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66
헬 다이버즈 065화
65화
“으으읍! 으읍?!”
“읍읍!!”
어두컴컴한 폐공장의 지하 창고. 그곳에 두 명의 남성이 나란히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이미 고위 공직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최설국 전 국방부 장관, 또 다른 한 명은 그의 뒤를 이어받은 현 국방부 장관 이현창이었다.
아침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가 떠들썩해졌다.
특히 외신에선 연달아 ‘한국 정부와 군대, 연고가 없는 젊은 남성들을 현대판 노예로 만들었다’와 같은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 군대에서 사병의 인권은 어지간한 약소국이나 개도국보다 낮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징병제이면서 사병에 대한 대우는 세계 최악.
자국민이 사병들에게 보여야 할 존경심과 예우마저 세계 최악.
그런 주제에 군 장교와 장성의 비리는 기본이 천억에서 조 단위였으니, 이번 사태는 결코 가벼이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 흑인 노예 시절과 맞먹는 인권유린 사태가 벌어진 탓에 세계 각지의 인권 운동 단체를 비롯해, 대한민국과 군사적, 경제적 동맹을 맺고 있는 우방 국가의 수반들도 깊은 유감을 표했다.
북한도 아니고, 설마 세계에서 알아주는 선진 국가인 대한민국이 현대판 노예제도를 부활시켰으리라곤 감히 상상도 못했으니까.
오죽하면 인민을 국가의 부속품으로밖에 보지 않는 중국조차 ‘아, 저건 좀 아니지 않나요?’ 같은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조명은 노트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흘러나오는 뉴스 속보들을 두 사람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전, 그리고 현 국방부 장관이 이 모든 사태의 핵심이었다. 군 장교나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뒷돈만 받아 처먹으며 활동한 몸뚱이라면, 바로 이자들이 머리인 셈이었다.
뉴스에선 이미 검찰의 특별 수사부와 기무 부대가 대거 동원되어 관련자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있다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국가적으로도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라 검찰의 움직임이 상당히 빨랐던 것이다. 물론 한 손 거들어준 VIP들의 힘도 컸다.
하지만 저들은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잡아들이면서도 끝끝내 핵심 인원들을 ‘산 채’로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돌아왔다, 애송이.”
“어서 오세요. 고문부터 하실래요, 아니면 심문? 그것도 아니면…….”
“난 하루에 정해진 양만큼 칼로리를 소모하는 타입이야. 이젠 다 귀찮으니까, 네가 알아서 해.”
방호복이 피로 물들어 있는 666은 근처의 낡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한때 후보생과 다이버들 사이에서 다양한 무기를 갖고 있는 괴짜 통제관이 있다는 말이 돌았는데, 그 말대로 666은 온갖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기를 다루는 것도 익숙하지 않겠느냐는 조명의 의문에, 666은 자연스럽게 체포될 예정인 몸뚱아리들을 찾아 나섰다.
그 뒤에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이 사태의 또 다른 원흉이던 군 장교들은 모조리 ‘현실을 비관해서 자살’이라는 형태의 조작 암살로 마무리했다. 고위 공직자들은 해외 도피나 야반도주처럼 적당히 꾸민 뒤, 죽여서 파묻어 버렸다.
며칠이 걸린 것도 아니고,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각기 다른 형태로 죽인 다음, 교묘하게 위장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딱 반나절이었다.
새삼스럽지만, 1급 통제관이란 존재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두 분도 들으셨겠지만, 지금 검찰에서 수사 중이거나 잡아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죄질이 낮아서 죽일 필요는 없는 사람들, 혹은 죽여 버리면 사회에 큰 혼란이 오거나 이미지상 안 좋은 사람들 뿐이에요.”
“읍! 으읍!!”
“으그그그읍!!”
그렇다면 전, 현직 국방부 장관인 자신들은 왜 이곳에 잡아두었냐는 듯한 반응이 돌아왔다.
