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41
헬 다이버즈 140화
140화
조명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 이상 자신에 대해 왈가왈부해 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자신의 힘을 온전하게 제어할 수 있도록, 오직 통제관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힘의 제어법을 받아들이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했다.
‘내키지는 않지만, 엎질러진 물은 어쩔 수 없으니까.’
‘잡념을 지우자’라고 생각한 순간,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맑아졌다.
공부를 할 때만 해도 이유 모를 불안감이나 온갖 잡념들이 조명을 괴롭힌 것 같은데, 막상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거대한 충격을 받고 나니 금세 적응해 버린 것 같았다.
“준비는 됐나요?”
조금 전까지 목을 졸린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태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올드 원이 느긋하게 물어왔다.
조명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올드 원은 자신의 배낭을 주먹으로 몇 번 두들겼다.
그러자 수십 개의 기계 팔들이 마치 살아 있는 촉수처럼 다양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조명에게 덮쳐들었다.
시간으로 치면 1초도 되지 않을 만큼 극도로 짧은 순간, 기계 팔은 상대가 일반인이든 아니든 처음부터 주저할 생각도 없었다는 양 폭풍처럼 조명을 몰아붙였다.
“머리로 생각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마세요. 생각을 멈춰도 죽고, 움직임을 멈춰도 죽어요.”
올드 원의 충고 아닌 충고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조명은 감각적으로 힘을 제어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급박한 상황에서 머리가 먼저 반응하고,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특정 자극에 의해 머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몸이 알아채고 움직여 버리는 경우도 있다.
즉, 서로 같은 타이밍에,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몹시도 힘들다는 얘기다.
그런 게 가능한 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스포츠인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조명은 타고난 스포츠인도 아니며, 머리와 몸이 똑같이 놀 만큼 안정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통제관들에겐 이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겠지.’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시점에서 통제관이 도달한 경지를 넘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드 원은 이 무수한 기계 팔을 조종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조명의 몸은 반사적으로 기계 팔의 공격을 피해 내기는 했지만, 머리가 따라가지 못해 ‘다음 행동은?’에 대한 생각을 제시간에 끌어내지 못했다.
첫 번째 공격은 감으로 피했다고 한들, 두 번째, 세 번째, 그 이상으로 치고 들어오는 공격까지 피하려면 뇌의 컨트롤이 따라 줘야 하는 것이다.
덕분에 훈련을 시작한 지 단 10초 만에 조명은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았다.
“371번 죽었네요.”
“끄으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축적된 통증이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근육 파열, 골절, 신경 손상, 기타 등등의 이유로 인간은 너무나도 쉽게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고작 손가락 하나 쓰지 못하게 된 것만으로도 총을 쏘기 힘들어지는 것처럼.
올드 원은 한 번의 피격에 한 번의 죽음을 부여하며, 조명이 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제약을 받았는지 알려 주었다.
“상대는 앞뒤 가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거나 치사하거나, 전술적이거나 비전술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할 텐데, 당신은 그들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을 ‘몸’에게만 맡겨 둘 생각인가요?”
“…….”
조명은 주먹으로 지면을 내려치며 다시 일어섰다.
더 이상 인간 같지도 않게 된 이 몸뚱아리는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파열되어도 금방 재생해 버렸다.
물론 그것도 지속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 단 1초의 낭비도 없이 집중 공격을 받았더라면, 조명은 지금껏 지면에 처박혀 있었을 것이다.
“요컨대 생각을 하고 피하라는 것 아닌가요?”
“생각을 하되, 확신과 자신감을 가진 생각이어야 해요. 불안감 섞인 생각에 몸이 따를 거라고 생각하나요?”
“…그건 아니겠죠.”
오른쪽으로 피한다고 해서 정말 공격을 피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몸은 덜컥거리고, 완전한 회피 동작에 실패할 수도 있다.
고작 불안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육체적 제약을 거는 것이나 다름없다.
“단순한 생각이어선 안 돼요. 관찰하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선별해서 최적의 생각을 ‘사용’해야만 해요.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몸은 최적의 사고에 맞춰서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게 될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요? 뇌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조금 전 같은 공격을 받으면 몸은 본능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요……!”
“뇌도 당신의 ‘몸’이라는 걸 잊은 건가요?”
“……!”
조명이 홧김에 내뱉은 불평을 그대로 되받아친 올드 원은 다시 한 번 준비 신호를 주었다.
배낭으로 되돌아간 기계 팔들이 다시 뱀처럼 튀어나와 흐물거리면서 적의를 내비쳤다. 공격 신호가 떨어진다면 즉각 조명을 덮칠 기세였다.
하지만 조명은 덜컥 겁부터 먹지 않았다. 불안감을 느낀다는 건 피하거나 반격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되니까.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라는 의미도 있겠지.’
마음이란 건 참으로 애매하다. 언뜻 정신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요컨대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저건 안 되겠는데?’ 하고 논리적인 생각을 하더라도, 마음에선 주체할 수 없는 자신감을 내뿜어 스스로를 고양시키고 격려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처럼 생각이 바뀌게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될 것이다.
‘집중하자. 내 몸은 별다른 사고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어느 정도의 공격은 피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해. 이론상 충분히 공격을 피하거나 되받아칠 수 있어.’
