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52
헬 다이버즈 151화
151화
[여기는 형찬. 위치 잡았어.]“잘 보여요?”
[잘 보여. 다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치안대가 많이 돌아다니는데? 역시 우리가 한 짓이 들킨 거 아냐?]“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정보에 민감한 양반들이라도 아랫것들 중의 아랫것들이 반나절 정도 안 보였다고 갑자기 치안에 신경 쓸 리가 없잖아요? 아마 폭동에 대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폭동이라니? 피난민은 아직 방위 도시 근처에도 도착하지 못했는데?]“하지만 소문은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른 법이죠. 불길한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정작 이 방위 도시를 책임져야 할 높으신 분들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서민 입장에선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거든요.”
[아하, 소통의 부재를 우려하는 건가?]“소통의 부재도 그렇지만, 정보의 통제가 가장 무서운 거죠. 중국을 생각해 보세요. 과거에 사스(SARS)나 아프리카 돼지 열병, 흑사병이 발발했지만 중국 정부는 정보를 숨기기 급급했잖아요. 그러니 이 방위 도시도 중국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를 유지한다면, 노동자 계급이 불안감을 느끼는 게 당연할 거라고 봐요.”
애초에 선택받은 자들이 마음껏 날뛸 수 있을 만큼 잘 조성된 환경에서 노동자 계급이 그리 쉽게 반발을 하겠느냐마는, 존엄성이 바닥까지 떨어진 인간이라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이판사판으로 발악하는 법이다.
지금 이곳의 노동자 계급은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선택받은 자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것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오늘 하루도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구멍’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륙 전체가 소란스러워지고, 종국에는 방위 도시의 안위마저 위협받는다면?
그때는 자신들도 살아남기 위해 선택받은 자들에게 반발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를 다스리는 놈들은 그것까지 예상해 두고 있는 거야.’
생각보다 꽤 영악하다고 해야 할까,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위에 서 있던 놈들답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대응 하나는 철저했다.
물론 놈들이 평소 이상으로 치안대를 풀고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한다고 한들, 헬 다이버 1팀이 난처할 일은 없었다.
퓻!
희미한 소음과 함께 조명이 걸어 들어간 고층 타워 근처의 정원에서 누군가가 쓰러졌다.
야간 경계를 위해 순찰하고 있던 치안대가 형찬의 저격에 목이 꿰뚫린 채 즉사한 것이다.
“창환아. 침입 루트는 좀 나올 것 같아?”
[지금 건물 외벽을 둘러보면서 살피고 있어. 하지만 침입 루트가 그렇게 많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조명보다 앞서 출발한 창환은 정찰 슈트의 은밀한 기동성을 살려 목적지인 벨리스크 타워의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방위 도시의 최중심부에 위치한 초고층 빌딩.
방위 도시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소위 선택받았다고 불리는 족속들이 거주하고 있는 권력의 상징이었다.
‘일반인은커녕 치안대조차 함부로 들어가기 힘들다는 저 빌딩 안이야말로 보물 상자나 다름없지.’
조명은 또다시 근처에서 픽, 쓰러지는 치안대를 뒤로하며 빌딩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찬은 8282가 새롭게 준비해 준 특제 저격총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명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모두 저격으로 처리해 버렸다.
그 솜씨가 썩 괜찮았기에 조명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빌딩에 도달했다.
바로 그때, 주변의 CCTV를 먼저 제거한 형찬이 대뜸 배수구 뚜껑을 열고 튀어나왔다.
“건물 외벽으로 침투하는 건 답도 없어. 창문은 모두 보안 시스템이 걸려 있고, 그건 환풍구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인간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전기와 공기만이 아니라 물도 필요한 법이지. 지하로 들어가는 게 가장 안전해.”
“저 위에 살고 있는 놈들이 과연 자기 발밑을 허술하게 보이도록 내버려 뒀을까?”
“의외로 허술하던데? 자동 감지 포탑이랑 열 감지 경보, 그리고 자폭 드론밖에 없었어.”
