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54
헬 다이버즈 153화
153화
[리더, 뭐 하는 거야?!] [슈트가 갑자기 왜……!] [AI가 말을 안 들어! 리더, 지금 무슨 일이…….] [무슨 짓이야, 이 미친놈아!!]헬멧의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팀원들의 각기 다른 반응에 조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역시 이런 반응이 돌아오겠지. 이미 예상한 것들투성이라 조명은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다들 솔직해지자고. 사실 누구도 이런 염병할 일에 병신 같은 리더를 따라서 목숨을 내던지고 싶진 않았을 것 아냐.”
[그게 무슨……!] [우리가 뭘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우린 자발적으로 리더와 함께 헬 게이트에 잠화했어!] [그깟 명예나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알아, 알아. 너흰 진짜 좋은 놈들이야. 너무 좋아서 탈이지. 명예나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 다만, 너희들 스스로를 돌아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뿐이지.”
[…….] […….] […….] […….]“나보다 똑똑한 너희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저 쥐뿔도 없는 년을 쳐다보지도 못해서 AI에게 슈트 조작을 맡겨야 하는 너희들이 여기서 날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사실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날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아서 무리해 가며 따라온 거잖아? 원치도 않은 무지막지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피땀 흘리며 노력하고, 많은 고통을 감내했을 거야. 그러니 너희에겐 자격이 있어. 병신 하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준 4인의 친구라 불릴 자격이.”
조명은 마지막으로 무전이 끊어지기 전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
“나머지는 내가 깔끔하게 정리할 테니,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끝나면 다 같이 모여서 진탕 놀아 보자고.”
[02, 03, 04, 05의 신호가 소실되었습니다. 모두 시공간의 경계를 넘은 것 같습니다.]“그래. 8282 덕분에 다들 뒤틀린 시공간 너머의 광경도 구경해 보고, 좋은 관광했으니 보람도 느꼈겠지. 당장 돌아가서 일기 쓰고 싶어질걸?”
치지지직거리는 잡음밖에 남지 않은 무전 시스템을 완전히 꺼 버린 조명은 눈을 치켜떴다.
검은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마치 그것을 멋진 옷이라도 되는 양 걸치고 있는 잡것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의 시선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순도 100%의 허무뿐이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기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모순 덩어리가 바라본다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넌 지금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를 거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심지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조차 모르겠지.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논리적 이해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차원적인 게 아니거든. 내가 지금 이렇게 배배 꼬아가며 말하는 것도 사실 너 좆같으라고 그러는 거야.”
[상대에게서 암흑 에너지가 서서히 증가하고 있습니다.]“넌 어설프게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모든 우주의 생명체를 이해했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실은 수박 겉껍질밖에 못 핥아 본 주제에 네가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붉고 탐스러운 과육도 겉껍질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믿고 싶은 거야. 왜냐하면 그걸 부정하는 순간, 지금까지 네가 해 온 모든 행위는 ‘멸망’이 아니라, 짐승처럼 처먹고 싸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슈트 방호력 최대 전개.]“유언은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오, 유언이라는 단어도 알고 있어? 아, 그걸 알고 있는 게 당연한가? 왜냐하면 넌 평생토록 유언이란 걸 직접 해 볼 일이 없을 테니, 찌질이마냥 혼자서 거울 보며 연습했을 것 아냐. 누구도 들어 주지 않는 유언을, 영원한 허무 속에 잠겨 가며 혼자 중얼거리게 되겠지. 그건 유언도 뭣도 아닌 단순한 메아리에 불과하겠지만, 적어도 넌 그걸 유언이라고 믿고 싶어 하겠지. 이해해. 누구든 자신이 되지 못한 것, 하지 못한 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하지. 나도 그랬거든!”
조명은 슈트의 모든 유압 장치를 느슨하게 조정했다.
미세한 부품 하나가 고장 날 것을 염려하면서 쫄보처럼 싸우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이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빈곤한 새끼는 안 돼. 사소한 것에 매달리고 집착하는 게 문제거든. 역사에 길이 남을 병신도 아니고, 고작 사소한 것 하나를 놓지 못해서 추한 꼴을 보여.”
그런 자신을 느낀 적이 있다. 어쩌면 지금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병신 같은 시작으로 병신 같은 운명이 결정되고, 병신 같은 인생에, 병신 같은 나 자신을 미친 듯이 갈아 넣지! 그렇게라도 하면 ‘언젠가는 볕들 날이 오겠지’, ‘보상받을 날이 오겠지’ 하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병신 같은 희망으로 자기 자신을 고문해! 그러다 마지막에 병신같이 웃으면서 ‘이거 썩 괜찮지 않았냐?’ 하고 중얼거려. 어떤 병신이 모든 게 사라졌을 때,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유언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뚜두둑, 뚜두둑.
목을 좌우로 꺾으니, 오랜만에 한판 해 보는 거냐며 근육과 뼈가 환희의 비명을 질렀다.
이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아니던 자신이 무언가가 되기 직전이라는 걸 알려 주는 신호였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병신은 자기가 병신이란 걸 모른다는 점이야. 남들이 좀 추켜세워 주면 ‘난 사실 병신이 아니었나 봐!’,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내겐 잠재력이 있던 거야!’ 그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내뱉지. 좆도 없으면서 큰소리는 잘 치고, 재능이 없으니 병신같이 근성으로 때우는 일이 허다해.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아무것도 없어. 선상에서 즐기는 화려한 파티도, 여우 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들도,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들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고 중얼거리면서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는 임종도.”
