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3
헬 다이버즈 002화
2화
“아이고, 골 터져 돌아가시겠네…….”
골 때린다는 말보다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조명은 당장에라도 산산조각 날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분명 ‘눈을 떴다’는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 속과 지금의 풍경은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정신을 잃고 난 후에 눈을 뜬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뒤늦게 주변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눈치챘다.
“뭐야? 여기 어디야? 신림 2호선 역 앞?”
조명은 자신을 미친놈마냥 흘겨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리쬐는 한여름의 뙤약볕, 그 아래에서 바삐 움직이는 수많은 행인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역 입구에서 뻗어 있던 자신.
‘대체 어떻게?’
조명의 마지막 기억은 푸른 불꽃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자취방과 10분 거리인 신림역 앞에 널브러져 있을 줄이야.
돈이 없어서 최저 요금으로 맞춘 보급형 스마트폰을 꺼내보았지만, 타이밍 나쁘게도 배터리가 없었다.
눈부신 태양을 피해 고개를 반대로 돌리자 때마침 높은 고층 빌딩의 홀로그램 전광판에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아래에 표시된 날짜와 시간은 조명의 기억에서 정확히 이틀이 흐른 뒤였다.
‘이틀간의 기억이 없어.’
저녁 즈음에 야산에서 뻗었다고 한다면 다음 날까지 신나게 퍼질러 잤을 터. 그 뒤에 좀비처럼 일어나 버스를 타고 몇 시간에 걸쳐 서울까지 올라와 이곳에 도달했다.
대충 그 정도의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꼬라지가 좀 더럽긴 하지만 딱히 문제도 없는 것 같고…….’
조명의 지갑은 멀쩡했고, 어디 다친 흔적도 없었다. 그저 노숙자마냥 길바닥에서 퍼질러 잔 탓에 옷이 조금 더러워져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서울 한복판에서 퍼질러 자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조명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젊은 놈이 대낮부터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던 거라고 생각했겠지.’
햇볕이 따가운 7월이다. 대부분의 대학은 이미 방학에 접어들었고, 서울 곳곳엔 인생을 낭비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조명 자신은 그럴 시간에도 알바와 막노동으로 개고생을 했지만, 생판 남이 그걸 알아줄 턱이 있나.
“그나마 그늘에서 자서 망정이지.”
이틀간의 기억이 없다는 것은 꺼림칙하지만, 조명은 우선 택시부터 잡았다. 평소라면 돈을 아끼기 위해 걸었겠지만, 지금은 이상하리만치 몸이 무거웠다.
“서림동으로 가주세요.”
부드럽게 출발한 택시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2030년에 이르러선 매연을 발생시키지 않는 전기차로 탈바꿈했다.
친환경을 위해 전기차 구입 시 각종 지원을 해준다는 정부의 정책을 보고 조명도 수틀리면 택시 기사를 해볼 작정이었다. 잘하는 게 공부밖에 없다면, 그 끝은 치킨집 사장, 그 이상, 이하도 아닐 테니까.
‘내 인생도 이렇게 부드럽게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휙휙 스쳐 지나가는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조명은 인상을 찡그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할 각종 고지서와 빚 독촉장, 그리고 이틀간 본의 아닌 잠수를 한 탓에 얼마나 많은 알바처 사장의 연락이 쌓여 있을지 감도 안 잡혔다.
‘차라리 이대로 마포대교에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조명이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택시는 부드럽게 목적지 앞에서 정차했다. 택시 요금을 지불하고 나니 지갑 안엔 정말 먼지밖에 남지 않았다.
50대 가장만큼이나 지친 발걸음으로 작은 자취방에 돌아와 스마트폰부터 충전시켰다.
남들은 다 홀로그램 패널이니, 전자 칩 따위를 몸속에 박아서 사용하는데, 조명만이 아직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농담이 아니라, 튼튼한 것만이 장점인 이 스마트폰이라면 뗀석기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낡아서 그런지 부팅도 더럽게 길어. 이 쓰레기 같은 벽돌폰.”
