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15
헬 다이버즈 114화
114화
“그쪽 일은 잘 끝났나 봐?”조명과 1004가 전차로 돌아와 보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666이 안부를 물었다.
“예. 깔끔하게 처리했죠.”
“네 나름대로 잘 정리했겠지만, 어쨌든 죽이지 않았다면 그건 깔끔한 게 아니야.”
역시 적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전직 군인답다고 할까, 666이 피식 웃으며 조명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 일을 계획할 때만 해도 666은 그냥 깔끔하게 고문하고 죽여 버리는 게 어떠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조명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1004의 의료 기술이라면 관련자들을 모조리 납치 감금해서 십수년간 목숨만 붙여둔 채 고문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건 조명이 행하고자 하는 복수의 취지에 맞지 않았다.
이건 비단 조명 혼자만의 복수가 아닌, 파괴되어 사라진 조명 일가에 대한 복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미 떠나간 자들의 생각 같은 건 알 수 없지만, 아마 조명의 부모 또한 저들이 그저 육체적 고통만을 받다가 허무하게 죽어버리길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자란 것들에게 자비 없는 세상의 풍파를 맞게 하면서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곱씹게 하고, 종내에는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 버러지로 죽을 것인지 선택하게 만드는 방식은 최고의 복수였다.
저들이 받아온 자본주의의 특혜는 모조리―물리적으로―사라졌고,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가족과는 오랜 시간 동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곧 저들이 저택에서 끌려나와 길거리에 나앉게 될 생각에 조명은 희열을 느꼈다.
“저도 666처럼 뒤탈이 없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냥 고문하고 죽여 버리는 건 너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저들도 너처럼 똑같이 고통받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들을 진심으로 용서해 줄 건 아니잖아.”
“당연히 용서는 안 되죠. 만약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 상태라면, 그땐 미련 없이 죽여 버릴 거예요.”
저들이 정녕 버러지로 죽겠다면, 기꺼이 버러지로서 죽여줄 생각이었다.
“생각을 고쳐 먹는다면 남은 인생은 보장해 주는 거고?”
“근본부터 썩어 빠진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둬들이는 건 아니라고 했으니, 그 정도면 딱 목숨만 붙여두는 게 좋겠죠. 돈 몇 푼 쥐여 주고 허름한 집에 처박아서 남은 여생을 즐기게 내버려 두면 돼요.”
이미 미래에 어떻게 처리할지도 다 생각해 뒀다.
더 이상 그들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가 않은 조명은 1004가 내민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들었다.
최근 1004는 곧잘 조명에게 마실 것이나 씹을 것을 주곤 했는데, 배가 부르다거나 지금은 괜찮다는 말을 해도 억지로 먹였다.
그런 점을 보면, 통통한 손주의 팔을 만져 보곤 왜 이렇게 말랐냐며 기겁하는 할머니 같은 구석이 있었다.
한겨울에도 금속 차체가 식지 않고 뜨끈한 열기를 유지하고 있는 전차 위에 걸터앉아 있으려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통제관들이 박전기와 박지혜의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와! 탱크!”
소년답게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보자마자 눈이 시뻘개진 박열성이 전차에 달려들었다.
악독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진무구하고 천사 같은 아이였다.
아마 조명의 할아버지 아래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그 인간들처럼, 열성 역시 그런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전차에 좋아 죽는 열성과는 달리 잔뜩 굳은 얼굴로 다가온 두 남매는 멍하니 조명을 바라보았다. 어린 열성에게는 일부러 진실을 숨겼지만, 이미 고등학생이 된 두 남매에게는 제대로 진실을 알려주었다.
“지호랑 지나지? 오늘부터 내가 너희들의 후견인이 돼줄 거야.”
조명이 다가가 악수를 청하자, 누나 쪽인 지나가 동생을 대신해 손을 잡았다.
수험생이라 그런지 긴 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는 체육복 위로 두꺼운 패딩을 걸친 채였다. 분명 밤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이 사태에 휘말린 것이리라.
자신의 부모들이 사촌 오빠(조명)에게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 사촌 오빠가 자신들의 가정을 어떻게 박살 냈는지 다 알고 있으니 불편해하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 저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조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묻자, 잠시 대답을 망설인 지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각기 다른 방호복을 입고 있는 존재들이 헬 다이버들을 양성하는 막강한 존재인 통제관이란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실제로 그들이 힘을 사용하는 모습도 봤을 테니,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저희 부모님이… 그쪽한테 큰 잘못을 저질렀잖아요. 저희도 연대책임으로…….”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인 줄 알아? 너희들 부모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건 맞지만, 너희가 저지른 일은 아니잖아. 애초에 몰랐던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 그 양반들 핏줄이라고 해서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오히려 내 개인적인 복수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 났으니, 책임지고 후견인 노릇을 해줄 생각이야.”
누군가는 원수의 자식들에게 굳이 그런 일을 해줄 필요가 있겠느냐고 따질 수도 있다.
오히려 원수의 자식들이라면 그 원수들을 고문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종용했겠지.
당연히 조명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날, 아무것도 모른 채 장례식장에 처박혀 있던 어린 조명처럼, 친척들에 의해 고아원에 처박힌 조명처럼… 이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병신 같은 부모를 만나 애꿎은 피해를 입은, 불쌍한 아이들이었다.
“손을 써서 합법적으로 너희의 후견인이 될 예정이니, 필요한 모든 걸 지원해 줄 거야. 물론 너희 부모들이 주던 알량한 자식 사랑 같은 건 줄 수 없겠지만.”
