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17
헬 다이버즈 116화
116화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뻥! 뻥!
여기저기서 얕은 폭음이 울려 퍼지며 색종이 조각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1년에 한 번뿐인 날이자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날.
12월 25일의 성야(聖夜)를 맞이한 이동식 해양 플랜트의 근무자들이 널찍한 항공 갑판 위에서 미친 듯이 폭죽을 터뜨렸다.
“내가 이 맛에 일하지!”
하루라도 연구를 하지 않으면 못 버티는 진성 워커홀릭들도.
“오늘 순찰 근무 안 해도 된다!”
666의 주도하에 매일같이 지옥 같은 훈련과 순찰 업무를 수행하는 자경단들도.
“근무지에서 놀기는 또 처음이네.”
“여긴 매일매일이 전장이었는데… 적응이 안 돼!”
“일단 먹고 마셔. 나중에 또 일 시킬지도 모르니까, 그냥 뻗어버리는 게 나아!”
헬 다이버들과 함께 하루하루 피 말리는 기분으로 항공 갑판을 뛰어다니던 정비관들도.
“이게 몇 번째 크리스마스지?”
“대충 84만 번이겠지.”
“아, 하긴. 우리가 84만 년째 이러고 있었으니까.”
등급에 상관없이 통제관들 또한 술잔을 기울이며 수없이 지나쳐 왔을 지난날의 크리스마스들을 회상했다.
정비관들이 이를 악물고 25일이 되기 전(전야제)까지 죽어라 일한 덕분에, 지금의 이동식 해양 플랜트는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곳곳에 걸려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과 알록달록한 색으로 빛나는 꼬마전구, 다 큰 어른들이 너도나도 선물 받겠답시고 마구잡이로 걸어놓은 양말 무더기들…….
이동식 해양 플랜트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인 만큼 오늘의 성야제는 모두에게 뜻깊은 축제였다.
“한잔 받으십시오, 대장!”
“오냐.”
과할 정도로 호들갑을 떨며 다가온 창환이 조명의 잔에 와인을 따라 주었다. 거기에 어울려 준 조명도 잔뜩 거드름을 피우는 연기를 해 보였다.
조명은 헬 다이버가 되기 전까지 너무나도 치열한 삶을 살아온 탓에 술조차 입에 댈 여유가 없었다. 소주 한 병에 2,000원 시대를 돌파한 지 오래인지라, 차라리 그 돈으로 라면을 사 먹는 게 더 나았던 것이다.
빈속에 깡소주를 들이붓는 어리석은 삶보단, 라면이라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악착같은 삶이 그에겐 더 익숙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이지.’
투명한 유리잔 속에 담긴 검붉은 빛의 와인을 살짝 흔들어본 조명은 확 달라진 자신의 삶에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그렇게 죽어라 노력해도 부와 명예, 권력은 자신 같은 버러지와는 인연이 없는 줄로만 알았건만.
지금은 자신이 원한 것 이상의 보상들이 양손 가득 흘러넘칠 정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물론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최악의 리스크 덕분에 얻은 리턴이지만.
‘목숨을 걸어서야 겨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는데.’
조명은 자신의 싸구려 입에 맞지도 않는 고급 와인은 내버려 두고, 저 아래에서 캐롤 송을 부르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항공 갑판 위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반쯤 정신을 놓은 지 오래였다.
통제관과 술 대결을 펼치는 정신 나간 인간이 있는가 하면, 통제관에게 제발 내년에는 꼭 여자 친구 생기게 해달라며 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통제관은 신이 아닌데…….”
신처럼 대단하긴 해도 그들은 결코 신이 아니었다.
물론 다 죽어가던 조명을 멀쩡하게 되살려 주기도 하고, 평범한 인간이라면 감히 생각할 수도 없을 만한 복수를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단한 존재라고 해서 그게 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지난날까지 지구를 장악하고 있던 인류야말로 신이라 불려 마땅한 존재들이 아닌가.
