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38
천하제일 시한부 (38)
밤이 깊었다.
낮부터 지금까지 형과 서희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형수도 조금 전에 일어났는지, 또다시 끅끅대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서희도, 형도 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날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가 봐야겠군.”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남창묵가의 완벽한 몰락.
대를 끊어 버리기 위함이었다.
슬쩍 뒤를 돌아봤다.
서희가 있는 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잠시 다녀오마.”
조용히 서희에게 말하고 그대로 남창묵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 * *
“…….”
남창묵가의 가주, 묵천주는 어이가 없었다.
천하상단과의 계약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장원이 완벽히 무너졌다.
“이게 대체…….”
“가, 가주님…….”
반신불수의 무사 하나가 피투성이의 몸으로 반색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묵천주의 물음에 무사가 사색이 된 채, 입을 열었다.
“미약 사업을 들켰습니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도망가야 합니다. 어서…….”
“뭘 들켜? 설마 정천맹이?”
묵천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당금 세상에 정천맹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세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정천맹의 신기검단의 눈치를 보는 것이겠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제길, 어떻게 눈치를 챈 건지…….”
무사는 묵천주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다물었다.
정천맹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상대에게 가문이 풍비박산 난 것을 알면 묵천주 성격상 더욱 미쳐 날뛸 테니까.
“남궁세가에 연락을 취해야겠다. 정천맹이 눈치를 챘다면…… 남궁세가도 위험할 수 있어.”
묵천주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당장 이럴 시간이 없었다.
“그럴 필요 없다.”
그때였다.
누군가 무너진 담장 너머 모습을 드러냈다.
“키헥! 끄악!!”
무사가 정체불명의 괴성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저리 엄청난 공포를 느끼다니.
묵천주는 단번에 상대가 장원을 이리 만든 범인임을 알아챘다.
“귀하는 누구시오?”
묵천주가 목소리를 깔고 물었다.
“일부러 목소리 깔지 마. 더 엿같으니까.”
상대가 씩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서진이었다.
“네가 가주냐?”
그냥 형식상 물어봤다.
수백 명의 식솔을 책임지는 가주라기엔 상당히 젊어 보였지만, 그건 하등 문제 되지 않았다.
문제라면 저놈이 바로 조카를 고용하고 죽인 흉수라는 것.
그것만이 중요할 따름이다.
“너희 약 빨았다며? 아니지…… 약을 판 건가?”
“헛소리요. 아무래도 본 가문을 음해하려는 자들의 모함을 들은 모양인…….”
“닥쳐, 아직 안 끝났으니까.”
어우, 목소리가 상당히 거슬린다.
심지어 개기름이 좔좔 흐르는 저 면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그의 입을 막고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철주검문에서 자호 무사를 고용해서…… 대체 왜 죽였냐? 너희 무사 아니었나?”
“자호 무사…….”
묵천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상대는 모든 조사를 마치고 온 듯했다.
설마하니 자호 무사의 일까지 들킬 줄은…….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발뺌하는 수밖에 없었다.
증거가 나올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문제는.
“지금 증거를 없앨 수 있다, 그리 자신하는 표정인데.”
너무 뻔하다는 거다.
저 생각 자체가.
“난 증거 따위 필요 없다. 니네가 약을 팔든 똥을 팔든 내 알 바가 아니라고. 내가 묻는 건 자호 무사를 대체 왜 죽였냐는 거다.”
“…….”
묵천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천맹 사람이 아닌 모양이군?”
말투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피식.
“그래. 정천맹은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지.”
“후후후.”
대답을 들은 묵천주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이 미친 하룻강아지 새끼가.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이따위 짓거릴 벌인 모양인데…….”
“…….”
대번 말투가 확 달라졌다.
“자호 무사를 왜 죽였나?”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묵천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근본도 없는 천한 잡종 놈 하나 죽여 없애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알면 안 되는 걸 알았다. 그게 중요하지.”
“아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유가 없다?”
