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49
헬 다이버즈 148화
148화
“징글징글하게 몰려드네.”
666은 리볼버의 실린더에서 빈 탄피를 쏟아 내며 투덜거렸다.
“이제 이 세계가 마지막이란 걸 알고 있는 거야. 녀석에게도 오랜 숙원이었으니 공을 들이는 거지.”
8282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막 박살 난 군함의 포탑을 새것처럼 수리하며 대신 답해 주었다.
“흐흐, 84만 년간 똥줄이 탔다, 이건가?”
“어디, 똥줄만 탔겠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인 디쉬를 집어삼킬 생각에 기뻐 죽을 텐데.”
타캉! 타캉!
재장전이 끝난 666의 리볼버가 다시 불을 뿜자, 하늘에서 괴이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거대한 먹구름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그것은 비행형 감염체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형성된, 먹구름처럼 보이는 감염체의 떼가 아니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저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먹구름에 불과하겠지만, 통제관들의 시야 속에선 이 세상, 아니, 전 우주를 통틀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끔찍한 존재가 꾸물거리는 것으로 보였다.
“빌어먹을 새끼. 84만 년간 많이도 쳐먹었군.”
“우리나 저쪽이나 올인(All-In) 전략으로 땡전 한 푼까지 싹싹 긁어서 걸었어. 지난 84만 년간 이긴 건 저쪽이고, 이제야 마지막 한 방을 노리고 있는 건 우리야. 체격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지.”
“그럼 씨발, 우주 전함이라도 만들어 보든가.”
666이 홧김에 욕설을 내뱉자, 8282는 어깨를 으쓱일 뿐 필요 이상으로 666의 화풀이에 반응해 주지 않았다.
“라켄롤 행성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알고 있잖아. 우주 전함이든, 반물질 폭탄이든… 저놈한텐 안 먹혀.”
“하긴.”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이것저것 실험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헬 게이트를 만들어서 뒤틀린 시공간과 ‘현재’를 연결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 통제관이니, 당연히 반물질 폭탄이나 우주 전함도 만들어서 싸워 봤다.
하지만 얄궂게도 운명의 굴레라는 것은 가혹했고, 통제관들에겐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바로 모든 통제관들에겐 ‘패배’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는 점이었다.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어 운명의 굴레는 그들이 무엇을 하든, 반드시 패배하도록 유도했다.
패배, 패배, 그리고 패배.
수십 억에 달하던 통제관들이 종국에는 10만 명 남짓한 숫자까지 줄어든 이유는, 그 빌어먹을 운명의 힘이 작용한 까닭도 있었다.
그래서 올드 원을 포함한 몇몇 통제관들이 투쟁 방식을 바꾸기를 건의했고, 통제관들은 자신들이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대리자를 세워서 싸우자는 방식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그렇게 선정된 것이 헬 다이버즈(Hell Divers).
통제관들의 고향 행성처럼 마지막 멸망을 앞둔 지구라는 곳에 통제관들이 정착하고, 통제관들은 그들을 발전시키고 진화시켜서 투쟁의 대리자로 내세웠다.
하지만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지라 지난 84만 년간 지구는 얼마나 많은 멸망을 겪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 통제관들이 세계선을 옮길 수 없게 된 지금 이 순간, 지구마저 멸망하면 그때야말로 완벽한 패배에 이르는 것이다.
“내가 그 꼬라지 보려고 84만 년간 아등바등 살아왔겠어? 어림도 없다, 이거야.”
“뭐, 사실 능력이 부족한 순서대로 희생했으니까. 역으로 말하자면, 우린 너무 잘나서 반강제로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적당히 유능했어야 했어.”
“아, 그 말 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만 하자’는 말이었던가?”
8282는 벌써 몇 만 년 전인지도 모를 이전의 인연을 떠올리며 추억에 젖었다.
밤낮없이 일을 하고, 심지어 자신이 일중독자라는 걸 알면서도 8282에게 그 말은 입에 착착 감겼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
그 정도만 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면, 그는 통제관 중에서도 꽤 덜떨어진 통제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서 스스로를 희생시킨 통제관들처럼 자신 또한 기꺼이 스스로를 불살라 84만 년의 초대형 프로젝트에 기여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몇 번이고 자신도 슬슬 이딴 헛짓거리 그만두고 희생할까 고민했다.
자신이 적성자들을 위해 손수 제작한 장비들은 모두 고철덩어리가 되어 헬 게이트의 어딘가를 멤돌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연적으로 분해되어 희귀 자원이 되었다거나.
문제는 자신이 만든 장비를 직접 사용해 준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를 어느 시기에 만났는지는 잊어버려도, 누가 어떤 장비를 사용했는지는 지난 84만 년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어차피 자신이 장비를 만들어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장비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건 아닐까.
실제로 세계선을 뛰어넘을 때마다 8282는 자신이 만든 장비가 마지막까지 사용자를 지켜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죄책감을 가졌다.
인간이었을 시절엔 누구나 자신에게 장비 제작이나 개발을 해 주길 원했는데…….
‘천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전무후무한 천재 엔지니어’, ‘기계의 신’, ‘황금 손’같이 낯 뜨거운 이름으로 불리곤 했는데…….
그런 자신도 운명 앞에선 하잘것없는 놈이었던 것이다.
“사실 난 이번이 마지막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8282가 렌치를 휘두르며 말했다.
그가 렌치를 휘두르면 부서진 장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원상복구되었고, 에너지를 조금 흘려 주면 사용자가 없어도 스스로 자아를 갖고 무기가 움직였다.
이미 죽어 버린 사람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 사람이 착용하고 있던 슈트와 무기도 말끔하게 수리되어 다시 전투에 임했다.