지하에서 이미 한바탕 하고 올라온 듯, 창환의 슈트에서는 살짝 탄내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쪽은 진입 루트 확보했으니까, 지윤이랑 지석이는 예정대로 시선 좀 끌어 주고.”
[이미 시작했어.] [이쪽도 문제없다.]조명은 창환과 함께 초고층 빌딩에 침투하는 사이, 치안대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해 지윤과 지석을 투입했다.
두 사람이 부여받은 임무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소란을 일으켜 노동자 계급의 혼란을 야기하고, 한편으로는 치안대의 시선을 끄는 미끼 역이었다.
사실 조명도 이런 식으로 팀원을 막 부려 먹는 게 썩 달갑지는 않으나, 지휘관의 소양이 몸에 배면서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조명에게 맞는 역할이 있듯, 저들에게도 각자 어울리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지휘관은 그걸 정확히 분석해서 배분할 줄 알아야 한다.
애초에 조명은 자신의 팀원들이 그 정도 각오도 없이 헬 게이트에 뛰어들 만큼 무모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곧이어 저 멀리서 총성과 폭음이 울려 퍼지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방위 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다.
“가자.”
“오케이.”
창환을 앞세우고 배수로를 통해 빌딩 지하로 침투하자, 창환의 말대로 무력화된 보안 시스템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
건물 지하, 그것도 더럽고 냄새나는 배수구를 통해 침투해 올 만큼 간 큰 놈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조금 허술해 보이긴 했다.
“리더, 만약 이 도시를 다스리고 있는 놈들이 멸망을 초래한 놈들이라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야? 이 시공간에 고정된 인간들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면서?”
그건 이미 라켄롤 행성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었다.
멸망을 이끄는 자의 계획을 방해하거나, 멸망 자체를 비껴 나가게 하기만 해도 사태는 해결된다. 지금 이 시간대, 이 장소에서 당초 예정된 멸망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모든 게 없던 일이 되니까.
하지만 그게 나쁜 놈들을 다 쓸어버려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조명 역시 그 점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는 세상에서 이방인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이 세계의 인간들이 원치 않은 멸망을 피하게 해 주는 것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구해 주고, 문명의 발전에 간섭하거나 문화, 정치적인 일에 개인적인 감정을 끼워 넣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애시당초 그게 가능한지조차 의심스럽고.
“쓰레기가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면, 눈앞에서 그 계획을 박살 내 줘야지. 쓰레기만 없앤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니까.”
조명은 슈트 적재함에 고이 보관되어 있는 낡은 라이터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 사람’은 어쩌면 단순히 쓰레기들의 명령을 따른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멸망을 늦추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결과적으로 예상한 결말을 맞이했으니 납득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가 스스로 자신에겐 과오가 없다고 말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네이팜 폭격으로 감염체와 바이러스를 싸그리 태울 수 있었다면, 어쩌면 사태가 진정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서 ‘민간인만 폭격하라’는 지시를 살짝 어긴 것일지도 모른다.
‘실패한 선배들을 위해서라도 후배인 우리가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조명과 창환은 방위 도시 전체에 내려진 긴급 상황 선포 탓에 빌딩에서 대기 중이던 대부분의 치안 병력이 빠진 것을 확인했다.
“주제도 모르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놈들의 특징은 항상 가장 높은 곳에 살고 있다는 거야. 그것만 알고 있으면 다른 곳은 뒤져 볼 필요도 없어.”
“그럴듯한데?”
조명과 창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총알 같은 속도로 지하에서 최상층까지 이어지는 등반 코스에 뛰어들었다.
중간 중간 VIP들을 지키기 위해 각층마다 배치된 최소한의 치안 병력과 마주치긴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창환과 내가 먼저 처리했다.