배터리는 툭하면 나가지, 가끔 전파도 못 잡지… 베어 먹은 사과 회사의 옛 CEO가 지하에서 울겠다.
겨우 부팅이 끝난 스마트폰은 공짜(옆집) 와이파이를 잡자마자 톡 메시지를 와르르 토해냈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도 같이 딸려 나와 금세 버벅거렸다.
‘이틀간 잠수를 탔으니 난리가 났겠지. 알바 잘려도 할 말이 없네.’
알바를 갑자기 관두더라도 잠수를 타는 것과 말을 하고 관두는 데는 큰 차이가 있다. 알바처 사정은 갑작스럽게 비어버린 시간 동안 손해를 본 탓에 조명의 배가 부를 만큼 온갖 욕을 퍼부었다.
단기 알바를 소개해 준 친구 역시 왜 연락이 없냐며 조명을 씹어 대고 있었다.
거기까진 다 괜찮았다. 순전히 자신의 잘못이니까.
하지만 죽어도 보기 싫은 문자가 눈에 띄었을 땐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 보낸 이 : 병무청
― 수신 날짜 : 7월 18일
“으아아아아아아!!”
조명은 핏발 선 눈으로 애꿎은 벽을 쾅쾅, 두들겼다. 옆집의 고마운 와이파이 셔틀은 이미 나가고 없는지 신랄한 반응이 돌아오진 않았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풀어낼 곳이 마땅찮은 조명은 급기야 바닥을 마구 뒹굴었다.
“왜! 왜 내가! 군대를! 가야 하냐고!!”
과거, 2024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병역법에 따르면 부모가 없는 자 혹은 특정 사유로 보육 시설에 5년 이상 생활한 자는 제2국민역이 되어 병역을 면제받았다.
그러나 대반전은 정확히 2025년에 일어났다.
대한민국 전역의 면제 예정자, 혹은 공익 남성들의 뒤통수를 거하게 강타하는 대사건이 발발한 것이다. 그로 인해 새로운 병역법이 급하게 날치기로 통과되었을 정도니, 말 다 했다.
2025년의 새해를 맞이하는 것과 동시에 동해 일대를 집어삼키며 자리 잡은, 약 50만 제곱킬로미터 면적의 거대한 구덩이.
통칭 헬 게이트라 불리는 끔찍한 현상으로부터 민감하게 반응한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앞다투어 기민하게 움직였다.
러시아의 해군과 일본의 해상자위대가 한발 빠르게 동해로 파견됐고, 뒤이어 태평양 너머에서 쏜살같이 달려온 미 해군과 스리슬쩍 접근한 호주 해군까지 헬 게이트로 접근했다.
대한민국이라고 가만있을 수는 없기에 즉시 해군 병력을 파견함과 동시에 타국 군대와의 우발적 충돌, 혹은 국지전을 예방하기 위해 국군 전력을 대폭 늘려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군 의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자들을 제외한 모든 20대 남성에게 병역 의무라는 폭탄을 안겨주게 된 새로운 병역법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홀로 가족을 부양해야 하든, 부모가 없든, 보육 시설에서 자랐든, 2024년까지 군에 입대하지 않은 제2국민역들은 모두 의무 병역 대상에 포함되었다.
공익근무요원 제도 역시 빠르게 철폐되고, 기존의 공익근무요원을 제외한 공익근무요원 후보자들이 모두 군대로 끌려가는 기염을 토해냈다.
조명은 법이 개정될 당시 신체검사조차 아직 받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병역의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급격하게 밀려오는 자살 충동.
홧김에 마신 술로 이틀간의 기억을 잃었다면, 이번엔 인생 전체를 잊기 위해 술을 통째로 마시고 싶은 기분마저 느꼈다.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던 정신병자까지 등장했지만, 금세 묻힌 지 벌써 5년째.