이미 사회적으로도 큰 혼란이 왔고, 국민들은 다 같이 들고일어나 정부와 군대를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대통령과 국회가 존재하는 한, 언제든지 쉽게 채울 수 있는 장관직 한두 명쯤은 사라진다고 한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조명은 666에게 가장 먼저 두 사람을 납치해 한 기업인으로부터 제공받은 이 폐허에서 결착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변명하고 싶으신 마음은 잘 알겠는데, 두 분의 죄는 너무나도 명백해서 그 어떤 변명을 한들 합리화가 될 수 없거든요. 그렇잖아요? 대통령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군의 1인자인 두 분이 그 빌어먹을 브로커 놈들이랑 작당해서 어마어마하게 뒷돈을 받으셨잖아요. 뒷돈만 받았다면 모를까, 군대 내의 정보를 통제하는 것도 모자라 해양 플랜트에서의 공적을 모두 자기들 것으로 돌리셨잖아요. 작정하고 할 거 못할 거 다 하신 분들이 이제 와서 아가리를 놀리면 안 되죠.”
설령 입에 재갈이 물린 지금, 혀를 깨물어 자살하려는 반성의 의지를 보여도 코웃음 칠 마당에 변명을 내뱉는다는 건 너무나도 양심이 없다.
만약 그런 추악함을 봤더라면 조명은 이미 이성을 잃고 두 사람을 맨손으로 두들겨 패서 죽여 버렸을 것이다. 문득 미리 재갈을 물려둬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운 민간 브로커들은 모두 VIP들이 대신 처리해 주겠노라는 확답을 받았다. 거기까지 조명 일행들이 신경 써야 했다면 너무 바빴을 텐데, 그런 점은 부와 권력의 힘이 참 좋았다.
정말 죽여야 할 것들, 죽여도 탈이 나지 않을 것들은 666이 깔끔하게 처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눈앞의 두 사람뿐이었다.
“아니, 사람조차도 아니지. 짐승 미만이지.”
조명은 1004에게서 건네받은 특수 용기에서 두 사람 분의 기계 벌레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그전에 조명은 차례차례 두 사람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젊은데다 단련까지 되어 있는 조명의 주먹에 두 노친네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몸부림쳤다.
“매번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젊은이들은 군대의 처우 개선 좀 해달라고 그렇게 울부짖었는데, 처우 개선은커녕 노예로 만들고, 자기들 뒷주머니 차는 데 쓰셨으니 기분 참 좋으셨겠어요.”
한가하다 싶으면 꼭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군의 인권유린 실태와 각종 사건 사고들.
‘언젠가는 개선되겠지’, ‘언젠가는 군인이 집 지키는 개 소리를 안 들어도 되겠지’ 하고 기대하던 젊은이들은 어느새 염세적인 노땅 예비군이 되고, 새싹에서 새파란 젊은이가 된 청년들은 바뀌지 않는 현실에 크게 실망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윗대가리들이 양심 하나만 지켜줬더라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그놈의 양심 하나를 지키는 것이 어려워서 숱한 젊은이들을 죽음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니 골백번 죽어도 시원찮을 쓰레기들이다.
“예전부터 사람 빡치게 하는 놈들을 꼭 이렇게 괴롭혀 보고 싶었어요. 두 분도 아시다시피 절대적 을에 해당하는 사회적 약자는 그런 거 못하잖아요?”
조명 본인도 참 많이 당해왔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꾹 참고 넘겨야만 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 몸의 긴장도 풀리셨겠다, 마무리해야죠?”
침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들어 올린 두 사람은 조명의 손에 들린 기계 벌레를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이지만, 그것이 인류의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란 걸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다. 해양 플랜트의 중책이었던 만큼 눈치도 빨랐다.
둘은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쳤지만, 단단히 구속된 탓에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재갈이 물려 이제 와서 혀를 깨물어 자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설정 값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감이 안 잡혔는데,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1조 번으로 설정했어요.”
무엇이 1조 번이란 말인가.
잠깐 동안 스친 생각에 둘의 표정이 얼어붙었지만, 조명은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의 콧속으로 기계 벌레를 집어넣었다. 기계 벌레는 미리 입력된 값을 실행하기 위해 두개골 내부로 파고들어 둘의 뇌를 장악했다.
