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52
헬 다이버즈 051화
51화
잠자코 빨빨거리는 젤리를 따라나선 조명은 차량으로 5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를 걸어 이글루를 백 배쯤 거대화시킨 건물 앞에 당도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유리 돔의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투명한 튜브관이 건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튜브는 건물 외곽에서 뻗어져 나와 거리나 다른 건물로 이어졌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시설입니다. 총괄 관리처라는 명칭이 어울리는군요.]“보통 주요 시설을 사령부라고 부르는데 그러지 않는 걸 보니, 이 녀석들은 군인이 아닌 모양이지?”
[군인들은 사령관을 포함해서 자신들의 몸을 폭발 에너지로 변환해 침략자와 자폭했다고 합니다.]“…….”
텅 비어 있던 외부 함포, 거의 바닥난 배터리 통 여러 개, 누구도 손대지 않은 총기와 굳게 닫혀 있던 출입문.
조명은 입안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씁쓸함에 입을 다물었다.
[현재 이들은 부족한 설비로 인해 소량의 태양열을 에너지로 변환해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리 돔 외부에 설치된, 반투명한 막 몇 개가 바로 태양광 패널입니다.]“진짜 목숨만 부지해 왔다는 거네. 갑자기 미안해지려고 하는데.”
[다이버는 어디까지나 방문자일 뿐입니다. 헬 다이버가 어떤 이유로 헬 게이트에 잠화하는지 잊지 마십시오.]안전 모드의 위로 아닌 위로를 들으니, 조명의 불편하던 기색이 한결 가라앉는 것 같았다.
젤리의 안내를 받아 시설 내부로 들어간 조명은 어두컴컴한 내부에서 유독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다수의 젤리 덩어리를 발견했다.
바이저에 차광 처리가 되어 있어 눈이 아프진 않았지만, 저 종족은 모두 1초라도 빛을 발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건가 싶었다.
[현 대표자가 다이버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인터뷰 따고, 돈 될 것도 챙기려면 당연히 들어줘야지.”
안전 모드가 조명의 의사를 담아 라이트로 답하니, 곧바로 무리들 중 가장 크고 가장 심하게 꿈틀거리는 젤리가 반구형 의자에 몸을 싣고 날아왔다. 저 의자가 저런 용도였다는 걸 누가 감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라고 해. 그리고 그건 로그로 기록 남겨두고. 대화 기록 정도는 남길 수 있을 것 아냐.”
[노력해 보겠습니다.]기계가 노력을 하겠다니, 썩 괜찮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몇 번의 광(光)기에 찬 대화가 이어졌을까. 조명이 하품을 내뱉기 직전, 때마침 대화를 끝낸 안전 모드가 저들의 목적을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합니다.]“뭐?”
조명은 어처구니가 없어 되물었다.
“이 덩어리들의 집이 어딘데?”
중국의 공장 폐수로 오염된 강이나 바다보다 더 끈적거릴 것 같은 덩어리들의 집이라니. 어쩌면 저들은 거대한 젤리 행성에서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은하계를 가로질러야 한다는 것만 확인했습니다. 그 이상의 정보는 해독할 수 없었습니다.]“나 같은 구인류는 알아볼 수 없는 발광 패턴을 너는 알아볼 수 있다며?”
[본 AI에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로는 해독할 수 없는 수준의 정보였습니다. 따라서 발광 패턴을 확인했다고 한들,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예를 들어 옆집 바둑이가 ‘왈왈!’ 짖은 것을 어떠한 의사 표현이라고 짐작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어차피 지금의 인류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등 생명체의 특수한 언어라느니 같은 말을 지껄일 게 빤했다. 그래서 조명은 단번에 안전 모드의 말을 잘라냈다.
“불필요한 정보는 됐어. 어쨌든 저쪽에서 자기들 좀 도와달라고 했다는 거 아냐? 그럼 도와주면 되지.”
[얘기를 들어보니 다이버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계산 결과, 임무 수행 중 사망 확률이 81%로 도출되었습니다.]“19%나 생존 확률이 있네.”
[19% 중 14%는 반신불수가 되어 살아남을 확률입니다.]멀쩡하게 살아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5% 남짓. 그 정도면 안전 모드도 우려를 표할 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조명이 현재 착용하고 있는 5레벨 부분 구현화 슈트의 성능은 지난 한 달간 확실하게 증명된 바가 있다.
높은 내구도와 급격한 열 변화에 대한 내성 및 자가 수복 기능. 거기에 한술 더 떠 훌륭한 생명 유지 장치와 근력 보조 기능은 신참 헬 다이버에겐 과분한 물건이라는 평이 자자했다.
그런 주제에 조명이 후보생 시절 획득해 둔 능력들도 만만찮았다. 슈트로도 전부 커버할 수 없는 몇몇 위기 상황들은 이 능력을 이용해 모면하기도 했다.
