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63
헬 다이버즈 062화
62화
“아, 재밌었다. 인간들의 도심지도 해양 플랜트와는 다른 면이 있네. 구경거리가 참 많더라고.”
“맞습니DA. 그런데 교통 카드라는 물건이 없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건 고칠 필요가 있어 보이더군YO.”
“대한민국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가 대중교통 시스템인데요.”
행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가당찮게도 버스 위에서 훌쩍 뛰어내린 두 사람은 촌놈들처럼 투덜거렸다.
서울로 상경한 지방 사람이나 외국인이 가장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복잡하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서울의 교통 시스템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것만큼 편한 것도 없어, 세계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교통 카드가 없다고 버스 지붕 위에 올라타 도심지를 활보한 것은 두 사람이 처음일 것이다.
“그리고 교통 카드가 없으면 현금이라도 냈어야죠. 해양 플랜트에서도 한국 돈이 유통되었을 텐데, 정말 한 푼도 없었어요?”
“아아, 이거?”
666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백만 원권 수표였다.
“진즉 말해주지그랬어. 하마터면 무임승차할 뻔했네.”
666은 막 문이 닫히려던 버스의 문을 억지로 잡아 열고는,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의 버스 기사에게 수표를 쥐어 주었다.
“잔돈은 필요 없어!”
사회 상식은 필요하실 텐데.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온 666은 ‘나 잘했지?’라고 말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1004가 옆에서 박수만 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조명은 벌써 드롭킥을 시전했으리라.
“일단… 후우, 휴가를 즐기기 전에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요 앞 카페로 가죠.”
“돈 필요해?”
“제가 낼게요.”
또 수표를 꺼내려는 666을 제지한 조명은 두 사람을 이끌고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서울 천지에 널리고 널린 것이 카페인지라, 구름처럼 몰려든 구경꾼들을 제치고 가게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영화 촬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두툼한 방호복을 껴입은 인간 둘,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래형 슈트를 껴입은 인간이 하나. 이 재미있는 조합은 카페에 들어가서도 참 많은 구경꾼들을 불러 모았다.
예쁘장한 외모의 점원은 일행들의 차림새를 보고 필사적으로 웃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어렵게 주문을 받았다.
조명은 레모네이드, 666은 차가운 도시 남자보다 냉랭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1004는 밀크셰이크를 주문했다.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들처럼 대놓고 창가 자리에 앉은 일행들은, 바깥의 행인들에게 연신 사진을 찍히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다 못해 폭발할 지경인 서울 도심 한복판, 그중에서도 핫 플레이스로 손꼽히는 강남역 인근이다. 오히려 구경꾼이 적은 것이 기적일 터.
“그래서… 휴가를 즐기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니? 휴가를 알차게 즐길 계획이라도 정하고 싶은 거야?”
“Plan은 중요합니DA. 저축, 다이어트, 결혼, 그리고 노후까지. 모두 good plan이 뒷받침해 줘야 good ending을 볼 수 있습니DA.”
“넌 매번 다이어트 실패했… 으켁켁?!”
조명은 착잡한 심정으로 666의 목을 조르는 1004를 바라보았다.
이 둘을 자신의 호위이자 감시로 채용한 11500가 드디어 미쳐 버린 것인지,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을 과연 사냥개로 사용할 수 있을지, 그 짧은 시간 동안 고민거리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주변 소리 좀 차단해 주세요.”
“그거야… 쉽지!”
목을 졸리면서도 부탁받은 건 성실하게 행하는 모습이 666의 본질을 깨닫게 해주었다.
부탁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인가 싶지만, 사실은 별생각 없이 타인의 말을 따르는 쪽에 가까우리라.
666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일행들이 앉은 테이블을 감싸는 푸르스름한 반구형 막이 생성되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구경꾼들은 더욱 놀란 얼굴로 사진을 찍어 대기 바쁘지만, 신기하게도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시험 삼아 막 너머로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해보니, 막을 기준으로 공기의 흐름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정보를 AI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분위기 잡고 할 말이 뭐야? 충격 발표라도 하게? 헬 다이버 박 군은 연예인 A양과 비밀리에 열애 중 같은 거?”
“독립하겠다는 자식을 앞에 둔 부모가 된 기분입니DA. 신선하네YO.”