“…저희가 밉지 않으세요? 그쪽이 받아야 할 재산을 저희 부모님들이 모두 가로채서 저희를 키웠잖아요.”
“그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너희들을 학대하면서 지금껏 내 재산으로 놀고먹은 것 다 뱉어내라고 할까? 지금의 너희들이 그게 가능할 리도 없고, 나도 그런 짓 할 생각 없어.”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저희 부모님들은 그쪽의 원수인데, 그 원수의 자식들을 보살펴 준다는 게…….”
“죄가 있어야 죄를 묻지. 그리고 정작 죄를 저지른 놈들은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모르던데, 그에 비해 너희들은 제대로 알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양반들에게서 나온 자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올바르게 자란 아이들이다.
조명은 이 추운 날에 갑작스럽게 집을 나오게 된 아이들을 더 세워둘 수 없어, 모조리 전차 안으로 들여보냈다.
내부가 상당히 넓고 쾌적해서 몇 사람 더 태운다고 자리가 부족하진 않았다.
조명의 옆에 앉은 지나와 지호는 저 혼자 신이 나서 8282에게 매달려 방방 뛰고 있는 열성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야 이미 어느 정도 머리가 굳어서 괜찮다지만, 너무 어린 열성이 걱정된 것이리라.
부모 없는 자식으로 키워야 한다는 건 조명에게도 조금 걸리는 일이지만, 그 점은 최대한 대체재로 해결해 볼 생각이었다.
우선 이 아이들 모두 이동식 해양 플랜트로 옮긴 뒤, 그곳에 거처를 마련해 전문학교를 다니게 할 생각이었다. 외출 무제한, 용돈 무제한, 그리고 열성에게는 따로 아이 돌봐주기를 잘하는 통제관과 전문 가정부, 선생님까지 붙여줄 생각이었다.
‘그런 부모 아래에서 자라 못된 것만 배우는 것보단 낫겠지.’
다소 뒷맛이 씁쓸하지만, 조명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은 응어리는 이것으로 모두 사라졌다.
늦은 밤임에도 조명은 육체적으로 조금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생각하고, 짜여진 계획대로 정확하게 움직이느라 꽤 많은 정신력을 소모했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잠깐 눈을 붙이려는 찰나, 조종석에 탑재된 라디오를 통해 심상찮은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건 인간 사회의 정보 또한 중요하다며 8282가 직접 설치한, 전 세계의 긴급 속보만 골라서 전해주는 특별한 라디오였다.
자동 번역 기능까지 탑재되어 있어, 외국인 특유의 혀가 구부러지는 듯한 억양이 아주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치환되었다.
[조금 전에 저희 CHH 뉴스룸으로 들어온 긴급 속보입니다. 얼마 전, 중국 텐진 항에서 발생한 원인불명의 대폭발로 인해 주변 일대가 매우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그로 인해 인간에게 극히 해로운 오염 물질이 유출되었다는 익명의 내부 관계자의 제보를 입수했다고 합니다.] [익명의 내부 관계자는 이 오염 물질은 마치 생화학무기와 같아서, 일단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사태를 초래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현재 중국 정부 측에선 텐진 항 폭발과 관련된 모든 루머를 근거 없는 소문이라 일축한 상태이며, 대폭발로 인한 대기 오염과 인근 바다의 수질 오염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러한 중국 정부의 입장 발표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익명의 내부 관계자는 국제 사회의 도움이 매우 간절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텐진 항에서 유출된 오염 물질에 대해 전혀 모르는 절대 다수의 중국 국민들이 매우 큰 위험에 처한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중국 창저우 시에 위치한 모 대학병원에서 오염 물질에 피해를 받은 환자들이 큰 소란을 일으켰다고도 합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저희 CHH 측에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현재 중국 창저우 시로 향하는 모든 길목이 중국 공안 당국에 의해 폐쇄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의 통행이 자유롭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눈에 띄게 이상한 조치입니다. 따라서 익명의 내부 관계자의 제보는 어느 정도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사료되며…….]삑.
8282가 라디오를 꺼버리자, 전차 내부는 간밤에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새벽의 풍경처럼 정적으로 가득 찼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보죠?”
“지금은 얘기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조명의 질문에도 8282는 일부러 대답을 회피했다. 그 태도로 미루어보건대, 통제관들은 중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다는 것 같았다.
‘뭐, 어차피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먼 나라 이웃 나라 사정이 아니라 헬 게이트의 내부 사정이니까.’
개인적인 복수도 끝났겠다, 더 이상 조명을 방해하는 건 없었다. 그저 기분 좋게 연휴를 보내고 나서 다시 뼈 빠지도록 일하면 된다.
‘그런데 중국에서도 꽤 많은 원자재를 수입해 갔던 것 같은데… 꽤 대형 사건이 터진 것 같으니 당분간 매출이 좀 줄어들겠지?’
물론 중국 말고도 이동식 해양 플랜트에서 확보하는 헬 게이트산 원자재를 사 줄 국가는 차고 넘쳤다.
대부분의 원자재를 각 나라의 정부들이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제품의 연구와 출시를 서둘러야 하는 대기업들은 항상 원자재에 목말라 있던 것이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이 잠시 주춤한다고 한들, 중동과 유럽, 아메리카 같은 크고 넓은 시장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다.
사실 지금 벌어들인 돈과 확보한 기술만으로도 평생 놀고먹는 데 지장은 없겠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게 어디 그리 쉽게 사라지나.
조명은 눈을 감으면서도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미래의 부귀영화들을 흐뭇하게 만끽했다.
조명은 자신이 인류 역사상 그 어떤 황제나 왕, 독재자보다도 더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