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55
헬 다이버즈 054화
54화
사진을 그대로 걸어둔 조명은 안전 모드의 안내에 따라 설비들을 조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버튼이나 레버 아래에 모스 부호로 이루어진 명칭이 쓰여 있어 인간인 조명도 쉽게 조작할 수 있었다.
멀쩡하지 않은 설비들은 모두 작동을 중단시키고, 남은 동력을 모두 에너지 저장 탱크에 집중시켰다. 흩어져 있던 에너지들을 한데 모으니, 탱크 두 개 분량을 채우고도 10% 정도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었다.
고장난 설비들은 자동화 시스템의 ‘오류 제거 기능’을 이용해 재활용 창고로 치워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예비 부품들로 채워 넣거나, 아예 연결을 차단해서 다른 설비에 문제를 끼치는 일이 없게끔 했다.
모두 안전 모드와 자동화 시스템이 잘 구현된 공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조명 혼자였다면 아무것도 못했으리라.
“이제 에너지 보급용 튜브의 차단을 해제하기만 하면 돼. 탱크 두 대 분량을 우선적으로 보낸 뒤, 나머지 한 대 분량은 실시간으로 채워서 보내면 문제없겠지.”
[설비에 피해가 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선 그렇습니다.]사실 남겨진 10%의 에너지는 이 시설의 동력으로 돌려야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에너지는 탱크 한 대 분량.
솔직히 말해서 좀 버거운 양이긴 했다.
“그럼 망가진 설비들을 재활용해서 이 시설에 딸린 소형 부품 제작 설비로 쓸 만한 장비를 만들고 싶어. 가능하겠어?”
[본 AI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엑소 스켈레톤 슈트를 조립식으로 제작 가능합니다.]곧 바이저에 엑소 스켈레톤 슈트의 구상도가 나타났다.
엑소 스켈레톤 슈트의 초기 제작 목적은 군용 겸 산업용으로, 일반인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들어 올리거나,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함이었다.
사업성이 뛰어나 한때는 미국과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개발하기도 했다는데, 현재는 헬 다이버 슈트의 보급형인 ‘워커 슈트(Worka Suit)’가 민간에 보급되면서 엑소 스켈레톤 슈트는 사실상 묻혔다고 한다.
구시대의 데이터가 왜 AI에게 남아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명은 곧장 엑소 스켈레톤 슈트를 제작하라고 명령했다.
자신의 5레벨 슈트의 외부 장갑으로 활용하면서 부족한 근력 기능 시스템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요량이었다.
[재활용 금속들을 이용해 제작에 들어갑니다.]안전 모드가 일러주는 대로 버튼을 누르다 보니, 컨베이어 벨트가 재활용 금속들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새로운 무장도 확보하고 싶어. 놈들을 일일이 파일 벙커로 때려 박아서 죽이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이 물총은… 에너지 분사 무기니까 소용없겠지.”
물총은 쓸 일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수납함에 넣어버렸다.
안전 모드는 그 점도 계산하에 넣어뒀는지, 또 다른 구상도를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좀 더 효율적으로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였다.
[제품명은 ‘Big Fucking Stuff’입니다. 4년 전, 미국의 한 민간 무기 개발자가 제작해서 군 제식 무기로 등록해 달라며 소란을 일으켰던 화제의 무기이기도 합니다.이름대로 크고 아름답긴 했다.
1m 길이의 두꺼운 철심 손잡이에 날카롭고 두꺼운 추가 달린 면과 평평한 면이 존재하는 대형 해머였다.
아무래도 제작자는 엑소 스켈레톤 슈트를 착용한 군인이 사용해 주길 바랐는지, 최대한 크고 아름답게, 그리고 적을 무자비하게 박살 낼 수 있는 형태로 무기를 설계한 것이 분명했다.
물론 크고 아름다운 게 좋은 조명은 단번에 OK 사인을 내렸다.
과거에도 철갑을 착용한 병사를 죽이기 위해선 날카로운 검이나 창보단 메이스 같은 둔기가 더 효과적이었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조명의 애독 채널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전신에 갑각을 두른 스팅들을 쳐부수기 위해선 파일 벙커보다는 이 해머가 더 괜찮을 것 같았다.
“제작해 줘.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소형 부품 제작 설비의 성능이 좋아 30분이면 충분합니다.]“좋아, 그럼 에너지부터 공급하자고.”
