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1
헬 다이버즈 010화
10화
“후우, 빨리 승격을 하든가 해야지…….”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가 아니라 ‘더러워도 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서 참고 견디는 것뿐이다.
일단 헬 다이버로 승격하기만 하면 이 지옥 같은 훈련 생활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헬 게이트에 투입되는 정예가 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철호는 더 이상 통제관의 심한 간섭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아닌 게 아니라 헬 다이버는 통제관의 마음 내키는 대로가 아닌, 순수한 실적에 따라 상점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헬 게이트에서 값진 물건 하나만 건져 와도 상점을 5점에서 10점 사이로 벌어들일 수 있다. 더 이상 통제관을 갑으로 대우하는 것이 아닌, 통제관과 거래를 하는 파트너의 관계로 거듭나는 셈.
헬 다이버만 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후보생 전용 거주 구역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호텔 같은 개인 룸에서 실컷 벌어들인 상점과 정부에서 지급하는 보상금으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것이다.
“평균 승격 기간이 1년 반인 걸 감안해 보면 나도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음?!”
오늘도 싼 티가 줄줄 흐르는 짬밥을 먹고 훈련이나 마저 하려던 철호는 갑자기 저 멀리서 터져 나오는 눈부신 광채에 눈살을 찌푸렸다. 뒤를 이은 폭음은 식당 전체를 울리게 만들 지경이었다.
‘저긴… 자판기가 설치된 곳인데?’
자판기를 사용할 때마다 카지노의 슬롯머신마냥 시끄러운 음악과 화려한 불빛이 점멸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10점 뽑기를 했을 때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껏 이만한 규모의 광채와 폭음을 들은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뭐야? 뭔데?!”
“야, 설마 잭팟 터진 거냐?”
“에이, 설마… 아니라고 해줘!”
“그보다, 쟤 누구야? 처음 보는 앤데? 설마 쟤가 1점 뽑기로 잭팟 뽑은 거냐?!”
1년간 뻔질나게 식당을 들른 철호 역시 자판기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알진 못했다. 그렇다는 건 후보생이 된 지 얼마 안 된, 파릇파릇한 신삥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모든 신삥들은 처음 통제관과 만날 때 그들에게 상점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체험 같은 느낌으로 상점 1점을 부여받는다.
이미 아는 선배들로부터 언질을 받은 철호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꾹 참았지만. 반대로 신나게 식당으로 달려가 1점 뽑기를 하는 신삥들도 많았다.
1점 뽑기는 일반적인 아이템을 반반 확률로 1개 지급, 추가로 1회 랜덤 뽑기 1회로 아이템 하나를 더 지급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후보생들은 꽝 당첨과 그냥 줘도 안 가질 쓰레기 하나를 건져간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랜덤 뽑기에서 꽤 좋은 아이템을 뽑는 이도 있었다. 랜덤 뽑기는 고급 랜덤 뽑기에 비하면 좋은 아이템이 등장할 확률이 매우 낮지만, 천운이 작용한다면 하나쯤 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철호는 지금 막 저 신삥의 천운이 작용한 것임을 직감했다.
보나마나 통제관의 설명을 듣고 1점 뽑기를 하러 왔다가 잭팟을 터뜨린 것이리라.
“하아, 운빨 진짜…….”
철호는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10점 뽑기로 고급 아이템 하나를 챙겼지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추가분의 랜덤 10회 뽑기에선 고물상에 웃돈을 얹어주고 갖다줘야 할 쓰레기들만 잔뜩 나왔다.
1년간의 노력으로 얻은 실질적인 결실은 ‘고급 지구력 강화제’뿐. 그마저도 지옥 같은 훈련을 좀 더 오래 버티게 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철호도 극소수의 운빨충들처럼 열 내성 강화제를 먹었더라면 훨씬 더 빨리 헬 다이버로 승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이 상점 뽑기의 진짜배기는 열 내성 강화제와 공포 내성 강화제니까. 그것들만 얻으면 1년도 되지 않아 헬 다이버로 승격할 수 있다고 하니, 모든 후보생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신포도 같은 아이템이었다.
“어, 어?!”
“또? 또오오오오오?!”
“돈다, 돈다! 지금 무지개 돌고 있다!!”
‘뭐라고?!’
이어지는 함성 소리에 철호는 목이 삐걱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다시 냉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재차 눈부신 광채를 뿜어내며 달달달 흔들리고 있는 자판기와 당황스러워하는 후보생의 뒷모습이 함께 보였다.
‘아니, 그보다 1점 뽑기 아니었나? 어떻게 연속 잭팟이…….’
주변 사람들도 어찌나 놀랐는지, 오죽하면 후보생들 사이에서 여왕벌 노릇을 하기 바쁜 통제관들마저 흥미진진한 기색으로 희대의 운빨충을 구경하고 있었다.
