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23
헬 다이버즈 122화
122화
[다음은 SCS에서 보내 드리는 해외 토픽 속보입니다.] [바로 조금 전, 중국 창저우 시 인근 지역에 집결해 있던 중국 인민해방군이 대규모 발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사태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의문을 표했습니다. 중국 내에선 현재까지 어떠한 반정부 단체의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으며, 중국 군부에서 동원한 군사력이 타국과 전면전을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하다는 점도 주목했습니다.] [현재 중국 내에서 창저우 시에 대한 모든 정보는 통제되어 있어 대다수의 중국 국민들 역시 갑자기 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입니다.]― 댓글
Mute114 : 자국에서 대규모 군 부대가 총질하는데 국민들은 이유도 모름 zzz.
경기도 안양의 이준영 : 자국민 탄압이라고 하기엔 이상한 게, 자국민 탄압이었으면 벌써 내부에서 정보 흘러나왔을 거임. 근데 이번엔 진짜 정보가 없어.
Lord.T : 딱 보면 각 나오잖아. 정보 누설도 못하게 싸그리 [통제]해 버린 거임.
미노타군 : ‘그 나라’식 [통제] ㄷㄷㄷㄷㄷ.
TS충죽어어엇 : 공안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먼 나라 이웃 나라라는 말도 무색할 만큼, 2030년대에 접어든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다. 타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고작 몇 분 차이로 일상 속에서 전해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일이다.
문제는 국가 간의 공식적인 전쟁이 모습을 감춘 지금, ‘안전한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디서 폭탄이 터지든, 총기가 발포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 같았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졌을 때는 우스갯소리로라도 ‘3차 세계대전이 터지는 게 아니냐’, ‘이러다 우리도 난민 신세가 되는 게 아니냐’ 같은 식으로 걱정했으련만.
지금은 누구도 이웃 국가에서 터진 일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타국의 상황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면서 다시 일상을 즐기기에 여념이었다.
그들에겐 당장 타국에서 터지고 있는 모종의 사건보다도, 당장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스케줄을 짜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사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래선 안 됐다. 그들이 모르는 I―바이러스가 고독(蠱毒) 항아리 같은 창저우 시에서 흘러넘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일상을 즐기는 사이에 바로 옆의 이웃 국가에선 누군가의 일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고 있는 안전, 평화, 자유가 바로 옆의 이웃 국가에선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사라지고 있다.
평생 공포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마치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인간들을 향해 진짜 공포라는 것이 번져 나가고 있음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 * *
“쏴! 쏴라! 바리게이트를 넘지 못하게 해!!”
한 장교가 권총을 높이 치켜든 채 2차 세계대전의 평원 돌격을 명령하는 것처럼 소리쳤다.
그의 고함 소리가 무색하게도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총성과 폭음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고막을 터뜨리고도 남았다.
타카카카카카!
임시 초소에 설치된 분대 지원화기인 QBB―95 소총이 미친 듯이 불을 뿜었다.
80발들이 드럼 탄창에 달아놓았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소총이라 기관총처럼 사용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하나 총신 전체가 열기에 강한 내구성을 지닌 내열석 합금으로 이루어져 있어, 게임처럼 방아쇠를 쭉 당기고 있어도 총신과 총구가 열기로 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급탄, 발포, 급탄, 발포.
그 과정을 벌써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는 사수도, 부사수도, 그들과 함께 이 전선을 지키기 위해 동원된 군인들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진 모든 화력을 퍼부어도 이 세이프 라인을 지켜낸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물러설 수 없었다.
보급병들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다니며 탄약 박스를 갖다 나르는 와중에도 초당 수백 발의 탄약이 소모되고 있었다. QBB―95 소총이 거치된 임시 초소에는 탄피가 산처럼 쌓여 굴러다니고 있었다.
만약 헬 게이트에서 확보한 내열성 원자재로 신소재를 만들어 총기에 장착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건 공사가 진행되다 만 폐건물의 옥상에서 저격소총을 붙들고 있는 워쓰이엔 중위도 마찬가지였다.
“진청 소위, 도심 쪽 상황은 어때 보여?”
