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62
헬 다이버즈 061화
61화
[오늘은 더없이 기쁜 날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이버의 생일보다도 기쁜 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한민국 일약 스타에 오른 소감이 어떠신지?]“조용히 해라.”
조명은 조금 전 지나친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내야 할지, 살짝 높이 날아서 스리슬쩍 넘어갈지 고민했다.
그 덕분일까, 고속도로에서부터 찍힌 자신의 모습이 지금은 SNS를 비롯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동영상 플랫폼에서 나돌아 다니고 있었다.
[아, 현재 정신 상태 감정 결과가 막 나왔습니다. 다이버의 투데이 기분은 ‘저기압’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본 AI가 사용할 우산은 챙기셨는지?]“후우…….”
어떻게 할까? 헬멧을 부술까, 아니면 안전 모드로 바꿔 버릴까?
그런 음흉한 생각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 넘치기 시작한 조명은 임산부들의 핵심 스킬인 진정 호흡을 사용했다.
지난 수시간 동안 강원도에서 빠져나와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AI는 길 안내에서 그치지 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조명을 괴롭혔다.
좀 조용하다 싶으면 그새 인터넷을 검색해 와선 ‘고속도로 아이언맨.jpg’라든가, ‘아이언맨도 거르는 톨게이트 바가지 요금.gif’ 같은 자료를 바이저에 띄워 올렸다.
그것뿐만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있지도 않은 입에 모터라도 달았는지, 그게 아니면 말로 조명을 말려 죽일 생각인지, 재잘재잘 떠들어 대는 게 앵무새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다이버, 어째서 우월한 제트 팩이 있음에도 하늘을 날지 않습니까? 스스로를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올바르나, 가진 능력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추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신지?]“야, 이… 넌 대한민국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래. 사방 천지에 군부대와 대공 레이더, 미사일, 대공포가 깔려 있다고. 특히 서울의 대공망은 나 같은 놈도 날파리로 만들어 버릴 수준이라고.”
[이미 군 측에선 당신의 식별 코드를 인식하고 진입을 허가했습니다. 혹시 쫄?]“그래! 쫄이다, 쫄! 쫄로 하자! 그러니 제발 좀 닥쳐!!”
승용차와 버스 사이에서 반쯤 허공에 떠 있는 조명은 수많은 인파의 구경감이지만, 조명은 그런 것보다 당장 AI를 닥치게 만드는 게 더 급급했다.
사실 남들의 구경거리가 되면서까지 슈트를 해제하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우선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해양 플랜트에 근무하는 근로자나 고위 관계자들은 조명만이 가지고 있는 오더 메이드 5레벨 부분 구현화 슈트를 보기만 해도 조명을 알아본다.
하지만 세간의 평범한 일반인들은 해양 플랜트의 내부 사정을 뉴스로만 접할 뿐, 헬 다이버와 실제로 만나기는커녕, 누가 어떤 슈트를 입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슈트를 착용하면 해양 플랜트 소식에 밝은 자가 아니고서야 조명의 실제 얼굴을 알더라도 정체를 알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안전을 위해서였다.
헬 다이버가 착용하는 잠화복은 기본적으로 열 내성이 매우 높고, 차량 한 대 정도의 중량을 버티거나, 폭발의 충격파에도 쉽게 상처 입지 않을 만큼 튼튼하다.
그런데 이 땅에는 자신이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무리가 있다. 후보생 시절부터 그걸 뻔히 알고 있었는데, 맨몸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미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진이 찍히고 동영상의 주인공이 되어 놀림감으로 전락하더라도 슈트 착용을 고집하는 것이다.
[다이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하는 말입니다만, 당신은 인간입니다. 고작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 이족 보행 동물이라면, 인도에서 걸어 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되지 않으신지?]“하지만 제트 팩이 달린 슈트는 어떤 의미에선 탑승물이잖아. 바이크나 자전거도 도로에서 다닐 수 있는데, 슈트라고 안 될 건 뭐야?”
[같은 이족 보행 동물이면서 무능하기까지 한 정치인들! 그들이 관련 법안을 만들어두지 않았기에 제가 논리적인 패배를 당했습니다. 애꿎은 젊은 정치인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국회 의사당을 폭파시키는 건 어떠신지?]“웬만하면 정치와 엮이고 싶지 않아. 설령 장애가 있으면서도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돼서 나라를 개혁하려는 참된 정치인이 나온다고 해도 그건 나랑은 관계없는 일이야. 왜냐하면 정치판은 이미 내 신뢰를 잃었으니까.”
