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5
헬 다이버즈 004화
4화
조명은 혹시나 하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짜증 반, 기대 반이 섞인 얼굴로 선착장에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을 뿐, 조명처럼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조명이 곧잘 드나들곤 하던 노가다 판에서나 볼 수 있었다. 모두가 귀찮고 짜증 나지만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다는 그 특유의 분위기!
“이 아저씨,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왔나 보네. 진짜 팔려오기라도 한 거예요?”
“아니, 전 대체복무로 온 건데…….”
“풉! 예? 대체복무?! 아니, 이 아저씨가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으면서 왜 정신줄은 놓고 다니실까? 요즘 같은 세상에 대체복무가 어디 있어요?”
“군의관이 주선해 줬는데요.”
“와…….”
그는 반쯤 태운 담배를 바닥에 떨구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조명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진짜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예요? 대체복무제도 사라진 지가 언젠데. 아, 그건가? 군대 빼먹으려는 사람들 속여서 소개비 받고 해양 플랜트에 밀어 넣는 사기꾼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거기에 딱 걸리셨네.”
“…사기라고요?”
“아니, 뭐,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기는 아니겠죠. 어떻게 그런 걸로 대놓고 사기를 치겠어요. 그냥 딱 봐도… 아저씨처럼 어리숙한 사람 대충 말로 속여서 동의 받아낸 다음, 현역 입대한 걸로 처리했겠죠. 그 상황에서 녹음을 해둔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보통 누가 신체검사 받으러 가면서 녹음기를 지참하겠느냐마는, 애초에 조명은 뭘 챙기고 할 것도 없이 정신 차려보니 군의관 앞이었다.
“거봐요. 증거 못 만든다는 거 빤히 아니까 내륙에서 꿀 빨게 하는 대신 그쪽에서 교묘하게 해양 플랜트로 밀어 넣은 것 같은데요? 당연히 전산 처리는 정상적으로, 입대 방향은 사기로 바꿨을 테니 설명이고 뭐고 듣지도 못한 게 당연하지.”
“…….”
어쩐지 일이 술술 풀린다 했다. 생각해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대체복무제가 없다는 것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워낙 다급했던 조명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우리야 처음부터 부족한 인력 메꾼답시고 그에 맞는 대가를 받고 해양 플랜트로 들어가긴 하는 건데… 아저씨는 그냥 낚인 거예요.”
“와! 와! 이런 씨!!”
조명은 순간 육두문자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초인적인 힘으로 참아냈다.
“…힘내요.”
그런데 역시 못 참겠지 싶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쌍욕을 내뱉기 시작한 조명은 미친 듯이 발광했다.
급기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남자들이 달려들어 강제로 제압하기 전까지 조명은 세상 모든 것을 저주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빌어먹을! 그 개자식이!! 나라의 녹을 받아 처먹는 새끼가 감히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쳐?!”
“조용히 해! 후보생!!”
“누가 후보생이야!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 줘! 내가 그 새끼 고소해 버릴 거니까!!”
“일단 기절시켜! 배에 실어버리면 그만이야!”
“이런 썅! 너희들도 한패야?! 이거 안 놔… 으엑?!”
빠악!
누가 힘차게 뒷목을 걷어차 날뛰던 조명을 단번에 기절시켰다.
그런 후, 축 늘어져 노끈으로 꽁꽁 묶이는 그를 십수 명의 남자들이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미 군대를 다녀온 자들, 아직 군대는 다녀오지 않았지만 인터넷으로 대체복무 사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는 자들은 조명이 처한 상황을 단번에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조명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3년 동안 의무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운이 좋으면 다른 방식으로 벗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3년간 열심히 구르기만 하겠지.
자신들이야 정해진 할당량만 채우면 다시 이 땅을 밟을 수 있으니까. 사실 신경 쓸 필요도,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 * *
인생이란 뜻대로 사는 것보다 잘사는 것이 더 힘들다.
