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24
헬 다이버즈 023화
23화
10m와 30m 구간을 돌아다닐 때에도 인간의 유골은커녕 동물의 유해도 본 적 없던 조명은 약간이지만 당황했다.
두꺼운 빙하 아래에서 해골이 헤엄치고 있는 광경은 돈 주고도 못 볼 광경 아닌가.
물론 그 이전에 역겹다 못해 불쾌감으로 인상이 절로 찡그러지는 광경이었다.
발아래의 해골은 그저 물의 흐름에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닌, 묘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아무것도 없어야 할 눈구멍에서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기운이란, 보면 볼수록 시선을 돌리고 싶어졌다.
‘시선을 끌어당긴다고 해야 하나… 역겹지만 자꾸 보게 돼.’
간신히 눈을 돌린 조명은 아래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움직였다.
때마침 전방에서 얇은 막을 뚫고 착지한 팀원 한 명을 발견했기에 움직임에 망설임은 없었다.
‘지윤이는 아니네.’
조심스럽게 다가간 빙판의 끝자락, 눈이 소복하게 쌓인 강둑에는 이름도 모르는 후보생이 주저앉아 있었다.
겉보기엔 부상을 입은 것 같지 않으나, 상당히 지친 것인지 상반신을 크게 들썩이며 호흡을 반복했다. 마치 장거리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한 선수가 결승 지점에서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조명이 다가가 헬멧 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가 힘없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레벨 2 슈트를 착용한 것으로 보아 통제관에게 제법 이쁨받는 모범생인 것이 분명했다.
“후우, 후우… 너는?”
“잼조… 아니, 박조명이야. 네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여서 위로 올려보낼까 고민하던 참이야.”
“고맙지만 됐어. 후우… 원래 내가 출발한 포인트는 1―C 낙하대였는데, 좌표에 문제가 있던 것 같아. 덕분에 낙하 궤도가 비틀려서 기존 예상 낙하지점에서 600m나… 후욱!!”
“천천히 호흡부터 가다듬어. 이곳 기온은 남극이랑 비슷해서 찬 공기를 잘못 들이마시면 죽어.”
“나도 알아. 그런데 조금 전의 충격으로 호흡 조절 장치에… 금이 간 것 같아.”
그의 말에 조명은 라이트를 비춰 헬멧의 목 아래를 살펴보았다. 아주 약간이지만 정화통과 연결된 헬멧 프레임에 금이 가 있었다. 그 탓에 미미하지만 찬 공기가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올라가는 게 싫다면 당장 체온부터 올리는 게 좋겠는데? 미미하긴 해도 한 시간 가까이 찬 공기를 들이마시면 기관지와 폐에 문제가 생길걸.”
조명은 통제관으로부터 주워들은 잡 지식을 그럴듯하게 펼쳐 놓았다.
헬 게이트 내부에선 정상적인 체온과 호흡 조절이 가장 중요하며, 그다음으로는 체력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고 주의를 받은 것이다.
정 힘들다 싶을 때는 과감하게 헬 게이트에서의 활동을 포기하고 비상탈출을 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그러나 이 모범생에게 또 다른 전략을 권유해 봤자 전혀 들을 것 같지 않았다. 강제로 올려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조명은 구태여 다른 후보생들의 훈련을 방해한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싶진 않았다.
이전에도 그들의 안전을 위해 선뜻 움직였다가 훈련이 끝난 뒤에 온갖 불평불만을 들어야 했으니까.
“일단 임시로 틈을 메꿔둬야겠는데… 후욱!”
“눈을 뭉쳐서 틈새를 메꾼 다음 물을 조금 뿌려서 얼리는 방법도 괜찮지 않을까?”
이글루 효과처럼 찬 공기를 어느 정도 막아주지 않을까 싶어 낸 의견이었으나,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장기적으론 안 좋아. 자칫 잘못하면 틈새가 더 벌어질 수도 있어. 일단 이대로 버텨보는 게 낫겠어.”
그는 고개를 세게 흔들고는 힘차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흡은 어느 정도 정리된 것 같지만, 찬 공기가 들어간 탓에 자신의 숨결과 맞물려 헬멧 마스크에 뿌옇게 김이 서렸다.
그럼에도 앞을 볼 수 있는 것은 헬 다이버 서포트 시스템 덕분이리라.
