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23
헬 다이버즈 022화
22화
“환자분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어우, 깜짝이야!”
지윤을 뜯어말리던 창환이 조명의 등장에 화들짝 놀랐다.
길거리 신파극을 멈춘 세 사람은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조명을 바라보았다.
지윤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어딘가 못마땅한 시선을, 창환은 식은땀을 흘리며 눈알을 좌우로 열심히 굴려 댔다. 그런가 하면 지석은 의외로 무덤덤한 얼굴로 그를 반겼다.
“곧 훈련 시작할 텐데, 여기서 뭣들 하고 있어? 우리 체력 괴물 지석 씨라면 몰라도 너희 둘은 아직 의무대에서 쉬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크흠흠!”
최근 근육이 더 붙었는지 피부에 힘줄까지 살짝 오른 지석이 헛기침을 했다.
조명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는 체력 회복률 강화제는 일절 섭취하지 않았으면서도 실전 훈련에서 기절하지 않은 후보생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약간의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기 때문에 의무대에서 며칠간 쉬었지만, 최근 다시 훈련장을 돌며 근육 단련에 힘쓰고 있었다.
“오늘부터 다시 실전 훈련에 참가하기로 했다. 승격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
“나, 나도 마찬가지야. 비록 첫 훈련에선 기절하긴 했지만, 사실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었거든. 이번이라면 기절하지 않을 것 같아서…….”
머쓱하게 웃는 창환은 일전에 2레벨 슈트를 착용하고도 체력이 받쳐 주질 못해 낙하대로 올라오자마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성 후보생들 중에서도 유독 체력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다고 알려진 인물이라 조명도 어느 정도 예상한 바였다.
물론 체력과는 별개로 근성 하나만큼은 다른 모범생들 못지않기에 조명도 스스럼없이 넘겼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벌써부터 슈트를 착용하고 있는 지윤이었다.
“넌…….”
“뭔 상관이야, 내가 훈련하겠다는데!”
조명이 무어라 묻기도 전에 먼저 발끈한 지윤이 자신을 붙잡고 있던 창환의 손을 뿌리쳤다.
이 땡볕에 20㎏에 달하는 슈트를 껴입은 채 걷고 있으니 걸음걸이도 꽤나 불안해 보였다. 그럼에도 지윤은 도움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조명들의 걱정을 단호히 거부했다.
‘아직 1년 차인 우리들은 이번이 안 되면 다음 기회도 남아 있는데, 심적 압박감이 장난 아닌 모양이네.’
반드시 1년 차에 헬 다이버로 승격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조명처럼 개인적인 사정이 얽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셋 모두 못사는 집안의 자식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을 펑펑 써 대는 창환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석과 지윤도 티를 잘 안 낸다 싶을 뿐이지 갖추고 있는 개인 용품을 보면 절대 못사는 집은 아니었다.
최소한의 의식주만을 공급하는 해양 플랜트 내에서 개인 용품을 갖추기란 쉽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녀의 과민반응에 조명은 두 남자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쟤, 왜 저래?”
“어휴, 말도 마라. 어제저녁부터 의무대에서 한바탕했거든. 나야 통제관님이 이번엔 잘해보라고 의무대에서 꺼내주셨는데, 쟤는 의무관 쪽에서 직접 안정을 취하라고 말했거든. 그래서 승격 시험 망치면 그쪽이 책임질 거냐느니, 당장 자기 담당 통제관 불러 달라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통제관 쪽에선 담당 후보생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후보생이 헬 다이버로 승격하는 것도 중요해서 어쩔 수 없이 눈감아주고 있는 상황이지. 의무관은 안정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자기 슈트 챙겨 입고 나온 거야.”
“그래서 나도 같이 말렸다. 하지만 본 대로… 말을 듣지 않더라고.”
창환은 창환대로 난감한 눈치였고, 지석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뭐 마려운 강아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조명이 신입으로 들어오기 전엔 곧잘 붙어 다니던 사이인 만큼, 아무래도 지윤을 걱정하는 마음이 남다른 듯했다.
정작 그녀는 ‘여자라도 할 수 있다’, ‘여자는 결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주위의 걱정과 보살핌을 일절 거부하고 있었다.
‘그렇지. 꼭 여자가 보호받아야 할 이유나 남자가 보호해 줘야 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자기 자식 아니라고 우물에 빠진 남의 집 아이를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있겠는가. 기본적인 사회성을 갖춘 인간이라면 주변인의 안위를 마냥 모른 체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당사자의 태도가 너무나도 완고한 탓에 선의의 도움도 악의로 받아들여 거부한다는 점이었다.
“꽉 막힌 사람의 생각을 뜯어고치려면 직접 데이게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애초에 내가 오기 전부터 쟤랑 어울린 너희들이라면 알 거 아냐?”
“그건 그렇긴 한데… 선배들에게 훈련 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좀 걱정이 되더라고.”
“으음…….”
창환의 괜한 말에 지석이 입을 꾹 다물고 신음성을 흘렸다.
