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59
헬 다이버즈 058화
58화
“당신이 하는 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한다는 겁니까?”
“우리에겐 저마다 과오가 존재합니다. 그 과오로 인해 우리는 소중한 것을 빼앗겼고, 지워졌으며,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과오를 과오가 아니게 만든다면 ‘없던 것’으로 고칠 수 있겠지만, 실시간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 역시…….”
“당신은 다릅니다. 죽어 있으면서도 살아 있고,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면서도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가 바로 당신입니다. 때문에 시공간의 뒤틀림, 혹은 균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헬 게이트에서 당신만은 모든 시간선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겁니다.”
그 순간, 조명은 깨달았다.
눈앞의 통제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몇 푼의 가치밖에 되지 않는 희귀 자원을 구해오는 것이 아니라, 헬 게이트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자기 자신들의 과거를 진정한 의미로 구제하는 것이라고.
“그럼…….”
“맞습니다. 당신이 헬 게이트에서 구한 100여 명의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존재 증명’이라고 합니다. 사라진 과거, 잊혀진 역사, 가치가 없는 존재……. 이 모든 것을 확립해서 구해냈을 때, 비로소 존재 증명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본 통제관의 대답은 이것으로 끝마치겠습니다.”
11500의 답변이 끝나자, 조명은 바싹바싹 마르는 입을 적시기 위해 찻잔을 기울였다.
놀랍게도 차가 아니라 조금 뜨거울 뿐인 맹물이었다.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빨리 내 차례라고 해줘!”
남은 속이 타오르다 못해 시커멓게 변하고 있는 상황이건만, 뭐가 그리 신났는지 666은 서둘러 질문해 달라는 듯 강렬한 눈빛을 보내왔다.
하지만 조명이 다음 질문을 던질 대상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의무관님, 제가 모르는 기억이, 제가 알고 있는 기억과 마구 뒤섞이고 있는 이유도 헬 게이트에 들어갔기 때문인가요?”
사실 이건 꽤나 오래전부터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처음 무의식적으로 기억의 혼탁… 아니. 혼합을 느꼈을 때는 헬 다이버 승격식 전이었다.
본 적 없는 광경이 자신이 보고 있던 광경과 겹쳐 보이는 듯한 이상 증세를 겪은 것이다. 당시에는 승격식을 앞두고 긴장한 탓이라고 생각해 흘려 넘겼지만, 그 이후부터 기억의 혼합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남들 앞에선 괜찮은 척, 아무것도 아닌 척을 했다. 사실 지난 7일 동안 의식불명이 아니라, 온전히 깨어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기억이 마구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 번씩이나 정밀 검사를 요청했고, 끝내 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정신은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다.
자신이 모르는 생생한 기억이라니. 헬 게이트에서 마주친 자들을 구해낸 건 과연 자신인지, 아니면 ‘자신’이었는지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의무관인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확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헬 게이트의 영향이 맞습니DA. 하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에YO. 그렇게 분위기 잡고 말할 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에YO.”
“……!”
의무관인 그녀가 확답을 해주었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진지하지 않은 경박한 말투로 대답했기에 무심코 안심해 버린 것일까.
조명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이 표백제에 의해 씻겨 나가듯 말끔히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공간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 일시적인 트러블이라고 할 수 있겠네YO. 다이버가 겪은 모든 기억은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고, 반대로 미래에 겪게 될 기억이기도 해YO. 왜냐하면 헬 게이트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죽박죽으로 엉킨 거대한 실타래 같은 곳이니까YO..”
“그럼 그 기억들이 전부… 제가 실제로 겪은 게 맞다는 건가요?”
