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42
헬 다이버즈 141화
141화
정체불명의 전염병 확산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아시아 지역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처음 일어난 변화는 그토록 가깝던 아시아 국가들이 마치 짜고 치기라도 한 것처럼 한날한시에 국경을 닫아 버린 것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대량의 피난민과 보트피플은 어떻게든 가까운 동남아 지역이나 서아시아로 대피하려 했지만, 이미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실시간 영상으로 인해 각국의 통제 조치가 훨씬 더 빨랐다.
“물러서! 물러서지 않으면 쏘겠다!!”
“물러서라고 했지!!”
“저기! 저놈 철책을 넘으려 한다! 어서 쏴 버려!!”
타캉! 타캉!
중국 남부와 가장 가까운 곳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은 일찌감치 군대를 동원해 국경 완전 차단 작전에 돌입했다.
친중 정책을 펼치며 중국과 함께 미래 산업의 파트너로 나아가겠다며 당당히 선언한 국가였으나, 그들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번복해 버리면서 수많은 중국인들이 국경 앞에 무너져 내렸다.
“우린 아직 감염되지 않았어요! 그건 감염되자마자 바로 괴물처럼 변하는 종류의 바이러스라고요!!”
“네놈들이 단순 보균자일지 아닐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런 헛소리를 믿으란 거냐?! 당장 철책에서 떨어져라!!”
“아이만! 우리 아이만이라도 들여보내 주세요!”
“외국인 출입 제한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말라는 정부 지시가 떨어졌다! 아니면 자식들과 함께 사살되고 싶은 거냐?!”
철책 너머에서 방독면을 착용한 군인들이 진압봉을 거칠게 휘두르며 수천수만 명이 넘는 피난민들을 밀어냈다.
참다못한 피난민 중 일부는 무리해서 철책을 넘으려다 진압조의 후방에서 날아든 탄환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중국과 러시아의 정보 통제가 좀 더 오래 이어졌더라면 어찌어찌 베트남의 국경을 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쿄에서 생중계된 끔찍한 감염 사태는 전 세계에 새로운 전염병을 퍼뜨렸다.
바로 ‘공포’라는 전염병을.
때문에 가장 먼저 베트남, 미얀마, 라오스, 대만이 국경을 걸어 닫았고, 한발 차이로 국경을 넘지 못한 피난민들이 접근할 때마다 가차 없이 밀어내거나 사살했다.
몽골은 너무나도 넓은 평원 국경을 수비할 방법이 없어, 모든 국민들에게 긴급 대피를 명령했다.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은 살고 싶다면 몽골 내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향하라는 피난령이었다.
하필 텐진에서 처음 발생한 전염병은 곧장 베이징으로 퍼졌으며, 그 베이징이 몽골 국경과 매우 인접한 탓에 국경 수비를 포기한 것이다.
반강제적으로 인접국 대피가 불가능해진 피난민들은 차선책으로 보트 피플이 되어 필리핀이나 한국행에 나섰으며, 보트피플이 될 수 없던 사람들은 서아시아를 향해 기약 없는 피난을 떠났다.
이 시점에서 가장 곤란해진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었다.
대만처럼 아주 작은 섬나라 국가라면 국민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보트피플의 진입을 어찌어찌 막을 수는 있다.
그 감염체라는 것들이 바다를 헤엄쳐 온다거나, 하늘을 날아온다는 소식은 아직 접하지 못했으니, 사면(四面)이 바다인 국가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장기전을 도모하기 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반도 국가인 대한민국은 아니었다.
삼면이 바다인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북부 지역까지 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탓에 감수해야 할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특히 도쿄에서 감염체 확산 소식이 생중계된 직후, 대한민국은 일본에서 건너오려는 피난민들까지 상대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서쪽에선 중국인과 감염체, 동쪽에선 일본인과 감염체.
북쪽으로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고, 남쪽으로 도망치자니 피난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애초에 중국과 가장 가까운 국가 중 하나이면서도 내부적으로 상황이 어지러운 탓에 정보 수집에 미흡했던 점이 컸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
이미 중국 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고위 간부나 재벌들은 저들끼리 먼저 군용기를 타고 해양 플랜트로 도피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렇다면 자신들도 그렇게 해도 되는 것 아닐까, 하고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간을 보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재산과 터전이 위협당하면 민족성이 바뀐다고 평가받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절대로 건드려선 안 될 불문율이 세 개 존재하는데, 첫 번째가 김치이며, 두 번째는 부모님이고, 마지막이 집값(땅값)이다.
보균자일지도 모르는 피난민들이 대한민국으로 대거 몰려오고 있다 > 그렇다면 치안이 악화되고, 시장 경제가 요동치며, 어쩌면 자신들의 안전도 위협을 받는다 > 그 결과, 집값(땅값)이 폭락하고 생필품 물가는 치솟는다.
이러한 공식이 소문거리를 좋아하는 노인이나 주부들 사이에서 발 빠르게 퍼져 나갔으며, 그들의 이유 있는 호들갑은 곧 국민 전체를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평소에는 군대 얘기만 꺼내면 질색을 하는 남성들이 갑자기 자원입대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6.25 전쟁 이후, 역사상 가장 많은 자원입대 신청을 받게 되었으며, 어차피 피난은 물 건너간 것 같으니 갈 데까지 가 보자는 마음으로 군 편성에 뛰어들었다.