양팔이 없는 장애인도 화가가 될 수는 있지만, 부족함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기란 어려운 법.
조명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자신의 뜻대로 살지 않아도, 떵떵거리며 잘 살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것이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가족이 있었으면 싶고, 이렇다 할 재능이 없어도 무난한 학창 시절을 원했다.
설령 변변찮은 직장에 취직한다고 해도 사회의 불편한 시선이나 빚더미가 자신을 괴롭히지 않기만을 바랐다.
남들이 100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정의한다면, 조명은 10… 아니, 1이라도 상관없으니, 밑바닥 인생일지라도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최소한 평범한 인생이라면 마음 편히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랬다면 바로 지금처럼 누군가가 발로 툭툭 차서 잠을 방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후보생, 기상합니다.”
“어떤 옐로우 싹수가 남의 꿀잠을… 커헉?!”
빡!
무방비한 옆구리로 강렬하게 치고 들어오는 묵직한 타격에 조명은 헛숨을 토해냈다.
분명 맞은 건 옆구리인데 눈앞에 별이 번쩍일 만큼 강력한 한 방이었다. 만약 배 속에 뭐가 들어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모두 토해 버렸을 만큼.
“후보생, 세 번 말하지 않습니다. 기상합니다.”
“어우, 으으…….”
뒤늦게 깨어난 감각은 쓰라린 뒷목과 얼얼한 옆구리가 위중한 사태임을 알려주었다.
여기서 더 맞으면 또다시 기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명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명의 앞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곳은 차광막으로 가려져 있어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좋습니다, 후보생. 앞으로도 본 통제관이 두 번 이상 말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하십시오.”
후욱, 후욱…….
방호복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귀에 거슬리는 숨소리와 쇠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의 말을 거역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신을 통제관이라고 소개한 남자의 덩치는 20대 남성 평균 수준인 조명보다도 조금 더 비대했지만, 실은 두꺼운 방호복을 입고 있는 탓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름 박조명, 나이 21세, 가족 모두 사망, 형제 없음.”
“…….”
그는 어디서 손에 넣은 것인지도 모를 서류 한 장을 들고 차근차근 읊어 나갔다. 주변이 워낙 시끄럽고 따가운 햇볕으로 피부가 타는 듯했지만, 조명은 그의 말에 최대한 집중했다.
자신의 개인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빌어먹을 사기꾼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7월 26일, 오전 7시를 기점으로 해당 후보생은 본 통제관의 통제하에 들어왔습니다. 의무 복무이기에 따로 주어지는 할당량은 없으며 복무 기간 3년을 끝마치거나, 그 안에 후보생 신분을 벗어날 경우에만 본 통제관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됩니다. 이에 후보생은 법적으로 명시된 해당 사항을 통제관과 함께 확인하였으므로 지금부터 11500번 통제관의 산하에 소속됩니다. 이의 혹은 질문이 있습니까? 5초 주겠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발언을 허가합니다.”
조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멀쩡하게 3년 복무를 해야 하는 것을 되돌릴 수는 없을 터. 게다가 사기를 당해서 온 것이기에 이곳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눈앞의 통제관인지 뭔지 하는 양반이 굉장히 꺼림칙하지만, 우선 궁금한 것부터 질문하기로 했다.
“이곳은 정확히 뭘 하는 곳입니까?”
“급하게 보충된 인원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까? 좋습니다. 이곳은 러시아와 일본, 대한민국의 영해가 뒤섞인 동해[East Sea]의 최중심부입니다. 이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모르더라도, 동해에 무엇이 생겼는지는 알고 있을 겁니다.”
“헬 게이트…….”
“맞습니다. 약 50만 제곱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동해의 수면 면적을 집어삼킨, 끝을 알 수 없는 구덩이. 그것을 가리켜 세간에선 헬 게이트라고 부릅니다.”