“좀 복잡한 이론이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리지YO.. 우선 다이버가 헬 게이트에 잠화하면서 미래의 기억을 흡수하게 됩니DA. 하지만 무의식 아래에 가라앉은 기억을 알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떠올릴 수는 없는 법. 결국 육신은 잠들고 뇌가 깨어 있을 때,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미래의 기억들을 마구 떠올려, 정신을 차렸을 땐 그 기억들이 과거에 있던 일처럼 떠오르게 되는 것이지YO. 게다가 꿈이란 건 뇌가 기억을 이용해서 마구 조작을 합니DA. 분명 미래의 일이지만, 마치 과거에 있던 일처럼 꾸미는 것도 가능하다는 거예YO”
“그럼 실제로는… 아직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일들이다?”
“그건 또 아닙니DA. 육신은 아니지만, 정신은 실제로 겪은 사례가 분명 있을 겁니DA. 다이버가 가진 특수한 자격 덕분에 헬 게이트에 익숙지 않은 몸은 내버려 두고 정신만이 헬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오는, 이른바 유체 이탈 비슷한 상황이 몇 번인가 있었을 겁니DA.”
즉, 지금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또 다른 기억들은 조명의 정신만이 실제로 겪은 과거의 기억이기도 하며, 동시에 흡수된 미래의 기억들이기도 하다는 의미였다.
“과거와 미래의 기억이 현재의 다이버가 가진 기억과 마구 뒤엉킨 탓에 당연히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지YO 하지만 정신이상 내성 초강화제의 힘이 있으니, 곧 안정될 겁니DA 일반인이었다면 벌써 미쳐서 폐인이 됐겠지만, 다이버는 안전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해도 됩니DA”
조명은 무심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 무언가가 식도를 꽉 막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말끔하게 사라진 것 같았다.
가장 궁금하던, 그리고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다면 정말 미쳐 버렸을 궁금증 두 개를 무사히 해결했다.
이제 남은 질문과 대답은 세 개였다.
조명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666을 제치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13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것은 지금까지 그리 궁금하지 않은 질문이지만, 앞의 두 사람으로부터 완전한 대답을 들은 뒤라면 꼭 들어야 할 내용이었다.
“왜 제가 통제관님들을 위해 그런 일을 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조명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던 이유는 통제관 모두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기 때문이다.
너무 황당해서, 아니면 허를 찔려서?
어쩌면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는 이유로 고작 말 한마디에 그들이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어느 쪽이든 지금 이 상황이 예상치 못한 일임은 확실했다.
“솔직히 말해서 조금 놀랐다.”
13은 평소의 낮은 목소리에서 톤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흥분한 것 같은 어조였다.
“우리가 처음 너를 보고 계획을 세울 때부터, 우리는 한 가지 걱정을 품었다. 네겐 자격이 있고 힘이 있지만, 동시에 그걸 행할 의지가 있느냐는 의문이었지. 그래서 11500이 네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정보들을 알고 헬 게이트에 잠화했더라면, 제가 어떤 의도를 품었을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겁니까?”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네 정신적 내구도를 걱정해야 했지. 과연 너라는 인간이 이 모든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받아들인다면 온전히 실행할 수 있을까, 그 과정 속에서 네 정신이 버틸 수 있을까……. 데이터는 부족하고, 너라는 인간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정보의 은폐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누구도 네게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이고.”
“거기까진 이해했습니다. 실제로 중요한 정보를 받아들인 지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을 만큼 안정적입니다. 오늘 밤엔 꿀잠을 잘 수 있겠죠. 하지만 아직 중요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는 것이죠.”
“너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명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이런저런 얘기들을 듣게 되면서 ‘왜 나만?’, ‘왜 하필 내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네가 유일하다’라는 대답을 들을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만약 통제관들이 자신 외에도 이런 일을 맡길 사람이 있었다면, 벌써 그 사람과 한데 묶었을 것이다. 특별한 훈련을 같이 받게 한다든가, 지금 이 자리에도 동석시켰겠지.
하지만 이 자리에 앉은 유일한 인간은 자신뿐이고, 그 외의 인간은 이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즉, 정말로 조명뿐인 것이다.
