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33
헬 다이버즈 032화
32화
정민 그룹보다 급이 떨어지긴 해도 자신과 어울리는 세 친구 역시 모두 나름 잘나가는 기업가의 아들 혹은 손자들이다. 그들에게 정민 그룹의 정형찬이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는 놈이라고 오해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놈의 꼰대! 언제는 나더러 해외 유학이나 준비하라더니!!’
형찬은 모두에게 내 발로 직접 걸어 들어왔다며 큰소리를 뻥뻥 쳤지만, 실상은 아버지에게 속아 해양 플랜트로 보내졌다.
해외 유학을 준비하라는 말에 살짝 들뜬 마음으로 채비를 갖춘 형찬을 다짜고짜 해양 플랜트에 처박아 버린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헬 다이버로 승격하지 못하면 집안에서 모든 지원을 끊어버리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연까지 끊어주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씨발.”
퍼석!
곡괭이로 내려친 암석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 쏟아져 내린 돌가루와 흙먼지가 형찬의 슈트를 더럽혔다.
후보생은 헬 다이버로 승격하든가, 3년간 쓰레기로 지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해양 플랜트를 벗어날 수 있었다. 동해 한복판에서 집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고, 돌아가 봤자 꼰대를 이길 방법도 없었다.
형찬은 그저 다른 사촌들과 마찬가지로 어른들의 대리전쟁에 소모품으로 쓰여야 했다. 그것 외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서 노력을 하는 한편, 다른 또래 후보생들을 관찰하며 자신과 그들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범생이라 불리는 자들은 어떤 언행을 보이고, 또 어떤 과정으로 색다른 결과에 도달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명백히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목표로 하는 바가 같기 때문에 구경할 가치는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형찬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깡!
단단한 암석을 잘못 두들긴 탓에 손잡이를 타고 찌르르한 충격이 흘러 들어왔다. 신음성이 절로 나왔지만, 개의치 않고 연속적으로 곡괭이를 휘둘렀다. 네깟 바위가 곡괭이질에 부서지지 않으면 어쩔 거냐고 따지기라도 하듯이.
“이놈이고, 저놈이고!”
자신도 똑같이 노력했고, 성실하게 수업과 훈련을 받았다. 재벌가 자식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함부로 갑질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돈 많은 집 자식, 건드리면 안 되는 자식으로 보였을지언정, 막돼먹은 놈이라고 보여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똑같이 노력하고, 더 뛰어난 결과를 보여주면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인생에 평범한 집안의 자식이 모범생에 유망주 취급을 받은 것처럼, 쥐뿔도 없는 놈이 뭐 대단한 양 인정을 받은 것처럼, 자신도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건만…….
“썅!”
파드드득!
여전히 주위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형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정민 그룹의 재벌 3세로만 여겼으며, 형찬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항상 패거리와 어울려 다니며 띵까띵까 놀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담당 통제관마저 열심히 노력한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고 그 쥐뿔도 없는 놈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았던가.
누구는 처음부터 선택지 따윈 하나도 없는, 스트레스로 가득한 삶을 살아왔는데.
그놈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음에도 본인이 제일 불행한 사람일 거라며,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형찬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손사래를 쳐 보였다.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끄라는 제스처.
하지만 민형석이 구태여 말을 걸어왔다.
“왜 그래? 몸 상태가 좀 안 좋냐? 그럼 잠깐 쉬고 있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냥 좀 짜증이 났을 뿐이니까.”
그래, 형찬은 세상만사 모든 것이 다 짜증 났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어른들, 자신을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주변인들, 자신을 규정짓는 세간의 빤한 시선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삶의 굴레를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형찬은 화가 나다 못해 모든 것을 다 엎어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자신도 가문의 어른들처럼 속 편하게 아무것도 안 하며 띵까띵까 세월을 낭비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장상 대놓고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인정을 받기는커녕 혐오스러운 존재로 전락할 테니까.
어쩌면 그래서 박조명을 노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받지 못한 주위의 인정을 너무나도 쉽게 받아내는, 그야말로 인생을 날로 먹는 녀석을 눈앞에서 봤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모두가 그의 편을 들고, 그와 대립한 형찬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날 위해서 딱 1년만 꿇어라. 너도 나처럼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인생이란 제 뜻대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 건지 느껴봐야 해!’
차마 면전에서 대놓고 쏘아붙일 수 없는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속마음이기에 해방감을 느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되는 자신만의 비밀이니까.
“작업 계속하자. 선배들이 알아서 해줄 테니, 우린 먼저 올라가도 상관없을 거야.”
형찬은 어느덧 +8급 이하의 광물을 30개나 모았다. 나머지 일행들도 비슷한 수만큼 모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고생하면 모두가 헬 다이버로 승격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다시 곡괭이를 치켜들려던 찰나, 협곡 안쪽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 뭐야?”
“폭발? 안에서 뭘 한 거야?!”
“아니, 설마…….”
박한수가 뒷말을 흐리자, 형찬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으면 어서 말해.”
“그, 그게… 암상인에게서 사제 폭탄 몇 개를 구입해서 저 사람들에게 나눠 줬거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채광 포인트 자체를 무너뜨려서 그 녀석이 아예 채광도 못하게 방해하라고…….”
“얼마나?”
“뭐?”
“사제 폭탄을 얼마나 나눠 줬냐고!”
“다, 다 합쳐서 10㎏밖에 안 돼! 한 사람당 500g짜리 폭탄 한 개씩 나눠 줬으니까…….”
“쯧.”
형찬은 모두가 들리도록 혀를 찼다.
박조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준비하라고 한 건 자신이지만, 설마 사제 폭탄을 썼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기껏해야 통행을 방해할 간이 설치형 바리게이트나, 시끄러운 소음을 일으키는 도구 정도를 생각했다.