예비군만 해도 300만에 달하는 대한민국 육군이기에, 현역을 포함해서 자그마치 100만이 넘는 수가 순식간에 편성되었다.
범세계적 위기에 거의 2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총동원령이 떨어졌으며, 그 어떤 시절보다도 바쁘게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삐끗했다간 문자 그대로 독이 단단히 오른 국민들에게 맞아 죽겠다 싶어, 정치인들이고 기업인들이고 너나 할 것 없이 결사 항쟁 모드에 돌입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건아, 국민 여러분께 몹시도 송구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겠다는 강한 열망에 힘입어 청와대 또한…….]어수선한 정계 분위기는 잠시 제쳐 두고, 여야가 똘똘 뭉쳤다. 대한민국 대통령 역시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대적인 성명문을 발표했다.
[우리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외적에 맞설 것이며, 최소한의 인간성을 남겨 두기 위해 짐승이 되는 일이 없도록 기본적인 인도주의적 절차를 행할 것입니다.]말이 좋아 기본적인 인도주의적 절차이지, 과거 유럽 국가들이 시리아 내전 사태 당시 무차별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였다가 홍역을 앓은 적이 있기에 그들의 전철을 밟지는 않겠다는 의미였다.
소식이 한발 느렸던 대한민국은 이미 국내에 입국한 피난민들까지는 허용하되, 더 이상의 피난민들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헬 게이트 산업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알아줄 만큼 부유한 국가가 되었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몰려드는 피난민들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육군은 1차적으로 DMZ를 중심으로 다시 한 번 38선(방어선)을 그었으며, 모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해 절대방어 지대를 형성했다.
바다는 해안경비대와 해군에게만 맡겨 둔 채 실질적인 배수의 진을 친 셈이었다.
이렇듯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고 있을 때,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국정원장은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해주겠나?”
“미국에서 제공한 인공위성 감시 정보에 의하면, 중국 내 감염체의 수는 대략 5억에 달합니다.”
5억.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유산균의 숫자라고 하면 간에 기별도 안 올 것 같은 숫자이지만, 그게 순수한 인간의 머릿수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의 공식 인구에 비공식 집계 수를 포함하면 그 수가 대략 20억 아니었나?”
“…맞습니다.”
2030년에 발표한 중국의 공식 집계 인구는 정확히 18억이다.
2010년대에 14억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 20년 만에 4억가량 되는 수가 증가한 셈이다.
헬 게이트 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거듭한 건 비단 한국만이 아니기에, 중국 역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거기에 비공식 인구까지 더하면 20억에 도달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니, 감염체의 수가 5억에 달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중국 내 감염 확산 상황이 어떻게 되지?”
“중국에서 요원들을 모두 철수시키기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된 것이 수십 개에 달하는 도시의 궤멸, 피난민들은 남부 해안과 서부 평야까지 내몰렸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중국의 수많은 인구가 남부 해안이나 모래 가득한 서부 평야까지 내몰렸다는 건 정말 심각한 사태였다.
고작 하나의 감염체가 수십 명을 빠르게 감염시키고, 수십 마리의 감염체가 수백, 수천 명을 재차 감염시킨다. 그 과정이 약 1개월에 걸쳐 반복된 지금, 5억이 넘는 중국인들이 당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사실 중국 땅이 더럽게 넓은 탓에 감염체들이 피난민을 따라잡는 데 시간을 소모했기 때문이지, 땅이 조금만 더 좁았더라면 훨씬 더 빠른 시간에 10억 감염체를 달성했을지도 모른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군대가 중국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중 한반도 북부를 통해 대한민국으로 남하할 감염체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못 해도 수백만, 많으면 수천만에 달할 것이다.
‘어쩌면 억 단위일지도 모르지.’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구려도 같은 인간으로 구성된 백만 대군을 상대하느라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자신들은 잘 죽지도 않는데다 감염성 높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놈들을 ‘최소’ 백만 단위로 상대해야 한다.
아직 이 첩보를 국방부와 청와대에 전달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감염체들이 한반도로 몰려들 것이 빤하기에 국정원장도 마냥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막아 낼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 순수하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면, 그 어떤 군사 전문가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난날 많은 발전을 이뤄 왔고, 군사력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게다가 애국심 투철한 국민들이 합심해서 국가를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든든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은, 우선 적의 수가 너무 많은데다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치 백만 명 단위로 끝없이 몰려들던 소련군을 상대하던 독일군이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언젠가는 군의 정찰 자산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될 일.
국민들에게 ‘감염체가 5억이고, 지금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증가하고 잇습니다!’라고 대놓고 떠벌릴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국가와 국민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 승산 없는 싸움에 나서더라도 국가에 불필요한 혼란이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일단 그 사실은 당분간 함구하도록. 내가 각하께 조심스럽게 알려 드린 뒤, 국방부와 함께 논의할 테니.”
“알겠습니다.”
국정원장실에서 직원을 내보낸 그는 착잡한 얼굴로 손을 매만지다가, 결국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내선 전화를 집어 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계의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