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34
헬 다이버즈 033화
33화
― +6급 은강석 : 기존의 은보다 더 단단함. 장갑 합금재로 활용된다.
“끝! 끝이다, 끝!!”
한참이나 노다지 광맥에 파묻혀 있던 조명은 자원 수집용 주머니에 담을 수 있는 만큼의 광석을 모두 채웠다.
시험에서 크기는 관계없기에 가능한 비싸 보이는 것만 골라서 감자만 한 크기로 챙겼다. +9급이나 +10급처럼 질 낮은 것들은 버리고, 질이 높거나 척 봐도 비싸 보이는 것이 그 대상이었다.
그렇게 담아 챙긴 것이 대략 80개.
무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게를 자랑했지만, 조명은 등 뒤에 짊어진 것이 단순한 광석이 아니라 천금과도 같은 보물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갖다 팔기만 해도 자신에게 돈다발을 안겨줄 보물 덩어리!
가지고 있기만 해도 괜히 입꼬리가 올라가는 복덩어리!
‘이제야 꼬인 인생이 좀 풀리는 느낌이야.’
복잡하게 얽힌 일이 풀리면 기분이 째지는 법. 조명은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모든 게 많을 순 없어~”
힘든 노동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 것은 삶의 고단함을 잊기 위한 것이지만, 돌아가는 길에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는 행복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탈모는 죄가… 아, 이것들은 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야?”
굴을 빠져나오니 바깥은 자욱한 흙먼지로 가득했다. 하는 수 없이 분사구를 통해 물을 뿌려 흙먼지를 가라앉히자, 그 너머엔 상상 이상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소수의 선배 후보생들과 그들을 에워싼 채 집게발을 찰칵거리고 있는 암석 대게 일곱 마리,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또래 후보생 한 명이 보였다.
‘정형찬?’
바이저의 확대 기능을 이용해 후보생의 신분증을 확인해 보니, 정형찬이었다.
낙하를 할 때까지만 해도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역시 조명과 함께 1팀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선배란 것들이 날 괴롭힐 때만 해도 없었는데, 이런 곳을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고?’
작업을 하는 도중에 폭음과 진동을 느끼긴 했다. 그러니 아마 그런 이유로 혹시 모를 부상자들을 위해 달려온 것이 아닐까 싶었다.
‘부상자들을 챙기려고 자기 작업까지 내팽개치고 달려와 준 건가? 괜찮은 사람이었네.’
첫 만남이 좀 재수 없긴 했지만, 그도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는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면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
설령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행동을 보일지라도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공사판에서도 저런 사람이 있었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사람이 좋은 건지 모를 정도로 살짝 어리숙한 30대 아저씨가 있었다.
그는 어리숙하긴 하지만 성실하고 일을 잘해서 작업반장이나 주위 아저씨들에게 호평을 받는 사람이었다. 이따금 여유가 되면 타인의 작업을 몰래 도와주기도 했으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인도 힘든 건 마찬가지일 텐데, 오늘 일하고 내일 또 일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타인을 배려하고 선의를 베풀었다. 요즘 말로 좋게 말하면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 같은 사람.
조명은 형찬에게서 그 아저씨를 비춰보았다.
아직 암석 대게들은 조명이 빠져나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형찬은 더욱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조명이 암석 대게들의 공격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는 듯했다.
‘그래. 첫 만남이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남자답게 대화로 풀어보자. 저런 사람이 근본까지 썩어 빠진 악인일 리가 없잖아?’
진짜 악인은 상황을 이 꼴로 만든 멍청한 선배들이다.
그들마저 구하려 한 정형찬, 당신은 도대체…….
조명은 코끝이 시려오는 것을 애써 참으며, 오른팔을 뒤덮고 있던 장갑판을 열어젖혔다.
본래는 팔목 보호대로 사용되는 공간 장갑의 일종이었으나, 덮개를 열어보면 40㎜ 구경에 달하는 파일 벙커용 말뚝 철심이 들어 있었다.
