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19
헬 다이버즈 018화
18화
“심도 10m까지는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헬 게이트의 입구, 혹은 화표면(火表面) 이라 불리는 30m 구간까지는 별다른 위험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어디까지나 헬 게이트 내부에서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 ‘체험’하는 것에 불과하답니다.”
입회자는 친절한 말투로 사근사근 설명해 주었지만, 모든 후보생들이 안심하는 건 아니었다.
특히 조명처럼 아래를 내려다본 이들은 창백한 얼굴이 되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또한 실전 훈련이라고는 해도 잠화 시간은 최대 30분을 넘기지 않게끔 조절하고 있어요. 여러분은 그곳에서 충분히 헬 게이트 내부의 환경에 대해 학습하고, 헬 다이버의 승격 시험에 대비하면 된답니다.”
‘헬 다이버가 되면 이곳의 환경을 일상으로 여기게 되겠지. 그 감각을 미리 깨우치라는 의도인가?’
나약한 인간은 헬 다이버가 될 수 없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헬 게이트 내부에서 버틸 수 있어야 잠화를 할 자격이 주어진다.
조명의 관점에서 본 실전 훈련은 후보생들에게 그 감각을 사전에 깨우치게끔 하기 위한 배려이자 격려였고, 일종의 통과의례였다.
‘이것마저 제대로 해낼 수 없다면, 승격 시험은 꿈도 꾸지 말라는 거겠지.’
아니나 다를까, 입회자가 손뼉을 쳐서 엔지니어들에게 신호를 주자, 크레인이 다시 역으로 작동해 아래로 내려간 자들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갑판 위로 무사히 돌아온 후보생들은 모두 헬멧을 벗어 던지기가 무섭게 푹 익어버린 것 같은 냄새를 흩뿌렸다. 누군가는 연신 토악질을 해 대며 바닥을 뒹굴었다.
여기저기서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실전 훈련이 처음인 후보생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음, 기본 잠화복이라면 역시 이 정도가 한계겠죠.”
동요하는 후보생들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1레벨 슈트를 착용한 후보생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난 잠화복이 없어서 다행이야! 우리 통제관님 최고다!!’
만약 잠화복을 받았더라면 아직 준비가 덜된 조명도 끔찍한 꼴을 겪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입회자의 권한으로 담당 통제관들에게 부상자들을 데리고 내려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옆에서 그녀가 들고 있던 서류철을 슬쩍 훔쳐본 조명은 부상자들의 이름 옆에 ‘기준 미달’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보았다.
열기를 이기지 못한 자들,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한 자들 모두가 예외 없이 기준 미달 처리가 된 것이다.
“다음 준비된 후보생은 앞으로.”
준비된 자 따윈 없다. 2레벨 잠화복을 착용한 자들도 입을 굳게 다문 마당에, 기본 잠화복을 착용한 자들이 섣불리 나설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결국 일부의 후보생들이 담당 통제관에게 등 떠밀려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열기에 버티는 훈련과 정신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고작 심도 10m 정도에서 부상을 입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노력 부족을 돌려 까는 듯한 발언에 그들의 안색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다음 부상자가 발생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함께 내려가야겠다고 조명이 다짐하던 그때였다.
아래에서 막 올라온 리프트가 쿵!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그곳에는 흰 방호복을 자랑하는 1급 통제관이 커다란 금속 케이스를 들고 서 있었다.
“잠화복이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실전 훈련에 참관한 것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벌점 2점과 상점 5점을 적립해 드리겠습니다.”
후보생들을 헤치고 뚜벅뚜벅 걸어온 그는 조명의 앞에 서서 대뜸 상벌점을 내렸다.
‘상점은 그렇다 치고, 벌점 2점은 왜 주는 건데? 아니, 그보다 들고 있는 케이스는…….’
“3급, 비키십시오.”
“어머, 오늘 진행되는 실전 훈련의 입회자는 제가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을 텐데요?”
“1급 통제관의 권한으로 지금부터 입회자의 자격은 본 통제관이 양도받겠습니다. 알았으면 비키십시오.”
한 손으로 3급 통제관 헬멧을 밀어낸 그는 조명의 옆에 서더니 케이스를 내밀었다.
“잠화복의 오더 메이드 일정이 조금 늦었습니다. 서둘러 착용하고 실전 훈련을 준비하십시오.”
“저는 오늘 참관을…….”