지난 21년간 정치계가 보육 시설에 원활한 지원을 해주지 않은 것도, 힘없는 미성년자였던 조명을 보호해 주지 않은 것도 전부 과거의 일이라며 넘길 수는 있다.
자신만 힘든 것도 아니고, 또 국가의 예산이나 정책, 이념 갈등 같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서 대처가 늦어졌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라 그런 걸로 남 탓을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정부와 군이 짜고 치는 한패라는 걸 알았을 때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아, 정형찬 다이버에게서 도착한 메시지가 신경 쓰이시는지? 그런데 둘 다 수컷입니다만.]“뒷말은 됐고, 너도 똑똑한 AI라고 자부한다면 형찬 선배가 보내준 메시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 거 아냐.”
[이해라는 감정적인 말보다는 면밀하게 분석하여 특정 결과에 도달했다고 말씀해 주시길. 아니면 인간의 물렁한 뇌보다 본 AI의 딱딱한 코어가 더 우월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으신지?]조명은 일부러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녀석도 바이저의 센서를 함께 공유하고 있기에, 헬멧을 거칠게 흔들어주면 시야가 흔들려 한꺼번에 많은 시야 정보를 강제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자그마한 랙(Lag)을 유도하는 것이다.
[휴먼! 휴먼! 미치셨는지?!]“조용히 해. 지하철 입구에서 통제관들을 기다려야 하는데, 너 때문에 주기적으로 헤드뱅잉을 하는 미친놈처럼 보이면 책임질 거야?”
하필 또 기다리게 된 장소가 강남역 근처인지라, 조명은 졸지에 코스튬 플레이어 취급을 받으며 서 있어야 했다.
조명이 서울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김포 국제공항에 착륙한 두 통제관은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라’라는 말만 전하곤 연락을 끊어버렸다.
두 사람이 도착하기까지 앞으로 조금. 그사이, 조명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형찬이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복기했다.
사실 이번 휴가는 그립던 고국 땅을 오랜만에 밟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남겨둔 후환을 없애는 것이 요점이었다.
그 의도를 빤히 알고 있을 11500이 666과 1004를 조명의 호위 겸 감시로 붙인 것이리라.
‘생각해 보면 그 양반도 내가 복무 사기를 당해서 후보생이 됐다는 걸 빤히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11500은 조명을 집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느니, 법적인 문제를 도와주겠다느니 같은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조명을 부려 먹으며 훈련 아닌 고문을 행하면서 헬 다이버 속성 코스를 착착 진행해 나갔다.
무심코 저들과 한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만큼.
보낸 이 : 차세대 정민 그룹 후계자(진)
내용 : 네 사정을 듣고 돈과 사람을 써서 내부 사정을 좀 파봤는데, 정부와 국방부가 철저하게 기업은 배제하고, 민간인으로만 구성된 개인 사업자들을 대거 끌어들여서 진행 중인 비밀 사업을 하나 발견했어.
알고 보니 이미 이 바닥에선 유명한 사실이더라고. 기업 입장에선 괜히 게이트를 터뜨려 봐야 정부의 철퇴를 맞을 것이 두려워 다들 쉬쉬하던 것 같아.
자세한 건 첨부 파일로 보내뒀으니 확인해 봐. 그리고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정말이야!!
첨부 파일 : 대한민국 무연고자 공장화 계획.zip
첨부 파일은 고작 하나였지만, 압축을 해제해 보니 방대한 양의 문서와 이미지 파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어마어마한 카르텔은 전 정권과 현 정권이 바통을 이어받아 해양 플랜트 계획을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 겪고 있던 정부와 국방부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보다는 인력 사무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런데 흑심을 품은 개인 사업자 몇 명이 군의 고위 간부와 접촉하게 되면서 새로운 비리가 생겨났다.
개인 사업자들은 무연고자의 정보 제공 및 알선(소개)을, 국방부는 전산 조작 및 노예 계약으로 상대를 옭아매기, 정부는 매스컴과 인터넷의 적극적인 검열(규제)로 비리가 세간에 노출되지 않게끔 합을 맞췄다.
본래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한들, 젊은 남성을 전산조작으로 끌어다 쓴 다음, 헬 다이버로 만들어 노예계약까지 맺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와 군, 그리고 돈 관계가 얽힌 개인 사업자들이 하나로 뭉치면서 이 초법적인 비리가 지난 수년간 무사히 굴러갈 수 있었다.
