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13
헬 다이버즈 112화
112화
예상대로 가장 먼저 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전기였다.
그는 전도가 총에 맞아 바닥을 뒹구는 것을 보고 함부로 일어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정신적으로 버티는 건 힘든 모양이었다.
“왜!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돈을 원한다면 주겠어! 사과하라면 얼마든지 사과할 거고, 평생 속죄하고 살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겠어! 그런데 왜 이런 짓을……!”
“…진심으로 제가 이런 걸 원했다고 생각하세요?”
“원했으니까 이러고 있는 거겠지! 그래, 우리가 몹쓸 짓을 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우린 네 부모님의 죽음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어! 그 녀석이 죽은 건 그냥 사고였고, 네 어미는… 더 이상 살아갈 의지가 없었을 뿐이지!”
“맞아요. 까놓고 말하면, 우리 부모님의 죽음에 당신들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건 없죠. 하지만 그건 첫 번째 죽음에 관여하지 않았을 뿐이잖아요.”
“무슨…….”
“이해가 잘 안 되세요?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한 번 더 죽음으로 몰아넣으셨잖아요.”
조명이 품속에서 자그마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던졌다.
봉투 속에서 삐져나온 내용물은 이미 처리된 사망보험금 지급 서류였다. 꽤 오래된 것이지만, 지금의 조명이라면 매우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저희 부모님들께선 사망 보험을 들어두셨더라고요.”
“……!”
“보험 자체는 저를 낳기도 전에 들어두신 것이지만, 정작 그 보험금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더라고요.”
“오빠, 이게 사실이야?”
“아니, 그건……”
“다 끝냈다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으면서!”
설마 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또 다른 치부가 폭로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전기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 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전등의 회사를 빼앗았을 때처럼 전기는 온갖 더러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에게 돌아갔어야 할 보험금까지 가로챘으니까.
전기는 조명에게 있어서 큰아버지에 해당하는 사람이고, ‘보호자’라는 이유를 내세운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조명의 권리를 임시로 맡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전등의 사유 재산과는 달리 순수하게 억대에 달하는 사망보험금(현금)을 온전히 꿀꺽하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비밀스럽게 계획하여 보험금을 낚아챈 것이리라.
남의 재산을 고스란히 빼앗을 만큼 영악한 인물이니,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게 빤했다.
“눈물이 다 나오더라고요. 난 분명 훌륭한 ‘보호자’가 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고아원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사회에 내던져졌는데, 어째서 그 ‘보호자’는 나를 돕기는커녕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지…….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 아닌가요?”
철컥.
샷건의 총구와 주변인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향하자, 전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큰아버지, 잘 생각해 보세요. 이게 정말 제가 원해서 벌어진 상황인지, 아니면 큰아버지를 비롯한…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자초해서 벌어진 상황인지.”
“…….”
“대답 못하시겠죠. 원래 자기가 진짜 잘못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처음엔 막 소리를 지르다가도, 어느 순간 할 말이 없어지면 묵비권을 행사하거든요.”
제대로 된 미친놈이라면 차라리 헛소리라도 씨부리며 처벌에 즐거움을 더해주겠지만, 저런 식으로 입을 다물어 버리면 반대로 재미가 격감한다.
죄책감을 느껴서 저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어떤 말도 앞뒤가 안 맞기 때문에, 논리가 맞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할 말이 없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제 십수년 묵은 원한을 오늘 깔끔하게 털어내자고요. 그러기 위한 송년회잖아요?”
다 함께 작당모의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재산을 빼앗고, 사망보험금도 빼앗고, 홀로 남겨진 조카를 챙기지도 않고 세상에 내던졌다.
목숨으로 갚으라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따질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사과를 받고 용서해 주기는 너무 늦어버렸다.
조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진실게임을 시작했다.
룰은 이미 알려줬으니 두 번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럼 바로 시작하죠. 첫 번째 질문은… 고모한테 해볼까요?”
“……!”
“정말 심플한 질문이지만, 아주 중요한 질문이기도 해요. 고모는 가족들을 사랑하시나요?”
“다, 당연하지! 당연히 사랑해!”
조명은 의무관을 바라보았다.
의무관은 기계를 살피더니 클리어 사인을 보냈다. 거짓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와! 가족을 사랑하신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고모에게 있어서 오빠 되는 사람의 재산을 빼앗고, 그 사람의 아내를 집안에서 내쫓고, 그 사람의 자식까지 고아원에 처박는 데 찬성하셨으면서도 모성애가 있으시다니… 이거, 기네스북 등재감 아닌가요? 세계에서 가장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그 자신의 선택에 단 한 치의 후회나 의심도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너, 넌… 내 자식이 아니었으니까. 넌 잘 모르겠지만, 당시의 우리 부부는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했던 거야. 아이를 둘이나 키웠으니까!”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말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제가 뭐, 고모더러 키워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요. 애초에 고모도 그럴 생각이 없으셨으니까 그런 인간 같지도 않은 짓을 하신 거고.”
“어쨌든! 난 진실을 말했어!!”
조명은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무렴요. 평생 거짓만 말하시다 이제야 진실을 말하셨는데, 조카로서 당연히 편의를 좀 봐드려야죠.”
조명은 다시 리모컨을 들어 TV를 조작했다.
TV의 화면이 순식간에 바뀌고, 또 다른 영상이 출력되었다.
영상 속에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한 청년이 외딴 장소에 묶여 있었다. 화질이 너무 깨끗해서 청년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는 게 당연했다.
그러자 기대하던 변화가 나타났다.
삐, 삐, 삐.
지혜에게 연결된 기계에서 단조롭지만 귀에 거슬리는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웁스, 너무 빠른데요?”
“아, 아니야. 이건…….”
