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93
천하제일 시한부 (93)
‘뭐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난 사내가 안내하는 데로 자리에 앉았다.
“드시지요.”
내 맞은편에 앉은 여인이 입을 열었다.
음식을 권하는 손짓, 천천히 젓가락을 드는 모습까지 행동 하나하나에 상당히 절제되고 여유가 넘쳐 흘렀다.
태생적으로 여유를 가진 전형적인 명문가의 여식다운 모습이었다.
“고맙게 먹겠습니다.”
서희와 북궁설은 냉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뭐 애초에 음식에 독이라든지 하는 그런류의 반응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와 흑련주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뭔가 찝찝했던 것이다.
무림에서 이유없는 호의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런 걸 경험상 잘 알고 있는 흑련주와 나는 섣불리 음식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다행히 상대는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는지, 뭐라고 작게 속삭이며 저들끼리 음식 먹기에 바빴다.
‘내가 예민한 건가.’
어쩌면 정말 순수하게 자리를 내어 준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예의 없게 행동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심 조금 미안해졌다.
“맛있다. 오라비! 이거 먹어 봐.”
서희가 내 접시에 음식을 조금 덜어 주었다.
난 어쩔 수 없이 음식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독 반응도 없는 것 같고.’
그제야 난 조금 안심하고 젓가락을 들 수 있었다.
일행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연신 창밖을 살폈다.
이 층은 훤히 뚫려 있었기에, 파양호를 정면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숫가에 모여 풍류를 즐기고, 그 안에서 또 수많은 가판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여유와 시끄러움 상반된 두 가지 분위기가 공존하는 곳.
“괜찮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딱 들었을 찰나였다.
풀썩!
느닷없이 서희의 고개가 푹 꺾였다.
난 화들짝 놀라 다급히 서희를 부축했다.
“무슨…….”
풀썩!
동시에 수레꾼과 그 아들도 풀썩 고개를 꺾고 쓰러졌다.
“이런…….”
이내 흑련주가 검을 뽑아 들었다.
난 내 맞은편에 앉은 여인을 노려봤다.
여인은 끝까지 차분했다.
풀썩!
마지막으로 버티던 북궁설마저 쓰러졌다.
“음식에 독을 탔나?”
“걱정 마시지요.”
여인이 입가를 손수건으로 쓱 훔치며 조용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흑련주가 검을 뽑아 여인의 목에 가져다 댔다.
내가 신호만 보내면 바로 목을 날려 버릴 듯한 기세였다.
난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라면, 서희에게서 그 어떤 독 반응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멈칫!
이내 난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주변이 너무도 조용했던 것이었다.
“허?”
허탈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있는 이 층은 상당히 넓다.
당연히 주변에 자리를 차지한 손님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손님들이 일제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에 변화가 없다, 즉 한패라는 소리.’
이 층에 있는 수많은 손님들이 모조리 이들과 한패다?
어쩌면 호랑이 소굴로 스스로 기어들어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황은 나빴다.
그때 여인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주 공자의 식솔들을 건드릴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녀가 웃으면서 흑련주가 겨눈 검을 손끝으로 가볍게 밀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돌아섰다.
이내 그녀의 뒷자리 손님으로 보였던 평범한 복장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왔다.
누가 봐도 여인은 명문가의 여식, 사내는 그 여인의 하인으로 보일 법한 분위기였는데 뜻밖에도 여인이 사내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주인님.”
“…….”
여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사내는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장님……?”
내 물음에 사내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처음 보는 것 같군, 신기검단주 주서진.”
상대는 날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보긴 뭘 봐? 심상으로 보나?”
비틀린 기분 만큼이나 말이 좋게 나갈 리가 없었다.
사내는 내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말을 이었다.
“잠시 할 얘기가 있어, 이리 자리를 마련했네. 그리 긴장하지 않아도 돼.”
“내 동생…… 뭔 짓을 한 거지?”
맘 같아선 당장 면상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냥 본인이 가진 약간의 잔재주라고만 생각하게.”
사내는 이내 가볍게 책상 위에 손을 올렸다.
“잡설은 집어치우고, 본론부터 얘기하지.”
“…….”
“나와 함께 일해 볼 생각은 없나?”
웃기는 소리다.
“없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가차 없는 내 거절에 사내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대와 같은 무인을 좋아하네. 거침없고, 뒤는 생각하지 않는 그 무모함이 참으로 마음에 든단 말이지.”
사내는 말과 함께, 품에서 뭔가를 꺼내 조용히 상 위에 올려놓았다.
“주씨세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지. 황금 일백 관의 값어치를 지닌 녹주석일세. 그냥 성의 표시? 라고 생각하면 편하겠군.”
“…….”
난 말없이 그가 내민 보석을 내려다보았다.
녹색빛이 도는 것 같기도 하고 푸르스름한 청색빛이 감도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딱 보기에도 상당히 비쌀 것 같은 보석이었다.
“듣기로 주씨세가가 현재 영역을 넓히고 있다 들었는데, 자금이 부족하진 않나? 강소성은 뭐, 해 먹을 만한 것이 없을 텐데.”
사내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넌 우리에 대한 정보를 다 알고 있고, 난 너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거로군.”