아무래도 박한수는 평소 어울리던 암상인들에게 계획을 밝혔다가, 그들이 추천해 준 불법 사제 폭탄에 혹해서 그대로 구매해 버린 것이 분명했다.
후보생 거주 구역에는 해양 플랜트의 소수의 군인과 해양 플랜트 직원을 제외하면 후보생들밖에 없다. 덕분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은밀한 거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터. 그 결과가 작금의 사태였다.
“들어가자!”
“뭐? 우린 아직 목표치를…….”
“지금 그게 중요해? 헬 게이트 내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고사를 제외한 인명 피해는 무조건적으로 조사를 받는다고! 군 수사관들이 선배들을 조사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형찬의 외침에 세 사람도 무언가 크게 잘못됐음을 깨닫고 협곡 안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는 선이라면 차라리 나았다. 그 정도라면 의무관이 괴상한 능력을 이용해서 즉시 치료해 줄 테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목숨을 잃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애초에 형찬은 박조명을 죽일 생각도 없었다. 그냥 부상을 입더라도 1년만 꿇게 만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건 단순한 화풀이였고, 그 쥐뿔도 없는 놈에게 인생의 쓴맛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사제 폭탄이라니.
‘자칫 잘못하면 군법회의로 넘겨져서 다 죽는다!’
암상인이야 요리조리 몸을 숨길 방법이 있겠지만, 관련자들은 모조리 군법에 의거해 불법 폭발물 소지 및 인명 사살 목적으로 사용한 죄를 묻게 될 것이 빤했다.
특히 1급 통제관 중 헬 다이버들의 무기 상인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식별 코드 666이 직접 나서지 않았던가. 그가 잔뜩 소지한 무기들을 앞세워 고문이라도 한다면, 후보생들 따위가 버틸 리 없다.
“젠장, 이런 곳에서 멋대로 폭탄을 사용해 버리면……!”
형찬은 자욱한 흙먼지를 두 팔로 마구 휘저으며 라이트를 비췄다.
협곡 내부는 화물 트럭이 오갈 수 있을 만큼 넓지만, TNT 폭탄 1㎏짜리 하나만 터져도 약 4.1MJ(메가줄)에 달할 만큼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방출한다.
TNT는 다이너마이트에 비해 에너지 방출량이 적긴 하지만, 암상인이 불법적으로 제작한 사제 폭탄인 만큼 오히려 위험성은 더 높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군필자도 아닌 단순 후보생들이 뭘 알겠나. 지급받은 폭탄을 주변 환경도 고려하지 않고 사용한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타, 탈출해! 여긴 이미 틀렸어!!”
“돈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자, 잠깐! 나 팔이 부러졌어! 나도 좀……!”
쿠구구구구!
협곡의 일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혹한 아비규환 속에서 괴상한 형체를 자랑하는 거대 암석 대게들이 권투 글러브 같은 집게발로 후보생들을 마구 후려갈기고 있었다.
폭발에 충격을 받은 것인지, 협곡의 이곳저곳이 마구 갈라지며 또 다른 암석 대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는 먼저 라이프 라인에 전류를 흘려보내 협곡 위로 탈출했지만, 한 발 늦은 자들은 암석 대게들의 공격에 마구 짓이겨졌다.
만약 슈트를 착용하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이미 곤죽이 되어 있었으리라.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어! 모두 올려보내!!”
“나, 난 못해…….”
“나도! 이런 건… 예정에 없었다고!!”
형찬이 부상자들을 위로 올려보내려는 순간, 그를 따르던 친구들이 먼저 자신들의 라이프 라인에 신호를 보냈다.
헬 다이버가 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순간적으로 코앞에 닥친 공포를 이기지 못해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일까.
그들은 협곡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전에 서둘러 탈출해 버렸다.
그사이에 주위를 메운 암석 대게들은 흑요석 같은 눈을 반짝이며 흙먼지의 커튼을 헤치고 걸어 나왔다.
놈들 아래 쓰러져 있는 몇몇 부상자들은 겨우 신음만 토해내고 있을 뿐, 아직 사망하진 않았다. 일단 올려보내기만 한다면 의무관이 말끔히 치료해 줄 것이다.
‘폭탄 몇 개가 터지긴 했지만 아직 협곡이 완전히 무너질 정도로 급박한 건 아니야. 서둘러 올려보내기만 하면… 탈출할 수 있어!’
바닥에는 굴러 떨어진 광물들이 보였다. 운이 좋다면 부상자들을 챙기고 자신의 목표치도 채워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보통 운이 아니라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줘야겠지만.
형찬은 식은땀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암석 대게들이 집게발을 찰칵찰칵 움직이며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놈들은 딱히 인간을 먹잇감으로 보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침입자를 용서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당장에라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선뜻 탈출 신호를 보낼 순 없었다.
‘이런 식으로 살인자가 되고 싶진 않아!’
자의든 타의든 살인을 저지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화풀이였을 뿐이다.
당장 이들을 버려두고 간다면 자신은 재벌가 자식이기 이전에 살인자라는 멸칭을 뒤집어쓰게 될 터. 그렇게 되면 자신이 바란 작은 인정도, 타인의 관심도… 모든 것을 영영 가질 수 없게 된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재벌가의 자식으로 살다가, 마지막 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이익!”
오기로 곡괭이를 쥐었다. 금방이라도 미쳐 버릴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자신은 이런 일로 살인자가 되어 인생을 마감할 재목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형찬이란 남자는…….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게 많을 순 없어~”
그 순간, 동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음치의 목소리가 형찬의 귓가를 때렸다.
마침내 흙먼지를 걷어 젖히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제 막 커다란 굴속에서 빠져나온 박조명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큼지막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