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56
헬 다이버즈 055화
55화
조명은 자신에게 볼품없는 면상을 들이댄 지네의 양날 턱을 양손으로 쥐고 단숨에 꺾어버렸다.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자신의 자랑스러운 양날 턱이 부러진 것이 너무나도 비통했던 것일까, 놈은 격하게 몸부림치며 다시 굴속으로 파고들려 했다. 그것을 놓칠 리가 없는 조명이 뽑아든 양날 턱을 놈의 아가리에 쑤셔 박았다.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양날 턱에 걸려 버린 지네는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서비스를 받았으면… 값을 치러야 할 것 아냐!!”
버둥거리는 놈을 힘으로 끌어냈다. 몸길이만 해도 5m에 달하는 대형 지네는 조명의 손에 붙들려 머리부터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졌다.
컨베이어 벨트는 지옥의 입구처럼 천천히 안쪽으로 움직이며 놈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거기에 반발하듯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는 지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워, 조명은 주먹을 휘둘러 놈의 머리통을 으깨주었다.
그럼에도 신경이 남아 있는지, 연신 꿈틀대는 몸뚱아리는 해머로 찜질을 해주었다. 안 그래도 납작한 녀석이 쥐포 신세가 되어 축 늘어진 채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제 겨우 두 손님 받았는데 벌써부터 가게 접고 싶어지네.”
손수건이 있었다면 머리를 닦고 싶어질 만큼 심력 소모가 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괴물 군단이 마침내 공장 근처에 도달하면서 더욱 많은 적이 조명을 먹잇감이라 인식하고 덤벼왔다.
미리 바리게이트를 쳐두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조명은 벌써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적에 의해 씹히고 뜯기고 맛보이고 즐겨졌으리라.
친절하게도 바리게이트의 좁은 틈새로 파고든 놈들은 남김없이 해머로 뚝배기를 깨주었다. 다만, 시체를 끌어당길 틈이 없어 일단 발로 차서 한 번 밀어낸 뒤, 새로운 타깃을 받았다.
“염병! 여기가 무슨 동물원도 아니고!!”
어떻게든 연예인과 손 한 번 잡아보려고 달려드는 사생팬들이 딱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캬아아아악’이나 ‘키이이이익’처럼 귀를 긁어 대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을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조명은 바리게이트 일부를 치워서 놈들을 한꺼번에 안으로 들였다.
저들끼리 뭉치고, 징그러운 다리가 서로 얽혀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들을 차분하게 해머로 짓뭉갰다. 노가다판에서 기계적으로 오함마를 휘둘렀던 것처럼, 놈들을 벽돌이나 말뚝쯤이라 생각하고 두들기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곤죽이 된 녀석들은 파일 벙커로 꿰뚫어, 해체업자가 고기를 끌어당기듯이 잡아서 컨베이어 벨트에 올렸다.
제법 빠른 속도로 에너지 탱크에 에너지를 채우고 있지만, 당연히 부작용도 있었다.
바로 적의 시체에서 새어 나온 에너지를 느끼고 몰려드는 하이에나 무리들이었다.
멀리 떨어진 산더미 같은 산해진미보단 가까운 곳의 싸구려 음식으로 배를 채우겠다는 생각인지, 참 집요하게도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혼자서 시체를 실어 날라야 하는 조명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저, 저 잡것들이!”
조명이 때려죽인 딱정벌레를 귀신같이 물어가는 스팅 무리들. 이대로 가다간 놈들과 전투를 하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시체의 소유권으로 경쟁해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거주 시설에서 발하는 에너지의 파동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워프 게이트의 규모가 커질수록 에너지에 미쳐 날뛰는 괴물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이미 상당수의 괴물들이 거주 시설을 둘러싼 채 유리 돔을 두들기고 있었다. 유리 돔은 시설 하나를 감쌀 만큼 거대하고 두껍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 가면 말짱 도루묵이야.”
강아지마냥 문 것을 놓지 않고 버티는 스팅을 파일 벙커로 찍어 죽이며 불평을 토해냈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미끼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은 시체를 모두 컨베이어 벨트로 던져 넣은 조명은 제트 팩의 엔진에 다시 불을 지폈다.