착암기를 장비하지 않고도 헬 다이버가 즉시 착암 효과를 낼 수 있게끔 추가된 장비인데,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다가 헬멧의 AI가 뒤늦게 알려준 것이었다.
‘착용자가 신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것이 걱정되어서 알려줬다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진즉 알려줬으면 얼마나 좋아.’
작업이 거의 끝난 후에야 알게 된 탓에 조명은 욕을 한바탕 퍼부었지만, AI는 조롱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사용할 기회를 얻었으니 다행이라 여겨졌다. 파일 벙커는 남자의 로망과도 같은 것이니까.
“현재 28분 경과. 2분이면… 충분하겠어!”
파일 벙커가 오른손 주먹 위로 장착, 고정되었다. 손을 뒤덮고 있는 장갑과 연결된 회로를 통해 전류를 흘려보내 주면 즉시 격발되는 원리인 듯했다.
천 주머니를 자신의 몸과 단단히 고정시킨 조명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때마침 자신을 향해 등딱지를 보이고 있는 암석 대게가 너무나도 박음직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후배가 등을 노리면?”
철컥.
순간, 형찬을 향해 달려들려던 암석 대게의 등에 조용히 안착한 조명이 파일 벙커를 내리꽂았다.
“후배위이이이이잇!”
투카아아앙!
쩡!
금속과 단단한 키틴질 갑피가 맞부딪치며 둔탁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40㎜ 구경의 1미터짜리 말뚝 철심이 암석 대게의 등딱지를 사정없이 관통해 버렸다.
접이식으로 압축되어 있던 말뚝이 충격과 함께 쏘아져 나오자, 어마어마한 관통력을 뽐냈다.
키이이이이!!
등딱지 너머의 내장과 신경계를 손상당한 암석 대게가 게거품을 쏟아내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하지만 단단히 철심을 박은 채 필사적으로 버티는 조명을 떨구기엔 너무 늦었다.
결국 놈은 몇 번이고 로데오를 연상케 하는 투레질을 하다가 힘없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간간이 다리를 움직이긴 하지만, 사후 경직 비스무리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그제야 조명은 철심을 뽑아내 아래로 뚝뚝 흐르는 샛노란 내장과 살점을 바라보았다. 일전에 포획한 게는 찜으로 쪄 먹고 남은 갑각으로 탕까지 끓여 먹었지만, 역시 게장으로 먹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게장에 밥 비벼 먹으면 그렇게들 맛있다던데…….’
짭조름한 간장에 절여진 게장도, 매콤하면서도 달콤쌉싸름한 양념에 버무려진 게장도, 어느 쪽이든 일단 밥 한 숟갈을 크게 덜어 볼이 미어터지도록 입에 넣고 싶었다.
문득 철심 아래로 볼품없이 흘러내리는 암석 대게의 내장과 살점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졌다. 돈으로 환산하면 이게 다 얼마인가. 대체 몇 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겠나.
‘이런 멍청한 새끼!’
해산물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신선도가 최고다. 그런데 조명은 다짜고짜 생선의 배때기를 파헤치는, 버르장머리 없는 놈보다 더한 짓을 저질러버렸다.
이미 흙먼지를 잔뜩 먹은데다 안쪽이 망가져 손쓸 수 없게 된 암석대게를 쿨하게 뒤로한 조명은 눈앞에 도사리고 있는 녀석들을 매의 눈으로 훑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배딱지가 둥글어 알이 가득 차 있는 놈이었다. 저놈 하나면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알탕에 비빔밥까지 해 먹고 남으리라.
놈들을 친히 도륙 내기 직전, 조명은 중앙에 서서 벌벌 떨고 있는 형찬에게 시선을 던졌다.
“형찬 선배.”
“뭐, 뭐……?!”
“혹시 이것들에게 관심 있어요?”
너도 한몫 챙길 생각이냐는 걸 돌려 말한 것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형찬은 금세 말뜻을 이해하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나는 이런 놈들에게 관심 없어! 그냥… 이 사람들만 위로 올려보내면 돼!!”
