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6
천하제일 시한부 (36)
주철진.
조카 놈의 이름이었다.
“왜…….”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알아봤다.
차게 식은 표정은 마치 이 삼촌을 반겨주듯이 해맑기 그지없었다.
척!
천천히 주변 시체들을 걷어 내고, 조카를 빼냈다.
화가 났다.
또한 궁금했다.
왜 조카가 이 꼴이 됐는지.
대체 왜, 자호 무사를 고용해 놓고 이 꼴로 만들어야 했는지.
“형한테 혼내서라도 데려다 놓겠다고 약속했는데…….”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이건 보지 않는 편이 낫겠지.”
화륵!
그대로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내 손에 닿기 무섭게 조카의 몸이 타들어 갔다.
일각도 채 되지 않아, 뼛가루만 남게 되었다.
난 뼛가루를 고이 모아 옷 한쪽을 찢어 그대로 감쌌다.
단단히 동여맨 뼛가루를 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래는 여기 있는 시체들 모두를 화장해 주려 했지만, 그럴 생각이 싹 사라졌다.
일단은 무슨 짓을 꾸미는 건지, 왜 조카는 이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알아봐야겠다.
파밧!
그대로 허공으로 솟구쳤다.
내가 들어갔던 공동을 벗어나기 무섭게 난 기운을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
우직! 우지끈!
나무로 만들어진 장판이 내게서 뿜어져 나온 기파에 의해 모조리 으스러졌다.
때아닌 소란에, 밖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무슨 소란이냐!”
“거, 건물이 흔들립니다!”
우왕좌왕하는 무사들의 기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윽고 그들이 전각 내부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번뜩!
“누, 누구냐!”
“침입자다! 침입자가 들어왔다!”
놈들은 들어서기 무섭게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고, 밖에서는 타종 소리가 요란하게 귀를 울렸다.
남창묵가의 모든 문이 닫히고, 외원의 일부 경비 병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사들이 이곳으로 집결했다.
“사백 남짓.”
정확히 내 근처에 있는 무사들의 숫자였다.
“잠깐 네놈…….”
“약화당의 짐꾼 아닙니까?”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내 의복을 알아본 몇몇 무사가 잔뜩 경계한 채, 검을 뽑아 들었다.
“한낱 짐꾼 따위가 품을 기운이 아니다. 정체를 밝혀라.”
고리타분한, 또한 전형적인 대사.
“내가 누군지 알면…….”
내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저들은 피라미들이다.
한낱 쓸모없는 그냥 그런 소모품들.
“뭐가 달라지나? 너희가 죽는다는 사실이?”
“이런 개새…….”
투쾅!
날 향해 달려들던, 무사가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뒤로 튕겨 나갔다.
그는 갈비뼈가 모조리 으스러진 채, 그대로 절명했다.
“천천히. 어차피 개기면 다 죽여 줄 참이니까.”
방금 날렸던 주먹을 풀고 조용히 마저 입을 열었다.
“너희 가주 어딨냐.”
내 말에 무사들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도저히 감내하지 못할 농밀한 살기가 내부를 가득 메웠다.
개중 약한 무사는 널브러진 채, 각혈까지 할 정도였다.
“이곳은 남창묵가요. 어디의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정식으로 용무가 있다면…….”
무사들 중 가장 뛰어나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서서 입을 열었다.
“가주께 말씀드려도 될 일. 이리 소란 피우실 필요가 있소?”
“너…….”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훈수질하는 그 말투가 심히 거슬려.”
그대로 미끄러지듯 몸이 먼저 반응했다.
쭈욱! 까가가각!! 콰아앙!!
순식간에 십여 보를 줄여 버린 난, 방금 입을 연 무사 놈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엄청난 속도에 내 몸은 마치 두 개라도 된 것처럼 잔상을 남겼다.
“이, 이형환위!!”
이내 다른 무사들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난 가주를 찾았다. 있느냐?”
“…….”
무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현재 세가 내에 가주가 없단 뜻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가 따끔거렸다.
“왔군.”
남창묵가에 들어서기 전, 확인했던 거대한 기운 둘.
절정급의 고수, 두 명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들은 단번에 상황의 심각함을 알아차리곤, 기운을 끌어 올렸다.
“저 시체.”
