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34
헬 다이버즈 133화
133화
“뭐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커흑… 허억……!”
고지석은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기색으로 거친 신음성을 내뱉었다.
“아직 훈련 시작한 지 세 시간밖에 안 됐어. 그런데 벌써 뻗는다고? 이야~ 최고 기록이네, 최고 기록! 세 시간 만에 뻗는 약골이 헬 다이버를 한다? 아이고, 제가 헬 다이버님의 체력 사정을 몰라 뵙고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대가리 오지게 박고 사죄하면 되겠습니까?”
무릎을 꿇고 숨을 고르고 있는 지석의 옆에서 한껏 비꼬아대고 있는 것은 666이었다.
“자, 자, 자!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네가 자랑하는 그 근육은 바늘로 툭 찌르면 터지는 풍선이냐?! 적이 네가 좀 힘들어한다고 해서 ‘어이구,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 잠깐 쉬었다 할까요?’ 이럴 것 같냐?!”
“크흡… 아닙니다!!”
“대답할 시간에 일어서기나 해라!”
빡!
가볍게 날아든 발차기가 지석의 목을 홱 꺾어버렸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력한 타격은 아니었으나, 오히려 어중간한 자극을 준 탓에 희미해져 가던 정신이 되돌아오는 것 같은 효과를 보였다.
“흐으으읍!”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 지석이 양팔로 힘껏 들어 올린 것은 하나만 해도 중량 90㎏에 달하는 40㎜ 고속 유탄발사기와 40㎜탄이 한가득 들어 있는 탄약 박스였다.
총합 중량이 성인 남성 두 명분을 가볍게 넘는다. 그것을 오직 양팔의 근육만으로 들어 올린 지석은 벌써 세 시간째 연병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연병장도 그저 평탄하기만 한 환경이 아니었다.
폭격이라도 있었는지 지면 곳곳에는 크고 작은 구덩이가 지뢰처럼 널려 있으며, 돌과 모래를 섞어 쌓아 올린 비탈길 구간과 반드시 뛰어넘어야만 인정해 주는 콘크리트 블록 장애물 구간도 존재했다.
그런 지옥 같은 환경에서 풀 코스로 세 시간째 달리고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인간이라면 벌써 쓰러지고도 남았다.
“크윽!”
“멈추지 마, 멈추지 마! 고작 그따위로밖에 못하는 널 보고 적이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 같아? 힘내라고 응원해 줄까? 미친 소리! 거기서 쓰러진 시점에서 넌 이미 뒈진 거야!!”
“죄송합니다!”
콘크리트 블록을 넘어가다 말고 다리가 걸려 넘어진 지석은 무릎과 팔이 까졌음에도 다급히 일어섰다.
666의 말마따나 지석이 적의 입장이라면 상대가 넘어진 모습을 보고서 비웃었으면 비웃었지, 응원해 줄 마음은 1도 없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당장에라도 양손 가득 들고 있는 것들을 내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석은 벌써 세 시간째 달리고 있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세 시간 동안 옆에서 윽박질러 준 666을 생각해 마음을 다잡았다.
그 어떤 교관이라도 세 시간 내내 이렇게까지 해주진 못한다.
일반적인 교관이 편한 위치에서 윽박지르기만 한다면, 666은 지석과 함께 이 지옥 같은 코스를 돌면서 윽박지르고 있었으니까.
“좋아! 포인트 도달! 부품 조립 실시!!”
“조립 실시!!”
비탈길 위에 마련된 임시 벙커에 도착한 지석은 666의 신호에 맞춰 고속 유탄발사기를 전개했다.
사수와 부사수, 보급병이 함께 운반하여 전개해도 좀처럼 쉽지 않은 작업인데, 지석은 군인 집안 출신의 장남답게 매우 능숙한 움직임을 보였다.
다른 건 팀원들에게 밀린다고 해도 군사작전에 한해 지석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윽고 모든 부품을 완전 조립하고 고속 유탄띠를 급탄한 지석이 ‘부품 조립 끝, 장전 끝, 전개 완료!’를 외쳤다.
하지만 666은 귀신같이 불호령을 내리며 숨을 몰아쉬는 지석을 타박했다.
“늦다, 늦어! 네가 고속 유탄발사기를 전개하는 사이, 동료들은 이미 적들에게 뒈져 버렸다! 이제 너만 살아남았으니, 병신같이 후퇴해서 유족들에게 동료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더 빨리해! 거북이처럼 굼뜨게 행동할 때마다 네 동료들이 너 대신 죽어 나간다! 무전기로 동료들이 화력 지원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냐? 네 동료의 숨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냐?!”
“들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이 빌어먹을 새끼야! 그러라고 새벽부터 너랑 나랑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데! 힘드냐? 힘들면 지금이라도 말해라! 너보다 더 유능하고 말 잘 듣는 놈으로 네 자리에 앉힐 테니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지석은 다시 666의 신호에 맞춰 고속 유탄발사기를 분해했다.
그러고는 재차 이어지는 무한의 지옥 코스에 뛰어들었다.
고속 유탄발사기를 조립하는 시간이 그에겐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이며, 그마저도 기록을 갈아 치울 때마다 휴식 시간은 더욱 짧아졌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것보다도 상처를 후벼 파는 듯한 666의 구박에는 지석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육체적으로 힘든 거라면 그래도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좀 더 버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실실 웃으며 조명과 곧잘 장난을 치는 666이 악귀나찰 같은 태도로 정신을 깎아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처음 헬 다이버 실전 훈련을 할 때도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당장에라도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은 헬 다이버 1팀의 ‘화력’ 담당이 되었으니까.