에너지 공급 튜브의 차단 기능을 해제하자, 느리지만 두꺼운 공급 튜브를 통해 탱크의 에너지들이 거주 시설로 공급되기 시작했다.
공급 튜브는 무척이나 두꺼워서 에너지의 흔적을 바깥으로 노출시키지 않았고, 애초에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스팅들에게 발각될 일도 없었다.
[거주 시설에 탱크 두 대 분량의 에너지가 모두 공급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두 시간입니다.]조명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여자의 고백을 받았을 때보다 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넌 여전히 내가 이런 짓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도덕성과 양심에 대한 자료는 충분히 갖춰져 있습니다만, 순수한 선의만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은 70억 인구 중 0.001%도 되지 않을 겁니다.]“맞아.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거든.”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1년 내내 착한 일을 하는 아이가 이런 기분일 것이라고, 조명은 솔직한 심정을 속으로 삼켰다.
이제 곧 장비가 완성되면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좋든 싫든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Big Fucking Stuff. 줄여서 BFS.
결코 BTS가 아니다.
[어떠십니까?]“아아, 마치…….”
불빠따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무게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성인 남성의 몸무게는 가볍게 넘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통짜 합금만 사용한 쇳덩어리라 엑소 스켈레톤 슈트로 근력을 보강하지 않았다면 조명도 다소 버거웠을 무게다.
[엑소 스켈레톤 슈트의 동기화 작업이 끝났습니다. 본 슈트의 예비 동력을 돌려 기동력을 확보할 것입니다.]“그 말은… 가능한 빨리 끝내라는 의미지?”
[맞습니다. 가능하면 제트 팩의 연료는 소모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주십시오. 언제나 당신의 안위가 최우선순위입니다.]‘지금도 부모님이 살아 계셨다면 이런 식으로 잔소리를 하셨을까?’
그건 희망사항일 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미래였다. 조명은 BFS 해머를 들고 공장의 후면에 위치한 광물 저장고로 향했다.
외부에서 들여온 광물은 모두 이곳에서 1차적인 불순물 정제 작업을 거친 다음,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광물 분해기로 운반되었다.
버튼을 눌러 출입구를 개방하자 감압 조정이 이뤄졌다. 다시 진공 상태의 우주로 발을 내딛자, 눈부신 빛이 반겨주었다. 물론 태양의 작열하는 빛은 아니었다.
거주 시설로 에너지를 공급한 지 얼추 30분이 넘게 흘렀다. 저들은 에너지가 공급되기 시작하자마자 곧장 워프 게이트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때문에 특유의 푸른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유리 돔 천장 안쪽에서 토네이도처럼 회전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유리 돔 하나만으로는 감출 수 없는 에너지의 파동과 엄청난 광량은 이 위성에 자리 잡은 괴생명체들을 죄다 끌어들였다. 그 증거로…….
“바글바글하네.”
산맥을 넘어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괴생명체의 무리가 보였다. 스팅들이야 이미 거주 시설로 향했기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지만, 먼 곳에서 찾아온 불청객들도 스팅 못지않았다.
[임시 개체명 스팅보다 체내 에너지 함량이 높은 개체가 포착되었습니다. 지금 바이저에 영상을 띄우겠습니다.]안전 모드의 센서가 먼저 감지한 적들 중 유독 에너지 함량이 높은 개체가 있었다.
검은색의 매끄러운 갑피를 자랑하는 거대 지네, 꽁무니가 유독 푸른빛으로 빛나는 거대 딱정벌레, 끔찍할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오른 살덩어리를 흔들어 대며 뒤뚱뒤뚱 걸어오는 이족 보행 개미까지.
“뭘 처먹고 자랐기에 하나같이 저렇게 생긴 것들뿐이지?”
[이 위성은 밤낮의 주기가 매우 짧습니다. 그 대신 한 번에 비춰지는 태양의 광량이 많아 적 개체 대부분이 땅속에서 숨어 지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태양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 지하로 파고들어 에너지를 내포한 광물을 찾아 섭취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성입니다.]“저 개미는… 아닌 것 같은데?”
이족 보행 개미는 어찌나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는지, 특유의 단단한 갑피 따윈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적이 개미를 보호하듯이 감싸면서 진군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요도가 어지간히도 높은 듯했다.
[순도 높은 에너지가 체내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화기로 연소시키면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킬 겁니다. 본 AI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전술전략을 검토해 본 결과, 저 개체는 단순한 ‘보급’ 개체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그 이상은 말하지 마. 토 쏠릴 것 같으니까.”
