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26
헬 다이버즈 025화
25화
“빡치지? 이제부터 좀 더 빡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 거거든!!”
조명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어린아이들을 위해 함박 스테이크와 돈까스를 커팅하던 기교로 무언가의 위벽을 미친 듯이 도려냈다.
그냥 줄만 직직 그어 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별 모양으로도 잘라보고, 하트 모양을 그려보기도 하면서 사방팔방을 휘저었다.
결국 빙하에 비해 내구도가 형편없는 위벽이 크게 손상된 것을 느낀 것인지, 꿈틀대기만 하던 촉수들이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안쪽으로 움푹 파고들었다가 탄성을 이용해 튀어나온 촉수가 채찍처럼 조명을 두들겼다. 다행히 외부 충격에는 강한 슈트이기 때문에 한두 방 얻어맞은 것 정도로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촉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조명을 집요하게 쫓아다니자, 급기야 조명도 위장의 벽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물렁한 바닥을 있는 힘껏 찢어발기는 데도 한도가 있었다. 핏물인지 뭔지 알 수 없는, 푸른색으로 발광하는 체액이 튀어 올랐으나, 그럴 때마다 위장이 크게 진동했다.
한바탕 흔들리고 나면 조명도 박스 안의 구슬처럼 이리저리 튀어 촉수에게 두들겨 맞고, 다시 질척한 핏물 속에 처박히기를 반복했다.
― 슈트 충격 완화 시스템 손상률 56%.
“쓰으으읍…….”
자신이 파낸 구멍의 틈으로 처박힌 조명이 쓰라린 몸을 부여잡고 일어섰다.
바이저에 표시된 시스템 경고문은 슬슬 슈트의 내구도에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촉수들에게 직격타로 두들겨 맞은 건 물론이고, 진동과 충격에 몸을 가눌 틈도 없이 마구 튕겨 나갔다. 오히려 뼈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해야 할 상황.
‘그래도 이제 와서 멈출 순 없다.’
자신을 집어삼킨 것이 정말로 ‘생명체’라면, 내부 장기가 손상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지독한 먹잇감을 소화시키려 하진 않을 터.
인간이든 동물이든 뭘 잘못 먹었다 싶으면 일단 구토부터 하고 보는데, 하물며 이런 거대한 존재에게 그런 본능이 없을까?
필시 오랫동안 살아온 놈인 만큼 건강하게 장수하는 법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토해라. 어서 토해! 앞 구멍으로 토하기 싫으면, 차라리 뒷구멍으로 뱉어내기라도 해!!”
퍽! 퍽!
찢겨 나간 위벽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생살을 기름과 체액으로 뒤덮인 삽으로 마구 찍었다.
삽날을 가는 데 사용한 곡괭이는 이미 위액에 녹아 없어진 탓에, 조명은 삽날이 상할 때마다 자신의 팔목 보호대에 대고 갈았다. 슈트의 내구도를 현저히 떨굴 정도로 무식한 방법이었다.
“내가 이래 봬도! 대학가 곱창집 알바 에이스였다!!”
조명에겐 순대 곱창, 막창, 모듬 곱창, 후식으로 밥까지 볶아주며 가게 주인과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준 실력이 있었다.
매일같이 피어오르는 연기와 튀어 오르는 기름, 왁자지껄한 소음 공해 속에서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벌고자 밤낮으로 일했다. 쉬는 날엔 노가다 판에 출근 도장을 찍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생동성 실험까지 뛴 적이 있다.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기 위해, 전액 장학금까지 받으려 열심히 공부하면서 일까지 했다.
무엇 하나 내세울 건 없지만, 조명이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것은 삶을 통틀어 잔병치레 한 번 한 적 없는 건강한 몸이었다.
박씨 가문의 핏줄에서 유일하게 잘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이 짜증 나리만치 건강한 몸뚱이.
거기에 해양 플랜트에 발을 들이면서 체력 회복률 초강화제까지 섭취했다.
체력이 없으면 몸의 잔존 열량까지 태워서 억지로 만들어내고, 부상을 입은 몸은 신비한 힘에 의해 빠르게 원상복구된다.
이런 몸뚱이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무식하게 삽을 휘두르는 것뿐.
