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58
헬 다이버즈 057화
57화
개인 휴가 신청을 먼저 끝낸 헬 다이버들은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겠다며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해양 플랜트에선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헬 다이버들이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때의 그들은 한없이 순수하고 기쁨에 찬 일반인으로 변모했다.
항공 갑판에 여럿 대기 중인 수송기들은 모두 대기업에서 제공한 민간 수송기였다. 대한민국 국방부와는 관계가 틀어진 탓에 그들에게서 군용 수송기 지원을 받는 건 불가능했다.
어느덧 완전히 가을에 접어들어 쌀쌀하기 짝이 없는 밤의 바닷바람이 함교의 난간에 기댄 조명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 아래는 벌써부터 고향 땅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탓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가까운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거나, 한국에 돌아가면 뭘 할지 계획을 짜는 등, 마치 방학을 앞둔 학생들처럼 들떠 있었다.
헬 다이버와 해양 플랜트를 운용하는 근로자들은 기본적으로 돈을 위해서 위험도 무릅쓰고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감정마저 사라진 기계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특정 기간 동안은 단체 휴가를 내서 일을 쉬기도 한다는 모양이었다.
물론 모든 인원이 한꺼번에 빠질 수는 없기에 주 혹은 월 단위로 교대하면서 휴가를 보낸다. 조명도 이번에는 주 단위의 휴가를 신청한 참이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이들을 다시 만나러 간다는 건 무척이나 기쁜 일이죠.”
옆에서 들려오는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에 조명은 시선을 살짝 돌렸다.
그곳에는 형찬과 함께 이동식 해양 플랜트로 이주해 온 3급 통제관이 서 있었다.
특유의 두툼한 우주복 위로 분홍색 토끼가 잔뜩 그려져 있는 사람이었다.
보통 자신의 몸을 꾸미는 건 1급이나 2급 통제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3급 통제관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꾸미는 타입이었다.
조명이 고개를 까딱여 목례를 해 보이자, 그녀는 다소 과할 정도로 허리를 구부려 배꼽 인사를 건넸다.
다이버가 된 지금은 통제관의 휘하에 소속되는 것이 아닌, 동등한 파트너 관계를 맺는 입장이라 이런 과한 태도는 매우 곤란했다.
그래서 조명은 즉각 손사래를 치며 그녀의 인사를 물리려 했다.
“그냥 다이버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출 필요는 없어요. 이곳에서 추구하는 건 수평적인 관계잖아요?”
“그래도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그녀는 조명의 옆으로 다가와 난간에 기댔다.
“오늘처럼 별이 잘 보이는 밤이면 종종 ‘그때’의 일을 떠올리곤 해요.”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조명은 일단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우리는 별을 관측하는 것을 좋아했죠. 그러다 보니 실제로 관측한 별에 다녀오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지고, 그걸 이루기 위해선 고도로 발전된 기술력이 필요했어요.”
“성간(星間) 여행 기술 같은 것 말인가요?”
“잘 알고 계시네요. 이곳의 인류는 성간 여행은커녕 지구와 가장 가까운 위성인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희생, 그리고 대를 이어져 내려온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여러 기술들을 상용화했답니다. 우리의 전성기 시절엔 성간 여행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우리’라는 것이 통제관 전체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주복을 입은 3급 통제관들에 한해서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명은 일단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에겐 기술과 힘이 있고, 또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의지가 있기에 참 많은 별들을 탐험했어요. 관측한 별은 반드시 가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로 넘쳐 나서, 종국에는 고향 별보다 자신들이 관측한 별의 탐험을 우선시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죠. 물론 저도 그중 하나였답니다.”
“하지만 대단한 기술이 있었다면 언제든지 고향 별로 돌아가는 것도 쉬웠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도 다들 고향 별을 내팽개쳤단 말인가요?”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다’라는 것은 반대로 아무리 바깥을 나돌아 다녀도 문제없다는 것을 의미해요. 고향 별의 인구가 150억 명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에는 10억 미만으로 줄어들었다면 믿으시겠나요?”