“역시 그렇죠? 그럼 제가 마무리 지을 테니까, 선배는 볼일 보세요.”
철컹철컹.
1미터 길이까지 늘어난 철심을 다시 압축시킨 조명은 형찬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미 동료가 맥없이 당한 것을 보고 암석 대게들이 가까운 형찬부터 노리고 달려든 것이다.
카가가각!
형찬의 목을 쥐어뜯으려던 집게발과 조명의 삽이 아슬아슬하게 맞부딪쳤다.
특수 제작된 연장이라 그런지, 내구도가 상당히 좋았다. 불똥이 튀면서도 암석 대게의 집게발에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자신의 공격을 막은 하찮은 인간을 벌주려는 것일까, 암석 대게는 처음 멍청한 선배를 날려 버린 것처럼 반대쪽 집게발을 크게 휘둘렀다. 저 스윙에 당하면 제아무리 조명이라도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그래봤자 게지!”
갑각의 구조상 게의 다리와 집게발의 움직임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 점을 감안해 조명은 측면이나 바깥으로 피하기보단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놈의 거품이 흘러내리는 주둥이에 파일 벙커를 틀어박았다.
투캉!
재차 이어지는 격발.
압축 상태에서 단숨에 치솟은 철심이 놈의 입을 관통해 눈과 얼굴에 해당하는 곳에 큰 구멍을 내버렸다. 최소한으로 흘러내리는 살점이 썩 만족스러운 조명이었다.
쿠광!
또 하나의 암석 대게가 썩은 고목처럼 쓰러지자, 다른 녀석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급기야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부상자들과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움직이는 형찬을 무시하고, 저들끼리 갑각을 부딪치면서 조명에게 마구 달려들었다.
‘빙하저의 배 속에서 달려들던 촉수 떼는 꼭 우동 사리가 달려드는 느낌이었는데…….’
뽑아낸 철심에 묻은 살점을 가볍게 털어낸 조명은 위로 치솟으려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지금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암석 대게들의 모습이 꼭 진수성찬이 자신부터 먹어달라며 애원하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 마당에 어찌 잔반을 남길 수 있으랴.
“서두르지 마라. 내가 다 맛봐줄 테니까.”
만약 헬멧을 착용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조명은 지금쯤 게의 살점이 흘러내리는 파일 벙커를 혀로 핥았을 것이다.
* * *
‘저놈은 괴물이야!’
형찬은 신명나게 노래를 부르는 조명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가능한 멀리 떨어져서 놈과는 같은 공간에서 호흡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녀석이 주머니를 가득 채우고 등장했을 때는 결국 멍청한 선배들이 방해를 하지 못했구나 싶어 씁쓸함을 느꼈지만, 뒤이어 조명이 괴상한 기합성을 내지르며 암석 대게 하나를 끝장냈을 땐 전신의 소름이 돋았다.
큰 힘을 들이지도 않고, 특별한 기교를 보여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른팔의 장갑에서 말뚝 같은 것을 꺼내 장착하고는, 단숨에 암석 대게를 찔러 죽여 버렸다.
암석 대게의 등딱지를 감싸고 있는 돌 조각이나 튼튼한 키틴질 갑피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당당함.
자신의 공격이라면 확실하게 즉사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
형찬은 이곳에서 그와 ‘직접’ 마주한 후에야 지금껏 모르고 있던 진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다들 그의 편을 들고 그를 인정하는지, 어째서 신입에 불과한 그가 통제관들의 열렬한 관심과 환호 속에서 당당히 5레벨 슈트를 획득했는지.
‘단순히 운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어! 그냥 괴물이었던 거야!!’
수십 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 광석 주머니를 짊어지고, 그와 비슷한 슈트의 무게까지 견디면서 암석 대게를 일격에 처리해 버렸다.
자신의 사촌인 정태호도 무거운 자원을 직접 옮기지 못해 별도의 수납용 기계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는데, 박조명이란 남자에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