[다이버, 이 일대는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알아! 이 공장은 훌륭한 중간 지점이지만, 놈들을 끌어당길 수단이 없어서 폐업 직전이야! 그렇다면 내가 직접 발품을 팔아야지!!”
연료 탱크로 보낸 에너지는 대충 70%쯤이라고 들었다. 앞으로 30%만 더 채우면 저들이 원하는 워프 게이트를 완벽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터.
다만, 30%의 에너지를 확보하기 전까지 저 괴물 군단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무거운 해머를 잠시 버려둔 조명은 단숨에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제트 팩의 사출구에서 분사되는 에너지의 연소 반응을 몇몇 괴물들이 포착했지만, 조명은 더욱더 많은 관심을 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몸으로 스트립쇼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게 좋겠어.’
조명은 유독 긴 다리로 뒤뚱뒤뚱 걸어가는 꿀단지 개미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엔진의 출력을 높였다.
여전히 놈을 지키는 괴물들이 주위에 즐비했지만, 제트 팩의 출력 리미트를 해제한 조명의 움직임에 반응할 만한 놈들은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방이면 된다!’
고철 금속으로 잘 갈아서 끝을 송곳처럼 뾰족하게 세운 파일 벙커를 앞세워, 시속 250㎞가 넘는 속도로 단숨에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제트 팩이 박살 날 정도로 출력을 한계까지 높인 것은 아니나, 아래에서 위로 내리꽂는 형태로 파고든 조명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지금!’
속으로 자신만의 카운트를 세고 있다가, 놈과의 거리가 수미터까지 좁혀진 순간에 파일 벙커를 격발했다.
파일 벙커의 끝은 꿀단지 개미의 두툼한 살덩어리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잘 보존되어 있던, 진득하고 걸쭉한 푸른빛의 에너지가 허공으로 꿀렁꿀렁 쏟아져 나왔다.
놈을 호위하고 있던 괴물들이 아차 싶어 대가리를 쳐들었지만, 조명은 이미 꿀단지 개미를 꿰뚫은 채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가 한 일은 심플했다. 꿀단지 개미의 순도 높은 에너지를 주위에 마구 흩뿌려서 괴물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한편, 놈들의 발길을 공장 쪽으로 돌리게 만든 것이다.
꿀단지 개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잘 지키면서 에너지를 보급받아야 하는 운반책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먹음직스러운 꿀을 줄줄 흘리면서 발버둥치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가만히 좀 있어! 이 새끼야!!”
조명은 팔꿈치를 크게 휘둘러 놈의 머리통을 후려 갈겼다. 동물이든 곤충이든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비슷했다.
아직도 한참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녀석을 허공에서 몇 번 흔들어주다가, 공장의 후면으로 던져 버렸다. 당장 섭취할 수 있는 대량의 에너지가 지상으로 낙하하니, 상당수의 괴물들이 발걸음을 돌려 공장으로 몰려들었다.
마음 같아선 꿀단지 개미도 컨베이어 벨트에 밀어 넣고 싶었지만, 지속적으로 놈들을 유인하려면 바깥에 노출시킨 채로 둬야 했다.
미끼 하나로 더욱 많은 월척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창조 경제가 아니겠나.
어느새 등 뒤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에너지의 파동을 조명도 느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딱 한 번만 더 이 웨이브를 막아내면, 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신도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 것이다.
“새치기하지 말고, 한 놈씩 들어와라.”
축 늘어진 꿀단지 개미를 한쪽으로 밀어두고, BFS를 다시 손에 쥐었다.
오픈발이 과하게 먹힌 것인지, 벌써부터 바리게이트가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다이버.]“허억… 허억…….”
[다이버, 본 AI 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커흡… 후욱! 쿨럭! 쿨럭!!”
조명은 청각을 마구 어지럽히는 이명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벌써 몇 마리째인지 알 수 없는 괴물을 해머로 때려 부수고, 파일 벙커로 꿰뚫었다. 놈들의 격한 공세에 밀려 무기가 박살 나 온전히 슈트의 힘으로만 싸워야 했을 때는 그야말로 지옥을 마주한 것 같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쥐어서 으스러뜨리고, 주먹으로 두들겨 패서 힘껏 짓뭉개 주었다.
