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5
천하제일 시한부 (245)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매화자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륭회에 대한 정보를 받아야겠습니다.”
“그건 너무 비싼데.”
“대신 책임지고 무림맹이 움직이지 않게 막아 보겠습니다.”
“후후, 사륭회는 저희 세가가 멸문지화까지 당해 가면서 얻어 낸 정보들입니다. 함부로 드릴 수는 없지요.”
“그렇군요.”
매화자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면, 저와 대련은 어떻습니까?”
아니, 어떻게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지?
“갑자기 대련이라니요?”
“제가 이긴다면 정보를 넘겨받고, 단주께서 이기시면 가타부타 말없이 무림맹이 움직이지 않게 표를 행사해 보지요.”
쩝, 푯값이 좀 비싸다.
귀찮기도 하고.
난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길 텐데요.”
“허허, 절 너무 무시하시는군요.”
그러고 보니 진시현이 매화자의 제자라 했던가.
그놈의 호승심이 어디서 배운건가 했더니, 바로 이 매화자였다.
두 눈이 불타는 듯이 타오르는 저 열기는 분명 무인으로서 품은 호승심, 승부욕이리라.
“좋습니다.”
뭐, 몸풀기로도 좋고.
화산파의 제일가는 고수가 어떤 검공을 구사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으니.
난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낙안봉이 시끌벅적해졌다.
화산의 일대제자들부터 삼대제자들까지 모두가 대연무장에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친, 화산제일검 매화진인 장로님께서 대련이라고?”
“그렇다니까? 아까 손님이 왔는데 그 손님이랑 대련하는 것 같은데?”
“대체 그 손님은 누구길래?”
제자들이 쑥덕대는 말을 듣고 있던 진시현은 이내 손톱을 깨물며 불안에 떨었다.
‘신기검단주와 스승님이라니…… 이것 참.’
사실 그는 무인으로서 신기검단주를 동경하고, 경외했다.
자유롭게 새외를 쏘다니며 적들을 베어 나가며 하나의 전설을 써 내려간 그의 업적은 너무도 찬란했기 때문이었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그는 연신 고민하며 대연무장으로 발을 옮겼다.
“후훗.”
난 저 멀리서 걸어오는 진시현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그를 보기 무섭게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매화자와 비슷한 성품을 가진 자.
스승과 제자가 어찌 이리 똑같을 수 있을까.
“좀 늦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매화자가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의 검을 챙겨 온다던 그는 허리춤에 묵빛 검을 검집째 차고 있었다.
“세 자루 검을 쓰시는 겁니까?”
“뭐, 때에 따라서는 열 자루도 씁니다만, 아직 그런 상대는 만나지 못해서.”
난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검 자루를 잡아갔다.
‘역시 익숙한 게 최고지.’
내가 사용하던 검.
코등이가 사라진 다소 독특한 형태의 검이다.
날도 예리하게 벼리지 않아 어쩌면 몽둥이처럼 보일 법도 한 검이지만, 이것으로 난 여태껏 살아남을 수 있었다.
스릉-!
동시에 매화자가 천천히 검을 뽑았다.
“오늘 소문으로만 자자하던 신기검단주의 검을 직접 견식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나 또한 화산제일검의 검을 볼 수 있어 영광입니다.”
화산제일검.
화산파에서 제일 강한 검수에게 부여되는 칭호다.
장문인은 될 수 없지만, 장문인보다 더한 권력을 가진 셈이다.
파밧-!
이내 매화자의 선공이 시작됐다.
화산파의 운신법은 무림 일절로 정평이 나 있다.
당연히 난 좌시하지 않고, 빠르게 진기를 끌어 올렸다.
‘전상결.’
처음부터 단단히 준비해야 한다.
화산파의 제일검이 펼치는 검격이니까.
카앙-! 캉-!
이내 그의 몸이 섬전처럼 내리꽂혔고, 우리는 서로 위치를 바꾼 채, 두세 합을 겨뤘다.
불꽃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서로가 다시 처음처럼 거리를 벌렸다.
스릉-!
내 검은 완벽히 뽑혀 나와 있었다.
“호오, 발검과 동시에 공수 전환이라니…… 기발한 수입니다.”
