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60
헬 다이버즈 059화
59화
“애송이, 이건 13이 받은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 해주는 것에 불과하니 그냥 편하게 들어라. 네게 약속된 보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차고 넘친다. 물론 목숨을 잃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 맞아. 아무리 많은 금은보화와 명예를 가져봐야 죽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그러니 우리는 널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네가 우리를 구해주는 만큼 우리는 널 구할 거고, 네가 가져야 할 합당한 대가를 보장해 주겠어.”
“그 대가가 정확히 뭔지는 알아야죠.”
“간단하게 설명해 줄 테니 귀 쫑긋 세우고 들어라. 우선 현 인류는 감당할 수 없는 ‘우리’의 기술을 오직 너만을 위해 제공해 주마. 그리고 너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도 얻을 수 있을 거다. 네가 그토록 원하는 부귀영화? 말할 것도 없지! 마지막으로 덤처럼 따라오는 너의 안전. 어때? 이 정도면 우리의 일꾼이 되어주고도 남겠지?”
기술이나 능력에 큰 욕심은 없지만, 부귀영화와 신변의 안전 같은 조건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래, 이런 걸 원했다. 자신이 일한 만큼, 자신이 무언가를 거는 만큼 그에 돌아오는 합당한 대가와 인정.
지난 21년의 인생 동안 너무나도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던, 당연한 것들. 그것을 이제야 겨우 손에 넣게 되는 것이다.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의 차례가 허무하게 지나가 버린 것을 알아챈 13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게 전부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내줄 수 있는 것,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그게 전부라고 말한 것이다.
“저만이 할 수 있고, 제가 해야만 한다는 조건으로 그런 대가들을 받을 수 있다면 충분하겠죠.”
그러니 납득할 수 있었다.
조명은 666과 8282를 돌아보았다. 사실 정말 묻고 싶은 질문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걸 답해주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은…….
“설비 담당관님.”
“아, 진짜!! 나! 나 말 잘하잖아?! 나한테 질문하라고!!”
“조용히 해라, 666.”
13이 조금 전 뒤통수를 얻어맞은 보복인지, 666을 붙잡아 힘으로 짓눌렀다.
그사이, 조명은 8282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건 사실 의무관님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지만, 설비 담당관님과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보여서요. 제 몸에 나타나고 있는 이상 증세에 대해서 알고 계시죠?”
“대수롭지 않은 걸 묻는군. 게다가 분위기로 보아하니 그게 마지막 질문인 모양이지? 그런 유형의 질문이라면 내가 아니라 666에게 물어보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최근까지 제가 사용한 다이버 장비들은 모두 설비 담당관님의 손을 거쳤으니까요.”
“아, 그랬지. 그걸 잊고 있었군.”
조명이 이상한 조짐을 느낀 것은 정식으로 다이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이동식 해양 플랜트에 올라 자유롭게 여러 좌표들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기 때문에 슈트나 도구의 수리는 모두 설비 담당관에게 맡겼다.
일반 엔지니어보다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 훨씬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수리 기간이 짧았다. 게다가 그는 취미라며 겸사겸사 슈트에 각종 기능들을 추가해 주거나, 괴상한 도구들을 붙여주곤 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지만, 헬 게이트에 잠화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질감이 점점 뚜렷해졌다.
“평소와는 별반 다를 것 없지만, 슈트나 도구들의 형태가 미묘하게 바뀌었어요. 마치 제 몸에 맞춘 것처럼요.”
“당연하지. 맞지 않는 옷과 구두를 내줄 순 없으니까. 그래서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겸사겸사 네 장비들을 손봤다. 내가 하지 않았더라도 11500이 했겠지만… 저놈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본 통제… 아니, 함장에게 시비를 거는 겁니까?”
“널 죽이고 내가 함장이 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 어쨌든 네가 느끼고 있는 이상 증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004, ‘그걸’ 뭐라고 하지?”
“진화.”
“아, 그래. 인류의 언어로 말하자면, 진화라고 할 수 있겠지.”
“진화… 말인가요?”
