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0
헬 다이버즈 009화
9화
“오전 훈련은 이것으로 종료하겠습니다. 본 통제관의 지시에 따라 처음으로 훌륭하게 커리큘럼을 완수했으므로 상점 5점을 적립해 드리겠습니다.”
“흐그으으… 하아, 감사합니다.”
“이제 오전 커리큘럼을 무사히 완수했으니, 기존의 예정대로 오후는 자율 훈련을 실시하겠습니다. 점심 식사 후 한 시간의 자유 시간을 가진 뒤, 오후 1시를 기점으로 저녁 식사 전까지 자율 훈련을 진행하십시오. 저녁 식사 이후엔 밀린 이론 수업이 있으니, 개인 룸에서 대기하면 됩니다.”
“자, 자유 시간을 주십니까?!”
“예. 이전까지는 커리큘럼을 충분히 소화해 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자유 시간 및 자율 훈련 시간, 그리고 이론 수업을 뒷전으로 미뤄뒀습니다. 하지만 후보생이 빠르게 훈련에 적응하였기 때문에 본 통제관이 믿고 맡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고 맡긴다는 말인즉슨, 자신이 안 보는 사이에 적당히 농땡이를 치며 훈련을 해도 뭐라고 하지 않겠다는 의미.
조명은 드디어 통제관과의 동행 없이 자유롭게 기지 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권리와 여가 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어떻게 휴식 없이 이걸 버텼지?’
일순 통제관의 새하얀 방호복 뒤로 천사의 날개가 활짝 펼쳐진 것 같은 역겨운 환각마저 보였다.
어쨌든 휴식을 얻었으니 됐다. 저 짜증 나는 면상을 일분일초라도 빨리 안 보고 싶었다.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저녁에 봅시다.”
“시,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짧았다. 짧았지만 길었다.
다른 후보생들처럼 훈련에 지쳐 잠들지 않고, 악몽과 함께 잠에서 깨어 훈련장으로 끌려가는 일 없이, 겨우 자그마한 자유를 손에 넣기까지… 정말 짧으면서도 길었다.
먼저 훈련장을 벗어나는 통제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명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현재 시각은 11시 40분. 지금 당장 후보생 전용 식당으로 달려가면 우글대는 후보생들과 함께 짬밥을 먹을 수 있다.
‘지금까진 통제관이 어디서 사 온 건지도 모를 닭 가슴살 샐러드나 꿀꿀이죽 같은 걸로만 떼웠지.’
아침은 아예 먹지 않고―이유는 모르겠지만, 통제관이 먹이지 않았다―점심과 저녁은 어찌어찌 챙겨 먹더라도 모두 의무실이나 훈련장에서만 급하게 해결했다.
2030년의 군대 짬밥이라는 게 이토록 끔찍한 것이었나 하고 의문을 품었는데, 사실 으리으리한 후보생 전용 식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통제관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도… 나도 식당 짬밥 먹을 거야!’
어디서 주워들은 적 있는 PX?
구경도 못해봤다.
후보생들을 위한 각종 오락, 유흥, 스포츠 시설?
접근 권한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식당이라면 다를 터.
눈칫밥 하나는 고아원 시절부터 기가 막히게 잘 먹어온 조명이라, 선배 후보생들의 텃세에도 밥 두 공기쯤은 거뜬히 해치울 자신이 있었다.
어느덧 하나둘씩 식당으로 향하는 기인열전의 고수들을 뒤따라가 보니, 과연 소문대로 으리으리한 식당 건물이 거주 구역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하필 조명이 배정받은 개인 룸의 단지가 훈련장과 가까운 외곽에 있어서 지금껏 구경도 못해봤다.
‘사람도 더럽게 많네.’
개미 같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 거대한 식당 내부는 사람으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개중에는 후보생과 함께 밥을 먹는 특이한 차림의 통제관들도 눈에 띄었다. ‘훈련은 함께하지 않아도 식사는 함께한다’ 뭐, 그런 이상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통제관들 주위엔 후보생이 여럿 들러붙어 있네. 그리 인기가 많은 족속들 같진 않은데…….’
힐끗 훔쳐본 근처 테이블엔 잠수복에 고글까지 착용한 여성 통제관 주위로 후보생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그것도 그냥 즐겁게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 다들 어떻게든 통제관에게 말 한마디라도 붙여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흡사 무리를 이끄는 여왕벌 같은 광경.