신참 헬 다이버 중에선 압도적인 재능충, 혹은 운빨충이라고 불리는 조명에게 절망적인 생존 확률이 부여된 것이다. AI도 걱정할 만큼 심각하긴 했다.
“제트 팩의 연료는 얼마나 남았지?”
[이미 상당량을 사용했기 때문에 56% 정도 남았습니다. 헬 게이트의 ‘억지력’을 벗어나, 화표면의 위로 상승하기 위해선 최소한 75% 이상의 연료가 필요합니다.]“그럼 답은 정해졌네. 이제 와서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방법은 없어. 그럼 저 젤리 종족을 도와주고 뭐라도 건져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이 행성을 탐사하며 지하자원을 확보한 뒤, 빠져나가는 무난한 방법도 있습니다.]“그건 안 될걸.”
조명은 이곳까지 오면서 겨우 알아차린 것이 하나 있었다.
이 위성에서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캐낼 수 있는 지하자원 따윈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우리가 폭파시킨 배터리 기억나? 거기에 응축된 에너지는 이 위성의 지하에서 캐낸 광물들을 정제해서 만든 것들이었어. 그리고 바깥의 괴물 놈들은 태양열도 모자라 그 에너지까지 탐내는 모습을 보였지.”
우습게도 놈들은 땅을 파고들어 갈 수 있는 능력까지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가. 인간의 힘으로 파낼 수 있는 구간의 광물들은 저 괴물들이 진즉에 파내서 먹어 치웠을 것이다.
‘어쩐지 땅굴을 파도 파도 광맥은커녕 자투리 광석 하나 보이지 않는다 싶었지.’
헬 게이트의 특성상 그 어떤 장소라도 노다지가 될 수 있다. 채광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인간이라도 우직하게 땅을 파다 보면 돈다발을 거머쥘 수 있는 황금의 낙원인 셈이다.
그런 곳에서 에너지에 미친 괴물 놈들을 만났으니, 조명이 주워 먹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안전 모드도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는지, 조금 더 딱딱해진 어투로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복귀를 선택하지 않은 다이버의 100% 과실입니다.]“그래. 멍청하게 돌아갈 타이밍도 놓치고, 저 젤리들에게 코가 꿰어버렸지. 그러니까 이왕 코 꿰인 김에 좋은 일이나 한 번 해보자고.”
그리고 광물을 손에 넣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했지, 돈 될 거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었다.
“정확히 뭘 도와주면 되는데?”
[저들이 말하길, 이 시설 전체가 소규모 워프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는 우주선이라고 합니다. 본래의 사용 목적은 안전하게 이 위성으로 차원 도약하기 위한 워프 게이트를 생성하는 ‘지표’ 역할이었다고 합니다만, 에너지의 보급이 끊긴 시점에서 소수의 인원들만을 이동시킬 수 있는 점프(Jump)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합니다.]“고향에서 구조는 오지 않는 건가?”
[마지막 교신이 좋지 않게 끝났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저들의 고향 또한 침략자에 의해 변고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다짜고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와달라기에 향수병이 심하게 도진 건가 싶었지만, 알고 보니 저들은 고향이 걱정되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난날 동안 구조는커녕 연락마저 없었다고 하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젤리지만.
안전 모드는 조명이 해야 할 일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주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에너지 정제 시설의 확보입니다. 에너지 정제 시설은 그 어떤 시설보다 견고하기에 침략자들과의 전쟁에서도 손상을 입지 않았으니,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대량의 정제 에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그 괴물들이 지키고 있던 중심지의, 거대한 탱크들이 늘어서 있던 공장?”
[예. 저들은 전투 능력이 극도로 떨어지는데다 괴생명체들과는 상성이 맞지 않아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다이버가 접근 권한을 부여받아 직접 공장으로 침투, 비상 차단된 에너지 튜브를 이 시설로 연결해야 합니다.]“저 괴물들만 뚫어낸다면 일사천리네. 사망 확률을 80% 이상으로 잡을 필요가 있나?”
[진짜는 그다음부터라고 합니다. 저들이 워프 게이트를 생성하면 필시 그 낌새를 눈치채고 이 위성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괴생명체들이 몰려들 겁니다. 고작 이런 위성에선 느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양의 에너지 소모와 엔트로피의 변화에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아아…….”
조명은 멍한 얼굴로 손뼉을 쳤다.
“그걸 전부 내가 맡아라?”
[‘자신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라는 것이 조건입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상남자 스타일을 고수하던 조명은 어느새 변기 위에 앉은 남자마냥 고민에 빠졌다.
저 젤리 덩어리들이 워프 게이트인지 나발인지 하는, 무척이나 대단해 보이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이 목숨 바쳐 저들의 피난을 도울 만한 가치가 있는지부터 판별했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그만한 가치는 없었다.
누가 뭐래도 자기 목숨이 가장 중요한 법이고, 조명은 이제 막 신참 헬 다이버로 활동하며 조금씩 밝은 미래로 걸어 나가던 참이다.