8282는 찻주전자를 들고 자신의 찻잔에 맹물을 쏟아부었다. 당연히 일정량이 채워지자 물이 넘쳐서 테이블에 쏟아졌다.
“이 찻잔이 네 몸으로 현재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그러니까, 1004?”
“억지력.”
“그래, 억지력이다. 시공간이 뒤틀린 장소에서 너 같은 인간들이 고작 슈트 하나 걸쳤다고 멀쩡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평범한 인간이라면 시공간의 뒤틀림에서 이물질이라 판단되어 억지력이 갈기갈기 찢어버린다고. 존재를 말살해 버린다는 의미다.”
“그럼 저는 왜…….”
“넌 억지력을 속일 수 있으니까. 네가 가진 그 특별한 자격 덕분에 억지력은 널 이물질이라 생각하지 않는 거다. 그래서 시공간의 뒤틀림을 마구 헤집고 다녀도 널 말살해야 할 존재라 인식하지 않는 거지.”
“하지만 그거랑 제 몸의 변화랑 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거죠?”
“적합률로 치면 넌 99%의 상태야. 어찌어찌 속이는 건 가능했지만, 그곳에서 완전히 적응하려면 당연히 100%가 돼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 네 몸의 유전자가 그걸 느끼고 진화하기 시작한 거지. 짧게는 수천 년, 길게는 수십만 년이 걸려야 할 작업을, 시공간의 뒤틀림을 이용해서 재빠르게 처리해 내고 있는 거라고. 네 DNA에게 감사해라. 주인보다도 똑똑한 놈이니까.”
요컨대 쉽게 말하자면, 조명의 몸은 헬 게이트의 뒤틀린 시공간 속에서 여러 환경들에 걸맞게 최적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변화는 없어. 전에 비해 근력이 조금 더 늘고, 감각이 예민해졌을 뿐인데.’
그걸 이상하다고 여긴 것은 그럴 만한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 자신의 신체로는 도저히 발휘할 수 없는 수준의 근력이 나오는가 하면, 감각이 예민해져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도 생명체이니 만큼 당연히 환경에 맞춰 진화하겠지만, 설마 이토록 급격한 변화를 맞을 줄은 조명도 몰랐다.
“그럼 내 답변은 여기서 끝났다고 봐도 되겠지?”
“…예. 일단 궁금증은 해결했으니까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부작용은 없겠죠?”
“왜? 몸이 ‘젤리’처럼 변하기라도 할까 봐?”
“…….”
“그 점은 안심해도 된다. 네가 인간의 틀을 벗어날 일은 없을 테니까.”
마침내 기나긴 질의 시간이 모두 끝났다. 조명은 전에 없을 정도로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아침 일찍 수송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가려면, 지금 당장 침대로 기어 들어가 자야 했으니까.
바로 그때, 방으로 돌아가려던 조명의 발목을 누군가가 잡아챘다. 꼴사납게 바닥에 누워 있던 666이었다.
“제발… 제발 내게도 질문을 해줘! 뭐가 궁금해?! 내 쓰리 사이즈? 위에서부터 90…….”
“궁금한 거 없는데요.”
“아냐! 궁금한 게 있을 거야! 잘 생각해 봐! 네 그 멍청한 머리를 조금만 더 열심히 굴려서 아무거나 꺼내보라고!!”
“멍청해서 그런지, 궁금한 것도 없네요. 얼른 방으로 돌아가서 자고 싶으니까 다리 좀 놔주실래요?”
“그러지 말고! 나 진짜 열심히 연습했거든? 엄청 멋지게 폼 잡으면서 설명해 주려고 예상 질문 목록까지 만들었다고!!”
누가 들으면 대기업 면접이라도 보는 줄 알겠다.
하지만 모든 궁금증이 해소된 지금, 조명은 이 홀가분한 기분을 안고 그대로 잠자리까지 들어가고 싶었다. 쓸모없는 인간의 넋두리를 들어줄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구질구질하게 왜 이래요?”
“앗, 아아…….”
