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27
헬 다이버즈 026화
26화
“들어와.”
아직 노크 소리가 울리지 않았음에도 돋보기안경을 착용한 노인이 대뜸 입실을 허가했다.
그러자 공손한 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남자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 비해 막 서른을 넘겼을까 싶은 젊은 사내는 곧 부동직립의 자세를 취했다. 말끔하게 백으로 밀어 올린 머리, 날렵한 눈매를 가감 없이 드러내 주는 무테 사각 안경, 모델 뺨치도록 하얀 피부와 오뚝하게 솟은 콧잔등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의 양손에 들려 있는 것은 이미 수십 번이나 더 받아봤을 해양 플랜트에서의 후보생 및 헬 다이버들의 기록 보고였다.
지난 5년간 수많은 대기업과 개인 투자자, 건설 업체들이 달려들어 겨우 완성시킨 성과물이다.
초창기의 해양 플랜트는 기껏해야 선박 몇 개를 합친, 떠다니는 연구소 수준에 불과했지만, 국가 단위의 꾸준한 투자와 증축으로 인해 어느덧 바다 위의 작은 국가라고 불릴 만큼 덩치가 커졌다.
그러나 대한민국 재계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정민 그룹을 비롯해 여러 거물 투자자들은 현재 정부의 행태에 불만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바다 한복판에 자리 잡을 거대 해양 도시의 파이를 나눠 먹자며 꼬드기더니,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민단 말인가.”
정민 그룹의 회장 정석두는 찡그린 눈으로 태블릿 PC를 조작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재미없는 뉴스 기사들만이 펼쳐졌다.
해양 플랜트에 투자하면 갑절 이상의 이익을 보장해 주겠다던 정부의 약조는 정말 ‘구두 약속’으로만 끝나 버렸다. 계약서가 종이 쪼가리가 된 것도 아니고, 그냥 처음부터 없던 일이 돼버린 것이다.
당시 집권 여당은 폭삭 주저앉아 버린 국가 경제를 되살리고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헬 게이트가 발견되면서 정치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정부가 해양 플랜트에 올인 배팅을 해버렸다.
정부가 작정하고 나섰으니, 당연히 자금줄과 인력, 원자재 확보의 핵심인 기업들도 달려들었다. 그 뒷배경엔 정부의 약조와 권유가 있었지만, 어쨌든 다들 정체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려보고자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 때문인지 해양 플랜트가 건설되기 시작하던 초기와 중기까지는 국내 경제가 눈에 띄게 살아났다.
해양 플랜트의 빠른 건설을 위해 선박업과 건설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맞았으며, 금속가공 및 시설 인테리어, IT 보안 업체와 군용 설비 납품 업체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법이 없었다.
기업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일감을 수주했고, 노동자들은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두둑한 월급과 보너스를 생각하며 행복한 비명을 질러 댔다.
그 기획이 제대로 먹힌 덕에 집권 여당에 대한 민심은 하늘을 찔렀으며, 국민들은 행복에 젖었다.
그래서 당연히 큰 공을 세운 그들에게 감격한 국민들이 한 번 더 집권 여당으로 만들어주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속내라는 게 어디 쉽게 달라지겠나.
골머리 썩이던 문제는 해결됐고, 이미 자신들은 건드릴 수 없는 성역 같은 것이 되었으니, 다음 순서의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쌍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우리가 밀어 넣은 막대한 투자금, 사람을 소모품처럼 갈아 넣어야 했던 희생과 노력은 깡그리 무시하고, 국민들에게 대기업 재벌들이 다 해 처먹는다고 실컷 선동질을 했단 말이지.”
기업들이 열심히 일하고 투자해서 정체기에 빠진 나라를 다시 한 번 뛸 수 있게 만들어놨더니, 고마워하기는커녕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결국 과거부터 반(反)기업, 반(反)재벌 정서가 박혀 있던 국민들은 태도를 돌변해, ‘이게 다 정부가 잘한 거다’, ‘기업은 숟가락만 올렸다’라며 정치인들의 프로파간다에 그대로 걸려들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의 정부는 국방부를 해양 플랜트의 책임 및 관리 부서로 내세워 해양 플랜트의 국유화를 선언해 버렸다.