저런 마음가짐과 덩치로 진즉에 대시하지 않고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조명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름도 모르는 생판 남이라면 쿨하게 넘길 수도 있으련만, 조금 애매한 관계라서 오히려 딱 잘라 끊어내기가 힘들었다.
그 자신도 각박한 사회에 홀로 남겨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
여유가 남으면 버려진 강아지라도 데려다 키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의 조명에겐 아무런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의 여유가 있다.
“어차피 난 자유 참가니까 같은 팀으로 참가할 수 있어. 통제관님도 딱히 다른 후보생을 돕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지켜보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내가 위로 올려보낼게.”
두 사람은 지윤과 다른 팀이기에 훈련 순서상 함께 잠화할 수 없었다. 결국 어느 시간대든, 어느 차례든 자유 참가가 가능한 조명이 조금 돕기로 했다.
“그래. 그래야 우리 잼조명 님이지!”
“진짜 고맙다.”
그제야 굳어 있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지는 두 사람이었다.
“알았으면 오늘 저녁에 프리미엄 석식이나 한 끼 쏴라. 오늘 식단 보니까 랍스타 나온다더라.”
“…그 지옥 킹 크랩을 혼자 다 처먹고도 갑각류가 또 먹고 싶냐?”
“말도 마라. 그렇게 처먹고도 꿈에서 또 나오더라.”
시시콜콜한 잡담을 이어 나가며 셋은 서둘러 낙하대로 향했다.
이미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 준비를 끝마친 후보생들은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적당한 몸 풀기 운동으로 위축된 근육을 풀어주고 있었다.
언제라도 즉시 다이빙할 수 있도록 적당히, 너무 힘을 들이지 않으면서 몸을 풀어주는 행위는 제법 괜찮은 대처법이었다.
앞서간 지윤도 다른 후보생들과 마찬가지로 가느다란 허리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헬 게이트에서 갑작스러운 사태와 직면할 시 허릿심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모습이었다.
“부탁한다.”
창환과 함께 자신의 팀으로 향하기 전, 지석이 조명의 어깨를 두들겼다.
서투르기 짝이 없는 남자의 로맨스란…….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조명은 다시 한 번 입회자의 자격을 쟁취한 3급 통제관에게 다가갔다.
조명을 먼저 알아본 그녀가 펜으로 무언가를 휘갈기다 말고 인사를 했다.
괴짜 집단이라 불리는 통제관들이 먼저 인사를 하는 모습은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서 와요. 오늘도 부지런하군요.”
“예. 실전 훈련 자유 참가를 허락받은 박조명입니다. A팀으로 합류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런데 오늘이 승격 시험을 앞둔 마지막 실전 훈련인 만큼 잠화 심도와 훈련 시간을 조금 조정할 예정인데, 괜찮나요?”
“저는 문제없습니다.”
“후후, 그렇죠. 이미 30m 심도에도 다녀왔을 정도니까요. 배정될 심도는 10m가 아니라 20m가 될 테니, 긴장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지금껏 10m와 30m를 다녀온 조명은 그 중간 지점인 20m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다른 후보생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슬쩍 질문을 던졌다.
“혹시 20m 심도에 대한 힌트 같은 거 없습니까?”
“갑자기 걱정되나요?”
“심도가 다르면 환경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걸 몸소 깨우쳤습니다. 그만큼 정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대비한다는 건 좋은 자세죠. 다른 후보생들은 좀처럼 헬 게이트 내부에 대해서 묻질 않더군요.”
아마도 통제관에게 헬 게이트 내부에 대해 직접 물어본다는 건, 너무 염치없이 보여질까 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뛰어난 모범생들이라면 모를까,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후보생들은 통제관의 눈 밖에 나지 않게끔 조심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헬 게이트에 관한 족집게 답변은커녕 상점을 바라는 것조차 어려워할 것이 빤했다.
“박조명 후보생이라면 알려줘도 문제될 건 없겠죠. 30m 심도에도 끄떡하지 않는 동조율을 자랑하니까요.”
첫날부터 들은 그 동조율이 뭔지 궁금했지만, 질문을 받은 통제관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한 것만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는 조명에게 3급 통제관은 20m 심도의 환경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실 근처의 후보생들도 들을 수 있도록 의도한 질문이라, 이미 다른 이들도 아닌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10m 심도는 헬 게이트에서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어둠과 불쾌감이죠. 그리고 박조명 후보생이 직접 다녀온 30m는 마찬가지로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빛과 고열이고요. 그 중간지점에 해당하는 20m 심도에선 아이러니하게도 빛 속에서의 추위를 맛보게 되죠.”
“20m부터가 본격적인 환경의 변화가 시작되는 구간이었군요.”
“맞아요. 10m 구간엔 정말 아무것도 없다면, 20m부터는 조금씩 환경이 변하기 시작하고, 100m를 넘길 즈음엔 환경만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시시각각 헬 다이버를 옥죄어오죠. 헬 게이트는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인간의 적응력의 한계를 시험해요. 때로는 복합적인 요소고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아요. 덧붙여서 30m 구간까지는 환경 요소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후보생들의 마지노선 구간이라고 하는 거랍니다.”