“후욱! 후욱! 나 아직 여자 친구도 없어!!”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꼴사나운 말을 내뱉었다.
“남들은 다 부모님한테 받고 다니는 용돈도 못 받아서!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그런 놈이 여자 친구가 있기는 했겠냐! 세상 그 어떤 여자가 차도, 집도, 직장도 없는 놈을 좋아해 주겠어! 안 그래?!”
자신과 남들의 인생을 비교해 봐야 상처만 받을 뿐이라며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그래도 남들의 평범하면서도 행복해 보이는 삶이 부러웠다. 너무 부럽다 못해 조명은 콱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못난 놈이면 운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내 인생이 운이 좋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열심히 일해도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은 적이 드물었다. 대학이라도 제대로 나오고 싶어서 코피가 터지도록 공부했지만, 결국 변변찮은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는 선으로 그쳤다.
“그렇다고 누가 내 고생을 알아준 것도 아니야!!”
아르바이트생이 전부 감당해야만 했던 인간들의 갑질, 정부의 형편없는 정책, 힘들게 사는 고아조차 군대로 끌고 가 노예로 부려 먹으려는 군대!
“그런데 좀 잘 풀린다 싶은 후보생 생활을 벌써부터 쫑 내려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남들은 다 가지고 있다던 운이란 걸 처음 체험해 본 것도, 주변인들의 관심이란 걸 받아본 것도, 나라면 할 수 있을 거라며 기대를 받아본 것도 전부 이곳이 처음이었다.
하나같이 생소한 경험들뿐이라 소중히 여기고 싶고, 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고기 맛을 알아버린 서민처럼 이 진귀한 경험들이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옥까지 뛰어든 것이다.
“날 느껴봐라! 내 인생의 설움을 느껴봐!!”
네 배 속에 징글맞게도 20년이 넘도록 아득바득 살아온 인간이 한 명 있다.
그 인간이 지금 네 배를 쑤시고 있으니, 한낱 먹잇감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그런 기세들을 담아 조명은 어느새 삽자루가 부러진 것도 잊고, 주먹으로 미친 듯이 찢겨져 나간 살점을 후려쳤다.
그러다 기어코 슈트의 손을 감싸고 있던 장갑 부위가 박살 나버렸다. 너무나도 격하게 다룬 탓에 비교적 내구도 수치가 낮은 장갑이 먼저 깨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찢겨진 살점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푸른색으로 발광하는 핏물이 조명의 손과 맞닿았다.
최초로 인간의 생살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발광 액체가 접촉한 순간, 피부의 바로 아래 이어진 신경세포들을 통해 흘러 들어온 감각이 조명의 뇌에 직격으로 꽂혔다.
머릿속에서 민트 초코의 향이 상상으로 그려졌다.
그래, 그 빌어먹을 민트 초코 범벅이었던 크림의 맛. 그 끔찍하고도 저주스러운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조명은 목구멍 속에서 밀고 올라오려는 구토감을 억지로 참으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시작한 민트초코의 근원을 추적해 나갔다.
민트초코 사탕의 근원은 체력 회복률을 급격하게 상승시켜 주는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진득하면서도 부드러웠던 크림의 근원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체력과 관련된 것임은 틀림없었다. 잃어버린 족보를 찾아나서는 것처럼, 조명의 뇌는 어두컴컴한 미개척 지대의 길을 상상으로 밝혀 나갔다.
그 끝에 도달한 결과, 조명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력 회복 상승률 증가와는 간격이 있지만, 계보는 크게 다르지 않은 능력이었다.
‘외부 에너지의 변환율 증가!’
마침내 민트초코 크림 초코바의 정체를 밝혀낸 조명은, 자신의 무릎까지 잠긴 푸른색의 핏물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블루 하와이 칵테일에 발광체를 넣은 것 같은 이 핏물은 조명의 생 피부에 닿은 순간, 조명에게 가장 부족한 에너지로 정제(精製)되며 흡수되었다.
‘정확한 수치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부족한 근력의 상승과 근육에 쌓인 피로감이 대폭 날아갔다.’