한때 666이 맡은 화력 담당을 지석이 계승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버텨야 한다. 666이 만족할 때까지 버티고 또 버텨서, 당당하게 실력으로 팀의 화력 담당을 거머쥐어야 한다.
“발밑과 주위를 잘 살펴라! 적만이 널 노리는 게 아니다! 동료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이 네 적이라고 생각해라! 바닥에 튀어나온 돌부리,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폐건물의 잔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발탄, 감염성 체액! 모든 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널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주의하겠습니다!”
“대답만 하지 말고 잘 살피라고, 이 새끼야! 넌 전투 중에도 주둥이만 나불댈 거냐?! 그럴 거면 시장 통에 가서 좌판 깔고 생선이나 팔아!!”
지석은 무의식적으로 이 지옥 같은 훈련이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으그으으으윽!!”
“네 팀은 지금 어디에 있지?”
파치치치치치!
지창환은 금속제 의자에 전신이 포박당한 채 전류가 흐르는 금속 막대에 지져지고 있었다.
“아주 잘 버티는군.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의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금속 막대를 붕붕 휘두르는 이는 1급 통제관인 13이었다.
“이미 네 팀은 널 버렸다. 네가 시간에 맞춰 돌아오지 않은 탓에 지금쯤 네가 낙오했다고 판단하고 작전을 속행하고 있겠지. 안 그런가?”
“으으…….”
“저런. 심기가 많이 불편해 보이는군. 하지만 내 말이 아주 틀린 게 아니란 건 알고 있겠지? 만약 네 팀이 널 구하고자 했다면 벌써 구하러 왔을 테니까. 벌써 다섯 시간이나 지났다. 네놈들의 랑데부 포인트는 이미 파악해 뒀다. 이론상 세 시간 전에는 반드시 합류했어야 정상이지.”
파칫! 파칫!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불쾌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창환의 몸이 흠칫흠칫 떨렸다.
전신이 포박된 것도 모자라 검은 천이 눈을 덮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껏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도 주지 않았다.
고작 다섯 시간 정도로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섯 시간이 아니라 단 5분이라고 해도 사람 한 명을 피폐하게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고문과 협박을 병행하면서 소음과 고통을 동반한 공포심을 유발한다. 자칫 잘못하면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폐인 상태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13은 창환에게서 각서를 받고 이 일을 진행했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
만약 중도 포기할 경우 헬 다이버 1팀에서 즉시 퇴출되며, ‘정찰’ 지위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한다고 통지했다.
행동이 재빠르고 눈치도 있는 창환은 이미 팀 내에서 스카우트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지만, 13의 입장에서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었다.
홀로 팀의 선행 정찰을 맡는다는 것은 분대장 다음가는 책임을 지는 것과 같다.
분대장이 팀과 작전을 책임진다면, 정찰 담당은 작전에 실패하는 일이 없게끔 가능한 모든 정보를 미리 수집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정보에 오차가 있어선 안 된다. 또한 제시간에 맞춰 정보를 전달해야 하며, 혹시라도 적의 추격을 받는다면 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스스로 추격을 뿌리쳐야 한다.
그러다 적에게 사로잡히기라도 한다면?
혹은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해 고립된다면?
그때부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닌, 정보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 된다.
심리전에 능해야 하며, 고통에 익숙해야 하고, 정보를 숨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을 잊어선 안 되며, 마지막까지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는 정신력을 갖춰야 한다.
한마디로 정찰 담당이 된다는 건, 팀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과 같다.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13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창환의 몸에 전류가 흐르는 금속 막대를 때려 박았다.
“그으으으으윽?!”
슬슬 게거품을 물기 시작하면서 의지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당장에라도 포기하겠다는 말을 내뱉고 싶어 하는 것이 13의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창환은 아직 포기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때문에 13의 고문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 네 모습을 봐라. 홀로 적지에 붙잡혀서 갖은 고생을 하고 있지. 팀원들이야 너 같은 놈 하나쯤 어찌 된다고 해서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너는 그런 팀이라도 지켜보겠답시고 알량한 책임감으로 저항을 이어 나가고 있지. 이 얼마나 무의미한 행동이냐?”
헬 다이버 1팀이 진짜 창환을 버린 것처럼 비아냥대는 말투로 신경을 살살 긁어준다.
그러면 설령 이 상황이 훈련에 불과하다고 해도 실제로 고문을 받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화가 나기 마련이다.
자신이 왜 이런 일을 겪고 있어야 하지?
자신을 버린 팀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몸이 부서지도록 고통받아야 하나?
기약 없는 구원을 기다리면서 조롱이나 받아야 하나?
차라리 편해지고 싶다. 다 불어버리고 끝내고 싶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을 다시 자유롭게 누리고 싶다.
온갖 잡념과 추악한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으면서 그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약은 항상 입에 쓴 법이고, 악마의 목소리는 천상의 하모니처럼 기분 좋은 법.
침을 질질 흘리고 동공이 탁 풀린 상황까지 내몰린 인간은 곧 사고방식이 단순하게 변한다.
이성보다는 본능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본능이 이성을 앞서는 순간, 책임과 의무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항상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들도 그런 종류의 유혹에 시달리다가, 결국 손대선 안 될 것에 손을 대버리고 마는 것이다.
처음부터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의지를 강제로 꺾어버리는 셈이다.
13은 금속 막대를 떼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이제 좀 말할 생각이 드나?”
“…….”
창환은 입을 열어 편해지는 대신,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물나는군.”
13의 고문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