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25
헬 다이버즈 124화
124화
“당신은……!”
불길 속에 아무렇게나 던져 놨다가 한 시간 뒤쯤에 꺼낸 듯한 비주얼의 방호복은 일반적인 헬 다이버에게도 익숙한 모습이 아니었다.
애초에 헬 다이버는 물론이고, 서구권 국가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 한때 러시아 정부와 계약을 맺고 그쪽 해양 플랜트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일련의 사건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종적을 감춘 존재이기도 했다.
[러시아와 중국간의 협동 헬 게이트 개척 사업 이후 2년 만이군요.]쉬익, 쉬익.
가래가 끓는 듯한,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목소리가 방호 마스크 사이로 새어 나왔다. 특히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오는 상대의 호흡음은 펑차우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5882’의 인사를 받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펑차우 주석은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그의 인사를 받았다.
“오랜만이오, 5882. 러시아 해양 플랜트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것은 들었소이다. 한때 러시아와 함께 헬 게이트 산업을 이끌어 나가던 동맹국의 입장으로서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소.”
[제가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나 하려고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도하려는 한량처럼 보입니까?]“그건… 무례했다면 사과하겠소. 그래서 대체 무슨 용건이기에 주석 집무실 개인 회선을 해킹한 것인지……?”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현재 당신들의 나라, 그러니까 중국이라고 하던가요? 거기서 아주 골치 아픈 바이러스 하나가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순간, 펑차우 주석은 그렇게나 철저하게 정보 통제를 했음에도 결국 바깥으로 새어 나간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고한 이들을 실험체로 사용한 러시아가 인권유린이라는 죄목하에 통제관들로부터 고부가가치의 미래 산업 태반을 제한당한 사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결코 펑차우 주석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중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돌연변이 바이러스 또한 불로불사의 비약을 만들기 위한 실험으로 탄생한 것.
결과적으로는 러시아보다 훨씬 더 많은 피해를 발생시켰으니,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것을 통제관들이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채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왔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바다를 가르고, 산을 없애 버릴 만큼 엄청난 힘을 소유한 괴물들이다. 어쩌면 우리 중국의 인민 감시 시스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감시망을 형성했을지도 몰라.’
무수한 인공위성? 빅 브라더 시스템?
저 통제관들이라면 단순히 감시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의 생각마저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감이 가중되자 펑차우는 자신의 직위에 맞지 않게 맹수 앞의 초식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건 해결에 대한 도움을 요청할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자신들의 손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전지전능한 괴물들의 손을 빌리는 것도 나을 것 같았다.
“실은 그게…….”
[당신들은 아마 도시 전역에 폭격을 가하거나, 핵폭탄을 투하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했을 겁니다.]“……!”
핵만큼은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도 펑차우는 사실 최후의 수단이 핵폭탄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선 러시아 군과 합동 봉쇄 작전을 펼쳐 최대한 막을 수 있을 만큼 막아보고, 그래도 안 된다면 20억 인구 중 절반이라도 건지기 위해 기꺼이 핵폭탄을 투하하겠노라 각오했다.
그것을 꿰뚫어 본 5882는 태연자약한 말투로 펑차우에게 경고했다.
[네이팜 폭격이나 핵폭탄 투하 같은 것은 모두 부질없으니 그만두십시오. 오히려 폭발로 인한 충격파로 바이러스가 더욱 멀리, 빠르게 확산될 겁니다.]“그게 무슨…….”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그 바이러스는 이 세계에 부여된 필연적인 운명 같은 것. 인간이 만들지 않아도 어차피 자연적으로 발생하며, 인간이 박멸하려 해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불로불사’의 바이러스입니다.]“당신들 통제관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만약 알고 있다면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인간이 못한다면, 당신들은 할 수 있을 것 아니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펑차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5882는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는 확약 대신,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것이 ‘돕지 않겠다’의 의미인지, ‘도울 수 없다’의 의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통제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허어, 그럼 우린 대체 어떻게 하라는…….”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입니다. 새로운 세이프 라인을 지정해서 바이러스의 감염을 통제하고, 직접 싸우면서 최대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겁니다. 그러면 최소한 1년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도시 폭격이나 핵폭탄 투하도 하지 않고? 그저 버티기만 하라?”
[맞습니다.]쾅!
거칠게 책상을 내려친 펑차우는 극도로 화가 치민 탓에 머리가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었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그 통제관이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노련한 정치인만이 내뱉을 수 있는 특유의 일갈을 질렀다.
“그게 대체 무슨 헛소리요?! 폭격도, 핵폭탄 투하도 하지 않고 그저 인민들을 계속 동원해서 저 미친 바이러스를 막아라? 해결될 가능성도 없는 일에 인력, 자원, 시간을 모두 희생하라고?!”
[바로 그겁니다.]“…미쳤군. 정신이 나갔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요? 우리가 무슨 이득이 있어 그런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에 모든 걸 희생한단 말이오?”