비리의 전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 동조하지 않는 자는 큰 압박을 받거나 은밀하게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동조하는 자들은 더더욱 과감하게 일을 벌여 더러운 돈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있을 터.
그 비리의 산물 중 하나가 바로 최근에 대체 복무 사기를 당해 후보생이 된 조명이었다.
비리의 계획을 면밀하게 살펴보니, 무연고자에 군 복무를 치르지 않은 남성들, 혹은 젊은 나이임에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져서 신체 포기 각서를 쓴 남성들이 모두 후보생이 되었다고 한다.
문득 조명은 자신이 후보생이었던 시절에 본 광경을 떠올렸다.
헬 다이버가 되려는 의지는 없고, 하루하루 좀비처럼 힘없이 살아가던 이들. 마치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이번 비리 커넥션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좆같은 새끼들.”
[인간은 세계의 모든 동식물을 조지는 것 외에도 같은 동족을 말살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종족입니까? 본 AI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니 안심하시길!]“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네가 봤을 때 이 비리를 법적으로 해결하려 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아?”
[99% 다이버가 패소합니다. 우선 저들은 증거도 없이 누명을 씌운다며 잡아뗄 것입니다. 또한 이런 계획 파일은 전부 자신들을 음해하기 위한 조작으로 치부할 겁니다. 정부와 군이 얽혀 있으니 여론 조작쯤이야 매우 손쉬운 일입니다. 본 AI에겐 손이 없어서 얼마나 쉬운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갑자기 불편해졌습니다.]“즉, 정공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 나라의 국민 대다수가 정부와 군을 극렬하게 혐오한다면, 그들의 여론을 호소해서 물리적으로 뒤엎을 수는 있습니다. 수백만 명이 시위를 한답시고 들고일어나면 저들도 부랴부랴 꼬리를 잘라내면서 이 계획을 폐기할 겁니다. 완전한 해결은 아니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끔 할 수는 있습니다.]“그래선 안 돼. 주동자들이 남아 있다면, 이런 일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어. 인간을 단순한 부품도 아니고, 불타는 장작쯤이라 여기는 저 말종들이 그렇게 편한 기득권을 포기할 리가 없어.”
사실 이 일은 여러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부와 군이 독점하다시피 해양 플랜트를 관리하고, 인력을 갈아 넣은 덕분에 희귀 소재들이 대량으로 시장에 공급되는 것이니까.
정부와 군은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고, 기업들은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이 공급해 주는 것을 받아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리의 주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서민들의 인권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기득권이 걸려 있는데, 그깟 인권쯤 권력과 무력으로 뭉개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조명이 자신과 이동식 해양 플랜트의 잠재적 미래 가치를 내세워 설득(협박)하려 한들, 그들에겐 이미 안정적인 해양 플랜트와 수많은 노예들이 있었다. 아마 콧방귀조차 뀌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다이버, 당신의 정신 상태를 분석해 보니,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 답정너이신지?]“…정말 그런 방법을 써도 될지 판단이 안 섰을 뿐이야.”
[국회 의사당 폭파를 말입니까?]“이 비리의 주동자들을 모두… 내 손으로 처리하는 거.”
헬 게이트에서 만난 괴물들이야 이 손으로 찢어 죽인 게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심장이 펄떡펄떡 뛰고, 자신과 같은 신체 구조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아무리 화가 나도 자신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면서까지 그들의 죄를 캐묻고, 고문하고, 죽일 수 있나?
물론 죽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살짝 엇갈린 것만으로도 조명의 인생은 영원히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으니까.
조명에게 재능이 없고, 11500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다른 피해자들처럼 소리 소문 없이 죽어 나가거나 저들의 노예가 되었겠지.
그래서 저들에게도 피해자의 고통과 비탄에 찬 목소리를 깨닫게 해주고 싶다.
딱히 영웅 심리가 발작을 일으키려는 것은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은 것.
같은 인간임에도 전혀 주저하지도 않고, 개인의 사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좆으로 본 저들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 다이버의 손에 직접 피를 묻히기가 싫다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울 의향이 있으신지?]“…일단 들어는 볼게.”
[사냥꾼이 두 다리 쭉 뻗고 있어도 사냥개가 있다면 사냥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사냥개를 이용하십시오, 다이버. 마침 저기서 꼬리를 흔들며 접근해 오고 있습니다.]조명이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천천히 움직이는 버스 위에서 그 유명한 타이타닉 연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666과 1004가 있었다. 덧붙여서 앞이 666, 뒤가 100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