“…….”
“사람의 심리라는 게 그래요. ‘다른 누군가는 고향 별이 그리워서 돌아갔겠지’ 혹은 ‘고향 별에 있을 소중한 사람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주 탐험에 나섰겠지’, 그런 생각들 때문에 점점 더 바깥으로 나도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마지막엔 고향 별을 지킬 수 없었죠.”
지키지 못했다는 말에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과는 하등 관계없는 이야기일 터인데, 조명은 마치 가까운 지인의 불행한 이야기를 접한 것처럼 가슴 한 켠이 미어지는 것만 같았다.
“저는 고향 별을 지키지 못했어요.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나요?”
“저는… 잘…….”
“이곳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때로는 슬퍼하기도 하고 화를 내주기도 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의미예요.”
“…예?”
“우리는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고, 무엇도 걱정하지 않았죠. 그래서 ‘침략’을 당했고, 우리의 소중한 고향 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죠. 애초에… 우주의 무수한 시간선 속에서 우리의 고향 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 이제는 존재했다는 말조차 이상하긴 하네요.”
점점 더 따라가기 힘든 말뿐이지만, 조명은 어째서인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리로 이해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감정적으로 받아들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겠네요. 무수한 시간선 속에서 모습을 감춘 우리의 고향 별이 당신에 의해서 딱 하나 부활했으니까요.”
“제가 뭘 했나요?”
“오늘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통제관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들었을 거예요. 그들은 과거에 제가 두고 떠나야만 했던, 잊혀진 사람들이었답니다.”
“즉, 죽은 사람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라진 시간선이 복구되어 ‘존재해야 할 것’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이죠. 당신이 구한 사람들이기도 해요.”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떠받들어 주는 분위기가 되자, 조명은 괜히 낯이 뜨거워졌다. 그럼에도 상당히 익숙한 감정이라 그녀에게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제가 당신을 찾아온 건 사라진 우리의 기억, 역사, 그리고 고향을 되찾아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예요. 달성률은 아직 0.00001%도 되지 않지만,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은 분명하니까요.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어, 음…….”
“지옥의 어둠 속에서도,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당신이 자기 자신을 잃지 않기를 기도할게요.”
그녀는 조명의 이마에 자신의 헬멧 끝을 살짝 맞닿게 한 뒤, 등을 돌려 함교를 내려갔다.
그것이 특별한 의식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저들의 문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따스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껏 자신을 망설이게 만든 난잡한 마음을 겨우 떨쳐 낼 수 있었다.
함교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힌 조명은 자신을 바라보는 오퍼레이터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함장실로 걸어갔다.
‘관계자 외 출입 시 혼내줌’이라는 앙증맞은 팻말이 달려 있지만, 조명은 누군가가 나서서 말리기도 전에 대뜸 문을 발로 걷어찼다.
물론 영화처럼 문이 박살 나며 열리는 일 따윈 없었다. 함장실의 문도 나무가 아니라 통짜 금속이니까. 오히려 힘껏 걷어찬 조명의 발만 시큰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노린 것은 막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이었다.
“대체 어떤 Uneducated가……!”
“우오오오오오!”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666의 복부에 들러붙어 회심의 태클을 건 조명은 그대로 함장실에 뛰어들었다.
넓은 함장실의 안쪽엔 1급 통제관 다섯 명 모두가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인 666은 조명에게 태클이 걸린 채 바닥에 널브러진 참이었다.
평소의 1급 통제관이라면 절대로 인간에게 힘으로 질 일이 없기에, 조명이 느끼기에도 그가 일부러 넘어져 주었음을 인지했다.
“제가 여기에 올 거란 걸 알고 계셨을 겁니다.”
조명이 스산한 분위기를 토해내며 말했지만, 통제관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각기 다른 함성과 절규를 내질렀다.