아주 잠깐이지만 개미의 거대한 꽁무니에 머리를 처박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지네를 본 것 같았다. 조명의 기억에도 분명 저것과 비슷한 개미를 본 적 있었다.
‘망할 놈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조명은 공장 안쪽에서 잔뜩 끌어온 고철이나 못 쓰는 부품 따위를 쌓아 임시 바리게이트를 세웠다. 그러고는 라이트의 불빛을 켰다 껐다 하는 식으로 적을 유도했다.
적 대부분이 거주 시설의 에너지 폭풍에 정신이 팔려 있지만, 개중에도 일부는 조명의 존재를 눈치채고 방향을 돌렸다.
가장 먼저 발길을 돌린 것은 등딱지가 환하게 빛나는 짝퉁 반딧불이였다. 꼴에 딱정벌레라고 자랑하고 싶은 것인지 다른 개체보다 유독 두껍고 우람한 갑피를 자랑했는데, 농구공만 한 눈은 정확히 조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뿔은 없지만 덩치는 스팅보다도 1.5배는 더 큰 녀석이었다. 스팅이 황소라면, 놈은 코뿔소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소리 없는 전장에서의 첫 조우전.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눈 에서 해일과도 같은 괴물의 군단이 움직이고 있어도, 미세한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다.
코뿔소같이 우직한 돌진으로 밀고 들어온 놈은 미리 앞에 쌓아둔 바리게이트를 있는 힘껏 들이박았다.
하지만 바리게이트가 한 방에 박살 나는 일은 없었다. 날카로운 쇳조각들을 말뚝 대용으로 마구 박아서 고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 육중한 BFS 해머로!
“내 망치 끝은 빛나고!”
해머가 심판을 내린다.
빠드드드드드득!
쇠 더미 속에 파묻혀 허우적대는 놈의 머리통을 강타한 해머는 너무나도 쉽게 갑피를 파고들었다.
망치 끝에 툭 튀어나온 추가 핀 포인트로 갑피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다.
[다이버, 나이스 샷.]“좀 더 감정을 담아서 응원해!”
[오늘 폼이 아주 죽여주십니다, 사장님.]“그렇지!”
엑소 스켈레톤 슈트의 힘을 빌려 깊게 박힌 해머를 단숨에 들어 올렸다. 조명의 양손에 들려 나온 해머의 끝에는 더러운 살점과 갑피의 파편들이 함께 딸려 나왔다.
몸길이만 해도 얼추 3m는 될 것 같은 녀석이 일격으로 머리가 터졌다. 스타트가 나쁘지 않았다.
“읏차!”
재차 내려친 해머는 거대 딱정벌레의 등딱지와 머리를 조각조각 분리해 냈다. 몇 번 두들겨 주면 과자처럼 박살 나는 것이, 제법 손맛이 있었다.
그렇게 조각난 사체는 농구공처럼 던져서 컨베이어 벨트로 실어 날랐다. 1차 가공을 거친 사체는 그대로 광물 분해기에 의해 에너지만 쪽쪽 뽑힐 것이다.
[지반의 이상 진동을 감지.]“억!”
기분 좋게 딱정벌레 하나를 조진 조명이 다음 타자를 기다리며 해머의 손잡이를 두들기고 있던 찰나, 갑작스럽게 발밑이 흔들렸다.
하마터면 균형을 잃고 나자빠질 뻔했지만, 조명은 재빨리 파일 벙커를 지면에 대고 격발시켜 자세를 고정했다.
조명이 엎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지상으로 대가리를 꺼내든 것은 조금 전의 괴물 군단에서도 독보적인 역겨움을 보여주던 지네였다.
흡사 사슴벌레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양날 집게 턱은 무엇이든 종잇장처럼 잘라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집게 턱 안쪽의 작은 입은 칠성장어의 빨판 같은 구조였는데, 먹잇감을 잘게 썰어 집어삼키는 용도가 분명했다.
평범한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면 그대로 상체와 하체가 양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5레벨 슈트에 추가 외골격을 탑재한 지금, 조명의 내구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슈트 안에서 외부 장갑을 긁어 대는 진동만 느껴질 뿐, 안전 모드도 경고음을 내뱉진 않았다.
“좋은 첫인상은 항상 반반한 얼굴이야. 그다음 몸매, 그다음이 돈!”
착하고 고운 마음씨 따윈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