조명은 점차 검게 물들어 가기 시작하는 빌어먹을 것을 가리키며 쏘아붙였다.
그것은 마치 의사가 말기 암 환자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병신이 병신에게 병신 같은 끝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는 마지막 선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알다시피, 착한 일과 나쁜 일의 공통점은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것 아닌가.
“나는, 너는,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것도 이뤄 내지 못했지. 아무것도 남길 수 없고, 누구에게도 기억될 수 없고,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도 오지 않아. 그냥 씨발, 처음부터 이렇게 정해져 있던 거야. 84만 년간 좆뺑이친 ‘박조명’과 ‘멸망을 이끄는 자’가 그랬듯이, 이제 이 게임의 9회 말에 오른 나와 네가 마지막이야.”
동시에 조명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음속을 넘어 광속일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속도.
통제관이 자신의 생명을 모두 불태울 각오를 했을 때나 발휘할 수 있는 힘.
헬 게이트라는 위대한 시공간의 통로를 열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이제 그만 처먹고 뱉어낼 때도 됐어.”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조명의 주먹이 상대의 검게 물든 안면을 파고들었다.
인간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의 근력으로 빛의 속도를 빌려 후려갈겼다. 그 주먹에 얼마나 거대한 물리 에너지가 담겨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주먹에 얻어맞은 상대는 그 힘의 역량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84만 년 만에 처음으로 맛보는 감각이 지독한 고통이란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겠지.
“이해해.”
콰드드드득!
빠르게 회전한 몸이 상대의 옆구리에 뒷발차기를 박아 넣은 순간, 이 뒤틀린 시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가 소실된 만큼 상대는 다른 무언가를 획득하고 있을 것이다.
감정? 감각?
어느 쪽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무한하게 텅 비어 있던 항아리 속에 처음으로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은 분명하다.
분명 새롭고, 당혹스럽고, 두려우며, 기쁠 것이고, 시시할 것이며, 좋아하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느낀다는 건, 텅 비어 있던 것이 메꿔진다는 것은 스스로가 살아 있다고 여기게 만드니까.
20년 조금 넘는 인생에서 조명이 상대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건 그걸 먼저 느껴 봤다는 사실 뿐이니까.
그러니까…….
“이해해.”
조명이 뒤이어 올려 친 어퍼컷에 상대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텅 빈 복부에 연타로 주먹이 박혔다.
진심을 담아, 경의를 담아, 증오를 담아, 동정을 담아, 그리고 이해를 담아서 후려쳤다.
무언가가 빠져나오고 있다. 느껴진다. 84만 년간 의미 없이 집어삼킨 것들.
어떻게 소화시키는지도 몰라서 그저 담아 두기만 하고, 조금도 느끼지 못한 것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장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
멸망시키고, 집어삼켜서, 허무로 되돌린 줄 알고 있던 것들이 사실은 자신의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머지않아 상대는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빼앗기기 전에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눈앞의 병신을 쓰러뜨리고,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소화시켜서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때문에 급격하게 불안감이 밀려올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있으니까.
이런 병신은 대체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치 학살과 납치를 일삼는 빌어먹을 콜럼버스를 상대하는 원주민 같은 기분이겠지.
“이해해.”
본능적으로 휘두른 촉수가 조명의 슈트를 아무렇게나 후려쳤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는다. 8282가 마지막으로 제작한, 마지막 적성자를 위한 슈트는 그렇게 쉽게 망가지는 것이 아니니까.
저항이란 걸 하려면 좀 더 제대로 된 걸 해 보라며, 조명은 상대의 촉수를 손으로 잡아 그대로 찢어 버리고, 그 몸에 재차 주먹과 발길질을 때려 박았다.
모두 뱉어내라. 네가 지금껏 목적도, 의미도 없이 집어삼킨 84만 년간의 생명과 시공간을, 그들의 삶과 운명을!
모두 원래 있던 곳에 되돌려 놓아라!
그 말 한마디보다 훨씬 빠르게, 빛의 속도로 나아간 것이 바로 조명의 주먹이었다.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해한다.
“처음부터 남에게 추켜세워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해한다.
“처음부터 이런 일은 시작하지도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전부 이해한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텅 빈 우주의 한복판에서 조명과 자칭 ‘멸망을 이끄는 자’는 그저 육체로 대화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누군가가 집어삼킨 것을 토해 내게 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이 집어삼킨 것을 소화하기 위해.
고통에 익숙해지고, 그 고통을 되돌려 줄 만큼 충분히 성장한 촉수가 조명의 슈트를 두들겼다.
아직 충분한 고통을 맛보지 않았다며, 진정한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다며 울부짖는 주먹이 상대의 몸을 두들겼다.
누군가가 집어삼킨 것은 이윽고 모두 빠져나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그로 인해 상대는 진정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텅 빈 병신이 되었다.
누군가가 앞뒤 생각하지 않고 휘두른 에너지는 이윽고 모두 소모되어, 소유자를 평범한 인간보다도 못한 병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서로를 물어뜯고, 힐난하고, 비참한 최후의 VIP 석을 예약해 둔 프리미엄 병신 둘뿐이라는 표현이면 충분할 것이다.
“후욱… 후욱……!”
“하아, 하아…….”
주먹과 촉수가 허공에서 맞닿았다.
동시에 뼈와 근육이 파열되고, 미끌미끌한 살덩어리가 물풍선처럼 터져 나갔다.
“이게 바로 네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무수한 것들 중 하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