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2
헬 다이버즈 001화
1화
인간 조명, 빛나리, 반짝이, 박전구, etc…….
그를 가리키는 호칭에는 수많은 멸칭들이 존재했다. 그랬기에 자그마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씁쓸한 웃음을, 표출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게 만드는 멸칭들을 들으며 자라왔다.
“후, 인간 조명 좋아하네…….”
필시 한반도 역사에선 그렇게 유명할 것 없는 아무개 박씨 가문의 마지막 후손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코흘리개 시절의 조명 앞에서 암으로 고통스럽게 임종을 맞이한 할아버지의 성함은 박봉화(朴烽火).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명의 선물을 사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버지의 성함은 박전등(朴電燈).
그리고 집안에 액운을 불러일으키면서 어른들을 잡아먹고 자랐다는 마지막 후손의 이름은 박조명(朴照明).
조명은 소주가 담긴 자그마한 종이컵을 묘비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껏 애를 버리고 도망치셨으면… 차라리 새살림이라도 차려 부족함 없이 살지그러셨어요.”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까지 비명에 세상을 뜬 후, 조명의 어머니 진선화는 친가의 거센 등쌀과 모멸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집을 나가 버렸다.
요즘 시대에 무슨 아침 드라마 같은 말이냐고들 하겠지만, 진선화에겐 그녀를 지탱해 줄 외가가 없었다.
남편의 부고에 함께 슬퍼하고, 친가의 등쌀을 함께 버텨주고, 슬픔에 젖은 그녀를 보듬어줄 만한 진짜 가족이 그녀에겐 없던 것이다.
대학 시절, 홀로 자란 그녀가 싹싹한 성격의 박전등과 눈이 맞았다는 얘기.
그건 박전등이 어린 조명에게 곧잘 들려주던 추억담이다.
물론 그때만 해도 친가 쪽의 엄청난 반대가 있던 모양이라, 박씨 가문의 기둥인 할아버지의 허락이 없었다면 결혼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푸념도 함께였다.
문제는 박씨 가문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던 두 사람이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그녀를 지켜줄 사람은 남지 않았다.
박씨 가문의 종친들은 장례식이 끝나기 무섭게 슬픔에 잠겨 있던 어머니를 쪼아 스스로 나가게 만들었다.
심성이 여린 그녀가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마저 포기할 정도로.
이후, 실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조명은 어머니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지금 앞에 놓인 초라한 무덤 앞에서…….
조명은 씁쓸하게 무덤을 내려다보며 침음을 삼켰다.
“쯧.”
자신 또한 이곳에 묻힌 어머니처럼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안 지나 친가로부터 버려졌다.
당시 조명은 어른들의 횡포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울면서 고아원에 버려지다시피 맡겨졌을 뿐.
10년 전쯤의 아픈 기억이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은 어떻게든 애를 써 홀로 자립하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조명에겐 인맥도, 돈도, 여유도 없었다.
10년간 아등바등 살아온 결과가 딱 이 정도였다.
특출 난 재능이랄 것도 없고, 요령이 좋지도 않았다.
열심히 수능을 봐서 어떻게든 대학을 들어가긴 했지만, 인서울권에서도 사실상 최하위 대학에 입학한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대학 등록금과 부족한 생활비를 때우기 위해 대출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까지 신세 한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었으나, 착잡한 심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까지도… 모두가 무책임하게 자신을 두고 떠나 버렸다.
“……저도 힘들어요.”
누구의 앞에서도 함부로 내뱉지 못한 그 한마디.
사내자식이, 젊은 놈이, 뭐든 할 수 있는 놈이 그런 말을 내뱉는 거냐며 핀잔밖에 못 들을 그 한마디.
조명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그 말을 내뱉었다.
문득, 이제 두 번 다시 가족을 보지 못할 거란 생각에 조명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양지바른 곳도 아니라서 수풀과 작은 나무만이 무성하도록 외진 장소. 그 틈새로 보이는 맑은 하늘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주변 환경 탓에 이곳에만 햇볕이 제대로 내리쬐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 또한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으니까.
그래서 조명은 자신의 인생이 저주스러웠다.
힘들게 버텨온 어린 시절, 또래로부터 부모 없는 놈이니, 가난한 고아원에서 산다느니 하는 놀림을 심심찮게 받았다. 그것뿐이었다면 차라리 나은 편이다.
약자를 향한 다수의 괴롭힘은 단순히 멸시와 비웃음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물리적 폭력부터 시작해 물건을 숨기거나, 온몸에 낙서를 하는 등의 질 나쁜 가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이 어른들의 잘못이지만, 동시에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만약 제가 진짜 저주받은 놈이라면,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면… 지옥에 가서 사죄할게요.”
조명은 그 말을 끝으로 한 줌 남아 있던 미련을 모두 떨쳐 버렸다. 막말로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니까.
거기에 한술 더 떠, 본래는 무덤 위로 흩뿌려야 할 소주를 병째 집어 들어 힘차게 들이켰다.
누가 보면 패륜아니, 망자에 대한 예의도 없는 놈이니 하며 손가락질을 해 대겠으나, 조명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까놓고 말해 자신은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보다 혼자서 고통받은 시간이 더 기니까.
욕을 할 테면 하라지.
“푸하,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
조명은 텅 빈 술병을 힘차게 수풀 너머로 내던졌다.
그깟 가족에 대한 정이니 마지막 인사니 온갖 같잖은 이유를 내세우며 이곳까지 왔다.