“그런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너도 이 혹한의 환경은 처음일 것 아냐. 그런 것치곤 너무 멀쩡해 보여.”
“헬 게이트의 동조율이 높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거랑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넌 이제부터 어쩔 거야? 안전한 장소에서 휴식, 아니면 다른 팀원 찾기?”
“가능하면 둘 다 하고 싶어.”
그가 남을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자, 조명이 의외라는 시선을 보냈다.
모범생들은 다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여기고, 타인 따윈 그저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발판으로만 여기는 줄 알았다. 실제로 그런 후보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왜 그렇게 보는 건데?”
“후보생들끼리는 다 경쟁 상대니까 신경 안 쓸 줄 알았거든.”
“그러는 너도 날 신경 써줬잖아.”
“부탁을 받았으니까.”
창환과 지석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조명도 그의 위치만 파악해 둔 후, 주변의 지형지물을 조사하러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부탁을 받은 이상, 지윤을 포함해서 다른 이들의 상태도 확인해 두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훈련이라고는 해도 성적이 높은 후보생은 승격 시험의 감독관들에게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런데 다른 후보생들이 부상을 입고 승격 시험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건 부전승으로 올라가는 거나 다름없잖아. 최소한 경쟁만큼은 정정당당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있는 집 자식이네.’
말투며 행동거지며, 조명이 바라마지 않던 강남 출신의 있는 집 자식.
그는 세간에서 말하는 엄친아였다.
부모가 돈을 발라가며 키우긴 했지만, 부정행위나 쉬운 승리 따윈 있어선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이는 조명이 본능적으로 꺼려하는 부류이기도 했다.
‘너무 고지식해서 융통성이 없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 조명은 그와 같은 부류를 잘 배운 진상, 혹은 싸가지 없는 똑똑이로 취급했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논리정연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말투와 행동거지에서 흘러나오는 선민의식을 엿본 것이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승격 시험을 앞둔 후보생이다.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진 않을 터.
조명은 그의 이름을 묻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눈길 위를 걸었다.
지금껏 수많은 후보생들이 거쳐 갔을 것임에도 작은 흔적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통제관이 지나가는 어조로 설명해 준 적이 있었다.
“헬 게이트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균형이 시도 때도 없이 뒤틀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앞서간 누군가가 발자취를 남겼다고 한들, 그것은 전혀 다른 흔적으로 변하거나, 반대로 흔적이 생기기 전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통제관은 그 증거로 헬 게이트 내에 존재하는 각종 희귀 자원들의 매장량에 대한 헬 다이버들의 증언까지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이미 광석을 캐낸 자리에 똑같은 광석이 그대로 자리 잡고 있다거나, 혹은 전혀 다른 광석이나 ‘무언가’로 대체되었다는 사례들이 줄을 이었다. 그밖에도 기존의 헬 다이버들이 알고 있던 지형지물이 하룻밤 사이에 뒤틀려 전혀 다른 환경이 형성되었다고도 했다.
조명이 힐끔 뒤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찍혀 있어야 할 발자국들이 없었다.
‘환경의 변화도 정신착란 증세에 한몫한다고 했지.’
길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좌절감, 안전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 그밖에도 급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인간이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동물이라 한 번 착각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불안과 공포가 샘 솟 듯이 폭발한다는 것이 통제관의 평가였다.
‘지속적으로 찬 공기를 들이마셔야 한다는 것도 불안 요소 중 하나겠지.’
당장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조명은 지금껏 숱하게 발작 증세를 일으키는 후보생들을 봐왔다.
그들 모두 신체의 아주 작은 이상을 느낀 것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불안에 떨기 시작하면서 광기 섞인 발작을 일으키는 결과에 다다랐다. 생존 본능이 강한 인간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발작을 일으킨 후보생이 혼절해 버리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환각과 환청으로 반쯤 정신이 나가 버리면 주위의 후보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보유한 연장으로 갑자기 팀원을 공격하는 사례가 상당한 비율을 자랑했다.
몇 번이고 그의 상태를 곁눈질로 확인하며 걷던 조명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같은 디자인의 슈트를 착용한 무리를 발견했다.
여성 전용 슈트를 착용한 후보생이 두 명, 남성 전용 슈트를 착용한 후보생이 셋 모인 1개 그룹이었다.
