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44
헬 다이버즈 043화
43화
― 안녕하세요, 횐님들!
― 오늘은 헬 게이트의 독립 탐사권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볼 텐데요!
― 헬 게이트 독립 탐사권. 이거 정말 얻기 힘들죠. 벌써 대기업 여럿이 나서서 실패한 전력도 있고요!
― 독립 탐사권을 얻는 방법은… 두구두구두구!
― 없습니다! 네. 그런 방법은 없다네요!
―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아오!”
조명은 한창 시끄러운 작금의 사태를 외부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아볼 겸, 새롭게 구입한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보의 바다를 헤쳐 나가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별 귀엽지도 않은 이모티콘으로 도배하며 영양가도 없는 글을 정보랍시고 써놓은 양반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국가를 배신한 헬 다이버는 내란죄로 체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열을 올리는 작자였다.
‘근데 나라의 높으신 분들은 진짜 이걸 주장할 것 같아서 무섭단 말이지.’
통제관들이 국방부 측의 협상단을 짓뭉개 버리고, 한술 더 떠서 이동식 해양 플랜트인지 뭔지 하는 것을 강탈해 버린 지 벌써 며칠이 흘렀다.
그사이, 조명은 후보생 거주 구역을 빠져나와―쫓겨났다―통제관들의 거주 구역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동식 해양 플랜트가 도착하기 전까지 통제관들의 집에서 머무르기로 한 것이다.
본래 이런 일이 없었다면 조명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초대형 크루즈선의 정식 주민으로 등록되어 안락한 삶을 영위했겠지만, 통제관들은 그곳은 너무 위험하다며 날뛰는 조명을 강제로 구금했다.
‘드디어 나 같은 놈도 럭셔리한 크루즈선 위에서 선상 파티를 즐길 수 있나 싶었는데…….’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국방부 장관에게 달려가 자신도 크루즈선에 들여보내 달라고 매달렸다. 분위기가 험악한 건 험악한 거고, 어쨌든 크루즈선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은 슬픈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고, 조명은 조명대로 통제관들에게 제압당했다.
‘통제관들이랑 사이가 안 좋은 건 알겠지만, 사실 나는 별 관계 없지 않나?’
새삼스럽지만, 독립 탐사권을 주장한 것도 조명이 아니라 통제관들이었다.
조명이 한 일이라곤 멍청하게 서서 어른들만의 고급스럽고 유려(?)한 욕설이 오가는 대화를 잠자코 들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저들 멋대로 ‘OK! 독립 탐사권! 땡큐!’해 버리며 결정지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조명이 이동식 해양 플랜트가 아니라 통제관들의 거주 구역, 그중 1004 의무관의 스위트 하우스에 머무르게 된 이유는 실로 단순했다.
11500이 언급한 이동식 해양 플랜트는 사실 이미 완성되어 진수식만을 앞둔 상황이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진수식을 하며 세간에 화려한 데뷔를 할 예정이었다던 그 배가 현재 진수식도 가지지 못하고 헬 게이트로 오고 있었다.
때문에 모두와 함께 이동식 해양 플랜트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 내 집 같은 편안함. 애송이, 라면 하나 끓여 와라.”
“저도 일단 헬 다이버라 공짜는 안 되는데요.”
“얼마야? 얼마면 돼?! 얼마면 널 살 수 있지?!”
요 근래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살고 있는 666의 추태에 조명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8282와 11500은 행여나 국방부가 딴짓하지 못하도록 손을 쓰겠다며 나가 버렸고, 13이라 불리는 산만 한 덩치의 통제관은 ‘뜻을 함께할 자들을 모아 오겠다’라며 또 어디론가 가버렸다.
결국 남겨진 것은 조명과 666뿐이었다.
“그리고 의무관님이 집에서 라면 냄새 풍기면 죽… 살려 버린다고 하셨는데요.”
“아, 그 깐깐한 년! 자기도 만날 패스트푸드만 처먹고 살면서! 그럼 볶음밥 한 그릇 쌈빡하게 볶아봐!!”
놈인지 년인지는 알 바 아니지만, 조명은 그의 시어머니 같은 잔소리가 듣기 싫어 부엌으로 향했다.
어차피 이동식 해양 플랜트에 입성하게 되더라도 통제관들과 함께하게 될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지금이라도 적응해 두는 편이 나았다.
자취 경력 자체는 짧지만, 조명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먹고사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알바를 하다 보육 시설의 식사 시간에 늦어 밥을 못 먹을 때가 일상다반사였기 때문에 간단한 요리 정도는 할 줄 알았다.
전자레인지에 냉동 볶음밥을 돌리는 것도 엄연히 요리에 해당하지 않겠나.
귀여운 토끼 그림이 잔뜩 그려진 이불을 덮고 거실에 누워 있는 666의 옆에 냉동 볶음밥을 내려놓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차광 마스크 위로 그릇을 들이부었다.
놀랍게도 볶음밥은 차광 마스크를 더럽히는 대신 그대로 흡수되어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봐온 광경이라 조명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항상 보면서 느낀 건데, 차광 마스크 안쪽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왜? 궁금해?”
“안 궁금한 사람이 있을까요?”
“궁금해하지 마. 알면 다쳐!”
또또, 저놈의 드라마병. 보통 드라마는 전업 주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백수에게도 마약 못지않은 중독성을 자랑했다.
조명은 문득 666의 검은 차광 마스크에 주먹을 메다꽂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의 안면을 강타할지, 소화기관을 강타할지 모르니 마치 슈뢰딩거의 차광 마스크가 아닌가.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자신도 이불을 덮고 누워 있을까 고민하던 도중, 조명은 갑작스럽게 도착한 메시지에 화들짝 놀랐다.