하지만 무기도 잃고 홀로 다수의 적과 맞서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아, 이건 좆 됐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독액이 응집된 스팅의 꼬리에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는 감도 안 잡혔다. 완전히 노출된 상반신부터 사지며 머리… 맞지 않은 곳이 없었다.
만약 엑소 스켈레톤 슈트의 외골격을 5레벨 슈트에 덧씌워 두지 않았더라면, 벌써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으리라.
물론 외골격을 덧댄 덕분에 경이로운 내구성을 얻게 된 것은 사실이나, 슈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순수한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이었다.
조명은 짧긴 하지만 후보생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육체를 단련했다. 훈련 강도가 매우 높은 탓에 운동을 전문적으로 한 운동선수에 미치진 못하더라도, 일반인에 비하면 우월한 맷집을 자랑했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얻게 된 능력들은 육체의 내구도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체력 회복에 도움을 주어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조명이 치명상을 입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사투를 겪은 조명의 몸은 단 20분 만에 걸레짝으로 변했다.
슈트는 생명 유지 시스템이 간신히 유지될 정도의 내구도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큰 공격을 받으면 허무하게 꿰뚫릴 만큼, 보호 장갑이나 착용자 보호용 점막 장갑도 크게 손상된 상태였다.
“어, 으으으……!”
철심이 중간쯤에서 뚝 끊어진 파일 벙커를 지팡이 삼아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운 조명의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무의식적으로 제트 팩을 지키려 몸을 던진 탓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전투 도중 제트 팩이 충격으로 폭발하지 않은 것은 천운 중의 천운이었다.
[다이버.]“들려, 들린다고…….”
체력 회복 능력 덕분에 가장 중요한 오감의 신경을 우선적으로 회복했다. 그 탓에 통증은 한층 더 심해졌지만,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었다.
[거주 시설의 에너지 공급이 지금 막 완료되었습니다.]“…상황은?”
[유리 돔이 파괴되어 적이 거주 시설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워프 게이트 생성은 그전에 아슬아슬하게 성공했지만, 아직 저들의 대피가 전부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빌어먹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을 간신히 삼키며, 조명은 공장 벽을 잡고 기어 올라갔다.
공장의 옥상 위에서 바라본 전경은 끔찍했다. 워프 게이트는 성공적으로 열려 거대한 토네이도 같은 에너지의 폭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유리 돔의 한 방위가 무너진 곳에서부터 괴물들이 엄청나게 들이닥치고 있었다. 에너지에 환장하는 놈들이라, 에너지로 이루어진 저들을 맛깔스러운 젤리쯤이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저들은 최대한 피난을 서두르기 위해 천장으로 연결되어 있던 에너지 공급 튜브를 타고 워프 게이트로 진입했다.
이미 상당수가 피난에 성공한 것 같지만, 문제는 에너지 공급 튜브가 너무 좁아서 아직 피난하지 못한 이들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다이버,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아직 피난을 못 간 사람들이 남아 있잖아!”
[다이버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몸을 내던져 적과 사투를 벌였고, 워프 게이트를 생성하기 위한 에너지도 성공적으로 보급했습니다. 당신의 임무는 이미 끝났습니다.]“내가 그딴 임무에 얽매여서 사는 사람 같아?!”
쾅!
소리 따윈 들려오지 않았지만, 조명이 힘껏 내지른 주먹은 공장의 외벽에 작은 우그러짐을 만들어냈다.
“그놈의 임무! 임무! 내가 정말 임무를 우선시했다면 저들의 부탁을 들어줬을까? 당연히 처음 네가 말한 대로 내 몫의 제트 팩 연료만 확보한 뒤 줄행랑을 쳤을 거야!”
[…….]“그러지 않은 건! 아니, 그러지 못한 건 소중한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최후의 최후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그 기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보육 시설에 맡겨진 그날, 언젠가는 다시 가족들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은 10세 소년의 기억.
사회의 거친 풍파와 각박함을 온몸으로 받으면서까지 아둥바둥 살아와, 이번에야말로 가족의 손을 잡아볼 수 있을 거라 희망을 가진 21세 청년의 기억.
그리고 모든 희망이 한 줌의 재가 되어 흩날린 바로 그날의 기억을 박조명은 결코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