“그렇군요. 충고 감사드립니다.”
즉, 20m 구간은 30m와 마찬가지로 극한의 환경 변화를 ‘갑작스럽게’ 보여주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명은 이미 기온이 100도 가까이 되는 고열의 황무지를 경험한바 있기에 슈트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있지만, 다른 후보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죄다 올려보내야 할 수도 있겠는데…….’
다이빙을 위해 슈트를 착용한 조명은 자신의 왼손 장갑을 바라보았다.
지난날 동안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10m 구간의 적응 훈련을 보낸 조명은 ‘헬 다이버 승천’에 대해서도 배웠다.
명칭은 조금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화려하지만, 그 실상은 행동 불능에 빠진 후보생(헬 다이버)을 재빨리 헬 게이트에서 이탈시키는 구조법이었다.
헬 다이버의 목 뒤에 연결된, 강철 와이어로 이루어진 라이프 라인에 장갑을 가져다 댄 뒤, 구조 시스템을 작동시키면 일방통행으로 흐르는 전류를 방출시킬 수 있었다.
그러면 낙하대 측에서 해당 전류를 캐치하고 구조 신호를 받아들여 즉시 후보생을 끌어 올린다. 조금 단순하긴 해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조명은 말없이 자신의 옆 갑판에 선 지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올곧게 정면만을 바라본 채 팔짱을 끼고 올바른 잠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준비는 만전이지만, 그녀도 조금 전에 20m 환경에 대해 듣긴 했을 것이다. 그런 만큼 섣불리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준비된 후보생들은 앞으로!”
입회자의 호령에 준비된 후보생들이 갑판 끝으로 걸어 나갔다.
극도의 고소공포증 환자라면 이곳에 서는 것만으로도 혼절해 버릴 것 같은 광경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잠화 준비.”
조명의 담당 통제관처럼 누가 뒤에서 밀어주는 일은 없었다.
후보생은 스스로 갑판 끝에 서고, 각오를 다진 뒤, 자신의 의지로 뛰어내려야 했다.
그것은 마치 아기 새가 어미 새처럼 날기 위해 둥지에서 뛰어내리는 것과 같았다.
‘처음이 어렵지, 적응하면 쉽다’는 말은 같잖은 위로에 불과했다. 이곳에 서는 이들이라면 후보생이고 헬 다이버고 모두 긴장하기 마련이다.
“잠화!”
조명은 갑판을 힘껏 박차고 뛰어올랐다. 괜히 엉거주춤 뛰어내렸다간 뇌가 인식하지 못해도 신체의 근육이 제멋대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이왕 이 높이에 뛰어내리는 거라면, 경쾌하게 뛰어내리고 싶다는 마음도 한몫했다.
그렇게 승격 시험을 앞둔 마지막 실전 훈련의 첫 시작은 후보생들의 다이빙으로 장식되었다.
다이빙은 꽤 멋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착지가 꼴사나웠다.
“이런 시발!”
여느 때처럼 얇은 막을 통과하는 기분 나쁜 감각과 함께 조명은 머리부터 희뿌연 색을 자랑하는 빙판에 처박혔다. 그 충격이 적지 않은 터라 헬멧 내부에서 시끄러운 경고음이 울렸다.
[착용자의 뇌세포가 대량으로 파괴! 착용 제한 IQ 90을 넘지 못할 것이라 추정!]“이놈의 기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지랄을 하네.”
지랄 프로토콜이 옵션으로 장착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헬멧을 주먹으로 쾅쾅, 두들기며, 조명은 시야를 가득 뒤덮은 빙하 지대를 살폈다.
설원이 아닌 빙하 지대로 생각한 이유는 단순했는데, 조명이 낙하한 지점을 비롯해 주변 환경이 죄다 깎아지른 듯한 빙하의 절벽이나 빙판으로 뒤덮여 있던 것이다.
지금은 내리고 있지 않지만, 언제 내려서 쌓였는지도 모를 눈들이 시퍼런 빙하들을 감싼 채 절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이것은 지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후우, 기온이 –65도라… 이만하면 남극이랑 견줄 만하겠는데?”
TV의 유료 채널 구독은 꿈도 못 꿔 그나마 공짜로 볼 수 있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극지방 특집이 조명의 뇌를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타이머를 확인해 보니, 훈련 종료까지 앞으로 55분이나 남아 있었다.
적응 합동 훈련을 목적으로 종종 헬 게이트 내에서 합류하는 후보생들이 있기에 조명도 곧장 팀원들을 찾아 나섰다.
헬 다이빙의 낙하지점은 서로간의 충돌이 없게끔 조정되어 있기 때문에 최소치로 잡아도 수십 미터, 최대 수백 미터는 떨어진 지점에서 각자 안전(?)하게 낙하한다.
팀원들이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리라 보고 서둘러 움직이려던 찰나, 드드드드득― 무언가가 거칠게 긁히는 소리에 조명은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이건……?’
너무도 희뿌연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빙판 아래엔 간신히 형체만 알아볼 수 있는 해골이 조금씩 움직이며 바닥을 긁어 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