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50
천하제일 시한부 (50)
세가를 재건한다.
이것이 사실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나처럼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사람에겐 더더욱.
“음.”
형과 나, 그리고 초영 이렇게 셋이 집무실에 앉아 앞으로의 일을 심도 있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너…… 무슨 요새를 만들 생각이냐?”
대충 내가 구상했던 세가 내 계획서를 형에게 주기 무섭게 나온 말이었다.
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내가 건네준 계획서를 툭 던져 놓았다.
그러고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빤히 날 쳐다보았다.
초영 역시 굳은 표정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던 초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 읽어 보았습니다만, 몇 가지 여쭈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말에 난 말해 보라며 그녀를 말없이 응시했다.
“첫째, 후원에 전각들을 짓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혹여 무사들을 더 증원할 생각이신지요?”
“당연. 지금 악소패랑 봉칠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삼류 문파만도 못한 수준이니까.”
그 말에 초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부분은 형과 초영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봉칠이가 데리고 온 삼거리파가 열 명 남짓, 아지가 데려온 악소패는 삼십 남짓이다.
합해서 오십도 되지 않는 숫자로는 그간 빼앗기고 강매당한 전답을 회수하는 것도 벅차다.
“하지만.”
초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악안 전체가 시끄러워질 수 있습니다. 돈을 쫓는 낭인들이 찾아올 것이고 그들로 인해 당연히 크고 작은 싸움이 생겨날 것이고…….”
“알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조용히 세가를 재건하고 키우고 싶었지만, 아무런 잡음 없이 그간 빼앗겼던 본래 우리 것을 되찾는 것에는 반드시 무력이 동반될 것이다.
그렇다면 싸움과 돈을 쫓는 낭인들이 개떼처럼 몰려들 것이고, 거칠게 살아온 그들이 얌전히 있을 거란 보장은 없을 테니까.
“아직은 흑호방이 있기에 어느 정도 시끄러움을 잠재울 순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곧 시간문제.”
초영이 뭔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차라리 흑호방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오호.
좋은 방법이다.
주씨세가의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고 흑호방으로 하여금 무사들을 모집한다.
지금으로썬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일 수 있었다.
“나쁘지 않은데?”
내가 동조하자, 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흑호방주를 불러 주겠나?”
“바로 인편으로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초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형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딜 떠나려 하느냐?”
“…….”
“너무 급하게 움직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구나.”
형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떠나긴 어딜 떠나.”
난 피식 웃으며 형의 말을 대충 흘려 넘겼다.
내가 입을 꾹 다물자, 형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 됐든 우리는 결국 전장 한복판에 스스로 들어온 것이다. 헤헤 웃는 겉모습과 달리 속이 깊은 것을 알기에 내 따로 깊이 물어보진 않으마. 하지만…… 널 믿어 주는 우리들에게는 속 얘기도 해 줬으면 좋겠구나.”
“…….”
그 말을 끝으로 형도 곧 방을 나가 버렸다.
홀로 남은 난 착잡한 마음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발…… 이걸 어떻게 말하냐고.”
하나만 나와도 세상이 떠들썩해질 만한 영약들.
그것들이 있어야만 해독할 수 있는 극독에 중독되었단 사실을…… 그렇게 죽을 날을 받아 놨단 사실을 대체 어찌 말한단 말인가.
“일단은…… 지금에 충실하자고.”
그렇게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캄캄한 밤이었다.
거대한 대전에, 홀로 덩그러니 쓰러져 있던 한 사내가 움찔 몸을 움직였다.
“크윽…….”
사내가 자리에서 슬쩍 몸을 일으켰다.
그는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아, 아무도 없나?”
애써 힘주어 가신들을 불러 보아도 답은 들리지 않았다.
대전 전체가 완벽히 텅 비어 버린 것이다.
사내는 이내 몸을 일으켜, 대전을 벗어났다.
대전을 벗어나고 보니, 세가 전체에 인원이 보이지 않았다.