“그렇게 농담들만 하지 마시고, 두 분도 제가 왜 이 시기에 휴가를 나왔는지 알고 계시잖아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탁탁, 두들기자, 두 사람도 그제야 조명의 말뜻을 이해한 듯 입을 다물었다.
“복수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정도의 일은 아니지만, 저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 이 나라는 청소가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리적으로?”
“물리적으로.”
필요하다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힐 각오를 해서라도 이 나라를 좀 먹는 암 덩어리들은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2의 박조명이 언제 어디서나 태어날 수 있고, 자신 또한 언젠가는 저들에 의해 앞길을 방해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정부와 군이 합심해서 카르텔을 형성할 정도로 오가는 게 많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완전히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와 군이 국민들을 노예나 가축처럼 취급하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민생’을 챙긴답시고 이것저것 신경 써주긴 했다. 국민들이 있어야 자신들도 챙겨 먹을 게 많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엄청난 이윤을 가져다주는 헬 게이트의 등장 이후, 해양 플랜트를 운영하기 위해 그들은 국민들을 거리낌 없이 장작으로 사용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국민을 생물 취급이나마 했다면, 지금은 생물로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국민을 해양 플랜트라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한 장작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것 때문이지? 브로커가 사기를 치고, 군에서 전산을 조작하고, 정부가 매스컴과 인터넷을 검열해서 너 같은 피해자들을 양성해 낸 사건.”
“잘 알고 계시네요. 저 말고도 다른 후보생들을 봐오셨을 테니, 알고 계시는 게 당연하겠지만.”
“맞아. 그리고 지금 네가 생각하는 대로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저들이 제공해 주는 인간을 열심히 훈련시켜서 헬 다이버로 만들든가, 아니면 헬 게이트에서 죽게 만들었지.”
“…….”
통제관들은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일이 자행되는 걸 막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책임을 논할 수는 없었다.
말마따나 통제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엿한 1인분의 몫을 해내는 헬 다이버뿐이지, 그 이외의 인간들에겐 일절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훌륭한 헬 다이버라도 결국은 계약 관계일 뿐, 그들의 개인 사정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
즉, 통제관들은 철저하게 중립적인 방관자를 고수해 왔을 뿐, 책임론을 운운하기에 적합한 대상이 아니었다. 애초에 지구의 인간들과는 사고방식부터 다른데, 뭘 어쩌겠나.
그래서인지 조명은 복잡하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리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눈앞의 둘을 사냥개라고 표현한 AI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애새끼처럼 칭얼댈 생각은 없어요. 통제관님들의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도 알고, 또 무수히 많은 후보생들 중에서 저와 같은 사람들을 열심히 찾아다녔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인간들의 사정 따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겠죠.”
“잘 알고 있네. 이래서 단순무식하게 돈돈돈 하는 인간들보다 네가 더 낫다니까. 단순히 눈치만 빠른 게 아니라 주어진 정보를 잘 분석할 줄 알아. 이런 걸 두고… 영특하다고 하던가?”
“그냥 셈이 빠르다고 하죠. 어쨌든 전 두 분께 원하는 게 있어요. 이왕 저랑 함께 다니시는 거, 좀 도와주셨으면 하는 거죠.”
“대가는?”
“666 통제관님이 원하는 질문을 해드릴게요.”
쾅!
666이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치자, 금속 테이블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666은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없이 기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짜지?! 진짜 내가 원하는 질문을 해줄 거지?!”
“그럼요.”
조명은 예상한 대로 일이 풀리는 것에 흡족함을 느꼈다.
666이 그렇게 질문을 해달라고 떼를 쓴 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에게 해주길 원하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뭐든 좋으니 질문해라’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명이 다른 통제관들의 허점을 찌른 것처럼 자신의 허점도 찔러주길 원한 것이리라.
그걸 선택할 기회를 준다고 하니, 벌써부터 아픈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생각보다 단순하군요. 정신연령이 과자 주면 낯선 아저씨도 따라가는 어린애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저 엄청난 갭에 흥분을 느끼시는지?]“좀 닥쳐.”
조명은 다음 타깃으로 1004를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쓸데없이 관대하고 친절한 의무관이라면 선뜻 도와줄 것 같지만, 그래도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했다.
“의무관님도 도와주시죠.”
“대가는?”