“이유를 찾으면 뭐가 달라지나? 네놈이 곧 죽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죽는 데는 아무 이유가 없거든!”
“그렇군. 좋은 대답이다.”
죽는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음, 좋은 말이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밟힌다.
거기서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다.
“헌데…….”
그럼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적어도 죽은 망자에 대한 예우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여직껏 내가 그래 왔던 것처럼.
가슴속 한쪽 깊숙이 꽁꽁 감춰 두고 숨겨 왔던 죄책감 같은 그런 거.
“그럼 내 조카가 너무 불쌍해지잖아?”
“조카?”
묵천주가 이제야 상황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자호 무사가 네 가족이었느냐? 쯧쯧, 사정은 딱하지만 이 무림에서 그렇게 죽는 거야 비일비재한 일.”
“그렇지.”
수긍한다.
무림에서, 또한 무인으로 살아가면서 어처구니없는 일로 죽는 일이야 정말 비일비재했으니까.
“아쉽네. 사과 한마디는 들어 주려고 했는데.”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조카 놈에게 하는 인사였다.
“네 넋은 저놈 모가지로 대신하거라.”
“이놈!”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천주가 소리쳤다.
“우리 뒤에는 남궁가가 있다. 그분들의 창룡대만 움직여도 네놈은 중원 만리 그 어디서도 발 뻗고 잘 수 없음이야!”
“아하.”
그걸 믿고 있었구나.
정말이지…… 안 좋은 패를 쥐고 있었네.
“그렇다는데?”
난 뒤돌아서며 씩 웃었다.
“…….”
누군가 말없이 이쪽으로 걸어 들어왔다.
처음엔 멀어서 보이지 않았는지, 묵천주가 눈을 찡그리며 상대를 쳐다봤다.
이윽고 일정 거리가 되자, 그의 시야에도 상대가 누군지 훤히 보였다.
“흡.”
상대의 모습을 알아본 묵천주가 경악했다.
“초, 초, 총호법!”
남궁가의 총호법.
남궁진천이었다.
* * *
남궁가의 총호법, 남궁진천은 창룡대를 객잔에 대기시켰다.
그러고는 남창묵가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때였다.
흠칫!
순간, 누군가 자신과 거리를 좁히고 있음을 깨달은 남궁진천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그러고는 기척이 다가오는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문상?”
그는 우호법 우문상이었다.
“총호법을 뵙습니다.”
우문상은 포권을 취하며 다급하게 남궁진천을 향해 다가갔다.
“가시면 안 됩니다.”
“무슨 소리냐?”
“강한 자입니다. 남창묵가가 무너졌단 소문을 들으셨겠지요?”
남궁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좌호법에게 보고를 들으셨을 테니, 줄여서 말하겠습니다.”
“말해 보라.”
“주서진이라는 자가 남창묵가를 홀로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제가 감시하고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보란 듯 남창묵가를 향해 들어갔고, 정확히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 남창묵가의 전력이 모조리…… 죽었습니다.”
“알고 있다.”
남궁진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예?”
우문상은 어리둥절했다.
“이미 보고를 받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왔고.”
주제넘게 나서지 말란 뜻이었다.
우문상은 대번 남궁진천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숙였다.
“와서 어쩔 건데?”
그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진천은 화들짝 놀라 검을 반쯤 뽑은 채, 그대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돌아섰다.
주서진이었다.
“어쩔 거냐고.”
남창묵가를 향해 가던 중, 우문상의 기척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뒤를 밟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우문상은 남궁진천을 만났다.
“신기단주!”
내 얼굴을 확인한 총호법이 얼른 경계 자세를 풀었다.
그에 우문상은 어정쩡한 자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누구?”
기억에 없는 상대다.
“남궁가의 총호법, 남궁진천이외다.”
남궁진천은 자신을 소개함과 동시에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아, 총호법. 오랜만이오.”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자다.
저자세로 공손히 나오니 나도 일단은 그렇게 해 주었다.
반면 남궁진천은 속으로 침음을 집어삼켰다.