자신의 코앞에 닥친 문제들도 뒷전으로 미뤄뒀는데, 돌아가면 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발목을 잡을지 감도 안 잡혔다.
“아, 진짜 이런 때까지 편할 수가 없네… 씨.”
갑자기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낀 조명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후려쳤다.
자신은 술을 너무 못했다. 대학교 OT에서도 술을 너무 못해 추태를 부리다 선배들에게 찍힌 전력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홧김에 술 한 병을 원샷해 버렸다.
결국 몇 걸음 움직이지도 못한 조명은 뒤로 엎어지며 어머니의 무덤 앞에 큰대자로 널브러졌다.
그리고 몇 시간이나 지났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하늘이 짙은 군청색으로 물들었을 때, 조명은 간신히 눈을 떴다.
“……어이구, 잘하는 짓이다. 술 조금 했다고 아주 죽겠네, 죽겠어.”
몸이 튼튼한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조명은 이상하리만치 술에 약했다.
한 번은 검사를 받아본 적도 있지만, 간의 해독 능력에 큰 문제는 없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술 몇 잔에 금세 고꾸라지는 건 변함없었다.
“어휴.”
초저녁이 되면서 쌀쌀해진 산의 공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제대로 고르지도 않은 땅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탓일까, 조명은 뻐근한 어깨를 문지르며 천천히 일어났다.
전신의 근육이 3일 연속 노가다를 뛴 것마냥 끔찍한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후우, 미련한 놈. 그냥 무덤 주위에 뿌리기만 하면 될 것을 굳이 처마셔 가지고는…….”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기는 걸 보니 제대로 곯아떨어진 모양.
조명은 익숙한 노가다 판에서 작업 전에 항상 하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안 그래도 늦은 시간이라 어둡고 거친 산길을 내려가려면 몸이 제대로 풀려야 했다.
“아, 맞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고 하산하려던 조명은 발걸음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겠답시고 무작정 성묘를 하러 왔는데, 정작 못 볼꼴만 보여줘 버렸다.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마는, 조명은 이대로 그냥 내려가기엔 영 마뜩잖았다.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가족들의 그림자를 찾을 생각이 없는 조명으로선 좋게, 좋게 끝내고 싶었다.
“못난 자식이 이것밖에 못해 드려 죄송하네요.”
그녀의 옛 친구 외엔 더 이상 찾지 않는다던 외진 곳의 작은 무덤.
당연히 주위에는 잡초가 많았다.
조명은 어느새 맑아진 정신으로 잡초를 하나하나 뽑아냈다.
억센 잡초를 맨손으로 뽑는 것이라 꽤나 힘들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최대한 열심히, 성심성의껏 뽑았다.
낫이나 호미가 있으면 더욱 좋았겠지만, 조명은 힘든 내색조차 없이 깔끔히 무덤을 정리했다.
빌어 처먹을 친가에서는 정말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후우…….”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서야 조명은 겨우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손바닥은 군데군데 까지고 흙투성이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아니,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이것밖에 못해 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제가 이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또다시 감정이 복받쳐 오를까 봐 조명은 미련 없이 무덤에서 돌아섰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차마 안녕히 계시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조용히 발을 옮겨 수풀을 막 헤치고 나가려던 그때, 조명은 등 뒤가 따끔따끔한 느낌에 멈춰 섰다.
자갈과 흙투성이인 바닥에 누워 잠든 탓에 등이 아픈 것인가 싶었지만,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감각임을 깨달았다.
분명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주변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밝아지고 있던 것이다.
‘무슨……?’
랜턴 불빛과는 다르다. 이제는 한국에선 굉장히 보기 힘든 반딧불이가 우르르 몰려왔을 리도 없다.
조명은 극도로 긴장한 탓에 굳어버린 목을 조심스럽게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다다른 곳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껏 추태를 부린 뒤 마지막 효도를 다한 어머니의 무덤 위였다.
은은한 푸른빛이 무덤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정확히는 무덤 위, 바로 그곳에 마치 연등처럼 허공에 떠오른 채 활활 타고 있는 푸른 불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의 몇 안 되는 잡지식에 의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도깨비불, 혹은 눈부터 뇌까지 쌍으로 맛이 가버려서 보이는 헛것일 것이다.
“…….”
단순한 헛것이라면 상관없다.
설령 헛것이 아니더라도 자연적인 현상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조명의 본능은 어서 산을 내려가라 경고하고 있었다. 두 다리에는 이미 힘을 실은 상태였다.
스물한 살이나 처먹은 놈이 헛것을 보고 겁에 질려 실금하는 일 따윈 있어선 안 된다.
그 이전에,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더 이상 추태를 부릴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산을 벗어나기 위해 힘껏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순간, 무덤 위에서 가만히 일렁이고 있던 푸른 불꽃이 조명에게 엄습해 왔다.
“으악, 미친!”
눈앞으로 확 날아든 불덩이를 마주한 순간, 조명은 전신이 불태워지는 듯한 감각에 몸을 마구 비틀었다.
“끄, 으으으윽?!”
극심한 고통에 지면을 마구 뒹구느라 머리 한 켠으로 어떤 문구가 흘러 지나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뇌가 인식한 것은 그저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을 만큼 지독한 고통뿐.
그런 고통 속에서도 조명은 자신이 어떠한 ‘자격’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노예에게 뜨겁게 달군 인두로 낙인을 찍은 것처럼, 자신에게도 극심한 고통을 매개체로 무언가가 새겨졌음을 느꼈다.
그 순간, 조명은 번쩍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