통제관은 갑작스럽게 조명의 신상 정보가 기재된 서류를 박박 찢어버리더니, 강렬하게 불어닥치는 바닷바람을 통해 미련 없이 날려 버렸다.
그랬다. 조명도 어렴풋이 짐작하긴 했지만, 자신이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세계 강대국들의 군대와 연구 인력, 개발 인력들이 총동원된 인류 최대의 마경 혹은 최다 국가 접경지, 일명 헬 게이트를 둥글게 둘러싼 각 나라들의 해양 플랜트 중 하나라는 것을 인지했다.
“이곳은 그 헬 게이트의 외곽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해양 플랜트입니다. 수많은 거대 선박이 겹쳐져 있으며, 그 위로 무려 5년에 달하는 지반 설치 및 선박 간의 연결 공사가 진행되어 현재는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있습니다. 명칭은 평범하게 대한민국 해양 플랜트이지만, 해양 플랜트에서 머무르는 각 나라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별도의 명칭도 존재합니다.”
통제관은 손을 들어 조명의 어깨 너머를 가리켰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조명은 매우 익숙한 단어를 볼 수 있었다.
헬조선[Hell of South Korea].
왜 조선이란 단어를 영어로 기재하지 않았는지 모를 화려한 페인팅이 거대 선박의 함교에 떡하니 그려져 있었다.
활활 불타고 있는 한반도 그림을 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용케도 가만히 내버려 뒀다 싶었다.
‘하긴 윗대가리들도 양심이 있으면 저런 걸로 뭐라고 하면 안 되지.’
문자 그대로 지옥에 딱 걸맞은 나라가 아닌가. 인생의 대부분을 웰던으로 바싹 익혀진 조명에겐 오히려 당연한 명칭이었다.
“후보생은 앞으로 본 통제관의 통제에 따라 헬조선 해양 플랜트에서 3년간 의무 복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물론 꼭 3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복무 기간 같은 건 이제 와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멍청하게도 낚여 버린 물고기였으니까.
“그보다… 정확히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의무 복무자들은 할당량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각 통제관의 재량에 따라 훈련을 받고, 적정 수준의 탐사 및 자원 채취를 하게 됩니다.”
탐사와 자원 채취라는 말에 조명은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거대 해양 플랜트에서 탐사와 자원 채취를 할 만한 곳은 단순히 해저가 아닐 것이다. 평범한 바다야 이미 잠수함과 각종 로봇을 이용해 충분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을 터.
남은 것은 얼마나 깊은지도 모를 헬 게이트뿐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본 통제관은 통제가 시작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신병을 사지로 내몰진 않습니다. 그러니 후보생은 겁을 먹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은… 저 같은 신병이라도 사지로 내모는 통제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
통제관은 조명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만 하고는 먼저 갑판 위를 걸어 나갔다.
“…왜 정부가 여기에 인력을 갈아 넣는지 알겠네.”
순간, 자신의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백수 한량의 말이 떠올랐다.
빚쟁이든 범죄자든, 직업을 구하지 못해 빌빌대는 식충이든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노숙자든.
건장한 대한민국 2~30대라면 죄다 긁어모아서 갖다 박는 곳이 바로 이곳, 헬조선 해양 플랜트였던 것이다.
20대 남성의 의무 병역 비율을 갑작스럽게 높인 것도 이해가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타국과의 충돌을 우려해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그 실체는 이 해양 플랜트를 유지하기 위한 윗대가리들의 농간이었다.
대한민국 남성으로서 울컥, 눈물이 나오는 뒷사정이었다.
조명은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통제관을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더플 백을 짊어졌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꽤나 묵직했다.
하지만 통제관을 따라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조명은 눈치채지 못했다.
이 해양 플랜트가 동해 한복판에 건설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금과 자재, 그리고 ‘목숨’이 투입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또 얼마나 투입될 예정인지.
지옥에서의 진짜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