생명의 불꽃은 다시 타오르지 않지만, 8282라는 전장의 마에스트로가 존재하는 한 기계들이 움직임을 멈추는 일은 없었다.
“마지막은 여러모로 편하니까. 여차할 땐 다 내던져도 될 것 같은 분위기잖아?”
“그 어느때보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모순적이네.”
666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리볼버를 옆으로 휙 내던졌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666의 전용 무기 하나가 또다시 망가졌다.
그것은 666의 고유 능력과도 같기 때문에 기계의 신이라 불리는 8282조차 수리하는 건 불가능했다. 새로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만, 아마 666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금세 박살 날 테니, 그건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했다.
“사실 나도 염원하던 마지막이 다가와서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
자신의 아공간에서 새롭게 돌격소총을 꺼내 든 666이 트가가가가가! 하고 탄환 세례를 퍼부었다.
그 옆모습에선 희미하지만 환희와 기대감이 엿보였다.
“마지막이니까 안심하고 모든 걸 퍼부을 수 있잖아. 항상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면서 다들 내가 나서는 건 뜯어말리다시피 했으니까.”
“넌 화력 하나로 ‘유능함’을 인정받았으니까. 리더가 네 힘을 의미 없게 소모시킬 리가 없지.”
“아마 리더도 꽤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 같아.”
666은 총연이 피어오르는 돌격소총의 탄창을 갈아 끼우면서 저 멀리 보이는 자신의 리더를 바라보았다.
11500이라는 코드네임을 지닌 그는 고중량 폭탄을 손으로 집어 든 채 직접 하늘로 던지고 있었다.
정비관들은 그에게 지속적으로 폭탄을 가져다주기 위해 분주했으며, 그런 정비관들을 감염체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경단과 수비군 대부분이 항공갑판에 투입되었다.
치열하다.
감염체들은 ‘놈’의 명령을 받아 처음부터 통제관들은 무시한 채 오직 인간들만 집요하게 노렸다.
통제관 역시 감염체를 건드릴 수 없기에, 저 하늘을 뚫고 내려오려는 괴물을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서로가 서로의 아픈 곳을 칼로 푹푹 찌르고 있는 상황.
하지만 고래 등 싸움에서 등이 터지고 있는 새우(인간)들에게 이 광경은 지옥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을 것이다.
“12.7㎜ 탄약 더 가져와!!”
“제2방어선 뚫린다! 빨리 병력 보충해!!”
“다들 저리 비켜! 나 물렸어!!”
희귀 자원을 이용해 개발한 신소재로 제작한 기관총도 붉게 달아오를 만큼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동식 해양 플랜트의 방어선을 사수하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무기를 들었고, 싸울 수 없는 자들은 가장 안전한 쉘터에 대피시켰다.
하지만 상대는 감염체고, 이쪽은 통제관을 제외하면 순수한 인간들뿐.
감염체에게 직접적으로 물리거나, 할큄이라도 당한 인간들은 몇 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감염체로 변모한다.
지난날 동안 통제관들이 이 상황을 인간들에게 주입하며 훈련시킨 만큼, 그들은 설령 감염체에 당하더라도 자포자기하거나 주변에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자신의 조끼 안에 내장된 자폭 스위치를 누르고 감염체 무리 속으로 달려들 뿐.
콰앙! 콰아아앙!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음은 참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감염체 무리의 중심에서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살점과 핏물이 비산할 때마다… 이 악물고 자폭 스위치를 누른 자들의 각오와 용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사랑한다, 정혜야!!”
누군가는 하나뿐인 연인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 나갔다.
“미안해, 여보! 미안하다, 얘들아!!”
누군가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에게 사과하며 당당하게 지옥으로 달려 나갔다.
“이 개새끼들아! 다 죽어어어어어!!”
누군가는 그저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면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상대는 수십억이고, 이쪽은 끽해야 수십만 명.
체격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이 지구의 인류가 모두 감염체가 되거나, ‘놈’의 침공을 받아 사망하면 그걸로 게임 오버.
84만 년간의 이 지긋지긋한 게임을 주관하고 있던 운명은 마침내 ‘놈’의 손을 들어 올려 줄 것이다.
그리고 통제관이란 족속들은 영원한 패배자로 기억되며, 패배자에게 어울리는 최후를 맞이하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무슨 삼류 클리셰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퉁명스러운 어조로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666의 옆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666, 8282의 오랜 동료이자, 마찬가지로 너무 유능해서 지금까지 살아남게 된 1004였다.
“의사 되는 자가 환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마약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혐오스럽습니DA.”
“이번이 마지막이잖아. 의사 선서 한두 번 어긴 게 이제 와서 뭔 대수라고.”
“사람을 살리는 직업과 죽이는 직업의 시선 차이가 이래서 무서운 겁니DA.”
1004는 자신이 가진 모든 소형 로봇을 이용해서 전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뇌에 직접 마약을 주사했다.
최소한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고통과 공포를 느끼는 일이 없도록, 잔뜩 흥분해서 싸우더라도 최후는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
“매번 보는 광경이지만, 지독하군YO. 두 번 다시 이런 광경은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게 몇 번째인지도 잊어버렸습니DA.”
“더 이상 과거를 되새길 필요가 없다는 점에선 차라리 지금이 나은 거야.”
통제관들의 각고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층권을 뚫고 내려온 먹구름이 기어이 촉수를 뻗치기 시작했다.
모든 감염체가 이 바다로 집중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사실 인류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저것’이었으니까.
“이젠 우리가 똥줄 타게 생겼네.”
666의 한숨 소리가 총성에 묻힌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