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8
헬 다이버즈 017화
17화
“사람 더럽게 많네.”
조명은 처음으로 담당 통제관의 동행 없이 타 후보생들과 함께 후보생 거주 구역을 벗어났다.
그곳은 1개 중대라 추정되는 군부대가 베이스를 짓고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원유 시추 시설이었다. 정확히는 옛날에 원유 시추용으로 사용된 곳이었다.
“통제관의 동행이 없군요. 신분증을 확인하겠습니다.”
“아, 예.”
초병이 손을 내밀자, 조명은 스스럼없이 목에 걸고 있던 신분증을 벗어 건넸다.
통제관과 동행한다면 이미 검증 절차가 끝난 인물이기에 따로 신분 확인까지 하지 않지만, 간혹 통제관 없이 숨어 들어오려는 2년 차 이상의 선배들을 가려내기 위한 절차였다.
과거에 그런 꼼수를 부리던 선배들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인지, 초병들의 날카로운 눈은 통제관과 함께하지 않은 후보생들만을 집중적으로 감시했다.
“1년 차 후보생 박조명 확인되었습니다. 통제관의 동행이 없다면 저희들 측에서 확실한 안전을 보증해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상관없습니다.”
“그럼 입장해도 좋습니다.”
초병이 게이트를 열어주자, 조명은 후끈한 열기가 넘실넘실 피어오르는 곳의 경계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렇다. 무엇을 더 말하랴. 이곳이 바로 동해의 중심, 수면 면적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진 지구 최대 규모의 싱크홀, 혹은 헬 게이트라 불리는 곳의 경계선이었다.
에베레스트 산맥 하나를 집어넣어도 전혀 티가 날 것 같지 않은, 거대한 구덩이의 지평선과 깊이는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이었다.
그 경계선에 자리 잡은 것은 각 나라에서 끌고 들어온 연구 시설과 원유 시추 시설을 개조한 ‘마지노선’이었다.
이곳에 근무하는 인간들은 모두 엄청난 봉급을 받으며 후끈후끈한 열기가 올라오는 구덩이 근처에서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군인들은 철저한 경계와 후보생 및 헬 다이버들의 안전 책임, 연구자들은 헬 게이트에서 갓 건져 낸 신선(?)한 자원과 자료의 연구, 엔지니어들은 틈틈이 시설의 설비 상태를 점검하며 안전사고를 예방했다.
‘열 내성 초강화제를 먹지 않았더라면 벌써 기절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조명은 거대한 크레인이 수십 개나 설치되어 있는 대규모 시설로 향하는 리프트 위에서 눈을 흘겼다.
무슨 느림보 굼벵이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리프트는 열기 때문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을 더욱 빡치게 만들고 있었다.
한술 더 떠 리프트의 벽에 장착된 온도계는 무려 53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보다 더한 희대의 핫 플레이스였다.
열 내성 초강화제를 섭취한 조명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뽀송뽀송한 피부를 자랑했지만, 주위의 다른 후보생들은 대부분 땀을 삐질삐질 흘려 댔다.
개중 일부는 통제관이 챙겨 온 생수와 소금으로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는 이도 있었다.
조명은 그러한 광경을 본 후에야 지윤이 왜 그렇게 짜증을 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당사자인 지윤 역시 상당히 버티기 힘든 듯, 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공짜 사우나를 즐기는 마당에 조명은 이제 반쯤 올라온 리프트에 지루함을 느꼈다. 무언가 색다른 것이 없을까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경계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헬 게이트의 진짜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영화에서 보던 지옥이랑 비슷한데?’
어둡고 칙칙한 구덩이지만, 분명 불길이 일었다. 이따금 안쪽의 어둠을 뚫고 번쩍이는 번개의 모습엔 조명이 지금껏 알고 있던 쥐꼬리만 한 상식마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땀내 나는 인간들 틈에서 조명은 반짝이는 눈으로 헬 게이트만을 내려다보았다. 왠지 모르게 검은 불길과 번개가 치솟을 때면 감탄사를 터뜨리고, 다른 크레인을 통해 오르내리는 헬 다이버들을 봤을 땐 경외감마저 들었다.
수면 위로 올라가고 있는 자신들마저 50도를 넘나드는 열기에 허덕이고 있는데, 저 아래로 내려가는 자들은 대체 얼마나 높은 열기와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인지 감도 안 잡혔다.
‘진짜 대단하네, 대단해. 저러니까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질 수 있는 거겠지.’
세상사에 큰 관심은 없고, 그저 하루하루 벌어 먹고사는 것에 바쁘던 조명이지만,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참된 문화(인터넷)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헬 다이버는 진짜 유명했다. 아니, 더럽게 유명했다.