‘기척을 아예 느끼지도 못했다. 제길, 더 발전한 것인가.’
예전에는 꽤 강한 상대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아예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있는 듯 없는 듯한 경지.
자신도 초절정을 바라보는 지고의 경지에 올라있다 자신했는데, 그런 자신이 아예 가늠을 하지 못한다?
꿀꺽.
절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전 저희 남궁진성 그놈이 한 짓에 대해선 정말 죄송하단 말씀밖에는 전해드릴 것이 없소. 가주께서 직접 달려오셔야 마땅하건만, 현재 공무 중에 있어…….”
“아 됐고, 간단하게.”
“흠흠, 모든 것은 신기단주의 처분에 따를 생각이오.”
총호법이 고개를 숙였다.
‘의왼데?’
이런 반응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보통 명문가들의 콧대는 여간 높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명문가 중에서도 으뜸으로 쳐주는 곳이 바로 남궁세가다.
그런 그들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다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다?”
“물론이오.”
“단전을 폐하고, 아예 가문 밖으로 내쫓아 버리라고 한다면 어쩌시려고?”
비웃음을 실은 미소를 함께 날려 주었다.
“그리하겠소.”
어라?
남궁진천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문상, 넌 즉시 유성객잔에 있는 셋째 공자 남궁진성의 단전을 폐하고 길거리로 내쫓아라.”
“초, 총호법?”
우문상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어서!”
결국 남궁진천의 노성에 우문상이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몸을 날렸다.
“그만.”
덥썩! 쾅!
난 몸을 날린 우문상의 맥을 잡아 그대로 땅에 눕혀 버렸다.
“뭐 하자는 수작이야?”
불편했다.
사과 정도면 사실 받아 줄 생각이었다.
서희도 그걸 바랐고, 무엇보다 남궁가의 호위들 몇몇을 죽여 버렸으니까.
그걸로 대충 어느 정도 셈은 치룬 셈이니까.
‘이건…… 이상하지.’
이 정도 반응까지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이건 내가 끼어들 빌미를 아예 주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남궁가가 뭔 개수작을 부리는 건가?’
아, 그러고 보니.
남궁세가는 내가 정천맹을 나왔단 사실을 모른다.
그렇다면 정천맹이 싫어할 만한 짓을 숨어서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주 작은 꼬리라도 잡힌다면 지독하게 물고 늘어질 테니까.
피식.
재밌다.
하지만, 이젠 나랑 상관없는 짓이다.
남궁세가가 뭔 짓을 하든, 무림을 찜 쪄 먹든 사파로 돌아서든 알 바 아니란 말이다.
“신기단주께서는 우리가 어찌했으면 좋겠소?”
“뭘 바라는 것은 없어. 마음은 잘 알았으니.”
더 일이 꼬이기 전에 그냥 끝내야 했다.
그냥 그럴 생각이었다.
이때까지는.
“그것보다 일단 저것부터.”
난 남궁진천의 뒤쪽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묵천주.
그놈이 남창묵가에 들어서는 그 순간이었다.
* * *
서걱!
묵천주가 목을 잡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다가선 남궁진천이 그대로 묵천주의 목을 날려 버린 것이다.
“남궁과 손을 잡았다 해서 패악한 짓을 눈감아주겠단 뜻은 아니었다!”
풀썩!
남궁진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천주의 신형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스릉!
남궁진천이 검을 검집에 꽂아 넣고는 날 향해 돌아섰다.
“남창묵가의 처분은 신기단주께 맡기겠소.”
“지가 다 해 놓고 뭔 처분?”
허탈했다.
아직 물어볼 것도 남았는데.
이내 총호법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참 묘해.”
난 그런 총호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웬지 약이 올라 견딜 수가 없다.
이건 마치.
“뭔가 입막음이라도 하는 것 같잖아?”
“…….”
남궁진천이 말없이 돌아섰다.
“너희 뭔 짓거릴 꾸미고 있는 거냐?”
내 말투에도 날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