‘연속 잭팟… 일정 확률로 드랍하는 일반 아이템 중에서 최고와 랜덤 뽑기에서 또다시 최고인가. 저게 만약 10점… 아니, 5점짜리 뽑기였더라면 진짜 미친 결과가 나왔을 텐데. 정말 아깝다!!’
휘황찬란한 광채와 시끄러운 폭음이 유명한 잭팟은 무조건 해당 뽑기에서 최고 등급의 아이템을 내준다.
예를 들어 시력 향상에 미미하게 도움이 되는 일반 아이템을 뽑는다면, 그것이 잭팟의 영향으로 타조 못지않은 시력을 가지게 해주는 최고급 아이템으로 거듭난다는 얘기였다.
그 점에서 저 희대의 운빨충은 부러운 한편, 정말 아까울 것이다.
고급 아이템을 확률적으로 지급하는 5점 이상의 뽑기였더라면 최고 중의 최고를 뽑았을 텐데, 로또 당첨보다도 더 대단한 운을 허무하게 날려 버린 것이다.
‘저 신삥 놈은 그 사실을 알면 배가 아파서 죽을지도 모르겠어.’
마치 ‘번호 하나만 더 맞췄으면 1등인데!’라고 울부짖는 로또 당첨자가 연상된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끝이다. 1점 뽑기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은 최대 두 개. 잭팟이 뽑기의 횟수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니, 이 이상의 운빨은 없을 것이다.
그리 믿었건만…….
“왜 또 빛이 나는데?!”
* * *
주변 사람들만큼이나 조명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사실 장난 반, 기대 반으로 돌려본 20점 뽑기인데, 설마 모두가 함성을 내지를 만큼 소란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또 빛나네.’
벌써 3회 연속으로 황금빛과 무지갯빛이 섞인 눈부신 광채가 자판기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앞서 사출구를 통해 뱉어낸 두 개의 아이템은 아직 꺼내보지도 않았지만, 튼튼하게 밀봉된 반지함 같은 상자에 잘 보관되어 있다.
정말 귀한 아이템은 이렇게 포장이 되어 나오는 건가 싶은 그때, 세 번째 아이템이 사출구 위로 굴러 나왔다.
“오, 사탕.”
잘 포장된 알사탕은 ‘민트초코맛 강화제’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덧붙여서 씨알같이 쓰여 있는 복용 효과는 ‘열기 흡수’라는 것이, 딱 봐도 약장사가 대량으로 판매할 것 같은 싸구려 느낌이었다.
서울에 살다 보면 종종 지하철에서 잡상인들이 온갖 희귀한 물건을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음이온이 뛰어난 뭐시기와 종말에 대비한 사이비 종교의 교전, 그리고 효과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영양제다.
‘복용 시 열기 흡수’라는 이 야리꾸리한 사탕도 그것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조명은 일단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뭣하면 통제관에게 먹여 민트초코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결국 세 번째를 끝으로, 연이어진 일곱 번째 뽑기까지 눈이 멀 듯한 광채가 터져 나오는 일은 없었다.
조명은 자판기에서 툭 튀어나온 빳빳한 쇼핑백에 잡다한 물건 네 개와 반지함 두 개를 쓸어 담으며 뽑기를 끝마쳤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잡다한 물건들조차 사출구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오오!’라거나, ‘와, 저게 뜨네?’라는 주변의 반응들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점심은 글렀네.’
시간이나 잠깐 때우려고 한 건데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아버렸으니, 아무리 간 큰 조명이라 해도 이런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긴 힘들었다.
눈칫밥을 먹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눈앞에 둔 맹수 같았기 때문이다.
뽑기 하나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조명은 오늘 처음 알았다.
‘돈 쓰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통제관들에게 받는 상점으로 하는 뽑기인데 다들 왜 이리 예민한 건지 모르겠네.’
실제로 돈을 퍼붓는 슬롯머신이었다면 조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곳의 분위기 역시 당연히 이해했을 것이다.
여러 알바처를 전전하다 우연히 도박장에서 일해본 적 있는 조명이기에, 도박장을 드나드는 인간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손해가 있으면 따서 메꾼다’라는 것이 도박꾼들의 기본적인 마인드인지라, 만약 이런 유형의 도박도 실제로 돈이 사용되고 있었다면 어마어마한 지하경제가 활성화되었을 터.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통제관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재화(상점)가 이곳이 암흑가로 거듭나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에 모여 있는 상당수의 후보생들이 상점 자판기라는 도박에 중독되어 있다는 건 잘 알 수 있었다.
‘오락 시설에 휴양 시설도 있다던데, 왜 다들 여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지 알겠군.’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용히 식당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갑자기 팔을 움켜쥐는 감각에 조명은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껏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군중의 한 무리가 튀어나와 조명을 둘러쌌다.