사실 저들도 그런 걸 모르는 건 아닐 것이다.
이전까지는 통제관이란 존재들이 매우 무섭고 가까이 하기 힘든 상위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인간과는 조금 다를 뿐인 유쾌한 존재들로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분위기 괜찮지? 너 오기 전까지 다들 많이 준비했어.”
조명의 옆에 다가온 지윤이 알코올 때문에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당초 예정대로였다면 다 같이 조명의 방에 모여 조촐하게나마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겼을 테지만, 조명이 한국에서 통제관들과 함께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하는 동안 축제의 규모를 좀 더 늘리기로 했다는 모양이다.
연말 연휴를 편하게 늘어져서 보낼 생각이었던 근무자들은 1팀의 요청에 부랴부랴 움직여야 했고, 졸지에 통제관들 역시 축제 준비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좁은 방에 몇 명 모여서 궁상맞게 술잔이나 기울이는 것보단 이게 더 낫지?”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어.”
조명은 살아생전 이토록 즐거운 축제를 즐겨본 적이 없기에 확실하게 ‘더 낫다’, ‘아니다’를 판가름할 수는 없었다. 문자 그대로 이게 첫 크리스마스 성야제인데, 비교 대상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다들 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 최근까지는 좀… 분위기가 많이 위축되어 있었잖아?”
“그게 누구 때문인지는 알고?”
“어휴, 무슨 말을 못하겠네~”
조명이 낯 뜨겁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자신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이 이동식 해양 플랜트의 구심점인 자신이 몇 개월간 헬 게이트에서 실종 상태였던 것도 모자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이동식 해양 플랜트에서 발생한 첫 헬 다이버 사망 사례가 박조명으로 기록될 수 있던 사태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이동식 해양 플랜트가 해체되거나, 다시 한국 정부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나 하고 전전긍긍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겠지.’
좋든 싫든 조명은 이동식 해양 플랜트에서 벗어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살아 있으면 모든 이들의 구심점이고, 죽어버리면 그들에게 절망과 멸망을 가져다줄 재앙이 될 것이다.
“처음 헬 다이버가 됐을 때는 나도 이 사회의 당찬 여성이 되었다, 국위선양에 솔선수범하는 모범 시민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됐는데… 여기서 너희들이랑 같이 일하다 보니 가치관이 조금 바뀐 것 같아.”
“강한 여성, 왜곡된 성욕…….”
“죽는다?”
지윤이 주먹을 들어 보이자, 조명은 괜히 움츠러들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저 주먹만큼은 평생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특히 격투기 훈련을 할 때 총알처럼 날아드는 그녀의 주먹에 다리의 힘이 풀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나 자신의 개인적인 만족감이나 성취감보다는… 뭐라고 해야 할까. 의무감? 그런 게 느껴져. 처음엔 왜 그럴까 고민을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감정이 둔해져서 그런 거 아냐?”
조명이 자신도 겪어봤다는 양 자신 있게 말해봤지만, 지윤은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던 내 성향이 주변인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예전의 나였다면 네가 어디서 뭘 하다 다치고 돌아오든, 죽을 위기에 처했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야. 아마 속으로 능력도 안 되면서 무리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라고 비웃었을지도 몰라.”
지윤의 충격 고백에 조명은 참치 크래커를 입에 넣다 말고 멈췄다.
확실히 훈련생 시절에 봐온 그녀는 매사에 진지하고,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특히 주변인들의 능력을 다소 과하게 의식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동식 해양 플랜트에 들어온 뒤, 조명, 창환, 지석, 형찬과 함께 헬 다이버 1팀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그런 경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스스로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되고,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꿍하니 혼자 담아두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팀원과 대화하려 노력했으며, 자신의 능력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노력했다.
바뀐 것은 비단 조명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네가 큰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해.”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지윤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우리 중에서 본판이 가장 떨어진 건 너였잖아? 통제관들이 미친 듯이 굴려 대서 반강제적으로 성장하게 된 거지. 하지만 넌 우리에게 없는 게 있었어.”