아무리 체력 회복 상승률 초강화제를 먹었다고 한들, 운동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몸을 파괴하는 행위까지 이르면 답이 없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조명이 그 직전의 단계에 이르렀으나, 정체가 감추어져 있던 능력이 발동한 순간, 모두 해결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을 지닌 능력이기도 해.’
조명은 인상을 찡그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장갑이 박살 난 탓에 생살이 노출되어 냉기가 스며들고 있던 것이다.
이 위장 속에서도 기온은 영하 30도에 달하고 있었다. 바깥에 비해 두 배 정도 따뜻ㅘ지만, 그마저도 단시간에 부분 동상을 유발하기에 딱 좋았다.
‘자칫 잘못하면 손을 잘라내게 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 난리를 쳤음에도 조명을 집어삼킨 놈은 끝끝내 구토를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더욱 많은 위액을 쏟아내고, 말미잘 같은 촉수를 움직여 조명을 압박했다.
배탈이 날 것을 감수하더라도 코딱지만 한 조명을 꼭 소화시키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돋보였다.
조명은 옅은 한숨을 내쉬곤 양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내가 또 왕년에 함마질 좀 해본 건 어찌 알았을까?!”
오함마를 휘둘러 철거 대상의 벽이나 지반을 박살 내는 것을 가리키는 속칭.
조명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곡괭이질부터 삽질, 오함마질까지 죄다 사수들로부터 떠넘겨 받았다.
2025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자동화 기계들의 등장으로 인간의 일손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때문에 조명은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싶지 않아 오기로 죽자 사자 연장을 휘둘렀다.
괜히 싫다고 내뺀다면 다음 일감은 주어지지 않을 것이 빤하고, 한 푼이 아쉬운 조명의 입장에선 성실함과 건강만을 장점으로 내세워 어떻게든 일감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중장비를 다루는 전문적인 일을 빼고는 정말 다 배웠다.
“으랏차차!!”
양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그대로 내려찍었다.
핏물이 확 퍼지면서 튀어 올랐다. 핏물 아래에서 모습을 감춘 채 조금씩 재생을 꾀하고 있던 살점이 다시 한 번 어마어마한 충격에 퍽퍽, 터져 나갔다.
미칠 듯한 냉기와 위액이 조명의 주먹을 녹이고 굳히기를 반복했지만, 그것은 온천수처럼 펑펑 터져 나오는 핏물을 에너지로 대체해서 해결했다.
상처가 낫고, 다시 녹고, 낫기를 무한 반복.
그 과정에서 신경세포를 타고 흘러 들어오는 격통은 조명의 두개골을 망치로 쾅쾅, 두들겨 대는 것처럼 압박했다.
‘참아야 해! 나 같은 놈에게 남은 건 이것밖에 없어!!’
죽음을 목전에 뒀기 때문일까, 조명은 지금까지 자신이 발휘한 깡과 악바리 근성을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와 200%에 달하는 심리적 방벽으로 멘탈을 바로잡았다.
항상 안전한 슈트 속에서 보호받고 있던 조명에게 닥쳐든 격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주먹의 뼈가 드러나고, 그 뼈의 틈새로 파고든 냉기와 위액이 체내를 마구 휘젓는 감각이란… 차라리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게 낫다 싶을 정도였다.
눈앞이 별빛으로 번쩍번쩍하고, 짜르르 올라오는 격통에 그만 오줌을 지려 버릴지라도… 조명은 주먹을 휘두르고, 손가락뼈의 끝으로 살점을 파헤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인생의 오르막길이 편한 평지로 좀 바뀌나 싶었는데, 운이란 건 이런 것이구나 하며 감탄을 표했는데, 그걸 전부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억울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인생이어도 된다.
설령 헬 다이버로서의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딱 노후까지 편하게 먹고살 만큼의 행복만 거머쥘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행복을 만끽하기도 전에 여기서 전부 포기해 버리라니.
기껏 작은 희망을 줬다가 더 큰 절망으로 조명의 인생의 막을 내려 버릴 거라면, 차라리 그도 박씨 일가의 남자들처럼 일찍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박씨 가문의 위상을 세상 널리 알리라는 의미의 조명(照明).
조명은 자신이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다르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썩어 빠진 가문의 위상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지만!”
우드득, 뿌득!
충격을 이기지 못해 팔과 어깨의 뼈가 조금씩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조명(照明)인데!”