통제관을 통해 새롭게 구입한 스마트폰의 연락처는 몇몇 지인들을 제외하면 아직 아무도 몰랐다.
연락처를 함부로 뿌려 댔다간 여기저기서 꼬이는 ‘한입만충’도 많을 테고, 무엇보다 조명은 기자들이 들러붙는 것이 싫었다.
과거, 조명이 머물던 보육 시설에 자원 봉사단으로 위장한 유명인과 기자들이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일이라곤 기사를 쓰기 위해 보여주기식 제스처를 취한 것이 전부였다.
실질적인 도움도 없고, 보육 시설의 열악한 상황을 알리는 사회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취약 계층의 환경을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데 쓰고 나 몰라라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딱히 나쁜 의도가 없어도 기자들과는 영 친해질 수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연락이 온 것도 기자였다.
‘통제관 거주 구역의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다. 인터뷰를 할 생각은 없으니, 일단 만나만 달라? 이게 말이야, 똥이야?’
보나마나 화제 속의 유명인과 꼭 만나보고 싶었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은근슬쩍 인터뷰를 유도할 것이 빤했다. 그것도 아니면 가볍게 잡담을 나누는 것도 몰래 녹음해서 마치 정식 인터뷰를 한 것처럼 기사를 써낼 것이다.
어느 쪽이든 조명에게 득 될 것은 없었기에 잠자코 이불로 들어가려던 찰나!
[야, 이 반동자 새끼야!!]TV 속에서 군복을 입은 대머리 대령이 자신의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젊은 장교에게 배추김치를 채찍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감명 깊게 바라보고 있는 날백수가 한 명… 아니, 한 놈.
‘일단 나가자.’
괜히 집에 있다간 배추김치로 뺨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명은 서둘러 외출했다.
이미 헬 다이버 승격식은 모두 끝나고 대부분의 기자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터인데, 어째서 기자가 아직까지 남아 통제관 거주 구역에 들어왔는지 알아볼 겸 조명은 발길을 서둘렀다.
“예, 예, 예! 맡겨만 주십시오!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통제관들의 거주 구역, 좋게 말하면 통제관들의 놀이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화물 선박 위에서 한 남자가 연신 고개를 숙여 댔다.
화상 통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양손으로 공손하게 스마트폰을 쥐고 엄청난 영광이라는 양 자신을 굽히는 모습은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모습이었다.
몇 번이고 ‘예예’거리던 남자는 겨우 통화를 종료하고 굽은 등을 조금 폈다.
올해 32세. 정민 그룹 내에서도 비밀에 부쳐진 미래전략기획실 소속의 박현성 팀장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얼마 전 정석두 회장의 명령을 받은 주전만 실장에게 떠밀려 해양 플랜트에 잠입한 참이었다.
정민 그룹은 자신이 받아야 할 몫의 파이를 대부분 얻지 못해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다른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이라, 정부에선 뛰어난 헬 다이버들을 기업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기업의 인간들이 해양 플랜트에 발조차 들이지 못하도록 선수를 쳤다.
순수한 연구나 노동 목적의 인간이 아닌 이상 엄격한 출입 통제를 받고 있기에 박현성이 잠입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며칠 전부터 이곳에 잠입하려고 얼마나 많은 뒷돈과 더러운 수단을 썼는지, 카메라맨만 동반했더라면 벌써 영화 한 편은 찍었으리라.
다행히 수척한 인상에 땀에 절어 후줄근한 작업복, 며칠 동안 다듬지 않은 티가 역력한 수염은 누구도 그를 기업 소속의 인간으로 보지 않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군인들은 약간의 뒷돈(헬 코인)을 받고 이 향락에 젖은 공간에 현성을 쉽게 들여보내 주었다. 현성 말고도 다른 작업자나 군 장교들이 심심찮게 드나드는 곳이기에 상대적으로 통제가 덜했다.
‘감시, 추적, 견제까지 조심하면서 그를 만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음을 굳게 다잡은 현성은 어리숙한 노동자를 흉내 내며 통제관 거주 구역의 초입 근처를 서성였다.
목적은 최초로 1급 통제관 다섯과 함께 독립 탐사권을 주장한 헬 다이버 박조명. 아직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기업들이 해양 플랜트 곳곳에 심어둔 정보원들 사이에선 유명한 인물이었다.
정석두 회장은 그를 반드시 확보하여 별도의 희귀 자원 공급 루트를 형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바 있다.
만약 박조명이 정말로 세계 최초로 독립 탐사권을 인정받고 안정적으로 헬 게이트에서 독립 탐사를 할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이 썩어 빠진 희귀 자원 유통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이 파이를 가져가지 못한 탓에 정부와 국방부가 지금도 시장을 독점하며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하고 있지. 회장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실 만해.’
기업과 계약한 헬 다이버들은 정말 몇 안 된다. 애초에 그들은 가장 가깝고 절차도 복잡하지 않은 국방부와의 거래를 우선시했으며, 동시에 통제관들에게도 일정 공급량을 나눠 주고 있었다.
이러니 기업이 희귀 자원을 확보하려면 국방부를 통해 구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또 각종 세금을 비롯해 국가가 보증한다는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어마어마한 가격이 붙었다.
기업 입장에선 파이를 못 먹은 것도, 헬 다이버와 직접 계약을 하기 힘든 것도 서러운데, 비싼 돈까지 내가며 희귀 자원을 사들이고 있으려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그러던 중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독립 탐사권 주장 사건.
당연히 박현성을 비롯해 많은 기업의 하수인들이 그를 탐내고 있었다.
가능한 한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끔 가게를 구경하고 있던 그때, 현성은 저 멀리서부터 이상하리만치 통제관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박조명 헬 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