“야! 너, 어디서 왔냐?”
“최근 2년간 본 적 없는 얼굴인데, 신삥 아냐?”
“미친놈아, 신삥이 10점 뽑기를 한다는 게 말이 되냐? 그것도 연속 잭팟 세 번을?!”
“신삥이 맞다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 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할걸? 안 그래들?!”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장신의 남자가 주변을 향해 소리치자, 일부 후보생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또 다른 일부는 ‘사기 친 거 아냐?!’와 같은 말로 바람을 살살 불어넣는 중이었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괴롭힘에 익숙한 조명은 곧바로 지금 상황을 이해했다.
일단 자신의 20점 뽑기를 10점 뽑기라 착각하고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이들은 신입인 조명이 절대 정상적인 방법으로 다량의 상점을 손에 넣지 못했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즉, 조명을 더러운 사기꾼으로 몰아가려는 속셈이었다.
‘하필 그 쓸데없이 화려한 연출 때문에 선동까지 잘 먹히고 있어. 이러면 난감한데…….’
자신들은 아무도 뽑지 못했는데, 왜 조명만 연속 잭팟 세 번을 띄운 거냐며 성을 내고 있는 군중들.
애초에 상점 뽑기가 이번이 처음인 조명은 뭘 어떻게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냥 뽑아서 띄운 것뿐인데, 달리 할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미안하지만, 그 물건은 내놓고 경비대에 같이 가줘야겠다. 네가 같은 후보생이라면 어떻게 그만한 상점을 손에 넣었는지, 또 어떤 수작질로 잭팟을 연속 세 번이나 띄운 건지 해명해 줘야겠다.”
“잭팟이 뜰 확률이 있고, 제 운이 좋아서 잭팟을 띄웠다고 하면 믿으실 겁니까?”
“당연히 안 믿지. 미쳤냐? 너 같으면 번개 맞고 로또 1등에 당첨된 다음에 갑자기 천재가 됐다고 하면 믿겠냐고.”
“그럴 수도 있죠.”
“그럴 수야 있겠지만, 사실상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지난 5년간 그런 사례 역시 단 한 번도 없었고.”
“이제 제가 그 사례를 증명하는 표본이 된 것 아닙니까?”
“그걸 조작으로 만들어낸 표본인지 아닌지를 가려낸 뒤에 결정할 일이겠지.”
스포츠머리를 한 떡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주위에선 ‘우우’ 하고 야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잭팟 세 번이란 건 그들 입장에서 감히 용납할 수 없는, 불가침 영역인 모양이었다.
“깔끔하게 해명만 해. 그럼 그냥 운이 미친 듯이 좋은 걸로 하고 넘어갈 테니까.”
‘거참, 자연스럽게 개소리를 하네.’
실상 조명이 해명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없다.
통제관에게 상점 20점을 부여받은 거야 증명할 수 있다 쳐도, 잭팟 세 번이 터진 건 순전히 운이든, 기계의 오작동이든 조명이 수작을 부린 건 아니니까.
해명할 수도 없는 걸 해명하라고 닦달한들, 운이 좋았다는 말만 기계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눈앞의 무리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있으리라.
‘게다가 말은 좋게 좋게 하고 있지만, 절대 경비대로 데려갈 놈들이 아니야. 내가 이런 놈들을 한두 번 겪은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책임지겠다며 조명을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간 뒤, 폭력을 휘둘러 물건을 빼앗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그 또한 ‘조명이 사기를 쳤기 때문에 신고를 못한다’는 전제가 뒤따라야 하겠지만.
이런 부류는 순순히 말을 따라주면 안 된다. 차라리 크게 다칠 것을 각오하더라도 굳게 마음먹고 한 번 뒤엎는 것이 상책이다.
많은 괴롭힘을 당해본 경험상, 조명은 깡과 악바리가 있다면 결국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불시에 달려들 땐 어쭙잖게 얼굴이나 복부를 노리면 안 돼. 위험하더라도 무조건 급소만 노린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가 아닌 해양 플랜트. 후보생 간의 싸움이 허용되는지, 싸움을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는지 조명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기껏해야 영창 며칠이 전부일 터.
조명은 군의 시스템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르지만, 분위기상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이대로 순순히 그들에게 붙들려 나가는 척 걸음을 옮기던 조명은 재빨리 팔꿈치를 휘둘러 옆에 있는 떨거지의 명치를 찍으려 했다.
이왕 일을 벌일 거라면 가능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편이 나았다. 자신이 마냥 당하는 존재가 아니란 걸 증명해 보여야 하니까.
운동을 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지금이라면 팔꿈치 한 방으로 무방비한 인간을 기절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후보생.”
“……!”
조명의 팔꿈치가 옆의 사내에게 닿기 직전,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목소리에 장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