그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친 조명은 내일의 휴가를 위해 서둘러 함교를 빠져나갔다.
그에게는 정말 궁금한 게 없었다.
* * *
눈을 뜨자마자 조명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천장이 아니라, 덜컹거리는 수송기의 합판 천장이었다.
“어, 으윽… 술도 안 마셨는데 몸이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우리와 함께 휴가를 떠난다는 기쁨의 중압감에 짓눌려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하는군YO. moron.”
힐끔 아래를 내려다보니, 조명의 몸은 커다란 배낭과 안전벨트에 의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꼭 전쟁터 한복판에서 기습 강하를 펼치는 공수부대원 같은 차림이었다.
“오늘이 제 휴가일이고, 자고 있는 절 여기까지 옮겨다 주신 건 고마운데… 왜 두 분 다 여기 계시죠? 해양 플랜트의 일은 어쩌고요?”
“내가 없어도 자경단이 알아서 해양 플랜트를 지키겠지.”
“본 의무관이 없어도 죽는 사람은 없을 겁니DA. maybe?”
생각해 보니 666과 1004는 직업의식이 매우 부족한 통제관들이었다.
취미에 정신이 팔려 있긴 해도 제 할 일은 척척 해내는 8282에 비해 666은 만사를 귀찮아하는 타입이었다. 666이 거느리는 자경단도 필요한 무장을 갖추게 했을 뿐, 훈련은 사실상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농땡이 부리는 건 1004 역시 만만치 않았는데, 우선 그녀는 정신적 질환을 가진 환자를 일절 받지 않을뿐더러, 외상을 입은 환자들에겐 음료수를 링거 대신 꽂아주는 게 전부였다.
게다가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에겐 마시던 음료수를 냅다 들이붓곤 끝이라며 자랑스럽게 외치기도 했다.
‘그러고도 말끔하게 완치가 된다는 점이 더 놀라웠지만.’
자신들의 포지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맡은바 임무를 너무나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인지, 두 사람은 통제관들 사이에서도 게으름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데 두 분이 절 따라오셔도 괜찮은 건가요? 통제관들은 모두 해양 플랜트를 벗어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벗어나지 않은 것뿐이야. 그럴 이유가 없었거든.”
“인간들이 즐기는 오락이나 음식 문화에 흥미를 가지는 통제관들이 많다면서요? 그런데도 해양 플랜트를 벗어날 이유가 없었다고요?”
“어차피 망할 세상에 흥미를 가져 봐야 의미가 없잖아.”
듣기에 따라선 참 냉정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조명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질의 시간에서 13이 언급한 세계의 말살이 머지않아 이 세계에도 일어날 것이다. 이제 와서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게 나한테 궁금했던 거야?”
“아닌데요.”
“그럼 빨리 질문해 봐. 지금이라면 다 말해줄 수 있으니까.”
“궁금한 게 있어야 질문하죠. 몇 살이냐고 물어보는 건 너무 성의가 없고…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고…….”
“괜찮아! 성의나 예의 같은 거 없어도 돼. 그냥 딱 눈감고 질문 하나만 던져 보라니까?”
“왠지 아까우니까 그냥 묵혀둘래요.”
쾅! 쾅! 쾅!
게임 폐인이 키보드를 미친 듯이 두들기는 것마냥 666이 옆의 좌석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상당히 열 받은 것이리라.
“666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종종 저런답니DA. 마치 한 마리의 Beast죠.”
반대편에서 1004가 속삭여 오기에 조명도 한 수 거들었다.
“제가 보기엔 그냥 정신연령이 낮은 것 같은데요.”
“그것도 맞는 말입니DA. 요전번에도 666이 흰긴수염고래를 잡겠답시고 미사일을 쏘려다 11500에게 두들겨 맞고 삐쳤습니DA.”
“와, 그게 사람인가… 짐승이지.”
조명과 1004가 쑥덕대는 것을 잠자코 듣고 있던 666은 벽 위에 부착된 빨간 버튼을 눌렀다.
그게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 조명은 몰랐으나,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