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43
헬 다이버즈 042화
42화
‘아니, 아직이다! 협상이란 걸 언급한 이상, 저쪽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쪽의 의견을 수용해 줄 수밖에 없겠지. 이번에야말로 절대로 거절할 수 없는 계약으로 옭아매 버리면……!’
최설국이 심기일전하고 다시 맞받아치려는 순간, 통제관들의 중심에 있던 11500이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건조가 거의 끝나간다는 신형 이동식 플랜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
소스라차게 놀란 것은 비단 최설국만이 아니었다. 그를 보좌하기 위해 따라나선 측근들 역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일개 군인이나 계급이 낮은 장교들이야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사실 헬 게이트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부터 해양 플랜트를 빠르게 확장히고자 군에서 준비한 기밀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동식 시추 시설도 있는 마당에 해양 플랜트도 이동식으로 만들어두고 특정 해역을 점거해 버리면 괜찮지 않겠냐는 의견이 해당 프로젝트의 시발점이었다.
이는 선박과 선박을 이어붙인 뒤, 두꺼운 합판을 지반으로 삼는 복잡한 시공 단계를 거칠 필요 없이 군함 한 척이 항공모함처럼 활주로 비스무리한 갑판을 최대한 넓게 펼쳐 즉시 해양 플랜트를 구축하는 방식이었다.
갑판이 넓게 펼쳐진 뒤엔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추가적인 기둥만 몇 개 설치해 주면 끝.
획기적으로 공사 기간과 비용을 단축할 수 있는데다, 아직 점거되지 않은 해역을 빠르게 점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타국의 견제를 받을까 우려되어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던 프로젝트이건만,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대한민국 땅을 밟은 적이 없는 통제관이 그걸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국방부에서도 극히 일부밖에 모르는 특급 기밀이었다.
정부에선 지난날 동안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열심히 뜯어낸 세금을 바탕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인지라, 빈축을 사지 않기 위해 국가 단위의 정보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 배를 건조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정부와 군대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를 것이다.
“우리가 외부의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한 겁니까?”
“허, 헛소리로 논제를 흐리게 만드는 일은 지양해 줬으면 좋겠군.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잖나!”
“본 통제관들은 처음부터 그런 얘기를 할 작정이었습니다. 빠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다던데, 본 통제관은 그 말이 참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빠르기만 하면 다 가질 수 있다, 얼마나 멋집니까?”
‘이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고……!’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최설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1500은 기어코 내뱉어선 안 될 말을 내뱉었다.
“구질구질하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딱 하나, 그 배를 내놓으십시오.”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를 하는군! 그리고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절대로 그럴 일은 없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오늘부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는 이 해양 플랜트의 통제권을 60% 정도 잃게 될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따지듯 되묻는 국방부 장관에게 대신 답을 건넨 것은, 담배꽁초를 그의 앞으로 툭 던진 8282였다.
“잊으셨습니까? 이 해양 플랜트는 대한민국 같은 약소국가가 5년 만에 완성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것을.”
“모든 자금! 인력! 계획까지 전부 대한민국이 준비했다! 뭘 잘난 듯이 떠들어 대길 떠들어 대!!”
“자금, 인력, 계획까지 전부 준비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만, 작업을 맡은 건 누굽니까?”
“…….”
최설국은 소리를 지르다 말고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
그래. 눈앞의 안전모를 쓰고 있는 1급 통제관, 그가 대한민국 같은 작은 나라도 단 5년 만에 대규모 해양 플랜트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가 자금과 인력, 계획서를 받아 상당한 작업을 직접 진행했으니까.
“하지만 이미 거래는 끝났다! 이 해양 플랜트는 대한민국 정부의 소유이며, 국방부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걸 당신들이 멋대로 점거할 수는…….”
“점거하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환원하겠다는 의미지요. 내가 작업한 것을 ‘취소’한다면, 그만큼 소모된 것들 역시 모두 환원됩니다. 동시에 이 해양 플랜트의 60%가 송두리째 사라지겠지요.”
2급 통제관까지는 ‘물리적’으로 강하다.
그리고 1급 통제관은 단순히 강하다는 의미로 묘사할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세계의 법칙을 뒤틀고, 인간의 뛰어난 상상조차 가볍게 앞지를 수 있는 자들.
때문에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은 통제관들이 지니고 있는 통제의 의미에 대해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누차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순순히 독립권과 신형 이동식 해양 플랜트 하나를 넘겨주겠습니까, 그게 아니면 해양 플랜트 60%를 지금 당장 포기하겠습니까?”
이건 처음부터 협상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일방적으로 협박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개 처형식에 가까웠다.
“지, 직접 만들 능력이 있지 않나! 왜 하필 그것을…….”
“지금까지 자금과 자재가 들어오는 족족 이것저것 만드느라 써버렸기 때문에 여태껏 이동식 해양 플랜트 따윌 만들 생각을 못했습니다. 취미 삼아 만든 것들을 다 ‘취소’해 버리면 해양 플랜트의 60% 정도를 날려 먹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다면 그냥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낙하대가 사라지면 헬 다이버들이 좋아라 하겠군요.”
