 인사를 하지 못한다 들었는데…… 이거 제가 잘못 들은 모양입니다, 껄껄.”
매곡자가 환하게 웃었다.
대체 나에 대한 소문이 뭐길래 저따위로 소문난 거지?
“제가 예의를 차리는 대상은 그에 합당한 분이실 겁니다. 안하무인의 격조도 없이 상대를 낮춰 부르는 자는 저 역시 대접해 줄 가치가 없다 여기는 편인지라.”
“하하하! 대답이 시원시원하십니다. 아차,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매곡자는 환하게 웃으며 날 안으로 안내했다.
꽤나 준비를 많이 해 놨는지, 아까 들려왔던 기합 소리는 사라지고 제자들이 일제히 연무장에 나와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본래라면 본궁인 상궁에서 맞아야 정상이지만, 이쪽으로 오신다 하여 제가 직접 이리 걸음 했습니다. 괜찮으신지요?”
“화산파를 왔으니 화산을 보고자 했습니다. 상궁도 좋지만, 진짜 화산은 이곳 낙안에 담겨 있지 않습니까?”
“이런이런, 저보다 화산에 대해 더 잘 아시는 듯합니다.”
매곡자는 기분 좋은 미소를 품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제자들만 봐도 장문인의 자질을 알 수 있다고.
화산파에 온 것은 처음이었지만, 난 단번에 매곡자가 어떤 심성을 지녔는지 알아차렸다.
‘깨끗하다.’
그가 날 대하는 행동과 말투에서 진심이 우러나왔다.
내가 신기검단주라서가 아니다.
그저 무인으로서, 경지를 이룩한 무림인으로서 경의를 표해 주는 행위이다.
순수한 호기심이 가득한 화산파의 제자들의 환대를 받으며 난 그렇게 화산파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