여왕벌 무리에서 신경을 돌린 조명은 식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후보생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뭐가 그리 급한지,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조명과 같은 공간에서 지옥 같은 훈련을 펼친 다른 후보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 역시 뭔가 급해 보이는 기색이었다.
‘밥 먹으려면 한참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사람이 좀 나갈 때까지 시간이라도 때워야 하나?’
그런 조명에게 각종 자판기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몇몇 후보생들이 떨리는 얼굴로 다가가서 뭔가를 뽑고는 크게 소리를 내지르거나, 반대로 비명을 지르며 좌절하는 광기의 공간이었다.
‘오늘의 운세라도 뽑나? 그런 것치곤 다들 리액션이 배우 뺨치는데.’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있는 걸까 해서 다가가 보니, 각양각색을 자랑하는 자판기들에 붙어 있는 알록달록한 표지판이 보였다.
【상점 1점 투입 시 일반 아이템 1개 확률적으로 지급! + 랜덤 1회 뽑기!】
【상점 3점 투입 시 일반 아이템 1개 확정! + 랜덤 3회 뽑기!】
【상점 5점 투입 시 고급 아이템 1개 확률적으로 지급! + 랜덤 5회 뽑기!】
【상점 10점 투입 시 고급 아이템 1개 확정! + 랜덤 10회 뽑기!】
【상점 20점 투입 시 고급 아이템 2개 확정! + 고급 랜덤 5회 뽑기!(고급 아이템을 확률적으로 추가 지급)】
“군대에 웬 도박 기계가…….”
엄밀히 말하자면 해양 플랜트는 군대가 아니라 군사시설을 포함한 복합 시설들이 함께 어우러진 해상 도시이지만, 후보생의 거주 구역은 일단 군 시설에 속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돈이나 특별한 코인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상점이라는 별도의 포인트를 사용한다는 부분이었다.
가만 둘러보고 있으려니, 몇몇 이들이 소중하다는 듯이 자신의 신분증 카드를 움켜쥐고 다가와선 자판기의 투입구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싼 티가 나는 번쩍이는 불빛과 신명나는 음악이 이어지고……
사출구에서 빨간색의 작은 알약이 잡동사니와 함께 튀어나왔다.
“으아아아아! 열 내성 강화제! 뿅가 죽는다!!”
“미친! 좋겠다!!”
“으으, 좋은 건 지 혼자 다 처먹네…….”
“뽀찌! 뽀찌는 없냐?!”
열 내성 강화제인지 뭔지를 뽑은 후보생은 한입에 털어 넣곤 물도 없이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주위의 무수한 악수 요청도 무시하며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내지르는 익룡 같은 비명 소리가 끈질기게 조명의 귓가를 울려 댔다.
그 뒤를 따라 여러 후보생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자판기로 접근했다. 혹시 자신도 무언가 뽑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기대하는 눈치였다.
“피부 보습 연고?! 와!!”
“시력 0.001 강화제는 뭔데! 으아아아! 왜 나만 이런 똥 쓰레기를 주는 거냐고!!”
“골다공증 1% 확률 예방 우유… 후우, 오늘 동해 수온이 어떻게 되려나.”
과연, 이런 용도였던 것인가.
조명은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판기 앞에 섰다. 남들은 모두 상점 1점을 걸어 하나씩만 가져갔지만, 자신은 무려 20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보아하니 일반 아이템과 랜덤 뽑기는 볼 것도 없다.’
열 내성 강화제인지 뭔지를 뽑은 후보생도 5점이나 투입했기에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렇다면 당첨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히 20점 전용 자판기.
조명은 그 누구도 다가가지 않은 20점 전용 자판기 앞에 섰다.
도박이라곤 평생 해본 적도 없지만, 왠지 이 상점은 지금 바로 사용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령 그게 도박판이라고 하더라도, 어디서 샘솟는지도 모를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였다.
“그 강화제인지 뭔지나 나왔으면 좋겠네.”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은 물건 같아 보였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명의 금속 카드를 집어삼킨 자판기에서 밝은 빛이 번쩍였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황금과 7색이 뒤섞인, 휘황찬란한 무지갯빛 광채였다.