“착용하십시오.”
“…예.”
조명은 하는 수 없이 케이스를 받아 들었다.
딸깍.
잠금을 해제해 보니, 그 안에서 나온 것은 검은 테마에 붉은 선이 새겨진 SF풍의 헬멧과 두 개의 은색 팔찌였다.
“5레벨 부분 구현화 잠화복?!”
누군가의 경악에 찬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5레벨이면 5레벨이지, 부분 구현화는 또 뭐야?’
의아함이 섞인 시선을 담아 보내자, 조명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전 입회자가 나섰다.
“5레벨 부분 구현화 잠화복은 대부분의 파츠 데이터를 초극세화해 주요 데이터베이스에 저장, 주인의 착용이 확인되면 즉시 파츠를 구현하여 잠화복을 쉽게 착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의미해요. 최신예 기술이죠.”
“3급, 조용히 하십시오.”
자신의 통제관이 남의 통제관 뒤통수를 서슴없이 때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절로 위가 쓰렸다.
조명은 후보생들의 부러움 반, 질투 반이 섞인 시선 속에서 천천히 헬멧과 팔찌를 꺼내 들었다.
‘이러니 내가 제명에 못 죽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잠화복도 없는 놈이 꾸역꾸역 이곳까지 기어 올라왔을까.
만약 훈련 구역에 얌전히 처박혀 있었더라면 통제관과 엇갈려서 만날 일도 없었을 테고, 뒤늦게 훈련에 참가할 일도 없었을 텐데.
조명은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색 바탕에 붉은 선이 새겨진, 멋스러운 헬멧을 착용했다.
우주복의 둥근 헬멧과는 다르게 F1 레이싱 선수의 헬멧을 개조한 것 같은 디자인이라 착용감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푹신하면서도 적당하게 조여주는 안감과 적당한 차광 처리가 된 바이저는 묘한 안정감까지 주었다.
마지막으로 수갑처럼 열고 닫을 수 있는 은색의 팔찌를 양 손목에 착용하자, 딱 알맞은 크기로 줄어들었다.
헬멧과 팔찌의 착용이 끝나니 딱히 건드린 것이 없음에도 헬멧의 바이저에서 반투명한 홀로그램 시스템이 작동했다.
『착용자 확인』
― 생체 식별 코드 확인
― 헬 다이버 서포트 시스템 온라인
― 착용자 ID : 박조명(Light Park)
― 남은 복무 일수 : 2년 11개월 2주 3일
― 신체 상태 : 쓸데없이 건강함
― 정신 상태 : 군기가 빠졌음
― 감지되는 강화 능력 : 열 내성 초강화, 정신 이상 내성 초강화, 체력 회복률 초강화
― 종합 평가 : 주제를 모르고 나댐. 통제관의 훈육(물리) 요망.
‘이 새끼가?’
무슨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지 모를 기계의 비아냥에 조명은 냉큼 헬멧을 벗으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팔찌의 무시무시한 압박감이 엄습해 왔다.
“어, 어억?!”
팔찌가 양팔을 분질러 버릴 듯한 기세로 엄청난 압박을 가해오자, 조명은 신음성을 터뜨렸다. 체력 회복률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근육 파열과 골절은 무조건 의무대행이었다.
‘그래, 차라리 의무대로 보내줘!’
입은 신음을 내뱉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누구보다도 부상을 원하고 있는 조명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팔찌의 압박감은 찰나의 순간에 사라졌고, 어느새 팔목부터 상반신, 하반신까지 순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슈트의 파츠는 이윽고 조명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마침내 튼튼한 금속의 미래형 갑옷을 갖추게 된 조명은 후보생들의 ‘오오!’ 하는 함성을 잠자코 들어야 했다.
전신 거울로 살펴본 건 아니지만, 슬쩍 아래를 내려다본 것만으로도 자신이 어떤 잠화복을 착용한 건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튼튼하고, 움직임이 편하며, 안정감이 있다. 게다가 바이저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파츠의 설명과 내구도 수치, 특별한 기능들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자동 온도 조절 장치에 전기분해 장치로 필요 시 식수 공급 기능, 초고강도의 내구력으로 최대 질량 12톤(t)의 중압을 견딜 수 있다라…….’
그밖에도 조명이 모르는 각종 전문 용어들이 바이저의 표면에 줄지어 나타났다.