사내는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말라붙은 거칠거칠한 피딱지가 만져졌다.
“아버지…….”
아버지, 남궁천은 분명히 자신의 목을 그었다.
하지만 사내…… 아니 남궁진성은 살아 있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살거라, 절대 신기검단주의 눈에 띄지 말고, 숨거라.’
으득!
이가 갈렸다.
남궁천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기 무섭게 전신이 떨려 왔다.
‘안휘성 동쪽 경계, 마안산으로 향해라. 그곳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남궁이 비상할 마지막 힘이 있는 그곳을…….’
그게 끝이었다.
남궁천은 남궁진성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였다.
아니, 죽인 척했다.
그로 말미암아 세가 무사들의 각오와 사기를 드높였다.
“돌아오시지 못하겠지.”
남궁진성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남궁세가는 망했다.
아니…… 아버지의 뜻대로 망한 척할 것이다.
“금방 따라가 죽여 주마, 주.서.진.”
남궁진성은 잊을 새라, 서진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힘주어 발음하고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 * *
“우웩!”
벽을 잡고 그대로 울렁이는 속을 게워 냈다.
피가 섞인 토사물이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후우…….”
멀쩡한 척했지만, 사실 속은 뒤집힐 대로 뒤집힌 상태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남궁세가의 정예들을 홀로 상대해서 모조리 격퇴시켰다.
심지어 독기에 중독된 몸으로 말이다.
“죽겠네.”
난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남궁세가의 정예들을 상대하느라, 내력을 너무 끌어 쓴 것에 대한 후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었다.
“전하결이 문제인가?”
아무래도 너무 급하게 다룬 것일까?
이래저래 난감했다.
앞으로 얌전히 살아도 오 년밖에 남지 않은 삶이다.
모르긴 몰라도 독기의 발작이 이리 빨리 진행되는 걸 봐서는 그만큼 내 수명도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래도 아직은 버틸 만하니까.”
독기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내기로 충분히 쉽게 다스릴 수 있었다.
“내부를 한번 제대로 살펴봐야겠군.”
하긴, 요 근래 조금 급하게 움직인 감이 없잖아 있다.
남궁세가가 생각 보다 빠르게 치고 들어왔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하지만 이제 제법 시간이 남았다.
세가를 정비하는 것은 어차피 형과 초영의 몫이고 그동안 난 몸 상태를 착실히 점검해 볼 생각이었다.
“단주님!”
그때였다.
귀면탈혼이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왔다.
“미처 인사를 못 드려서…… 헤헤.”
그가 머쓱한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내게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러고 보니 남궁세가 놈들과 싸우기 전에, 강제로 귀면탈혼의 경지를 끌어 올린 적이 있었다.
간단한 타혈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기를 흡수하는 양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단주님.”
“아, 맞다.”
귀면탈혼을 보고 있자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귀면탈혼은 앞으로 삼거리파와 악소패들을 가르치는 훌륭한 교관이 될 것이다.
그들을 교육시켜 주는 조건으로 난 그에게 한 가지 무공을 가르쳐 주기로 했었고.
지금 새로운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귀면탈혼은 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성심이 매우 높아진 상태였다.
“나 잠시 별채 좀 쓰자.”
몸 상태를 점검하기에 이곳만 한 곳이 없다.
집이기에 안전하고, 그러면서도 후원에 있는 별채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
“예? 별채요? 아니 왜…….”
귀면탈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알 필요 없고, 아무튼 형에게 말이나 전해. 잠깐 할 일이 있어서 자리 비운다고, 금방 돌아온다고.”
“아, 옛. 전하겠습니다.”
귀면탈혼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내가 후원에 있다는 건 절대 말하지 말고.”
“옙, 알겠습니다.”
다소 과장된 행동이긴 했지만, 그걸로 됐다.
이윽고 난 서둘러 별채를 향해 걸어갔다.
* * *
“후우.”
먼지가 가득 쌓인 실내.