성인이 된 조명에게도 이제 엿 같은 콜 오브 듀티의 순번이 돌아왔다.
“옥상에서 뛰어내려서 무릎 연골이라도 작살내야 하나…….”
단순히 발가락을 자르는 것 정도로는 안 된다고 들었다. 멀쩡하게 총을 다룰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끌고 간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으니까.
아예 양심적 병역 거부자 행세라도 할까 고민하다가 조명은 빠르게 그 생각을 접어버렸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 역시 인권 탄압이니, 종교 탄압이니 하고 울부짖다가 결국 강제로 군대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선 2030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확보한 대한민국 해양 플랜트와 더불어 대한민국 영토까지 함께 지켜줄 ‘굳건이’들을 가능한 많이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특히 신체적 장애는 몰라도 정신이상으로 속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들었다. 판독을 위해 거짓말 탐지기까지 사용한다는데, 진짜배기 정신질환자와 연기자를 최대한 구분해서 어떻게든 군에 처박으려는 노력이 가상했다.
“3년 의무 복무를 끝마치면… 이야, 진짜 인생 살맛나겠는데?”
18개월까지 줄어든 옛 복무 기간이 신병역법 개정으로 인해 3년으로 연장!
사망 및 실종, PTSD 발병 위험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
대신 각종 위험수당을 포함해서 군인 월급 계산 시 최저임금 적용!
월급 하나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군대가 엄청나게 발전한 것 같지만, 조명 입장에선 오히려 더욱 퇴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명은 지금껏 뉴스와 인터넷 지라시를 통해 군인들이 얼마나 엿 같은 3년을 보내게 되는지 대충이나마 파악해 두었다.
사고사보다 타의에 의한 사망률이 더 높아진 시점에서 군대에 들어간다는 건 지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사병은 연금도 없이 딱 최저임금으로 계산한 3년 치 연봉을 받고 전역하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정직하게 최저임금 받으면서 3년 일해봤자 그 돈으론 아무것도 못하니까.
먹고 입고 자고 싸는 데에도 돈이 들어가는 인간의 특성상, 저축이 말처럼 쉽겠나.
게다가 조명에겐 빚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나날이 이자가 붙고 있다.
3년 뒤에 더욱 늘어날 빚, 복학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는 대학, 그리고 피폐해진 육체와 정신.
입으로만 자살을 외치는 지금과 달리, 그때가 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마포대교에서 10점짜리 다이빙을 선보일 자신이 있다. 금메달은 따놓은 당상이고.
“에라, 모르겠다.”
만사가 다 귀찮았다. 이만큼 고통받았으면 누군가가 나서서 좀 덜어줄 법도 한데, 조명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좀처럼 가벼워질 기미가 없었다.
든든한 뒷배 덕분에 어떻게든 군대를 면제받고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좋은 집 자식들의 밑거름이 된다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었다.
세상을 널리 밝히기는커녕 지하 밑바닥 하나 밝히지도 못하는 떨거지가 바로 박조명이란 이름의 대학생이었다.
그렇게나 열심히 잠을 잤음에도 조명은 다시금 밀려오는 졸음을 굳이 떨쳐 내지 않았다.
어차피 망한 인생인데 신체검사를 하루 앞두고 잠 좀 자면 어떻고, 또 군대에서 갈려 나갈 예정이면 좀 어떤가.
그렇게 신나게 자려는데, 누군가가 자꾸만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아 억지로 눈을 떴다.
‘이제 막 꿀잠 자려는데 어떤 놈이 자꾸…….’
“박조명 씨?”
“…….”
“박조명 씨?”
“예, 예?”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조명의 눈앞에는 군복을 입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물론 평범한 사병은 아니었는데, 책상 위에 올려둔 소독 도구나 검진표로 미루어보아 조명은 그가 군의관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문제는 왜 자신이 편한 옷과 슬리퍼를 신은 채 군의관 앞에 앉아 있느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