“…끔찍합니다. 무슨 개미굴도 아니고… 계속 밀려 나오고 있습니다.”
부사수로서 그의 옆에 엎드려 열 감지 망원경을 조작하고 있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타캉! 철컥, 타캉! 철컥.
강금석이 탄두에 씌워진 7.62㎜탄을 거의 한 호흡마다 한 발씩 쏴재끼면서도 워쓰이엔 중위는 지친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중국 내 대테러 진압 부대에서 이번 작전에 차출된 그는 CS/LR3 저격소총을 가장 잘 다루는 에이스였다.
이번 작전에서는 단순한 지정 사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는 움직이는 헬기에 탑승한 상태에서도 300m 너머의 적을 저격할 능력이 있었다.
‘세이프 라인 범위를 더 넓힐 수 없어 군부대가 통제하는 범위도 최소화했지.’
묵묵히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워쓰이엔은 이번 작전만큼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본래 군인이란 족속들은 일체의 의심이나 의혹, 의문을 품지 않고 고분고분 명령이나 따르는 법이지만, 에이스 스나이퍼에게 세이프 라인으로부터 고작 150m 떨어져 있는 낡은 건물을 지정해 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목표를 명중시키는 건 쉬워졌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늘어났다.’
그런 생각을 품기가 무섭게 세이프 라인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던 군인 몇 명이 도심 쪽에서 날아든 콘크리트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단거리에서 던진 직사가 아니라 장거리에서 던진 곡사였다. 그건 그만큼 팔 힘이 굉장한 놈이 콘크리트 파편을 던졌다는 얘기다.
기껏해야 한두 발의 미사일이나 방어해 주는 전차의 자동 방호 시스템 같은 건 처음부터 도움되지도 않고, 최전선의 군인들에게 지급된 진압 방패도 무용지물이었다.
까딱 잘못하다간 건물 옥상에 자리 잡은 자신들도 저 콘크리트 파편에 맞을 위험이 있었다.
차라리 전차와 보병대가 일시에 도시에 진입해서 싹 쓸어버렸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녹록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타캉!
철컥.
“씨발, 끝도 없군.”
젊을 때 사귄 한 한국인 친구로부터 배운, 입에 착착 감기는 욕설.
워쓰이엔은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그 욕을 사용하며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이번엔 몇 번이고 ‘씨발씨발’을 반복해도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이프 라인 앞으로 시체들이 산처럼 쌓이고 있었으니까.
그 시체들도 곱게 죽은 시체들이 아니었다. 머리통이 터지고, 사지가 뜯겨 나간 후에야 겨우 움직이지 않게 된, ‘괴물’ 같은 시체들이었다.
그런데 부사수인 진청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끝도 없이 밀려 나오고 있단다.
딱히 고정된 자세로 탄창을 갈아 끼우고 노리쇠를 당긴 다음 총을 발포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격수답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그런 건 다 적응했으니까.
다만, 이상할 정도로 견디기 힘든 공포와 불안감이 그의 발끝에서부터 등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특출 난 실력의 에이스 스나이퍼인 그가, 적어도 저 앞에서 시체의 산을 쌓아가며 끊임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군인들보단 안전한 위치에 있는 그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
제3자가 이런 얘길 들었다면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지만, 워쓰이엔은 그 감정에 거짓 한 점 없었다.
공포라는 것은 원초적인 감정이라 본인이 느끼고 싶지 않다고 해서 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졸음이나 허기와 같다. 그냥 본능적으로 느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가 조용히 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백발백중으로 걸어 움직이는 ‘무언가’를 쏴 맞출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초인적인 정신력과 훈련으로 단련된 경험 덕분이었다.
“탄창.”
철컥, 철컥.
텅 빈 탄창을 빼낸 워쓰이엔이 진청에게 새로운 탄창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이제 없습니다.”
“뭐? 그럼 진즉에 추가 탄창을 가져왔어야지!”
“이미 한 번 다녀왔습니다. 중위님이 너무 집중하고 계셔서 아마 못 들으셨던 것 같습니다만, 지원 부대에서 더 이상 탄약을 지원해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나 돼? 그럼 지금 저 아래에서 미친 듯이 쏴재끼고 있는 건 뭔데?!”