솔직히 말해서 안전 모드가 도출한 생존 확률 5%조차 0.5%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될 지경.
정말, 정말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눈물이 찔끔 흐르려고 하지만… 조명은 저들을 속이고 에너지 정제 시설에서 제트 팩 연료만 확보한 뒤 그대로 탈출하고 싶었다.
상남자 스타일이고 뭐고 살아야 돈도 벌고, 미녀랑도 어울릴 것 아닌가. 덧붙여서 젤리 덩어리랑은 영영 어울릴 일이 없을 것이다.
‘양심에 찔리지만 어쩔 수 없…….’
마지못해 저들의 의뢰를 수락한 척하고 공장의 접근 권한을 받으려는 순간.
조명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마치 전기가 나가 버린 것처럼 시각이라는 감각 자체가 소멸해 버렸다.
갑작스러운 이상 사태에 손발을 미친 듯이 허우적거리며 소리치려 했지만, 순식간에 다른 감각들마저 사라져 버렸다. 오직 정신만 멀쩡한 채 육체가 지닌 모든 혜택과 기능들을 박탈당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암전된 시야가 어두운 영화관에서처럼 다시 확 밝아졌다.
그리고 그곳엔…….
“으아아아아아!!”
전신이 비늘로 뒤덮인 네발짐승에게 쫓기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커, 허어어어…….”
젤리들에게서 빌린 우주복을 입고 공장으로 향하다 무수한 가시들에 꿰뚫린 ‘자신’이 있었다.
“부그르르르르르!”
잠수복을 입고 뛰어든 바다속에서 사지가 찢겨 나간 채 가라앉는 ‘자신’이 있었다.
“죽어! 죽어!!”
근육이 끝내주는 군인들과 함께 촉수 괴물들과 싸우는 ‘자신’이 있었다.
모두 지금껏 잊고 있던 ‘자신’이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처럼 올라오는 단 하나의 참담한 결과.
― 성공률 0%.
“쿨럭! 쿨럭! 크흐으으으읍…….”
마치 육체로부터 완전히 떨어진 정신이 복귀한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속이 뒤집어졌다.
조명은 연달아 기침을 하면서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되돌리려 애썼다. 안전 모드는 경고음을 내뱉으며 ‘신경 안정제를 주입하십시오’를 반복하고 있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다이버, 즉시 신경 안정제를 주입하십시오. 안구의 떨림과 거친 호흡, 대량의 호르몬 분비로 보건대,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입었을 것입니다.]“아니, 아니야. 괜찮아. 이건 ‘그런 게’ 아니야.”
개가 물을 털어내는 것처럼 고개를 몇 번이나 흔들어준 뒤에야 조명은 제정신을 차렸다.
그런 기억을 밖에선 잊고, 안에선 다시 떠올리고…….
대체 얼마나 이 짓거리를 반복했으면 슈트의 정신 상태 감지 기능이 오작동까지 일으켰겠는가.
조명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는 위액을 억지로 삼키며 말했다.
“한다. 저 사람들 전부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어.”
[진심입니까, 다이버?]“난 언제나 진심이야.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어.”
조명은 자신을 대표자라고 밝힌 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기억 속에서의 ‘자신’도 맨몸으로 이곳에 떨어져 저들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이제야 겨우 알았다.
이게 바로 자신이 맡은 ‘일’이다. 통제관들에게 선택받은, 박조명이라는 헬 다이버가 해야 하는 일.
그들 중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자신이 진짜 목숨을 걸고 처리해야 할 의무.
조명은 아직도 뒤죽박죽 상태인 기억을 냉정하게 정리했다.
‘조금 전에 본 기억들은 실제로 내가 겪은 경험들이 아니야. 일종의 선행 학습 같은 것이지. ‘아직’ 겪지 않은 것들이야.’
자신의 정신, 자신의 육체… 그 어떤 것도 기억 속의 감각을 친밀하게 느끼지 않았다.
마치 정상적인 기억 속에 비정상적인 기억을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한 감각이었다. 그럼에도 부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단지 불편했을 뿐.
‘선행 학습이란 말도 웃기지만… 그것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자신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모두 끔찍하게 살해당하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복귀’했다.
기억 속의 체험이 모의고사라면, 지금 이 상황은 실전 수능 시험.
재도전은 허락되지 않고, 예비 목숨도 없으며, 쉴 새 없이 전략을 바꿔 나갈 여유도 없다.
엔딩은 딱 한 번뿐이겠지만, 그것으로 정말 모든 게 끝나 버린다.
“모의고사에선 죄다 물 먹었다고 수능에서도 죽 쑤리란 법은 없지.”
대표자가 건네준 초록빛의 둥근 구슬을 받아 든 조명은 그것을 바디 캠 수납공간에 밀어 넣었다. 크기가 딱 알맞았다.
지금이라면 느낄 수 있다, 저들의 의사가 담긴 시선부터 몸짓 하나하나까지.
조명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집으로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