난 가만히 뒤쪽에 장판이 무너져 보이는 공동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해명해 봐.”
“세가의 일이오. 타인이 관여할 일…….”
까가가가각!! 터엉!
순보.
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그대로 거리를 좁히고 주먹을 날렸다.
역시나, 상대는 절정급의 고수답게 그 찰나간에 검집을 들어, 내 주먹을 막아 냈다.
“그 세가의 일…… 하필이면 내 가족이 걸려서.”
“가족이라……허면?”
“네가 가주를 대신할 수 있나?”
내 말에 상대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침착한 표정과는 달리 속으로는 상당히 놀란 상태였다.
‘무슨 놈의 기운이…….’
검으로 주먹을 막았다.
헌데, 마치 이쑤시개로 거대한 바위를 막은 것처럼 손목에 엄청난 격통이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찰나간에 주먹에서 터져 나온 권경이 내부 장기를 뚫고 그대로 전신을 격타해 버린 것이다.
‘권경을 저리 쉽게 뽑아내다니. 엄청난 고수다.’
“좋아.”
난 그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대화할 때는 수없이 고민하고 답해라. 만약 수틀리면 너흰 오늘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니.”
거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절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자호 무사.”
곧바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내 말에 놈의 표정이 일순 싹 굳었다.
아주 찰나간이었지만, 난 충분히 그 찰나를 간파했다.
“자호 무사를 어디다 썼고, 왜 죽었으며 저 시체가 의미하는 건 뭔지…… 다 고해라.”
“시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꽤 많은 수의 무사들이 웅성거렸다.
이제 보니 이류 수준의 무사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일류 무사들 중에서도 일부분만이 알고 있는 듯하고.
“전염병에 걸린 자들을 말씀하시는 것 같소만.”
“전염병?”
코웃음 밖에 나질 않았다.
눈에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다.
“검흔이 있던데, 전염병이라?”
“그건 어쩔 수 없었소. 워낙 통제가 안 되던 터라…….”
누가 보면 깜빡 속을 법한 표정 연기다.
마치 정말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죄책감이 가득한 저 표정.
하지만 난 속지 않았다.
“혓바닥이 기네.”
시체의 난 여러 검흔들.
그것들은 실컷 고문을 하다 죽어 간 흔적이었다.
“자세 잡아.”
순하결.
내재된 내공 사 할은 독기를 막는 데 치중한다.
남은 육 할에서 일 할을 끌어 올렸다.
파짓!
내기를 형상화 시키기 무섭게 대기가 일그러졌다.
‘이 무슨…….’
상대는 경악했다.
전신을 옥죄는 압도적인 기파에 검을 든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이…… 내가 겁을 먹었다고……?’
자신이 누군가.
남창에서 오 년 넘게 살면서 남창 제일검으로 불린 자신이다.
남창묵가에 투신하게 된 것도 묵가의 전 가주가 몇 달을 빌다시피 해서 오게 된 것이다.
“아직…… 딴 생각할 여유가 있나 봐?”
난 심히 기분이 나빠졌다.
감히 날 앞에 두고 딴생각을 품어?
파밧!
일순 순하결의 구결대로 끌어 올린 내기가 두 다리에 집중됐다.
투콰아아앙!!!
대지가 움푹 파이고, 상대의 모습이 동공 안에 가득 담겼다.
첫 타는 가볍게.
쩌정!! 치지지직!!!
상대가 간신히 검을 들어 내 주먹을 막아 냈지만, 그는 십수 걸음을 뒤로 밀려났다.
그러고도 충격이 해소되지 않았는지 몸을 억지로 몇 바퀴나 회전시켰다.
“후, 왜 구라를 쳐? 너 쟤네 고문하다 죽였잖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대에게 물었다.
고개를 털어 겨우 정신을 차린 상대가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는 내게 검을 겨누었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좋네, 그 후회. 한번 해 보지, 뭐.”
“쳐라!”
오호, 이번엔 다구리라.
“으앗!”
“히야앗!”
기합 소리와 함께, 남창묵가의 무사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좋아, 좋아. 너무 좋지, 이런 거.”
난 이십 년을 전장에서 살아왔다.
매일매일이 살이 튀고, 피가 흐르고 뼈가 부서지는 그런 참혹한 전장.