각자 개성에 맞는 온갖 기이한 형태의 슈트를 착용한 그들은 방송이나 CF에도 심심찮게 출연했으며, 동물이나 벌레보다도 더 많은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특히 수많은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 콘텐츠인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비록 조명 자신은 보지 못했지만, 무려 한 달 전쯤에 전설 속의 헬 다이버를 모티브로 한, ‘나는 프리스트가 아니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스오피스 1위, 일주일 만에 천만 관객 돌파를 이뤘다는 모양이다.
조명이 흐뭇한 얼굴로 자신도 그런 미래를 가질 수 있을 거라 망상하고 있던 찰나, 리프트가 크게 흔들리며 종착지에 도착했다.
하마터면 구덩이 아래로 떨어질 뻔한 것을 옆에 서 있던 이름 모를 통제관이 붙잡아주었다.
“조심하세요.”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에 조명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소문의 그 신입 후보생이죠? 당신에 대해선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이런 곳에서 안전사고를 당하면 안타깝잖아요?”
“하하… 주의하겠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을 할 줄 아는 사람은 가르칠 맛이 있죠. 상점을 드릴까요?”
“예?”
상점 얘기가 나오자 조명은 벙찐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두툼한 우주복을 껴입고 있는 것이,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았다.
‘우주복을 입은 통제관은 3급이라고 했지.’
그녀의 우주복에는 귀여운 토끼 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는데, 우주복 차림의 통제관이 그녀 한 명인 것으로 보아 이번 훈련의 입회자인 듯했다.
“괘, 괜찮습니다! 그런 걸로 상점을 받는 건…….”
“저는 가르치는 입장이고, 그쪽은 배우는 입장이죠. 그럼 문제될 것이 없지 않나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명에게 상점 2점을 적립해 주었다. 신분증에 표시된 상점 카운트가 진짜 올라가 버리자 주변의 후보생들이 웅성거렸다.
“담당 통제관도 아닌데 다른 후보생한테 진짜 상점을 주셨어!”
“와, 저게 가능한가? 저런 건 진짜 모범생 중의 모범생만 받을 수 있는 희귀 케이스 아냐?”
“일전에 1년 만에 졸업한 선배가 통제관들 사이에서 인기가 제법 있었잖아. 여기저기서 상점 좀 받았다던데, 쟤도 그런 타입인가?”
“잭팟을 세 번이나 터뜨렸으면 됐지, 욕심은 더럽게 많네. 우린 상점 받으려고 죽어라 노력하는데.”
개미가 기어 들어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만… 다 들렸다. 애초에 노골적으로 적의 담긴 시선을 보내는데 못 알아차리는 게 더 이상했다.
‘내가 원해서 받은 거 아니야, 미친놈들아!’
조명도 뽑기를 통해 상점이 좋은 시스템이란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상점을 얻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신의 담당 통제관이 주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괜히 다른 통제관에게 상점을 받으면 남이 받아야 할 것들을 빼앗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절하려 했건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상점을 밀어 넣어버렸다.
당혹스러워하는 조명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준 그녀는 입회자답게 사람들을 지나쳐 먼저 리프트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곳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크레인과 그것을 조작하는 엔지니어들이 내열복을 입고 있는 광경이었다.
저 우주복 비스무리한 슈트의 성능은 이 지옥 같은 열기에서도 일반인이 무리 없이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분명했다.
“모든 후보생들은 낙하대(落下臺)로 올라와 잠화복을 착용해 주세요. 담당 통제관들은 잠화복과 후보생들의 상태를 점검해 주세요. 사고가 발생하면 곤란하니, 만전을 기해야 해요.”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따라 통제관과 후보생들은 신속한 움직임으로 넓고 튼튼한 지지대 위에 올라섰다. 다른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팀도 마찬가지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였다.
“후보생은 뭘 하고 있나요?”
“아, 저는… 아직 잠화복이 지급되지 않아서 참관만 하기로 했습니다.”
또다시 지목당한 조명은 머리를 긁으며 변명했다.
다행히 창환이 제대로 설명을 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조명에게 지정석을 내주었다. 지정석은 다름 아닌 그녀의 옆이었다.
“직접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우선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도 나쁘지 않죠. 배우는 자 된 입장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태도예요. 상점을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습니다!!”
또다시 흉흉해지는 후보생들의 시선 속에서 조명은 필사적으로 거절했다.
차광 처리가 되어 안쪽이 보이지 않는 우주 헬멧 속에 대체 어떤 얼굴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조명을 놀리는 얼굴이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상점이 들어오지 않아 조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와중에도 후보생들은 신축성이 높은 운동복 위로 잠화복을 질서정연하게 착용했다.
그들이 착용한 잠화복은 모두 1레벨로 통일된 기본형이라서 그런지, 남녀의 구분만 빼면 대부분 디자인과 색상이 비슷했다.
물론 개중에도 특출 난 디자인을 자랑하는 잠화복이 몇 개인가 있었다.