“서로 가까운 지점에서 낙하한 뒤, 의기투합한 팀원들인 것 같아. 눈을 뭉쳐서 벽을 만들고 있어.”
그의 말대로 그들은 깎아지른 듯한 빙하 절벽의 아래, 성인 남성 몇 명이 간신히 들어갈 법한 작은 동굴 앞에 눈을 쌓고 있었다.
이 극한의 추위에서 최대한 바람을 덜 맞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체온 유지로 버티려는 심산이었다. 적응 훈련의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저들은 조명과는 달리 당장 훈련 시간을 무사히 넘기는 것만도 큰 난관일 터였다.
“합류하자.”
이번엔 조명이 먼저 말했다. 저들 중 익숙한 슬랜더형 몸매를 본지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네가 왜 그쪽에서 와?”
눈 벽까지 접근하자 마침 눈을 두들겨 굳히고 있던 여성이 볼멘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익숙한 목소리의 그녀는 예상한 대로 지윤이었다.
“낙하지점이 안 좋았거든. 니들은 다 한 곳에 떨어진 모양이다?”
“운이 좋았지. 덕분에 거점을 빨리 찾고 다 같이 눈 벽을 쌓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 대단하신 5레벨 슈트 착용자분께선 어떻게 하실 건데?”
“어떻게 하고 싶냐니?”
“우리야 추위에 익숙하지 않아서 훈련 시간 동안 버티기로 합의했지만, 보아하니 넌 괜찮아 보이는데? 그럼 이전 훈련처럼 자유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 말대로 조명은 사실 처음 낙하한 20m 구간을 동네 바둑이마냥 마구 헤집고 다닐 생각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빙판을 깨보고 싶다는 기분도 들고, 두더지처럼 눈을 미친 듯이 파내서 땅굴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걸 간신히 참고 이곳까지 왔다.
“이번엔 나도 합류하려는데, 괜찮지? 곧 승격 시험인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있겠나 싶더라고.”
“그래? 너처럼 잘난 애도 몸을 사리긴 하는구나. 그럼 일단 저 사람한테 물어봐. 우리가 임시로 정한 리더니까.”
그 짧은 시간에 네 명을 거느리는 리더 하나를 뽑았다는 말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조명은 곧이어 얼굴의 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후욱, 후욱… 얘기는 다 듣고 있었어. 너도 합류하고 싶다고? 반가워, 난 이진형이야.”
“…….”
정화통이 연결된 헬멧의 프레임에 살짝 금이 가서 호흡 곤란을 느끼던 남자. 그가 동굴 안쪽에서 동료들과 함께 걸어 나왔다.
그는 조명과 처음 만난 사이인 양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해왔다. 심지어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름까지 빠르게 알려주었다.
‘뭐지?’
조명은 손을 건넨 진형이 무안해하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자신과 함께 걸어온 남자는 없었다. 물론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게 가짜였다고?’
아니, 애초에 진짜와 별개의 존재로 구분할 수 있는, 실체를 가진 가짜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그것은 남들이 다 봤다던 환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헬 게이트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균형이 시도 때도 없이 뒤틀리는 곳입니다.”
30m에선 조명 혼자였다.
10m에선 함께 낙하한 이들과 줄곧 붙어 있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낙하 실패로 인해 남들과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심도 20m 구간. 주변인들이 한 번씩은 경험했다던 ‘무언가’와 조우한 것이다.
“저기…….”
“아, 미안. 혹시 나 말고 헤매는 사람이 더 없을까 싶어서.”
칼바람이 휭휭 휘몰아치는 눈 벽 너머엔 아무도 없겠지만, 조명은 마치 그곳에서 누군가가 자신들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시야에 들어온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시야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지금, 조명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런 곳이 후보생의 훈련 마지노선 구간이라고?’
차라리 기분 나쁜 검은 태양과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만 같던 붉은 황무지가 더 나은 것 같았다.
어색하게 진형과 악수를 나눈 조명은 지윤과 그 동료들을 도와 눈 벽을 마저 쌓으며 간신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히 훈련이긴 하지만, 정확히는 실제 상황 속에서 치르는 실전 훈련이라는 사실을.