불리한 싸움도, 유리한 싸움도 숱하게 겪었다.
그런 곳에서 난.
혈귀, 혈공성이라 불렸다.
“월하무(月下武).”
극성으로 끌어 올린 일식호흡의 순하결이 순식간에 전신을 감쌌다.
“진천괴뢰(振天傀儡).”
충만하다.
가득 들이찬 내기가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듯 전신을 가득 채웠다.
마치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터트려 달라고!
지금 당장 자신을 내비치라고.
“삼재권, 제일 장.”
대인전이라면 오히려 바라는 바다.
“앙천대소(仰天大笑).”
콰앙! 콰직! 쩡! 쩌저정!
일정한 틀과 형을 벗어난 권식이다.
앞서 달려오는 상대의 목을 걸고, 그대로 허리에 힘을 주어 자세를 낮췄다.
당연히 상대의 자세가 무너졌고, 난 그대로 반동을 주어 또다시 달려드는 다른 놈들의 하단을 발로 걸어 자빠뜨렸다.
콰직!
일격에 무조건 하나씩.
상대의 면상이 뭉개지고, 갈비뼈가 부서지고.
“끄악!!”
“미, 미친…….”
피가 튀고, 뼈가 으깨지는 소리가 사방을 가득 메웠다.
쿠웅!! 쩌정!!!
틈을 주지 않는다.
상대가 잠시 물러난 틈을 타, 그대로 진각을 밟았다.
전각이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서까래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흐앗!”
다시금 무사들이 덤벼들었다.
‘차륜전인가.’
흑호방보다 낫다.
남창묵가의 무사들은 나름 체계적인 수련을 거쳤는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나를 압박해 왔다.
하지만.
“소용없다고.”
쿵!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는 그 수가 몇 배, 몇 십 배가 된다 한들, 그저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에 불과할 뿐.
투콰앙!!
정면으로 치달은 한 놈이 검을 휘둘렀고, 난 가볍게 고개를 틀어 피해 냈다.
그 틈을 노리고 좌우 양옆에서 또 다른 놈들이 검을 찔러 왔다.
파캉!
가볍게 허리를 틀어 놈들의 검을 교차시키고.
텁! 텅!
두 검을 그대로 겨드랑이에 끼운 채, 가볍게 허리를 틀었다.
땡강!
두 검이 동시에 조각났다.
‘순하결.’
동시에 독맥을 타고 흐르는 내기의 향연.
‘순보.’
직선적인 보법으로 눈앞에 마주한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고 놈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떠억!
“컥!!”
상대는 턱뼈가 아작 남과 동시에, 허공을 날았다.
그것이 기회였다.
놈이 허공에 붕 뜨는 그 찰나가, 상대의 눈을 가려 줄 바로 그 찰나가!
난 이미 놈들의 포위에서 벗어나 뒤에 벽을 맞대고 있는 상황이다.
“삼재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삼재권, 두 번째 장.’
좌수를 뻗어 놈들과의 거리를 상정한다.
우수는 고이 접어 허리춤에 맞추고.
두 무릎을 낮춘 채로 놈들이 시야 안에 온전히 들어올 때를 기다린다.
쿵!
허공에 떠올랐던 놈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를 맞춰 다시금 남창묵가의 무사들이 내게 성난 파도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이미 축기를 끝낸 상태다.
“파죽지세(破竹之勢).”
가볍게 우수를 뻗었다.
마치 몸속 내재된 묵직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듯, 응집된 내공이 그대로 형상을 갖췄다.
투콰아아아아앙!!!!!!!
“아아…….”
경이롭다.
그것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땡그랑!
남창묵가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떨어뜨렸다.
압도적인 무위 앞에 감히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미친…….”
지근거리에 있던 무사들은 형체조차 온전히 남기지 못하고,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흔들리던 전각이 마침내 무너지고, 그나마 살아남은 무사들 중, 절반 이상이 검도 들지 못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후우.”
난 가볍게 손을 털었다.
막대한 경력을 쏟아부은 터라, 손목이 연신 욱씬거렸다.
“살려주십시오.”
결국 절정급의 무사는 내게 검조차 내밀어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숙이기 무섭게 다른 무사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이실직고하겠습니다.”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절정급의 무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