“외모?”
퍽!
지윤의 팔꿈치가 조명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마치 광석을 캐내기 위해 암반에 스파이크를 때려 박는 것 같은 일격이었다.
“독기. 너한테는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독기가 있었어.”
“으윽… 그 정도는 다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잖아?”
“그렇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 단순한 오기일 뿐이야. 잃을 게 많고, 적당히 체면 차리고, 없는 기회도 만들어낼 수 있는 부류들. 하지만 너한테 남은 건 독기 하나가 전부였잖아?”
조명의 가정사에 대해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는 팀원들은 조명에게 더 이상 뒤가 없다는 인지하고 있었다.
뒤가 없기 때문에 그저 주저앉아서 포기해 버릴 수도 있지만, 조명은 미친 듯이 앞으로 내달렸다. 일분일초를 낭비해서 모든 것을 잃느니, 일분일초라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모든 것을 거머쥐겠다는 독기가 있었다.
“그래서 다들 은연중에 너한테 감화된 걸지도 몰라. 지난날까지 적당적당하게 살아온 자신들이 부끄러웠던 거지.”
“그럼 이제 제가 쑥쓰러워하면 되겠습니까, 지윤 님?”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옙.”
조명에게 핀잔을 준 지윤은 항공 갑판의 중심부에 세워진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에 비친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빛과도 같았다.
“네가 죽으면 다 무용지물이야.”
“…….”
“너 때문에 모인 우리도, 너를 보면서 성장할 수 있던 우리도, 네 덕분에 이 자리에 오르게 된 우리도… 네가 죽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거야.”
“…그건 아니지 않나?”
“아니, 맞아. 네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린 더러운 정부를 위해 개같이 일하는, 그저 그런 헬 다이버가 되어 무가치하게 목숨을 걸어야 했을 거야. 하지만 여기서 너와 함께 활동하는 우리는 그저 그런 헬 다이버도 아니고, 무가치하게 목숨을 걸지도 않아. 네가 구심점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야.”
턱, 어깨에 둘러지는 큼지막한 손.
지석이 한 손에 닭다리를 들고 웃고 있었다.
벌써 거나하게 취했는지, 와인 잔을 높이 들어 올린 창환이 딸꾹질을 해 대며 난간에 기대섰다.
오랜만에 경영 업무에서 벗어난 형찬도 덥수룩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1년의 마지막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확실히 조명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이런 광경을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성향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이 개성 만점의 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꼴이라니. 84만 년이 넘도록 세계를 뛰어넘은 통제관들조차 보지 못했을 것이다.
겸연쩍게 웃고 있는 조명의 옆에서, 지윤은 로맨스 따윈 개나 줘버리라는 듯 지석의 손을 쳐내며 자신의 팔을 조명의 목에 걸었다. 그녀 스스로 많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이 상남자스러움은 여전했다.
“그러니까, 네가 죽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
“네가 말없이 팀원인 우리를 두고 먼 곳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아니, 그건…….”
“나랑 약속할래, 아니면 크리스마스에 개 패듯이 맞아볼래?”
“약속하겠습니다. 하게 해주세요.”
드물게도 그녀가 깔깔 웃으며 직접 조명과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바짝 달라붙은 그녀에게서 풍겨오는 진한 알코올 냄새.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렇게까지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이 씁쓸한 약속을 꺼내기 힘들었다든가.
“아, 우리 조명이 근육 쩌네.”
“만질 거면 돈 내고 만져라.”
“얼마면 돼?”
“10분에 백만 원!”
“그럼 하루 종일 만져야지!”
취한 그녀가 지갑에서 수표 다발을 꺼내며 본격적으로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했을 즈음, 성야제 때문에 사람이 없는 식당의 TV에선 긴급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재 러시아 정부에서 중국을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했다는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