소복이 쌓인 눈처럼 차갑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조명은 튼튼한 눈 벽을 쌓아 나갔다. 벽이 완성되었을 때는 공기 순환 겸 외부 감시용 구멍만 남겨두고 모두가 동굴 바닥에 주저앉았다.
“후우, 이놈의 헬멧은 2레벨 슈트라더니, 왜 망가져선…….”
“그러게 착지할 때 자세 좀 제대로 잡지그랬어. 우리 통제관님은 착지 시에도 부상을 당할 수 있다면서 착지 훈련까지 시키던데.”
지윤보다 좀 더 통통한 몸매에 불편한 자리임에도 다소곳한 자세로 앉은 여성이 장난스럽게 그를 타박했다.
“야, 난 2레벨 슈트 내구도라면 진짜 괜찮을 줄 알았다니까? 근데 이거, 승격 시험 전까진 수리되겠지?”
“다친 인간도 의무대에서 며칠이면 뿅하고 낫던데, 기계 수리쯤이야 어련하시겠어.”
“그치? 훈련 끝나면 진짜 통제관님한테 머리 박고 싹싹 빌어야겠다.”
“흐흐, ‘벌점 맞는다’에 한 표 건다.”
“야, 이……!”
임시 리더로 뽑힌 진형은 조명이 겪은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어 보이던, 엄친아와 같은 ‘무언가’와는 달리, 특유의 느긋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학창 시절 학급에 꼭 한둘씩은 있는 분위기 메이커 같았다.
조명은 잠자코 벽에 기대 쉬고 있는 지윤을 한 번 살핀 뒤, 한창 이야기꽃을 펼치고 있던 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난 늦게 도착해서 궁금한 건데… 너희들, 동굴 안쪽은 확인했냐?”
조명은 머리 위에 매달린 고드름들을 가리켰다. 굳이 저런 것들을 머리 위에 두고 입구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겠느냐는 의미였다.
입구와 가까운 천장에 자리 잡은 고드름들은 어찌나 뾰족한지, 꼭 짐승의 이빨을 연상케 했다. 하나라도 떨어진다면 그 아래에 있는 인간은 즉사할 것이 확실했다.
조명의 질문 의도를 이해한 것일까, 진형은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우리도 여기에 오자마자 안쪽으로 들어가 봤는데, 얼마 안 가서 통로가 급격히 좁아지더라고. 괜히 비좁은 곳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비교적 넓은 이곳에서 쉬기로 한 거야.”
‘그리고 이것 봐’라고 한마디를 덧붙인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얼어붙었는지 알 수도 없는 얼음벽을 주먹으로 탕탕, 두들겨 보였다.
“꽤 오랫동안 이 상태로 유지되었던 것 같아.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람도 막아버렸으니, 충격으로 고드름이 떨어질 일은 없을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입구가 그나마 공간의 여유가 있어 남자 넷에 여자 둘이 앉아 있어도 비교적 아늑했다.
조명도 잠시 훈련 시간이 끝나 위에서 끌어 올려주기 전까진 잠시 힘든 훈련을 잊고 쉬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뭐든 열심히 해서 헬 다이버가 반드시 되겠다고 다짐한 그지만, 아주 잠깐의 휴식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순간에 스스로 의문을 표했다.
왜 이곳을 편안하고 아늑한 장소라고 여긴 것이며, 어째서 훈련에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인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품었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명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자신이 훈련을 게을리해야 할 이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다시 한 번 의문을 품었다.
‘애초에 이런 구조의 자연적인 빙하 동굴이 생길 수가 있나?’
동굴의 바닥이나 벽은 누군가가 그라인더로 갈아놓은 것처럼 매끈매끈했다.
천장에는 꼭 이빨 같은 고드름이 가득하고, 진형의 말에 의하면 안으로 들어갈수록 통로가 좁아진다고 했다.
그런 기이한 구조의 동굴이 암석은커녕 흙먼지나 모래조차 없는 순수한 빙하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던가?
“미친!”
모두가 아늑함에 취해 어느새 곯아떨어진 사이, 조명은 미친 듯이 등 뒤의 수납함을 열어 곡괭이를 꺼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틀어막은 눈 벽을 힘껏 내려쳤다.
어느새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끈적끈적하면서도 ‘쓴맛’이 날 것 같은 액체에 그의 손놀림은 한층 더 빨라졌다.
“이런 미치이이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