“와, 저거 레벨 2 잠화복 아니냐? 담당 통제관이 팍팍 밀어주나 본데?”
“미친! 존나 부럽다.”
“조용히 하십시오, 후보생.”
몇몇 이들이 대놓고 부러움을 표하다가 담당 통제관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그럼에도 후보생 일동의 부러움 섞인 시선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자신들은 모두 최소한의 열기 내성과 방호력을 갖춘 기본 잠화복인데, 몇몇 선택받은 자들은 한층 더 수준 높은 잠화복을 지급받았으니까.
당연히 부러울 만했다.
‘하지만 기본 잠화복조차 없는 나보다 부럽겠냐? 배부른 놈들.’
게다가 웃기지도 않은 참관을 이유로 이곳에 온 건 놀랍게도 조명 혼자뿐이었다.
창환이 지껄인 명당이고 나발이고 간에, 애당초 이 지옥 같은 곳에 제 발로 참관을 하러 올 후보생은 조명을 제외하곤 한 명도 없던 것이다.
잠화복을 지급받지 않은 후보생들이나 통제관 측에서 나서 훈련을 거부한 후보생들은 참관까지 같이 거부했다. 즉, 조명만 멍청하게 낚인 신세였다.
‘지창환, 이 뻔뻔한 새끼…….’
조명이 열심히 눈알을 굴려 놈을 찾아보니, 과연 자신의 통제관과 함께 웃고 떠들며 잡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녀석도 2레벨 잠화복의 소유자 중 한 명이었다.
뽑기 대리에서 꽝만 골라서 뽑아주겠노라 다짐하며, 조명은 잠자코 입회자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각 팀에서 순서대로 한 명씩을 선발해 크레인 앞으로 보냈다.
엔지니어들은 마지막 안전 점검을 끝마친 뒤, 지정된 위치에 선 후보생들의 몸 위로 고정 끈과 고리를 매달았다. 좀 원시적인 방법으로, 잠수부들을 깊은 바다에 내려보낼 때나 쓰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여긴 바다가 아닌데…….’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 위가 맞다. 그 바다의 한복판에 지옥의 구덩이가 크게 뚫려 있어서 그렇지.
저 아래로 넘실대는 검은 불길과 지독하리만치 자욱한 검은 안개, 그리고 그 틈에서 산발적으로 번쩍이는 번개까지…….
지금부터 저 아래로 후보생들이 내려가게 될 것이다.
“안심하세요. 후보생들에게 배정되는 최대 심도는 10m예요. 고정대가 그 아래로는 내려보내지 않을 테니, 후보생들은 긴장을 풀고 몸을 맡기세요.”
그녀는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는 통제관들과는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후보생들을 안심시키며 고정대를 하나하나 직접 확인했다.
“모든 장비에 이상이 없군요. 준비된 후보생[Trainee]은 앞으로.”
“””앞으로!”””
일련의 후보생들이 일제히 기합 같은 것을 내지르며 곧게 앞으로 뻗은 갑판 위를 걸어 나갔다.
갑판 위에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핏물이 붉은 녹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일부 후보생들은 그것을 보고 잔뜩 긴장하는 눈치였지만, 이제 와서 물러서기엔 너무 늦었다.
“잠화(潛火) 준비.”
“””준비!”””
“잠화.”
“””잠화!”””
후보생들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성큼성큼 지지대가 없는 허공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 순간, 크레인이 작동하며 고정된 후보생들을 힘차게 아래로 내려보냈다.
그사이, 입회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보생들에게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여러분에게 지급된 기본적인 잠화복의 헬멧에는 착용자의 현 상태와 잠화 중인 헬 게이트의 심도를 나타내 주는 각종 수치들이 표시될 거예요. 목 아래에 설치된 고정 라이트에서 흘러나온 홀로그램이기 때문에 헬멧이 고장 나더라도 정보 확인은 어렵지 않아요.”
그 말인즉슨, 헬멧이 부서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당장 헬멧을 옆구리에 끼고 있던 몇몇 후보생들은 지레 겁을 먹었는지 서둘러 착용했다. 잠수복에서 신축성을 빼버리고 튼튼함을 더욱 가미한 것 같은 잠화복은 최신형 우주복의 하위 호환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저런 물건마저도 박살 날 일이 있다고 하니, 후보생들 입장에서 겁을 먹는 것도 당연했다.
“또한 제가 조금 전에 말한 심도란 동해의 기존 수표면을 기준으로 1,000m 아래로 내려간 뒤, 그곳부터 1m 단위로 적용되는 구간의 단위에요. 즉, 여러분은 기본적으로 1,000m 아래로 내려간 뒤, 그곳의 불길을 통과해서 잠화하는 것이랍니다.”
과연.
조명은 슬쩍 갑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검은 안개를 뚫고 내려간 후에야 잠화를 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먼저 내려간 후보생들 역시 모두 검은 안개를 뚫고 내려간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