툭 까놓고 말해서 그들이 몇 명이든, 얼마나 대단한 장비로 무장했든,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조명이 무지막지한 통제관의 신체 능력을 이용할 때마다 그들은 무차별적인 재해에 쓸려 나갔으며, 창환이 특유의 날랜 움직임으로 각개격파하면 어느새 복도에 서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치안대를 처리하고 최상층에 도달하는 건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 쉬운지라, 조명은 최상층에 도달하면서 스치듯 마주친 VIP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탐욕과 평화에 찌든 돼지들 같다고 해야 할까.
설마 자신들의 축사나 다름없는 홈그라운드에서 침입자가 이곳저곳 헤집고 다닐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지, 돼지 멱따는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치안대를 호출하곤 했다.
물론 쓸데없는 소음을 유발하는 놈들은 창문 밖에서 날아든 강화 관통탄에 머리통이 꿰뚫렸다.
형찬이 부스터 팩으로 날아다니며 공중 저격을 감행하고 있던 것이다.
“그럼 어디, 낯짝 한번 구경해 보실까.”
창환이 이 순간을 기다렸다며 손을 슥슥, 비볐다.
최상층에 도달한 두 사람이 목도한 광경은 초고층 빌딩에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신전이었다.
물론 오컬트적인 의미의 신전이라기보단 단순히 기계 부품들을 그럴듯하게 조립해서 특이한 조형미를 뽐내는 것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이 세계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긴 했다.
“그런 바이러스를 애초에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이 세계를 시작으로 다음 세계, 그다음 세계로 쭉쭉 퍼져 나간 I―바이러스들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바이러스다.
죽지도 않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공격하여 피와 살을 탐하며, 이미 죽어 나자빠진 시체도 되살아나서 살아 있는 인간처럼 행동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자, SF 영화보다 더 허구적인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런 바이러스가 대체 어떻게 탄생했겠나.
“처음부터 ‘멸망’을 불러들였던 거야.”
초고층 빌딩의 최상층, 거대한 기계 신전의 중심부에 당당히 서 있는 5인조가 지금 막 무언가에게 제물을 바친 뒤였다.
이미 조명 일행이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 몇 번이고 제물을 바친 탓에 주위에는 시체가 그득했다.
당연히 그 시체들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억압받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치안대에 의해 잡혀 들어온 노동자 계급의 인간들이었다.
[대기 성분에 I―바이러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동 정화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슈트를 절대 해제하지 마세요.]조명과 창환의 슈트 헬멧에서 흘러나온 각기 다른 목소리의 AI들이 경고했다.
“그럼 주변에 있는 이 시체들이 전부…….”
“제물로 바쳐지고, 그 대가로 I―바이러스가 흘러넘치는 생체 폭탄이 된 거지.”
그렇다면 저놈들에게서 제물을 받고, 저놈들에게 I―바이러스라는 대가를 내려 준 주체는 누구인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명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일반인이던 시절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꿰뚫어 보지 못했을 시공간 너머의 존재.
하지만 불완전하기는 해도 일시적으로 통제관의 몸을 갖게 된 지금의 조명이라면 능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아직 살아 있었구나.]“그럼. 내가 친척한테 통수 맞고도 아득바득 15년을 넘게 살았는데, 고작 그걸로 죽을 순 없지.”
상당히 거슬리면서도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조명의 귀가 아닌,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졌다.
꿈속에서 한바탕 술래잡기를 했고, 라켄롤 행성을 구한 뒤에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덜미를 붙잡힌 존재.
“멸망을 이끄는 자.”
통제관들이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는, 추하고 역겨운 존재.
지옥의 구렁텅이로 던져서 영원히 불살라 마땅한 존재.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기에 모든 시공간에서 모든 생명체의 증오를 한 몸에 받으며, 동시에 대부분의 생명을 집어삼킨 존재.
조명은 이미 저것과 만난 적이 있다.
심지어 친구처럼 이름까지 붙여 주며 같이 행동하기도 했다.
“아니면 ‘에스(S)’라고 불러 주는 게 익숙한가?”
뒤틀린 시공간의 너머에서 기괴한 촉수 덩어리가 환희에 젖어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