전자음이 더욱 커졌다. 그녀의 남편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꽤나 압권이었다.
저 표정만 주구장창 보고 있어도 XL 사이즈 팝콘을 두 통은 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는 거짓말을 안 하죠. 그럼 여기서 서비스로 추가 질문을 하나 더 해볼까요?”
“…그만.”
“고모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두고서 외간 남자와 간통했나요?”
남들 앞에선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할, 직설적이면서도 모욕적인 질문이 조소가 담긴 조명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당연히 진실이 아니라면 ‘절대 아니다!’라고 악에 받친 고함성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악에 받친 고함성도, 격렬한 부정도…….
그저 할 말을 잃은 제 오빠처럼 지혜 역시 입을 앙다물었다.
이런 개돼지들에게도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는 탓에 개나 소나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법치주의 국가의 유일한 단점이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조명은 스마트폰으로 어디론가 연락을 넣었다.
“아, 저예요. 지금 막 진실게임에서 박지혜 씨가 거짓을 말하셨는데, 예정대로 애들은 전부…….”
“자, 잠깐! 잠깐만!!”
“잠깐만요.”
조명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그녀는 핏발이 선 눈으로 조명을 노려보았지만,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불가능했다.
그게 가능했다면 이들 모두 조명이 식당에 들어선 순간 죽었을 테니까.
“해, 했어……”
“예? 잘 안 들리는데요?”
“간통했어! 했다고! 이제 됐니!!”
치욕감에 눈물까지 흘리며 부들부들 떠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조명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바람피운 건 본인인데,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어쨌든 진실을 말하셨으니 다행이네요. 이렇게 다들 한자리에 모였는데 거짓말을 하는 건 좀 그렇잖아요?”
잠시 후, 영상 속의 남자는 풀려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자신의 외모와 말발로 숱한 여자들을 속여 먹었을 뿐인 병신이니까. 객관적으로 보면 나쁜 놈인 건 맞지만, 지금의 조명에게 저런 잡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들 보셨다시피 진실게임은 이런 게임이에요. 거짓말을 하면 여러분 자식들, 그러니까 제 사랑스러운 사촌 동생들이 죽는 거죠.”
“미친 새끼!”
“큰아버지한테 듣고 싶은 말은 아니네요. 그럼 다시 착착 진행해 볼까요? 다음은… 고모부!”
“크음!”
이미 자신의 아내가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멘탈이 크게 흔들리고 있던 최준하는 침음했다.
“그렇게 쫄 것 없어요, 고모부. 사업도 잘하고, 남한테 노하우도 알려주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잖아요? 분명 인망도 두터우실 텐데, 뭐가 그리 두려우세요?”
“…….”
“아, 그런데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또다시 바뀐 TV 화면.
이번에 등장한 것은 굉장히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저수지처럼 보이는 장소였다. 영상도 아니고, 단순히 이미지 파일 하나를 출력한 것뿐이지만, 그의 반응은 지혜 못지않았다.
삐, 삐, 삐.
“오! 연세가 좀 있으신 것 같은데, 기억력이 꽤 좋으신가 봐요?”
“어, 어떻게… 대체 어떻게…….”
“제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이곳저곳 들렀다고 했잖아요? 당연히 넘쳐 나는 돈으로 여러분 뒷조사도 하고, 직접 탐문도 해보고… 꽤 바쁜 하루를 보냈어요. 인간 박조명, 독기 하나로 지금까지 아득바득 살아왔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사실 조명은 조사를 하면서도 꽤 놀랐다. 무슨 보물 상자도 아니고, 뚜껑만 열면 기대 이상의 것들이 튀어나왔다.
조명은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근본까지 썩어 빠진 쓰레기들이라곤 해도 혹시나 자신의 가족에게만 피해를 입힌 게 전부였다면 어쩌나 싶었으니까.
그랬다면 ‘상대적으로’ 처벌 수위를 조금 낮출 수밖에 없었을 텐데, 한 번 털어 보고 나니 그런 배려는 필요 없다는 걸 알았다.
다들 하나같이 병신 같은 삶을 살아준 덕분에 즐겁게 이 과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럼 고모부, 질문해 볼까요?”
“안 돼. 하지 마… 제발… 뭐든 할 테니까!!”
“고모부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사람을 죽인 후 드럼통에 시멘트를 채워 넣고 저수지에 유기한 적이 있죠?”
“제발 그마아아아아안!!”
“5초 드릴게요. 5초 안에 대답하지 않으시거나, 거짓을 말하면… 아시죠? 5…….”
“여보, 당신……?”
“아니, 그게 난……!”
“4…….”
“…정말 그랬어요?”
“빌어먹을, 그건 사고였어!”
“3…….”
“어떻게 그럴 수가……”
“멀쩡한 가족 내버려 두고 바람피운 당신이 할 소리야?! 난 우리 가정을 지키려고 그랬던 건데!!”
“2…….”
“사람을 죽여놓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나야 한순간의 유혹을 못 이겨서 그렇다고 쳐도…….”
“그럼 나는? 나는 계획적으로 그랬을까 봐? 나도 우발적인 건 마찬가지였어! 그놈이 우리 회사를 상대로 협박을 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1… 대답은요?”
“……그래, 내가 그랬다.”
“정확히 말해주세요.”
“내가… 그 남자를 죽여서… 저수지에 유기했어! 으흐흐흑!!”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 조명은 조롱으로 되돌려 주었다.
“10년 미해결 사건의 진범의 자백이 겨우 유가족들에게 전해질 수 있겠네요.”
통제관의 힘을 빌리면, 최소한 이들에 한해 조명이 알아내지 못할 것은 없었다.
어느덧 두 명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 남은 두 명만이 조명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