“저들도 저게 마지막 탄약일 겁니다.”
“…….”
순간, 워쓰이엔은 머리를 망치로 세게 내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아니, 자신을 포함한 이 지역 일대의 군인들이 인당 몇 발이나 되는 탄약을 소모했지? 대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미친 듯이 쏴재낀 것이지?
슬쩍 손목시계를 바라본 그는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최초 사격이 시작된 지 거의 반나절 내내 쏴재끼고 있던 것이다.
그래, 반나절이다. 세계대전 당시 총력전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어마어마한 양의 탄약이 고작 반나절 만에 수백 명 단위의 군대에 의해 소모된 것이다.
탄약이 모두 떨어졌으니 더 이상 보급해 줄 수 없다?
당연한 소리. 아마 지금쯤 중국의 군수산업 공장은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국내의 모든 군부대로부터 지상이나 공중 운송 장비까지 동원해 가며 탄약을 나르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침 저 멀리서 수송 헬기 몇 대가 투타타타타타― 하고 시끄러운 소음을 자아내며 등장했다.
아마 처음 이 봉쇄 작전을 구상한 높으신 분들도 몰랐을 것이다.
창저우 시 주변을 빼곡히 둘러싼 어마어마한 수의 군대가 반나절 가까이 탄약을 퍼부었음에도 라이프 라인을 지켜내는 것이 버겁다는 사실을.
하필 사건이 터진 시점이 연말이었고, 연말은 친인척들과 함께 보내기 위해 친가, 외가로 내려가려던 사람들이 모두 봉쇄 작전 때문에 도시 안에 붙들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 도시 안에는 무려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워쓰이엔은 무심코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걸로는 택도 없어…….”
자신들이 지금껏 처리한 ‘저것’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수천은 가볍게 넘을 것이고, 수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 어마어마한 양의 탄약을 쏟아붓고도 고작 수만이다.
왜냐하면 놈들은 정말 끈질기게도 죽지 않았으니까.
머리가 터지고, 사지가 뜯겨 나가고, 온몸이 벌집이 되어 최후에는 걸레 조각이 되어서야 겨우 움직임을 멈췄으니까.
처음부터 가성비가 안 맞는 싸움이었다.
이쪽에서 탄약을 수백만 발을 퍼붓는다고 한들, 저것들을 모두 괴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진청, 장비 챙겨라.”
“마침 보급 부대가 도착한 것 같은데, 중위님은 그냥 계십시오. 제가 직접 다녀오겠…….”
“아니, 우린 여기서 빠져나갈 거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멍청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사수에게 워쓰이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건 더 이상 못 막는다. 처음부터 도시 중심부에서 핵폭탄을 터뜨렸다면 모를까, 이젠 너무 늦었다.”
“하지만 그건…….”
한창 전투 중인데 지정된 위치를 이탈하는 군인에 대한 처벌은 어느 나라든 가볍지 않다. 특히 중국처럼 사형 제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국가는 현장에서 즉결 처분도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당당하게 현장에서 이탈하겠다는 그의 말에 진청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항명이든 뭐든 누구나 제 목숨이 가장 소중한 법이야. 넌 댐이 터질 때 온몸으로 막을 거냐, 아니면 높은 산으로 도망칠 거냐?”
“…높은 산으로 도망칠 겁니다.”
“그래. 저건 우리가 온몸을 던져도 막을 수 없는 댐 붕괴다. 도시 안에 갇혀 있던 백만 명 단위의 인간들이 머지않아 세이프 라인을 돌파할 거야. 그때가 되면 늦어.”
‘늦어’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걸 모를 만큼 진청도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럼 탄약만 지급받고 빠집시다. 최소한의 보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지. 상층부에서 포인트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하면 순순히 보내줄 거야.”
국가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비겁한 군인들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말은 없다.
불쌍한 전우들을 앞에 내버려 둔 채 자기들끼리만 몰래 빠져나가는 쥐새끼 놈들이라고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한 것이 인간이란 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