기업들에게 투자한 만큼 파이를 나눠 주는 것조차 아까워, 국민들의 민심을 등에 업고 집에서 기업(충견)들을 내쫓아 버린 것이다.
정석두는 지금도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뉴스 기사들을 보며 겨우 낮춘 혈압이 다시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당시 얼마나 많은 기업의 투자금이 들어갔나. 천억대? 그 정도는 애들 코 묻은 돈에 불과하다.
최소한 조 단위의 투자금이 들어갔다. 해양 플랜트 프로젝트가 망하면 어지간한 중견 기업들조차 줄줄이 도산할 각오를 하고서 모두 함께 달려들었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한 번 일으켜 보자며, 노사 모두 서로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꾼 것이 엊그제 같았다.
하지만 그런 미래는 저들이 스스로 박살 내버렸다.
“한낱 짐승에게도 양심이 있는 법인데, 이것들에게선 티끌만 한 양심도 찾아볼 수 없군.”
결국 태블릿 PC를 책상 한구석으로 집어 던진 그는 오랫동안 앞에 서 있던 사내를 바라보았다.
“작금의 사태에 대해 자네 같은 유능한 인재의 식견을 들어보고 싶군.”
“저 같은 자가 감히 회장님께 개인의 생각을 내비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그룹인가. 정민 그룹이야. 바를 정(正) 자에 백성 민(民) 자를 쓴 정민 그룹이라고. 이 기업의 터를 직접 닦으셨지만 끝내 병세를 이기지 못해 일찍 타계하신 나의 친부께선 항상 말하셨지. 높은 자들보다 낮은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이 정도면 이유로 충분하겠나?”
“그러시다면… 짧은 식견이나마 읊어보겠습니다.”
사내는 당장에라도 불타오르는 것 같은, 열망에 찬 눈동자로 회장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젊음의 패기가 아닌, 더 위를 향하고 싶어 하는 도전자의 눈빛이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정부는 일부러 국민들에게 기업의 치부를 하나하나 까발리며 여론전을 유도했습니다. ‘국가 사업에 기업들은 숟가락만 올렸다’라는 이미지도 이 치부들이 갑작스럽게 공개되면서 흐름을 탄 것인데, 그때문에 말도 안 되는 프로파간다가 예상외로 잘 먹혔습니다.”
“딱히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치부를 꺼낸 것에 대해선 우리 재계도 그렇게 불만스러운 건 아니야. 재계의 치부는 당대의 정권이 정치적 위기를 겪을 때마다, 혹은 주기적으로 활동하는 인권 단체들의 성토에 의해 자연스럽게 까발려지는 것들이니까. 숨기려고 한들 숨길 수도 없고, 결국 재계와 정계가 상부상조하기 위해 사용하는 소모성 도구지.”
“예. 분명 그렇긴 합니다만, 이제껏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들은 재계와의 상생을 위해 받은 만큼은 돌려주고, 또 준 만큼 다시 돌려받는 방식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렇지. 국민들이야 정경유착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 대지만, 정치인들은 돈이 필요하고, 기업들은 뒷배가 필요한 법이거든. 한쪽이 죽으면 다른 한쪽도 같이 죽는 구조란 말이지. 그래서 정계와 재계는 서로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뒤로는 적당히 타협해야 했어. 그게 이 경제 생태계에선 당연한 상식이야.”
무조건적인 압박과 규제, 처벌과 감시만 쏟아진다면, 그 어떤 기업도 버티지 못한다.
기업이 버티지 못하면?
국민이 버티지 못한다. 국민이 버티지 못하면 나라도 버티지 못하니, 결국 정치인들이 날린 부메랑은 고스란히 돌려받는 셈이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조차 정계와 재계 간의 은근한 커넥션이 있는데, 이 자그마한 나라에 그런 관계가 없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나.
“바로 그게 문제였습니다.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을 거짓말만 일삼는 족속이라 생각하며 사건 사고가 터져도 ‘원래 그런 족속들이다’ 라며 가볍게 넘기지만,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재벌이나 기업의 고위 인사들이 사건을 일으키면 절대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일삼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부의 차이와 신분의 차이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관련자들을 모두 ‘갑질하는 악당’으로만 보는 선입견을 가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갑질이 없는 건 아니었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갑질이나 심각한 사고가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
“예. 지금껏 밝혀진 갑질 사례만 해도 손으로 전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습니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국민들에게 비난받고 법의 심판을 받아 끝낼 일이지, 정치인들의 도구로 전락해선 안 됩니다.”