낙하대의 제작 역시 8282가 맡았다. 헬 다이버들에게 자국의 낙하대를 사용하게 해야 적절한 세금과 자원을 뜯어낼 수 있는 정부의 입장에서, 대한민국 해양 플랜트의 낙하대가 사라진다는 건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빤한 말은 하지 마십시오. 필요하다면 당신들의 지도자라도 이 자리에 불렀을 겁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당신을 부른 것이기도 하고요. 협상할지 말지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십시오.”
이는 명백하게 국회에서 다뤄야 할 문제다.
일개 국방부 장관이 처리하기엔 대기권을 뚫는 수준의 월권행위였으며, 또한 국가를 배신하는 이적 행위였다.
해양 플랜트의 총책임자라는 직책만 가지고 있을 뿐, 최설국의 지위가 대통령보다 높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선택하기 힘들다면… 즉시 당신들의 지도자에게 연락하십시오.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은 변함없을 것이며, 그 지도자 또한 한 시간 이내에 대답해야 할 겁니다. 순식간에 해양 플랜트의 반 이상을 잃을지, 좋게 좋게 원하는 것을 넘겨줄지.”
대통령에게 이 안건을 바로 올려도 결과가 똑같을 거란 사실에 최설국 은 부정할 수 없었다.
결국 저들의 말을 들어줘야 한다. 지금까지 투입된 자금과 자재를 모두 돌려받는다고 한들, 해양 플랜트의 반 이상이 날아가 버리면 대한민국은 복구 불능의 타격을 입게 될 테니까.
‘옷을 벗게 되겠군.’
최설국은 씁쓸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대통령에게 직통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
돌아오는 것은 관리가 부실했던 자신에 대한 질책과 원망뿐이겠지만, 결과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터. 하다못해 자신 혼자 이 문제를 섣불리 처리하지 않았다는 어필을 하고 싶었다. 그게 최소한의 면죄부가 되어줄 테니까.
그의 처량한 모습을 지켜보던 의무관은 생글생글 웃는 어조로 쏘아붙였다.
“당신들은 그 주체하지 못하는 탐욕과 오만으로 끝없이 위로 오르려 하겠지만, 우리에게도 그것을 강요하면 곤란해요.”
잠자코 뒤에서 듣고 있던 조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저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명 역시 많은 부와 명예를 원했으니까. 권력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들처럼 추하게 남들을 짓밟으면서까지 위로 오르진 않았다.
“본 통제관들은 용감하게 아래로 내려가는 자들을 위해 일합니다.”
다이버(Diver)가 존재한다면, 그들을 지원하는 자들도 필요한 법이니까.
* * *
9월 1일.
여름의 열기가 다소 누그러지고 초가을의 날씨가 서서히 찾아드는 그날에 대한민국 6천만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 만한 특급 뉴스가 아침을 강타했다.
[8시 뉴스 속보입니다. 대한민국 해양 플랜트 소속인 소수의 헬 다이버와 통제관이 헬 게이트 독립 탐사권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청와대 측에선 ‘신중하게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밝혀…….] [김 교수님께선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대한민국 국적의 헬 다이버가 자국을 배신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은 상황인데요.] [정확한 내막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소수의 헬 다이버들이 국적과 소속 해양 플랜트를 바꾼 사례는 과거에도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그 점으로 미루어 보건대…….] [독립 탐사권? 이건 사실 말이 안 되거든요. UN에서 인정받은 국가들만이 서로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국가급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극소수의 헬 다이버들이 독립 탐사권을 주장한다? 정신이 나간 겁니다.] [독립 탐사권. 듣기만 하면 참 좋은 말 같은데, 실상을 따져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헬 게이트로 잠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장비와 자금, 인력은 어지간한 대기업에서도 감당할 수 없거든요. 대기업들이 왜 독립 탐사권을 주장하지 않는 줄 아십니까?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게 아니라, 애초에 기업이 단독으로 실행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사업이기 때문이에요! 여러 제약들이 걸리는 건 물론이고, 세금으로 떼여가는 것도 더 많아질 겁니다. 그럴 바에야 해양 플랜트에 소속된 헬 다이버들과 계약해서 안정적으로 희귀 자원을 공급받는 게 훨씬 이득입니다. 그런데 소수의 헬 다이버들이 통제관들과 함께 팀을 맺고 독립 탐사권을 주장한다?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뉴스는 물론이고, 시사 채널까지 시끄러웠다. 방송에 나갈 정도로 거물이 아닌 자들은 ‘Younoob’라는 거대한 동영상 플랫폼에서 개인의 생각을 정리해 영상으로 게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헬 게이트 독립 탐사권은 그 정도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섣불리 언급하기 힘든 화제였다.
과거에도 미국과 중국 등에서 몇몇 공룡 기업들이 나서서 독립 탐사를 해보려 했지만, 국가의 지원이나 통제관들의 협력을 얻지 못하면 헬 게이트의 탐사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할 뿐이었다.
독립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려는 기업을 정부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만무하고, 애초에 통제관들도 개인사업자 혹은 기업인과는 계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다.
즉, 국가라는 틀을 넘어설 수 없는 개인과 일부 집단들은 하는 수 없이 해양 플랜트에 반영구적으로 귀속되어야 했다.
때문에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들끓게 만들 만큼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