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6
천하제일 시한부 (246)
다음 날.
난 매화자와 함께, 화산의 낙안봉을 거닐었다.
“부담되십니까?”
옆에서 나란히 길을 걷던 매화자가 조용히 물었다.
“사실, 짐짝 하나 얹은 것 같긴 합니다.”
“하하하, 솔직하시군요.”
“음, 다른 뜻이 있으신 거지요?”
난 매화자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내게 자신의 애제자를 맡긴 이유.
과연 그것이 고작 바빠서, 제자를 챙기지 못해서일까?
간밤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분명 매화자가 말하지 못한 무슨 곡절이 숨어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물었을 때 매화자의 표정이 조금 달라진 듯 보였다.
“과연 단주님의 눈은 감히 속일 수가 없겠군요.”
“뭐, 제가 아니라도 누가 봐도 의심할 수 있을 법한 상황이 아닙니까?”
피로 승계되는 세가와 달리 구대문파는 사승지간으로 후대를 양성하고 문파의 맥을 잇게 한다.
그렇게 비춰 봤을 때, 진시현은 화산파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남달랐다.
“일대제자, 그것도 스물네 명의 일대제자들 중 대사형이자, 화산제일검의 제자라…….”
우뚝.
내 말에 매화자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날 향해 비스듬히 돌아섰다.
“어제 은근히 제대로 힘을 내주지 않으시더군요. 매화검법이 그렇게 터무니없이 파훼될 검법이 아닐 텐데요. 안 그렇습니까?”
내 거듭된 질문에 매화자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낙안봉에서 벌였던 비무.
너무도 쉽게 파훼했던 매화검법은 내가 아무리 그에 대한 대비책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너무도 터무니없긴 했다.
단번에 매화자가 봐줬음을 눈치챘지만, 화산파 제자들의 이목이 모두 이쪽으로 쏠린 터라 모른 척했을 뿐.
거기에 더불어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보고 있음에도 일부러 져 줘야 했을 그 까닭이 궁금해졌고 말이다.
“사륭회에 대한 싸움, 그것을 먼저 실행하기 위해서는 저희 화산파도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지요.”
매화자가 완전히 돌아서 뒤쪽 산책로를 쭉 내려다봤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 드러나는 거대한 연무장은 잠시 뒤, 제자들이 수련을 할 장소기도 했다.
그곳을 보는 매화자의 두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화산파에서도 정리가 필요하다? 말씀이 조금…… 의미심장하십니다.”
“…….”
화산은 간자를 들이기가 쉽지 않다.
완전 어릴 때부터 길러진 제자들이 문파의 맥을 잇게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함부로 중심부로 첩자를 침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문파의 무사들도 죄다 제자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세가들처럼 외부의 무사들을 끌어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도가 계열의 문파들은 더욱 폐쇄적이었다.
물론 하려면 할 수는 있다.
난 바로 그 점을 상기하며 물었던 것이고.
“구대문파는 주로 강북 쪽에 몰려 있습니다. 이를 단주께서도 충분히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매화자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문제는 바로 저희 세대입니다. 스물네 명의 매화검수들은 각기 맡은 직책에 따라 추후, 장문인으로 또는 각각 장로와 단주급으로 배치되겠지요.”
매화검수.
그들은 강력하다.
화산에서도 기재라 불리는 따로 선별된 아이들을 철저히 가르치고 먹이면서 키운 것이 바로 매화검수들이다.
매화검수의 표식만 달고 있어도, 무림에서는 알아주는 차세대 후기지수로 통하며 그 위상은 가히 상상 초월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보통 때라면 장로들이 합심해서 장문인의 자질 가진 아이를 선별해 따로 교육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진시현. 그 아이가 매화검수들의 대사형이라고 들었는데…… 뭐가 문제가 됩니까?”
“그 아이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문제라면 저희 장로들이지요. 하나같이 시현이를 거부하고 나서니…… 어쩔 도리가 없는 거지요.”
“장로들이 매화검수의 교육을 거부한다?”
내 말에 매화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그리되니 시현이는 제자들 사이에서도 외톨이입니다. 밀어주는 뒷배가 없으니 더욱 고립되고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거지요.”