쉽게 말하자면, 자율적인 활동 기능에 안전 기능까지 빵빵하게 보장되어 있는 최고급 슈트라는 얘기였다. 모두가 2레벨 슈트를 부러워한 것만 봐도 5레벨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슬쩍 움직여 보니 너무나도 가벼웠다. 가벼운데다 파츠가 관절부의 움직임까지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 복잡한 움직임에도 큰 제한이 없었다.
열기?
슈트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는 뜨뜻한 바람이 느껴지긴 했지만, 지금은 에어컨을 튼 방 안에 있는 것처럼 쾌적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 조명은 지금 바닥에 누울 수만 있다면 15시간 숙면도 가능할 거라고 봤다.
“준비된 후보생, 앞으로.”
현실도피 겸 무의미한 행복에 빠져 있던 조명은 낯익은 목소리가 귓가를 때리자 인상을 찡그렸다.
바이저에 표시된 조명의 정신 상태가 ‘군기가 빠졌음’에서 ‘하극상 위험 있음’으로 바뀌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 하극상이라도 하고 싶지만, 저 양반을 상대로는 어림도 없지.’
1초.
1초라는 시간만 주어져도 뭐든 할 수 있는 것이 1급 통제관이다. 그 편린을 살짝 맛본 조명은 궁시렁대면서도 얌전히 그의 앞에 나아가 섰다.
“후보생에게 배정된 심도는 30m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예? 하지만 후보생에게 배정되는 심도는 분명 10m인 것으로…….”
“본 통제관이 입회자의 자격을 취득하면서 지금 막 바뀌었습니다. 불만 있습니까?”
“…없습니다!”
있다고 하면 결코 좋은 꼴 못 본다는 걸 알기에 조명은 잠자코 고정대를 슈트에 연결했다.
앞서 다른 후보생들이 그런 것처럼 조명도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갑판 위를 걸어 나갔다.
갑판의 끝에 서니 확실히 안전지대에서 내려다본 것과는 또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조명의 아래에 존재하는 건 멋지고 흥미진진한 헬 게이트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였다.
‘그래, 통제관님을 믿자! 좀 띠껍긴 해도 신입인 날 위해 손수 5레벨 슈트까지 가져오셨는데, 내가 믿지 않으면 대체 누가…….’
“잠화 실시.”
“억!”
등 뒤를 날카롭게 타격하는 익숙한 감각과 함께 조명의 몸이 ‘> ‘ 자로 꺾인 채 아래로 떨어졌다.
“야, 이 개…….”
― 욕설 필터링 ON
“아들아!!”
그것이 조명이 남긴 희대의 유언이었다.
정신없이 풀려 나온 라이프 라인(Life Line, 고정대에 연결된 강철 끈)에 의해 조명은 순식간에 500m대를 주파, 1,000m를 향해 강하했다.
‘다른 후보생들은 천천히 내려줬는데, 나는 왜!’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번지점프를 하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일정 구간에서 멈춰 서야 하는데, 1,000m를 넘기까지 조명의 몸에 큰 반동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조명의 유일한 구명줄인 라이프 라인은 계속 풀리고, 마침내 검은 안개에 진입했을 즈음, 조명은 기이한 느낌과 함께 얇은 막을 통과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러자 격한 부유감을 느끼고 있던 몸은 순식간에 멀쩡해져, 단단한 지면 위에 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어?”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를 통과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자마자 전신의 부유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디 그뿐인가. 분명 검은 안개투성이일 거라 여긴 조명의 예상과는 달리, 현재 그가 서 있는 장소는 크고 작은 암석과 붉은 토양이 자리 잡고 있는 웬 황무지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곳에는 놀랍게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동해 바다 위에서 볼 수 있던 밝고 아름다운 태양이 아니었다.
“미친…….”
검게 불타고 있는 태양. 그래, 태양이 검었다.
마치 불이 붙은 숯덩이마냥 태양은 지나치게 밝은 빛을 흩뿌리고 있지만, 동시에 그 중심부는 매우 검었다. 이 모순적이면서도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조명은 입을 쩍 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게다가 충격적인 일은 그것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바이저에 표시된 체외 기온이 무려 95도를 넘어서고 있던 것이다.
‘헬멧 벗으면 죽는다.’
아니, 슈트에 아주 작은 구멍만 생겨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50도가 넘나들던 바깥보다 두 배에 가까운 기온이 이 살인적이면서 무미건조한 환경을 만들어낸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