“저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제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겠지. 다른 이들은 평범하게 희귀 자원만 캐내는 것으로 끝인데, 왜 자신은 필요 이상으로 목숨을 걸고 우리의 과오를 지우는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예. 그 말대로입니다. 저밖에 할 수 없는 일이란 건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꼭 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전 그냥…….”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겠지.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집을 사고, 쭉쭉빵빵한 미녀와 함께 알콩달콩 살면서 토끼 같은 자식들을 숨풍숨풍 낳고 싶겠지.”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습니다.”
“너와 같은 인생을 살아온 자들의 소망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미 수많은 데이터로 축적되어 오차율이 소수점의 한참 아래일 정도지. 평범하면서도 조금 특별하고, 아무 걱정 없으면서도 조금 더 행복한 삶. 누구나 동경하는 삶이지. 그걸 위해서 네가 헬 다이버가 됐다는 것 역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게도 ‘자유’를 보장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조명이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13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누구도 타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 타인의 자유가 보장되기에 자신의 자유 또한 보장되는 법. 그걸 억압하는 순간, 불합리로 작용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이라 한마디 덧붙인 그는 둥근 쿠키 하나를 집어 조명의 앞에 들이밀었다.
“이걸 너의 세계라고 가정해 보자.”
“무슨…….”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이 세계를… 이렇게!”
콰직.
그가 살짝 움켜쥔 것만으로도 쿠키는 산산조각이 나 테이블 위에 흩뿌려졌다.
“…박살 내버린다는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 오직 너뿐이라면, 그때에도 너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분위기였다.
그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조명은 거침없이 자신의 대답을 내뱉었다.
“위험수당이 있나요?”
“…….”
“4대보험에 고액 연봉, 그리고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정년 보장도 되고, 연금도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하는 김에 명예 훈장 같은 거나 표창장을 받을 수 있나요? 높으신 양반들한테 돌아가면서 감사패 받고, 그 사람들을 머리 숙이게 만들 수 있나요?”
“…….”
“여자들에게 인기는 많나요? 중매 업계에서도 1등 신랑감 후보가 될 수 있나요? 미래의 아내와 자식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가장이 될 수 있나요?”
“…….”
“마지막으로 제 목숨과 불합리한 희생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받을 수 있나요?”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조명에게 있어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다.
고아 출신의 미성년자가 알바처에서 돈을 떼먹힌 일이 트라우마가 된 것처럼, 좋은 의도로 일했음에도 선입견을 가진 인간들에게 비아냥이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것처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고 싶었다.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더더욱 많은 보상과 명예를 원한다.
이 세계의 평화? 인류의 미래?
조명 역시 이 세계와 인류라는 틀에 속해 있으니 당연히 미래가 중요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허울뿐인 영광에 취해 남들 좋은 일만 하다 죽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그에 걸맞게 막대한 보상과 명예를 보장해 주는 것이 상식이라고, 조명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푸흐흐흐흐흐흐…… 으흑, 크흐흐흐!!”
조용한 분위기를 깨며 소파 아래로 굴러떨어진 것은 666이었다.
그는 개구리처럼 배를 까뒤집고 웃어 젖히며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처럼 사지를 마구 흔들어 댔다.
“아, 진짜… 후, 얼마 만이지? 이렇게 미친 듯이 웃어본 게?”
갑자기 벌떡 일어선 그는 13의 머리통을 냅다 후려갈겼다.
“야, 이 멍청한 고릴라 같은 놈아! 처음부터 보상 얘기를 꺼냈어야지!!”
“아니, 이건 일종의 책임감을…….”
“책임감은 염병할 책임감! 우리에게 그걸 강요할 자격이 있기나 해? 진심으로?!”
그는 양팔을 벌려 보이며 주위의 통제관들을 향해 물었다.
“니들도 그렇게 생각하냐? 우리가 책임감 하나로 이 애송이에게 모든 짐을 맡기는 게 정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있으면 거수해라. 그 새끼 대가리부터 날려줄 테니까.”
순간, 11500이 거수하려다 슬쩍 손을 내리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