별채는 창고로 쓰이는 곳이라,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나마 귀면탈혼이 자신이 지낼 공간 정도는 대충 정리를 해 뒀기에, 난 그곳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어차피 세가가 정리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테고…… 그동안 남궁세가의 잔당들이 섣불리 덤비진 못할 것이고.”
음, 그걸로 됐다.
남궁천과 남궁진천이 없는 남궁세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나 마찬가지다.
아, 물론 거슬리는 장로들이 있긴 하지만 구심점이 사라진 마당에 당장 쳐들어올 리는 절대 만무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몸 상태를 최대한 정상으로 돌리는 것.
일단은 자리에 앉아 그대로 가부좌를 틀었다.
‘처음부터.’
내가 익혔던 무공들.
처음부터 한번 되짚어 다듬어 볼 생각이었다.
* * *
어두운 밤.
타닥! 탁! 탁!
잠행복을 걸친 한 여인이 어두운 숲길을 빠르게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계속해서 뒤를 돌아봤다.
푸슉!
순간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화살 한 발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를 뒤쫓던 추격자가 날린 화살이었다.
강력한 위력을 머금은 화살이 그녀의 뺨에 생채기를 남기며 날아갔다.
“허윽.”
다급히 고개를 틀어 간신히 화살을 피해 낸 여인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점차 그녀의 속도가 줄어 들고, 저 멀리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산속을 나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그제야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장원의 담벼락으로 후다닥 몸을 날렸다.
“여긴 어디쯤일까?”
그녀가 골목에 숨어 계속해서 주변을 경계했다.
그녀의 전신은 피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걸음걸이도 뭔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다리를 심하게 다친 모양이었다.
“으윽.”
그녀가 차오르는 통증에, 부들 몸을 떨었다.
“힘들어.”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여인은 그대로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벌써 며칠째던가.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히 뒤쫓던 무리들의 기척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잘 따돌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슬쩍 장원의 담벼락을 올려다보았다.
꽤 높고 견고해 보이는 담장이었다.
“미안하지만…….”
여인은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낼 생각이었다.
괜히 남의 눈에 띄어 뒤를 잡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파밧!
그녀는 순식간에 담을 넘었다.
턱!
이내 땅에 내려서기 무섭게 그녀는 앞에 보이는 건물로 다가가 바짝 붙어 섰다.
“휴.”
다행히 낡은 건물에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녀는 조심히 낡은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서던 여인은 인기척이 없자, 그대로 쓰고 있던 복면을 끌렀다.
일순 희미한 달빛에 그녀의 모습이 훤히 비쳤다.
백옥 같은 피부에, 짙고 긴 속눈썹.
긴 흑발을 곱게 땋아 길게 늘린 머리는 다소 헝클어져 있었지만, 결이 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그녀의 오똑한 콧날과 붉은 입술은 달빛에 비쳐 오히려 요염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능히 경국지색이라 불릴 만한 미모와 달리 그녀의 상태는 다소 처참했다.
피투성이에 군데군데 찢기고 뜯겨져 나간 의복이며, 연신 불안한 듯 계속해서 신경을 바깥으로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은 마치 뭔가에 심히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흠칫.
그때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
그녀가 본 것은 한쪽 구석에 자리한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서진이었다.
‘사람이…… 기척을 못 느꼈어.’
아무리 쫓기고 있다 해도,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기척을 느껴야만 했다.
다행히 아직 서진은 내부를 관조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여인은 재빨리 문고리를 잡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
‘지금 상태로 나갔다가, 만약 그들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다시 도망치기엔 지금 너무 지치고 힘든 상태였다.
결국 그녀는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만약 그녀가 나쁜 맘을 먹었다면 큰일 날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여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이 밤이 지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만, 신세 좀 질게요.’
마음속으로 서진에게 인사를 건넨 그녀가 기척을 감춘 채 서진의 반대편 구석으로 기어 들어가 조용히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렇게 밤은 더욱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