혈관이 터져 나가고, 헬멧 안에서 객혈을 토해냈다.
“내 인생, 내 앞길 정도는 환하게 밝혀야 하지 않겠냐?!”
얼마나 박살 냈을까, 얼마나 파고들었을까.
조명은 갑작스럽게 구멍 아래에서 솟구쳐 오른 바닷물에 그대로 휩쓸렸다.
“씨발, 됐다!!”
사막 한복판에서 검은 원유가 펑펑 솟구친 것을 발견한 사람이 지금의 조명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기어코 배에 구멍이 뚫린 무언가의 위장으로 빙판 아래의 바닷물이 미친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놈은 반응했다.
배에 구멍이 뚫린 것도 모자라 바닷물이 울컥울컥 밀려 들어오는데, 어떤 놈이 제정신을 유지할까.
곧바로 크게 경련한 위장은 솟아오른 바닷물과 함께 조명을 단숨에 위로 끌어 올렸다. 속된 말로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이게 워터 슬라이드인지 뭔지 하는 거구만?!”
학창 시절, 수학여행비조차 낼 수 없어 놀이공원은커녕 워터 파크도 가보지 못한 조명이었다.
그는 단숨에 역천하는 물길에 몸을 싣고 빨려 들어온 구멍을 거슬러 올랐다. 회귀하는 연어들이 이런 쾌감을 맛보기 위해 그렇게나 뛰어오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쿠하! 흐흐흐흐…….”
용오름마냥 솟구친 분수 쇼에서 튀어나온 조명은 엉망진창으로 변한 빙하 지대 한복판을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다시금 급격히 떨어진 기온, 차갑게 얼어붙은 지면, 자신의 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완전한 탈진 상태.
조명은 헬멧의 바이저를 가득 메운 경고 문구를 치울 생각도 못한 채 누워서 실실 웃기만 했다.
“내가 잡았다.”
큰 덩치에 큰 내장까지 가진 놈의 배때기에 구멍을 내줬다.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물살에 휩쓸리기 직전, 조명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빙판 아래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던 인간의 유골 같은 것들이 뻥 뚫린 구멍으로 마구 밀고 들어온 것을.
한 번 생긴 구멍은 강한 물살에 휩쓸려 더욱 크게 벌어졌고, 그 결과. 조명을 집어삼킨 놈은 몸 안을 가득 채운 바닷물을 버티지 못해 급사해 버렸다.
그 증거로 조명이 누워 있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대한 빙하로 이루어진 머리를 자랑하는 놈이 바닷속에 잠긴 채 쓰러져 있었다.
“내가… 내가 잡았다고!”
지난날처럼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고, 알아주지도 않는, 조명의 피땀 섞인 노력의 결과물.
그것이 떡하니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명 외엔 아무도 모른다. 영영 모를 것이다.
“좋냐?”
“……?!”
더 이상 뜨고 있을 힘도 없어 눈을 감으려던 순간, 조명의 머리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있었다.
“너, 너… 왜 안 올라갔…….”
“너 아니었으면 우리도 그 안에서 전부 다 죽었을 텐데, 널 두고 어떻게 나만 올라가냐?”
“…….”
조명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지윤은 남들을 전부 올려보낸 후, 바깥이 이 지경이 되도록 파괴되는데도 미련하게 탈출하지 않았다.
살아 나올지 어떨지도 알 수 없는 조명을 위해 성능도 한참이나 떨어지는 슈트를 착용하고 이 맹추위 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네가 한 일들은 전부 내 헬멧의 캠으로 녹화해 뒀어.”
“그거 완전… 초상권침…….”
“여성 후보생들에겐 다 지급되는 거야, 이 멍청아.”
조명의 헬멧을 찰싹 두들긴 그녀는 축 늘어진 그의 몸을 지탱해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뒷목으로 이어져 있는 라이프 라인에 장갑을 대서 전류를 방출했다. 장갑이 박살 난 조명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야, 아직 깨어 있지?”
“…….”
조명의 라이프 라인을 통해 방출한 전류가 낙하대에 닿을 즈음, 지윤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고마워.”
조명의 몸이 로켓처럼 튀어오르듯 상공으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