뇌의 도움을 받지 않은 몸이 그 정도인데, 뇌의 도움을 받는다면 얼마나 더 대단할까.
불안감 대신 상상만 해도 짜릿해지는 흥분이 조명을 고조시켰다.
‘복잡한 생각은 버리자. 최대한 간결하게 생각하는 거야. 왜냐하면 몸은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것을 더 잘 받아들이니까.’
손을 펴서 컵에 가져다 댄 다음, 손을 오므려 컵을 잡아라. 이 얼마나 단순한 메커니즘인가.
즉, 눈앞에서 신호도 없이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온 기계 팔의 일격을 피하기 위해서 내릴 명령도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오른발을 살짝 당겨서 굽히고, 상반신은 오른쪽 후방으로 비스듬하게 눕힌다.’
심장을 노리고 날아든 기계 팔은 허무하게 빗나가 버렸다.
만약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다면 과하게 반응한 탓에 옆으로 훌쩍 뛰거나, 자세를 확 낮추는, 바보 같은 짓을 했으리라.
‘눈으로 본 건 빨리빨리 처리해라. 복잡하게 생각할 바에야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예상을 끝낸다.’
상반신을 오른쪽으로 비튼 조명을 향해 두 개의 기계 팔이 위아래로 날아들었다.
자세를 낮추거나 점프를 해도 쉽게 피할 수 없는, 치사한 공격.
이 경우, 옆으로 데구루루 구르거나, 허공에서 억지로 몸을 비트는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본능적으로 움직였다면.
‘아래쪽으로 날아드는 공격은 주먹으로 쳐 내고, 위쪽으로 날아드는 공격은 고개를 살짝 젖혀 주기만 하면 충분해.’
거의 총알이 날아드는 속도로 움직이는 기계 팔은 그 특성상 궤도가 일직선에 가까웠다.
그리고 조명의 몸 또한 소닉붐을 일으킬 만큼 마하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투카아앙!
조명의 예리한 라이트 훅에 두들겨 맞은 기계 팔 하나가 옆으로 튕겨 나가고, 홀로 날아든 위쪽의 기계 팔은 아슬아슬하게 조명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올드 원은 관찰, 분석, 비교, 선별을 끝낸 최적의 생각을 사용하라고 조언했지만, 조명은 관찰과 분석으로 압축시켰다.
과거의 사례(기억)까지 꺼내서 현재의 사례와 비교하기엔 뇌에 가중되는 부담이 너무 크다. 게다가 몇 개나 될지도 모르는 무수한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선별한다?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100%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최고의 한 수를 고르는 것이 맞지만, 성공으로의 포석을 깔기 위해 100%에 가까운 수를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이 몸에 더욱 많은 경험을 쌓게 해 줄 수 있었다.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본능에 따라 움직이더라도 안전성이 크게 늘어난다. 뇌 또한 불필요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반복할 필요가 없으니, 관찰과 분석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명은 아슬아슬한 상황을 유도하면서, 절대로 실패하지는 않는 방식을 택했다.
반드시 성공하는, 완벽한 통제관과는 조금 다르지만, 본래 인간인 그에게는 아주 잘 맞는 방식이었다.
조금 전과 같은 기계 팔 공격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쓰러지지 않은 조명이 남아 있었다.
물론 조명의 몸은 여전히 상처투성이 신세였지만, 조금 전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100번 정도밖에 죽지 않았군요.”
“위험을 완벽하게 회피하거나 되받아치기보단,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회를 엿보거나 죽음을 피하는 방법에 집중했거든요.”
공격을 당한 횟수는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반 이상의 치명상을 단순 부상으로 바꿔 버렸다.
행동 불능이 되지만 않는다면 기회가 있다. 죽지만 않는다면 여전히 살아 움직일 수 있다.
그런 일념 하나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 것이다.
물론 맨 정신으로는 못 할 일이었다.
“지난 84만 년간 당신 같은 인간은 없었어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토록 모호한 인간은 처음이에요.”
완벽한 통제관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운명의 굴레 속에 갇힌데다,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신들이 ‘특별한 이유’를 제외하면 죽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간들은 항상 죽음을 경계한다. 상처가 나면 감염과 출혈을 걱정해야 한다. 병에 걸려도, 독에 중독되어도, 심지어 나이를 먹을 때조차도 항상 죽음과 가까운 것이 인간이다.
그런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려하기 마련이건만, 조명은 죽음을 두려워하더라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죽을 가능성이 있으면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미쳤다는 말로는 부족한, 탈인간급 사고방식이다.
올드 원은 빠른 속도로 상처를 재생시키고 있는 조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당신의 개인적인 욕망에는 ‘생존’도 포함되어 있던 거예요. 하지만 당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선 죽음에 필적하는 리스크도 감수해야 하니, 삶과 죽음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한 거예요.”
살기 위해선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삶과 죽음은 당연한 것.
조명의 부풀어 오른 욕망은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일그러져 있었다.
부귀영화와 평화로운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해, 삶과 죽음이라는 판돈을 걸어 버린 것이다.
올드 원은 생애 처음으로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인간이다. 자신들은 이런 인간을 원한 것이다.
“재밌어지겠네요.”
운명의 장난에 의해 완성된 통제관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완성되는 통제관의 극의를 보고 싶었다.
그걸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밑천을 털어 내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아깝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