“그렇지. 그건 정당하지 않은 일이야.”
정석두는 대한민국 재계 1위의 자리를 지켜온 나날 동안 다른 기업들의 동향을 매일같이 살폈다.
혹시라도 그 기업이 정민 그룹에 독이 되지는 않을까, 그쪽이 정부의 미움을 사서 검찰 조사라도 받으면 괜스레 정민 그룹까지 엮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한 것이다.
“죄를 저지른 건 죄를 저지른 거니, 비난받고 처벌을 받아도 그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야. 우리는 그저 정당하게 투자를 하고 열심히 일을 한 대가를 받고 싶었을 뿐이야. 그것과 이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래. 죄를 지었으면 검찰에 끌려가 조사도 받고, 옥살이도 하고, 국민들에게 지탄받으면서 자신의 직위를 내려놓기도 한다. 지금껏 무수한 스캔들에 휘말린 자들이 하나같이 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았나.
그들이 돈이나 뒷배를 써서 빠져나왔다?
당연히 큰 잘못이다.
하지만 그런 잘못들과 정당한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보자. 모 대기업 총수가 해외에서 어마어마한 액수의 선박 수주 계약을 따냈는데, 그가 국내에 돌아와 일반인 상대로 대뜸 갑질을 했다고 치자. 정부가 괘씸하다며 그 수주 계약을 정부 차원에서 잘라 버린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당연히 아니다.
“욕이라면 얼마든지 먹어도 돼. 원래 돈 많은 놈이든, 정치하는 놈이든 다들 저승에 싸 들고 갈 만큼 욕을 먹는 족속들이니까.”
“하지만 정부는 필요 이상의 정치 공작으로 재계를 몰아넣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 바로 그게 문제지. 겉으로는 정계와 재계 간의 오랜 유착 관계를 끊어내겠다며 국민들의 환심을 샀지만, 그 실상은 거래 상대와의 계약을 멋대로 파기한 배신행위에 불과하지.”
사내의 정확한 지적에 정석두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재계와 정계는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가까운 관계이며, 동시에 서로의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는 원수지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어느 한쪽이 배신하면, 당한 자는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그걸 알기에 서로 간에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켜가면서 파이를 나눠 먹지 않았던가.
그런데 현 집권 여당은 해양 플랜트를 날름 집어삼키곤, 다시 진출하고 싶다면 막대한 투자금을 내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해왔다.
국민들이야 ‘기업도 먹을 만큼 먹었을 것 아니냐?’, ‘그깟 투자 좀 한 게 그렇게 아깝냐?’ 같은 말을 던질 뿐, 누구 하나 기업들의 고충을 알아주지 않았다.
“우리가 딱 기대한 만큼만 돌려받았다면 그런 욕쯤이야 얼마든지 받아도 상관없었으련만, 다들 권력이 무서운 건 알아도 재력이 무서운 줄은 모르는군.”
해양 플랜트는 지금도 그 규모를 착실히 늘려 나가고 있다. 초기 투자자들 중 계열사를 진출시킨 것에 성공한 건 정민 그룹과 재계 2위인 매화 그룹뿐. 그마저도 원하는 만큼의 지분을 먹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기업들이 줄도산하면 위태로우니, 정부가 선심 쓰는 척 정말 위태로운 기업들에겐 국고로 지원까지 해주었다. 그것으로 또 생색을 부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 우리 같은 천생 장사치들이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부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독재자마냥 국가를 집어삼키려 한 것도 아니건만, 국가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도박판에 위험까지 무릅쓰고서 참여한 우리를 이렇게 푸대접을 해?!”
정석두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이제 75세에 달한 그의 몸은 노쇠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젊을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정민 그룹의 초석을 세워온 열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후우, 정부와 국민들이 반기업 정서를 펼친다면 우리도 반국가 정서를 표출할 수밖에 없겠지. 장사치들에게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만들면, 그들도 우리의 고충을 알아주겠지.”
정석두는 손을 까닥거리며 사내가 들고 있는 서류를 가지고 오게끔 했다.