어쩜 저렇게 판박이일까.
둘은 정신연령이 낮다는 점을 제외하고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밉다는 것 역시 큰 공통점이었다.
“어… 질문은 이미 해드렸고, 뭘 드리면 좋을까요?”
“네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
조명은 잠시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의무관님은 안 도와주셔도 돼요.”
[‘오른손’을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급 보물로 데이터베이스에 등록 완료.]그렇고말고.
조명의 반응이 꽤 재미있었는지, 의무관은 쿡쿡 웃으며 농담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대신 그녀가 말한 것은 상당히 특이한 요구였다.
“일이 모두 끝나면 다 같이 즐겁게 놉시DA.”
“…….”
썩어도 의무관이라고, 조명은 괜히 코끝이 시려왔다.
“좋죠. 일이 끝나면 제가 괜찮은 곳, 데려가 드릴게요.”
본격적으로 화제에 돌입한 조명은 우선 두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처리해야 할 인물과 단체를 알려주었다. 아울러 그 이유를 함께 설명했다.
“네가 준비한 자료들을 보면, 이 국가의 높으신 양반들이 상당수 얽혀 있는데?”
“이 정도면 말기 암 수준을 한참 넘었습니DA. 국가를 절제해야 할 수준입니DA.”
“좀 심각하긴 하죠.”
국가의 가장 높은 사람인 대통령, 군의 가장 높은 사람인 국방부 장관, 그 외에도 정부와 군의 고위 관계자들을 비롯해, 민간인들이 책임자로 앉아 있는 여러 불법 조직이나 민간 단체의 정보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여기서 조명은 물리적으로 처리해야 할 인물들의 리스트를 별도로 뽑아냈다.
우선 국가수반인 대통령은 말살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대통령이란 인물은 설령 죽을죄를 지었더라도 누군가에게 쉽게 죽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나중에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기 위해서라도 그에겐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하는 편이 좋다.
그 외에는 주요 기관장들이나 고위 공무원들 중 극히 일부를 제외했다. 이 국가적 범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딱 발만 걸쳐서 적당히 뒷돈만 받아 처먹은 자들, 그리고 대통령처럼 대외적인 이유로 쉽게 죽일 수 없는 극소수의 인물들이었다.
반대로 말살 리스트의 1순위에 오른 것은 전, 현직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상당수의 군 장교와 고위 공무원, 그리고 민간인 브로커들이었다.
특히 인권과 복지 혜택 등을 운운하며 어려운 삶을 살아온 10, 20대 남성들의 개인 정보를 수집해 팔아넘긴 민간단체는 모두 포함시켰다.
“죽이지 않고 법적 처벌을 받게 할 인물이 열셋, 죽여서 이런 일을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예방해야 할 인물이 삼백사십. 너무 극단적이야.”
“역시 그렇죠?”
“죽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 차라리 시간을 들여서 하나하나 고문하는 게 더 어렵지.”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으신가요?”
“앞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특정한 행동을 하지 않은 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야. 어차피 망할 세계든, 기적적으로 구원받을 세계든 사람 몇 명 죽인다고 해서 탈이 날 일은 없어.”
수백 명 단위를 단순하게 말하는 게 살짝 의외지만, 다행스럽게도 통제관들이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666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스마트패드를 조작해 조명이 전송한 말살 리스트를 말끔하게 지워 버렸다.
“절대 다수를 모조리 죽여서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고, 그 대신 사회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다주는 것보다 더 괜찮은 방법이 있어.”
“한 번 들어보죠.”
“이건 사실 내 특기가 아니라 1004의 특기인데… ‘그거’ 아직 가지고 있지?”
1004는 조금 전에 받아온 밀크셰이크를 들이켜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 의무관의 그쪽 방면의 Professional입니DA. 하지만 이 세계에선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 보지 않았던가YO.?”
“애송이가 원하잖아.”
“그럼 그 합의는 지금 막 깨진 겁니DA.”
조명은 두 사람이 뭘 말하는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다 1004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사과만 한 크기의 네모난 샘플 용기를 꺼내 조명에게 건네주었다.
여전히 자신들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있지만, 딱히 눈치 볼 것은 없었다. 누가 봐도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그래도 가능한 타인의 눈에 용기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조명은 조심스럽게 덮개를 열었다.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