“대련 때나 써먹지요.”
난 매화자의 말을 가볍게 받아치고는 다음 수를 준비했다.
“단주, 이리하면 어떻습니까?”
매화자가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은은히 불어오는 바람에 매화 향이 가득 담겼다.
“생사투를 벌여 보시는 게.”
“생사투?”
난 이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고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파밧-!
동시에 매화자가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그의 몸이 그림자처럼 흩어지며, 내 측면을 노리고 쇄도했다.
‘암향표.’
화산의 절기이자 빠르기로는 당할 자가 없다는 최고의 경신술이다.
파스스-!
동시에 곳곳에 매화꽃이 피어나는 듯한 환상이 보였다.
“매화검법, 제일초식. 매화노방이라 합니다.”
매화가 길가에 피어 있다.
과연 이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환검이다.
동시에, 치명적이기도 하고.
찌익-!
내 오른손 소매 끝이 살짝 찢겨나갔다.
극쾌의 정수를 담은 듯한, 빠르기다.
“생사투가 싫다니……천하의 신기검단주께서 겁을 집어먹은 게 아닌가 합니다.”
“하하, 제가요?”
말을 끝내기 무섭게 펼쳐진 매화자의 검격.
매화검법 제 이초식.
“매화접무라 하지요.”
스가악-!
매화가 바람에 날리는 모양이 꼭 나비의 움직임처럼 현란하기 그지없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캉-! 카각-! 까가각-!!
검에서는 연신 불꽃이 튀었다.
어마무시한 속도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생사투가 싫은 이유는…… 그대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파각-!
이내 매화자가 거리를 벌리려던 그 찰나, 난 단번에 기회를 포착하고 그대로 매화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웅-!
동시에, 매화자의 입꼬리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노렸나?’
마치 이것을 노렸다는 듯이.
하지만 나 역시 대비는 되어 있다.
‘폭상결.’
진기를 고도로 압축해 폭발적으로 쏘아 낸다.
동시에 펼쳐진 삼재검.
‘제일장. 태산압정.’
쩌정-! 쩌저저저정-!!
매화자가 다급히 검을 가로로 눕혀 내 일격을 막아 냈다.
정수리를 쪼갤 듯이 내려치던 내 검이 그의 검에 막혔다.
서로 검기를 싣지 않았기에, 다치는 일은 없었다.
“후, 놀랬습니다.”
매화자가 빙그레 웃었다.
“놀란 사람치고 너무 잘 막으셨습니다.”
나 역시 여유 있게 웃어 주었다.
휘릭-!
이내 매화자가 검을 휘둘러,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제대로 하지요.”
우웅-!
동시에, 그의 두 눈이 짙은 자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자하신공.’
천하에 다시없을 절기 중의 절기.
동시에 화산이 자랑하는 비전이다.
화산파에서도 극소수의 선택받은 인물들만이 전수받는 다는 그 자하신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웅-!
난 시각을 일깨웠다.
기운의 결을 볼 수 있는 내 눈앞에서는 자하신공도 그저 일반적인 기운이나 마찬가지다.
“시각.”
매화자가 입을 열었다.
“단주만 알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쩌정-!
대지가 무너지고, 그대로 매화자가 내게 달려들었다.
‘매화토염.’
매화가 염기를 토해 낸다.
매화검법의 제삼초식이자, 환검의 진수다.
동시에, 발출된 검기가 내 시야를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우득-!
난 이내 발을 딛고, 천천히 매화자에 손에 안력을 집중시켰다.
환검은 시야를 교란한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펼치는 것은 사람의 손이다.
즉, 뿌리를 잡으면 나무를 뽑아낼 수 있다는 말.
쩌정-!
다시 한번 펼쳐진 태산압정.
천마를 죽였던 검격의 삼 할 정도 되는 힘을 담았다.
투콰앙-!
정확히 환검의 계를 거두고, 상대의 검끝을 마비시켰다.
찔러 오는 검을 옆면으로 받아치고, 허리를 틀어 그대로 상대의 허리를 도려낸다.
지독한 연환식이다.
하지만 매화자는 그것을 잘도 막아 냈다.