그가 공손히 내민 서류 더미는 소위 ‘유망주’라 불리는 해양 플랜트의 후보생들과 현재 활동 중인 헬 다이버들의 보고서로 구성되어 있었다.
정부는 초기 투자자들을 배신하고 해양 플랜트를 국유화한데다, 최근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강해져서 국내 기업들의 내수 시장은 그야말로 엉망인 상황.
이런 마당에 유일한 활로는 당연히 헬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희귀 자원과 신기술 개발에 도움이 될 연구 자료들뿐이었다.
“스카웃해야 할 대상들이 제법 많군.”
“고르고 고른 인재들입니다. 후보생들은 일단 육군 소속입니다만, 그들이 헬 다이버가 되는 순간, 민간인의 신분으로 바뀝니다. 또한 정부에선 헬 다이버들이 아니면 헬 게이트 내부의 자원을 획득할 방법이 전무하기에 ‘노예’가 아닌 이상, 일반적인 헬 다이버는 쉽게 제지할 수 없습니다. 즉 경제활동이 매우 자유로운 그들을 집중적으로 포섭한다면, 재계를 배신한 국가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습니다.”
“좋아. 투자의 길이 막혔을 때부터 손주들을 해양 플랜트로 보낸 보람이 있군.”
“하지만 반드시 포섭에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조금 특수한 케이스의 후보생도 있는지라…….”
“꼭 포섭할 필요는 없어. 얼마를 쓰든 상관없으니, 끈만 연결해도 충분해. 단 그 헬 다이버가 정부의 끈이 아니라 우리의 끈만 잡게 해야 해. 아까운 광석 한톨 새어나가지 못 하게 아주 철저히 틀어막아야 한다고.”
지금은 포섭할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게 우선이다.
특히 정민 그룹의 사람이 헬 다이버로 승급하면, 재벌도 해양 플랜트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아픈 이가 빠지는 것이다.
그들은 오직 기업들하고만 거래를 할 것이다. 기껏 열심히 키워놓은 헬 다이버가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저들 입장에선 속이 쓰리겠지.
기업들은 이미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전력이 있기 때문에, 각 기업의 총수들은 정석두를 따라 자신들의 손주들을 후보생으로 보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을 인재로 키워내 해양 플랜트를 역으로 집어삼키고, 장사치들의 뒤통수를 후려친 국가에게 다시 한 번 압박의 칼날과 상생의 기회를 들이밀 작정이었다.
“자식 놈들에게 전해. 가능한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을 모두 쥐어짜 내라고.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일단 유망주들을 친기업 성향으로 만드는 것에 주력하라고 해.”
“다음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돕기 위한 자금도 말입니까?”
“아니. 우린 이제부터 그 어떤 정치인도 지원하지 않을 거야. 이제 와서 야당 후보를 지원해 봤자 우리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겠나? 집권하면 또 입 싹 닫겠지. 차라리 연을 확실히 끊어버리는 게 나아.”
“실언했습니다.”
“됐네.”
보복성 세무 조사 같은 게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이제와선 신경쓰지도 않는다.
기업을 권력으로 협박해서 더욱 쥐어짜내겠다고? 영원한 봉으로 만들겠다고?
그렇다면 기업들도 합심해서 이런 정부에겐 한 푼도 내주지 않으면 된다. 저들은 임기가 정해져 있지만 자신들은 돈만 있다면 영원불멸하니까.
“일단 죄다 쏟아부으라고 해. 가진 자들의 갑질이 그렇게나 싫어서 열심히 일한 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친 거라면, 이번에야말로 진짜 갑질이 뭔지 보여줘야지.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서러운 건지 알게 해주자고.”
몇 년 전부터 급격히 상승한 대기업들의 주가는 반기업 정서로 인해 다시 떡락했다. 일부에선 불매운동까지 벌어지고 있어 타격도 제법 컸다. 덕분에 해양 플랜트 진출에 대비해 열심히 만들어둔 수많은 사업 프로젝트들이 사실상 영구 폐기되었다.
그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뼈아팠기에, 정석두는 처음으로 정민 그룹의 신념을 저버릴 것을 각오했다.
“헬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자원들의 유통망을 손에 넣게 되면, 그때야말로 죄다 바닥을 기게 해주지. 장사꾼을 등쳐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어.”
장사치의 한은 여자의 한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