[영원히 죽어 없어질 바에야, 되살아날 기회를 믿고 한 번만 죽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또 영문 모를 헛소리를… 통제관이라는 작자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니 그 바이러스가 얼마나 심각한 건지는 잘 알겠소. 하지만 그걸 고작 1년 정도만 막아내기 위해 중국의 모든 걸 쏟아붓진 않을 거요. 준비가 되는 대로 도시 전역을 폭격하든, 핵폭탄을 투하할 거요.”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들은 싫어도 가장 먼저 스스로 희생하게 될 겁니다. 바이러스 감염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 ‘항상’ 처음 시작된 국가나 단체가 가장 먼저 희생되어 왔습니다. 84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으니, 믿어도 좋습니다.]“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군! 우릴 도울 생각이 없다면, 더 이상의 대화는 없는 것으로 하겠소!!”
펑차우가 턱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군 장교가 TV 회선을 끊어버렸다.
고조되었던 감정이 빠르게 사그라들자 펑차우는 뒤늦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어디 큰소리 칠 대상이 없어 통제관에게 큰소리를 친단 말인가.
더욱이 중국의 힘만으로는 중국 내에서 미친 듯이 확산되고 있는 I―바이러스를 막을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마당에 지도자씩이나 되어서 되레 통제관들의 반감을 사다니.
자신답지 않다고 중얼거리며 펑차우는 무너지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바이러스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선 문외한인 펑차우라도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고 있다. 이미 여행 금지 국가로 지정해야 할 만큼 민간인 위험도가 급격히 상승했으며, 당장 국가 비상 체제와 계엄령을 동시에 선포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지 않고 몰래 군사만 움직인 것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미 감염자 수가 백만 단위를 넘었다. 중국 전체 인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감염자 수가 많아질수록 감염 확산 속도는 곱절에 곱절이 되겠지.’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판데믹으로 이어진다.
고작해야 도시 단위로 유행하던 감염증이 중국의 성(省) 단위로 확산되고, 이윽고 국경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마수를 뻗쳐 나갈 것이다.
자료상으로 확인한 그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는 결코 아시아에서 그칠 수준이 아니었다. 문외한인 자신이 보더라도 꾸준히 감염이 확산된다면 유라시아 대륙, 어쩌면 범지구적 유행을 일으킬 것이라 추측되었다.
‘우선은 통제해야 한다. 최대한 통제해서 한곳으로 죄다 밀어 넣은 다음, 이번에야말로 폭격이든 뭐든 해서 싹 쓸어버리면 된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국이란 나라, 그 자체가 사라질 거야!’
어떻게 넘겨받은 중국인데!
어떻게 되살린 중국 경제인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선대 주석이 누린 만큼만 절대권력을 맛보고 싶은 펑차우는 절대 이렇게 끝나고 싶지 않았다.
“우선 그 쓰레기 자식은 천천히 살을 저미면서 불에 바싹 구워버려라. 그리고 그 시체는 소각로에 집어넣어서 아예 흔적도 없애 버려.”
“……!”
“그러고 나서 중국 전역의 군부대를 즉각 소집해라. 국경이나 영해 따위를 지킬 여유는 없다. 모든 군사력을 감염 확산 저지… 아니, 통제에 투입한다. 또한 별도의 연구팀을 꾸려서 백신이든 뭐든 좋으니 만들어내라고 해. 가능한 모든 공장을 돌려서 군수물자와 대화학전 장비도 군에 보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만들어야겠지.”
각 부처 장관들에게 혼잣말에 가까운 명령을 내리면서도 그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희생하게 될 거라고? 웃기는 소리! 그럴 바에야 모조리 터뜨려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직접 끝장을 내겠다.’
하지만 펑차우 주석이 굳건한 결의를 다진 것과는 별개로, 얼마 뒤 베이징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은 매우 빠르게 중국 정부를 강타했다.
* * *
“역시 안 믿는군.”
“언제는 믿은 적이 있었습니까?”
화상 카메라가 달린 노트북을 탁, 소리 나게 접은 5882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84만 년간, 그토록 수많은 세계가 멸망했음에도 누구 하나 우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강압적으로 몰아붙여서 따르게 한 적은 있어도 진심으로 믿어준 지도자나 단체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그 공식이 바뀔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지금껏 실패밖에 겪지 못한 우리가 처음으로 성과를 냈다. 그건 무언가가 바뀌기 시작했다는 증거 아닌가?”
“‘우리’가 아니라 ‘그’가 해낸 겁니다. 우린 그에게 무한한 영광과 찬란한 미래를 약속해 주었고, 그걸 얻기 위해서 그는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주는 것 아닙니까. 우린 그저 군침 도는 보상만 내걸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NPC에 불과합니다.”
“그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
후릅.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과 함께 찻잔 속의 투명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켠 것은 13이었다.
지금 다른 통제관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13은 얼마 전부터 5882와 함께 행동하며 국제 정세를 살피고,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물론 13이 5882를 감시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둘은 그 점에 대해서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지금 온전한 방법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은 2급 통제관과 극소수의 3급 통제관들 뿐. 자신들끼리 박 터지도록 싸워봐야 죽기는커녕 치명상조차 입힐 수 없다.
다만, 물리적으로 상대를 억누를 수는 있기에, ‘그런 쪽’의 기술이 탁월한 13이 5882의 밀착 감시자 겸 파트너를 맡게 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