“으하하하! 봤냐?! 내 말이 맞지?! 다짜고짜 태클부터 걸어올 거라니까! 빨리 헬 코인 50개씩 내놔!!”
“염병. 나는 먼저 튀어나오는 놈 고간부터 걷어찰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나더러 먼저 나가라고 했던 건가?”
“그런 추잡한 일 따윈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어YO.”
“본 통제관은 슈트를 착용하고 덤벼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만, 슈트가 수리 중이었다는 사실을 깜빡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조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666은 네 사람에게 헬 코인을 거둬들여 알 수 없는 4차원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대뜸 조명을 소파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렇게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일단 이리 와서 앉아, 애송이. 우리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수십 분 전부터 궁상맞게 바깥에 서 있던 거 아니야?”
“그건… 하아.”
1급 통제관씩이나 되는 양반들이 그걸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각오를 다지고 무거운 분위기를 내뿜으며 들이닥친 자신을 이렇게 맞아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자연스럽게 거대한 소파의 중심, 11500과 1004의 사이에 앉게 된 조명은 양옆에서 내민 쿠키와 찻잔을 받아 들었다. 가끔 일터에서 통제관들이 안 보인다 싶더니, 다들 이곳에 모여 웃기지도 않는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것이다.
맞은편의 소파에 배불뚝이 아저씨마냥 몸을 뉘인 666은 쇼트케이크를 통째로 집어삼키며 말했다.
“궁금한 게 많겠지, 애송이. 저 빌어먹을 새끼가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아서 이 상황이 꽤나 혼란스러울 거야.”
“본 통제관은 적절한 시기를 계산했을 뿐입니다.”
“지랄 마! 네 계산이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맞아떨어진 적 있었냐? 그때, 바이러스가 퍼지는 속도도 계산 못한……!”
“666.”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8282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를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방정맞게 입을 눌리던 666이 귀신같이 침묵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명도 깜짝 놀랄 만큼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공기마저 희박하게 만들 정도로 짓누르는 압박감을 먼저 깨부순 것은 1004였다. 그녀는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우아한 손놀림으로 찻잔을 기울이더니, 이내 테이블 위에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내려놓았다.
“다이버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서로의 과오를 따지기 위한 것은 아닐 텐데요?”
“그건 그렇지. 666, 8282, 주제와 관련 없는 잡담은 자제해라.”
13까지 나서서 지적하자, 두 사람은 무겁던 분위기를 즉시 풀어버렸다.
666은 다시 방정맞은 말투로 돌아와 조명에게 손을 펼쳐 보였다. 손가락 다섯 개의 의미에 대해 빠른 설명이 이어졌다.
“한 명당 하나씩,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한해, 네가 원하는 모든 질문에 답해주마. 이거라면 지금까지의 네 불만도, 지금 네가 느끼고 있을 감정의 해소도 충분하겠지?”
“…알고 계셨나요?”
“알고 있다마다. 지금 네 뇌가 혼란스럽다 못해 폭발해 버리기 직전이라는 것도, 조금씩이지만 신체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어떤 게 ‘진짜’ 자신인지 혼동하고 있는 것도… 전부 알고 있지. 그러니 궁금한 게 있으면 다섯 개 이내로 정리해서 질문해. 단, 여기서 답을 들은 순간, 너는 두 번 다시 우리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할 수는 없을 거다. 이건 그런 규칙이거든.”
조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난 2개월까지는 단순히 통제관들의 정체만 궁금해하는 일반인의 평범한 호기심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이 알고 자신이 겪은 모든 현상의 답을 듣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이 앞섰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11500에게 질문을 건넸다.
“제가 헬 게이트에서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겁니까?”
맹점을 찌른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런 질문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한 것일까.
666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상하리만치 기계적인데다 FM대로 하길 좋아하는 11500이라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지 기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라면 진정 원하는 대답을 해줄 것이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