“뭐,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 새끼야.”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사내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뒤편에 서 있던 기품 있어 보이는 여인이 슬쩍 다가왔다.
척!
그런 여인을 사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난 여인을 지나쳐 사내에게 다가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돈 중요하지. 근데 잘못 생각했어. 돈은 언제든 있다가도 없는 거거든. 돈의 노예가 돼서 개짓을 하는 순간, 그건 부메랑처럼 언제고 내 뒤통수를 후려갈길 거란 말이지.”
“흠, 조금 씁쓸하군.”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돈에 대한 감상 잘 들었네. 헌데…….”
이내 사내가 번쩍 눈을 떴다.
그의 시선과 내 시선이 서로 허공에 얽혔다.
“난 주씨세가에 이 제의를 건넨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네.”
무슨 말이냐고.
당황해 되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내의 두 눈이 번쩍이는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파슷!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우웩!”
엄청난 어지럼증과 함께, 절로 무릎이 굽혀졌다.
한차례 속을 게워 낸 후, 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사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라비, 괜찮아?”
더군다나 서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말짱한 신색으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북궁설 또한 이상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지금 여기 있던 새끼들 다 어디…….”
“응? 무슨 사람?”
서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잠깐, 잠깐만.”
속이 울렁거렸다.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난 흑련주를 바라봤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분명 그녀는 검을 뽑았다.
“넌 혹시 뭐, 본 것이…….”
번뜩!
그때였다.
흑련주의 두 눈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그녀가 천천히, 또한 작게 입을 열었다.
“다음에 제대로 찾아가지. 그때까지 몸 보전 잘하고 있게.”
조금 전 그 사내의 목소리였다.
이내 흑련주의 눈에 깃들었던 황금빛이 사라지고, 그녀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뭐 해요?”
그녀가 퉁명스레 말하며, 날 슬쩍 밀쳤다.
아무래도 나 빼고 전부 다 최면이라도 걸린 것처럼…….
최면?
내가 아니라 나 혼자 걸렸던 거라면 말이 될 수도 있다.
“후.”
어쩔 수 없이 답답한 마음을 한숨에 날려 보내고, 자리에 앉았다.
결국 늦은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객잔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 * *
“무슨 생각해?”
서희가 물었다.
난 계속해서 객잔에서 만난 사내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그는 분명히 날 알고 있었고,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새로운 세력?’
그럴 리 없다.
녹주석을 그냥 성의 표시로 줄 정도로 재력은 엄청났다.
그런 곳이 한순간에 띵 하고 생겨날 리 만무했다.
그래, 다른 건 다 떠나서 사실 마지막 말이 제일 마음에 걸렸다.
‘난 주씨세가에 이 제의를 건넨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네.’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인즉슨, 주씨세가에 이런 식으로 제의를 몇 번이고 해 왔다는 말이 된다.
‘형이라면 내게 먼저 말했을 거다.’
그렇다면 형은 아니다.
주씨세가의 갑작스런 몰락.
그리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까지.
결국 답은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접촉을 했었다는 말이 된다.
‘사륭회.’
현재 내가 도출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세력이다.
가장 비밀스럽고 아직 밝혀낸 게 단 한 개도 없는 만큼 그들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편할 수도 있었다.
난 가만히 주머니에 있는 녹주석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생각하냐니까?”
결국 참지 못하고 서희가 버럭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별 것 아냐.”
“이상하네. 아까 객잔에서부터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서희의 물음에 주변 일행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나는 슬쩍 웃으며 그들의 시선을 회피했다.
“아니야.”
그 순간 불어오는 바람.
아, 그제야 지금 여기 보이는 일행 외에 아군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노진.
난 얼른 기감을 퍼트려 노진의 위치를 찾았다.
그러고는 노진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여기 있습니다.
노진의 대답이 들려오고, 난 곧바로 노진을 향해 물었다.
―객잔에서 수상한 움직임은 없었나?
―음,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노진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는 말은 노진의 풍신결조차 벗어난 움직임을 보였다는 말이 된다.
결국 상대가 움직일 때 노진도 염두에 두고 행동했다는 뜻도 된다.
‘치밀하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못했다.
세가 재건을 우선으로 삼았지만, 필연적으로 사륭회 혹은 그 의문의 사내와는 다시 만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 * *
경덕진.
본래 이곳은 군사 지구였다.
문파가 들어설 수 없는 군사적으로 요충지에 속하는 곳으로, 안휘성과의 길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말이 달라졌다.
길목을 여러 개 더 만들면서 경덕진은 예전과 달리 관문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했다.
물론 관군이 빠지면서 수많은 장사치들과 문파들이 눈독을 들이고 많이 넘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정지.”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무리들.
그래, 경덕진은 완벽한 도적들의 땅이 되어 버린지 오래였다.
일제히 얼굴을 가린 복면과 조잡하게 기운 가죽옷을 입은 사내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쿠.”
수레꾼은 화들짝 놀라 아들을 끌어안고 몸을 사렸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아니면 이곳을 모르는 시골 무지렁이던가.”
모습을 드러낸 도적들은 실실 웃으며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가진 것 다 내놓고 꺼져라.”
“후.”
작게 한숨을 내쉰 흑련주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