* * *
헬 다이버가 되어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자원입대한 사람들도, 국가가 주도하는 병역 의무로 인해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도 일정 수 이상은 반드시 후보생이 되어야 했다.
그것은 국가가 지정한 할당량이며, 일반 군인의 자리가 다 차면 남은 인원들은 무조건 후보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어차피 현 시대는 대부분의 강대국들이 헬 게이트에 푹 빠져 있기 때문에 군대를 동원한 전쟁이 발발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군에 입대하려는 사람들이나 군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많아도 모두가 군인으로 편성되지는 않는 것이다.
“후우, 죽겠네, 죽겠어.”
하루 목표치의 절반에 달할 만큼 엄청난 훈련량을 막 끝내고 식당에 들어선 남자, 김철호는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대학에서 1년간 실컷 논 다음 친구와 함께 동반 입대하여 딱 3년만 평범하게 썩다 나올 생각이었는데, 정말 운이 나쁘게도 친구는 일반 군에, 자신은 후보생으로 편성되었다.
그 덕분에 1년째 5급 통제관 아래에서 매일같이 단내 나는 훈련을 받고 있다.
훈련이라고 해봤자 직접적인 전투 기술이나 각종 장비를 다루는 법을 배우는 건 아니었다.
평범한 일반인조차 헬스 트레이너 뺨치게 만들어 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근력 단련이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외에도 펄펄 끓는 열탕 속에 깊이 잠수시켜 오래 버틴다거나, 푹푹 찌다 못해 웰던으로 익어버릴 것 같은 금속 갑옷을 입고 미친 듯이 뛰게 한다.
훈련 과정에서 쓰러지든 부상을 입든, 통제관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훈련을 속행하지 못하면 그대로 의무실에 처박아 버리곤 다른 후보생들을 계속 훈련시킨다. 모든 후보생이 행동 불능 상태가 되면 통제관은 제멋대로 휴가를 가진다.
조금 전만 해도 철호는 자신과 같은 시기에 들어온 동기 후보생을 의무실로 데려다 준 참이었다. 전신 2도 화상을 입고 그대로 기절해 버린 동기는 의무실에서 최소 며칠은 썩게 될 것이다.
‘이제 와서 힘들다고 때려치울 수도 없고, 사건을 일으킨다고 한들 영창 며칠로 끝내 버리니…….’
일반 군인이라면 온갖 미친 짓을 해서 어떻게든 군대를 벗어날 수 있겠지만, 후보생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였다.
미친 짓?
통제관이 직접 실력 행사에 나서면 후보생들은 찍소리도 내지 못한다. 정신병을 얻어 정말로 미친다면 후보생 자격이 박탈시켜 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통제관들에겐 담당 후보생의 자격을 박탈할 권한이 있으면서도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격을 유지시켜 준다.
한때 후보생이 헬 다이버로 승격하면 담당 통제관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고 소문까지 돌았으니, 통제관들이 후보생을 끈덕지게 붙잡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럴 거면 상점이라도 좀 팍팍 주든가…….’
통제관들이 적절하게 채찍(무력)과 당근(상점)을 활용하여 후보생들을 붙들어놓듯이, 후보생들 역시 이런 열악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상점 때문이었다.
상점 제도는 1기 후보생이 통제관들에게 맡겨졌을 때 만들어진 그들만의 보상 시스템이었다.
후보생이 통제관이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훈련을 하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이면, 그 대가로 아이에게 간식을 쥐어 주듯 상점을 적립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적립된 상점은 식당을 비롯해 해양 플랜트 곳곳에 배치된 통제관 소유의 자판기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다.
알려지기로는 통제관들이 제공한 물건이 특수한 방법으로 자판기 내에 봉인되어 있으며, 상점을 받은 후보생들이 슬롯머신과 유사한 자판기를 작동시켜 봉인된 물건들을 꺼내는 방식이다.
철호도 지난 1년간 열심히 적립한 10점의 상점을 이용해 자판기를 사용한 적이 있다.
1년에 단 10점!
한 달에 1점을 벌기도 힘든 이유는 자신을 포함해서 열 명이나 되는 후보생들이 한 명의 통제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며, 애초에 통제관들은 직급을 막론하고 후보생들에게 너그러이 베풀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철호가 열심히 벌어들인 10점도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열심히 해서 간신히 손에 넣은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아직도 자신이 미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