“매화자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아무리 무림맹에 계신다 한들…….”
“제가 무림맹으로 가게 된 것도 장로회의에서 그리 추천된 것일 뿐, 제 의견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매화자가 내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저라고 가고 싶었겠습니까? 내 제자를 남겨 놓고…….”
새삼 매화자가 진시현에게 품은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천하의 다시없을 기재입니다. 하지만 당장 저희가 문제가 되니 시현이가 스스로 제 가르침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제게 맡기신 겁니까?”
“단주께서는 이름도 없는 무사들을 고작 삼 년도 안 된 새에 신기검단이라는 천하의 다시없을 무사단을 만드셨습니다.”
매화자의 표정은 진지했다.
“단주의 실전감각과 용병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들 합니다. 감히 제집에서 밥만 축내던 저희들과는 비교조차 못 할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쌓으셨겠지요.”
정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났다.
근 오십여 년간, 정파무림은 한 번도 제대로 전쟁을 치러 보지 않았다.
딱 매화자 정도의 세대는 실전 경험이 전무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투 경험이 생소한 것이다.
“그런데도 제집 밥그릇을 잡겠다고, 도를 쌓고 등선을 염두에 두어야 할 장로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제자들을 어떻게든 올리고 싶어 바득바득 이를 가는 실정이니…….”
“이해는 가는군요.”
일대제자들은 각기 장로와 단주급으로 올라선다.
화산파를 떠받치는 대들보인 제자의 신분에서 이제는 제자를 가르쳐야 할 뿌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데, 그런 그들이 근본부터 욕심에 눈이 멀어 후학의 양성을 미룬다.
“장문인, 장문인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저희 문파입니다.”
“현재 매곡자께서 계시지 않습니까?”
“매곡자 사형은 힘이 없으십니다. 저희 사형제들 가운데 가장 우유부단했고, 가장 걱정이 많으신 분이시지요. 그래서 장문인이 되신 겁니다. 속빈 강정, 이런 말을 들어 보셨겠지요.”
그리 말을 하는 매화자의 표정은 침울해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문파의 문제점을 남에게 토로하는 그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제자를 제게 맡겨두고 무엇을 하시려 하시는 겁니까?”
난 가장 궁극적인 질문을 꺼내 들었다.
“화산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
듣기에 따라 상당히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매화자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그 모습을 제자에게 보이기 싫으신 겁니까?”
“겸사겸사입니다. 난 앞으로 시현을 돌봐 주지 못할 거고, 녀석은 계속해서 교육을 거부하겠지요. 하지만 이미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쳐 놓은 녀석입니다.”
“…….”
난 굳이 다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어제 처음 봤던 진시현의 모습을 상기해 봤다.
‘어쩌면…….’
진시현.
겉모습은 까불대고 말이 많은 녀석이지만, 그만큼 외로움도 잘 타고 누구보다 스승을 그려 왔을 것이다.
‘놈의 성취는…… 절대 매화자 못지않다.’
그 누가 알까.
진시현이 교육을 거부했다고?
놈은 홀로 수련했다.
그것이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받지 않은 수준이라면…… 놈은 천하에 다시없을 기재가 맞다.
‘남궁진, 무적, 종서…….’
남궁진은 성장 중이고, 곤륜의 무적은 이미 그릇을 만든 상태다.
완벽한 스승이 존재했고, 뒷배가 존재하는 녀석들.
하지만 진시현은 홀로 수련했다.
그 점에서 놈은 확실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가 맞다.
“어제 단주님의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매화자가 자신이 찬 검을 움켜쥐었다.
“사륭회가 저희 화산파에 이미 침투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근거는?”
난 짧게 물었다.
“저희 화산파에서 일어난 균열이 그것입니다. 후학을 양성하지 못한 문파는 궤멸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저희 화산이 딱 그 모습을 하고 있지요.”
“정확히 말씀해 주시지요.”
“시현이를 제외한 모두가 자하강기를 익히지 못했습니다. 시현이조차 제가 몰래 가르쳐 준 것일뿐. 세상 가장 약한 화산파가 바로 다음 세대에 도래할 것이라는 소리지요.”
“…….”