“태산압정? 삼재검에 이런 수는 없습니다.”
매화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피어라.”
그의 말이 끝날 무렵, 난 곧장 검을 눕혔다.
동시에 발출된 검강.
“폭상결.”
이내 한껏 압축한 기운을 해제했다.
기문을 열어 폭사된 기운에 그대로 노출된 매화자가 화들짝 놀라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과연 암향표다.
일반적인 경신술이었다면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내장을 녹여 버렸을 텐데.
“후우, 깜짝 놀랐군요.”
매화자가 검을 고쳐 잡았다.
“화산파가 자랑하는 검술이 고작 그것입니까?”
난 상대를 도발했다.
하지만 경지에 오른 사람이니만큼 쉽게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을 것…….
“그 말씀을 후회하게 해 드리지요.”
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쉽게 도발에 걸려들었다.
쩌엉-!
공지를 찢어발기며 달려드는 매화자.
그의 손이 요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산파 검법의 정수.
이십사수매화검법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식만 떼어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매화검법의 진짜 정수는 바로 저 연환식이다.
계속해서 연계되는 검술이란 말이다.
제일초식인 매화노방에서 이십사초식, 매화만리향까지.
무림 일절로 유명한 화산파의 고수들이 즐겨 사용하는 검술이다.
그리고…….
터덥-!
난 매화자의 앞섶을 붙잡고 그대로 들쳐 멨다.
그러고는 반대쪽을 향해 집어 던져 버렸다.
쾅-!
그의 몸이 허무하게 나가떨어졌다.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날 바라봤다.
그의 눈이 믿기지 않은 듯, 정처 없이 흔들렸다.
“어떻게…….”
“매화만리향, 공부 좀 했지요. 예전에.”
난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구파일방의 모든 무공들이 들어가 있다.
아니, 구파일방뿐인가.
유명한 검술이나, 무공들의 파훼법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었다.
“허허.”
매화자가 허탈하게 웃었다.
이미 승패는 갈렸다.
“약속대로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신의 힘을 다 내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리 허무하게 질 줄은…….”
“화산의 검이 약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 진기를 사용했으면 다른 싸움이 되었겠지요.”
내가 이런 식의 대련을 하지 않는 이유.
그건 너무도 뻔했다.
이미 어지간한 무공들의 파훼법을 숙지하고 있었기에, 그리 재밌는 싸움이 되지 못한다는 거다.
“단주, 하면 송구하지만 한 가지만 더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그의 말에 난 대번 인상을 구겼다.
“아까 분명 제가 이기면 조건 없이 승낙하신다고…….”
“다름 아니라, 제 제자 놈을 좀 거둬 주십시오.”
“…….”
와 씨.
이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난 무심결에 진시현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아까 생각이 많아 보이던 표정과 달리 지금 그의 눈빛은 완전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날 데려가 줘, 하는 강아지처럼 말이다.
“스승으로서 너무도 바빠, 제자를 미처 챙기지 못합니다. 실전도 가르쳐야 하고, 비무행도 시켜야 하나, 그러지 못하고 있지요.”
“흠.”
난 가만히 견적을 재보았다.
진시현.
확실히 강한 놈이다.
곤륜의 무적, 그놈보다도 강하고 종서와도 비견될 정도의 실력자다.
데리고 가면 충분히 써먹을 데는 있을 것 같긴 한데, 문제가 있다.
‘말이 너무 많은데.’
남궁진, 그 녀석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제법 묵직한 맛이 있는 녀석이다.
하지만 저놈은 너무 가볍다.
초면부터 별로란 소리다.
“좋습니다. 하면 저도 하나만 더 부탁 좀 드리지요.”
“뭐든 말씀해 보시지요.”
매화자의 표정이 밝아졌다.
어쩐지 뭔가 당한 느낌이다.
난 이내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내며 마저 입을 열었다.
“추후 주씨세가에서 도움을 청하거든 반드시 도움 한번은 주셔야 합니다.”
“……그러지요.”
매화자는 겨우 그거였냐는 듯 대번 고개를 끄덕였다.
하, 어쩐지 당한 느낌이다.
난 날 향해 팔을 활짝 벌리며 달려오고 있는 진시현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