뒷골이 당겼다.
“후학을 양성하지 못한다. 엄청난 문제란 걸 알고 계십니까?”
“천하를 오시하던 신기검단주께서도 그리 느끼셨습니까?”
매화자가 씁쓸하게 웃었다.
당연하다.
후학이 없는 한 절대지존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천마신교가 천 년이 넘게 아직도 굳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구대문파가 정파무림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이유는?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산파는 화산의 가르침을 새기고, 후학을 양성하며, 그 후학은 가르침을 복기하며 또 다른 후학을 양성한다.
그렇게 이어져 온 역사고, 그것이 무림의 미래란 소리다.
“사륭회가 본질부터 어지럽혀 놓고 있었군요.”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절대 서두르지 않는 그들의 조심성은 이미 예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륭회가 맞습니까? 단주의 눈으로 보셨을 때?”
매화자의 물음에 난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언할 순 없겠군요. 그들이 나눈 세력에 따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무림을 괴롭히고 있으니. 하지만…… 달리 보자면 그들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장로들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매진자, 제 다섯째 사제이자 화산의 사장로인 그 녀석입니다.”
“매진자라…… 예전 정사회합 때 뵈었던 분이군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었던 인물이다.
얼굴 표정 변화가 하나도 없었던 자.
무슨 말을 해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었지.
“녀석의 힘을 빼앗을 생각입니다. 놈이 장악한 죽향원을 제압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깨끗한 화산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죽향원.
화산의 감찰원이다.
전대 화산의 선배들이 은퇴 후 자리하는 곳으로 그들은 화산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한다.
때에 따라 장문인조차도 파직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죽향원이다.
“그렇군요.”
난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내 한쪽 방향으로 돌아섰다.
내가 이곳에 나온 이유.
굳이 매화자에게 산책을 청해 이만큼까지 대화를 끌어낸 이유는 명확했으니까.
“들었느냐?”
“…….”
내 말에 매화자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 순간, 나무둥치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자 매화자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려 버렸다.
“너, 너…….”
“제자, 진시현. 스승님을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진시현.
그가 한차례 절을 올렸다.
그러고는 날 올려다봤다.
날 바라보는 그 두 눈빛에는 기이한 열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단주! 이게 무슨 짓이오!”
“쪽팔리십니까?”
난 담담히 매화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난 엄연히 제삼자입니다. 그런 내게 화산파의 속 문제를 논하셨으면서 어찌 다음 대의 장문인이 될 매화검수에게는 감쪽같이 숨기려 하십니까?”
깨끗한 화산?
그렇다면 다음세대인 매화검수들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편하게 앉아 스승이 차려 준 밥상만 주워 먹어라?
웃기는 소리다.
이런 폐단을 겪어 본 세대는 더욱 단단해지고 경각심을 가지게 된다.
“네 스승의 요청대로 난 널 거두겠다고 했다. 즉, 임시적으로 내가 네 스승이란 얘기지.”
난 이내 진시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말없이 가만히 내 말을 경청했다.
“스승된 도리로 네 사문의 폐단을 보여 주었고, 이제는 제자의 뜻을, 추후 펼쳐질 행동을 이해해 보려 한다. 하여…… 넌 어찌하겠느냐?”
“저는…….”
진시현이 매화자의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검을 꾹 움켜잡았다.
그의 얼굴이 개운해졌다.
“화산파가 좋습니다. 해서…… 스승님께서 하시려는 일의 선봉에 서고 싶습니다.”
진시현의 당당한 외침이 화산파 낙안봉 정상에서 나직히 울려 퍼졌다.
우웅―!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 전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각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 자하강기…….”
자하신공을 극성으로 연마해야만 보인다는 매화 문양이 눈동자에 각인된다.
“어, 어찌…….”
“이미 당신의 제자는 당신의 가르침을 모두 기억하고 행하고 있었습니다.”
매화자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스승이면서 제자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했다.
어리다고만 생각해서.
“직접 겪게하고 깨우치게 하는 것. 그것이 제가 수하들을 가르칠 때 했던 저만의 용병술이라고 보시면 되겠군요.”
난 이내 손을 흔들며 그대로 낙안봉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