설정 값을 1조 번으로 지정한 것과는 별개로, 조명이 직접 1004에게 따로 부탁해 자신이 겪은 ‘죽음’의 기억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런 후, 새롭게 만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삽입했다.
“해양 플랜트에서 당신들을 위한 노예로 만들어지기 위해 죽어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걸로 알게 될 거예요.”
조명은 두 사람 분의 기계 벌레를 작동시킨 뒤 먼저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뒤따라 걸어 나오는 666의 어깨 너머로 목청껏 울부짖는 그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철문은 굳게 닫히고, 이내 자물쇠까지 채워졌다. 더 이상 비명은 새어 나오지 않았다.
“네가 염원하던, 극히 개인적인 복수를 끝내고 나니 기분이 어때?”
“후련하면서도 씁쓸하네요. 제가 한 일은 분명 정당한 행위이고, 결과적으로 이 사회에도 좋은 쪽으로 작용하겠지만, 막상 그렇게 뿌듯하진 않아요. 그냥 끝났다 정도?”
바깥으로 나온 조명은 쌀쌀한 밤공기를 맞으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자신을 괴롭혀 온 원흉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고 나면 엄청난 쾌감과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약간의 후련함과 쾌감이 있지만, 동시에 찝찝함을 남겼다. 그 찝찝함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특히 거슬렸다.
그 기분을 안다는 듯, 666이 행인 보호용 난간에 기대며 말했다.
“맞아. 나도 사람 숱하게 죽여보고 묻어봐서 그 기분 잘 알지.”
“…그래서 그렇게 많은 무기들을 가지고 다니는 건가요?”
“내 ‘직업’과도 관련이 있지. 가령 1004는 그 흔한 의료 도구 하나 들고 다니지 않으면서 온갖 환자들을 잘만 치료하잖아?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녀석은 의사였어.”
그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과거를 들어도 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지만, 조명은 이내 신경 끄기로 했다.
1004가 그런 걸로 화를 낼 인간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녀석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지 못했어.”
“…의사인데도요?”
“그 녀석이 특별했던 거야. 지식과 실력을 동시에 겸비한 의사였지만, 그때의 상황은 그 녀석의 의술만으로 사람을 살릴 수 없었지.”
“그 반동으로 지금은 어떤 병이든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해. 네가 우리 통제관들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할 즈음이면, 그 녀석이 왜 만능의 치료 능력을 손에 넣었는지 알게 될 거야.”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빙빙 돌려 말하지만, 결국 자신들을 더욱 알아주고 이해해 주길 바라는 듯한 말투였으니까.
“언젠가 우리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넌 우리가 미쳐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정신적으로 말인가요?”
“감정적으로.”
조명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미친 거면 미친 거지, 감정적으로 미쳤다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애초에 지금도 통제관들 중에서 정상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신이 지금껏 만나본 모든 통제관들은 꼭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 있거나, 평범한 인간의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11500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 복수를 도와주시면 원하는 질문을 하기로 했죠. 원하는 질문이 있나요?”
“잊어버렸어. 그러니 네가 원할 때, 원하는 질문을 하도록 해.”
666은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난간에서 튕기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급격하게 바뀐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으나, 조명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고는 그저 앞서가는 666을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헬조선에서 일어난 노예의 난은 성공리에 끝났다.
* * *
[HQ! HQ! 여기는 찰리 소대! 감염체가 너무 많다! 민간인 호송 작전에 차질이 생겼다! 지원을 요청…….] [감염체의 수가 120억을 돌파했다는 속보입니다. 연합군 사령부에선 ‘패배란 없다’라고 밝혀…….] [폭격 좌표는 H1―05―11! 반복한다. 폭격 좌표는 H1―05―11!]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다수의 아동과 노약자들이 있습니다. 구출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H7 구역의 베이스캠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현재 저희 연구팀에선 샘플을 확보해 감염체로 변이되는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잘만 하면 감염으로 인한 변이를 차단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는 X―Ⅲ. 하이브를 찾았다. 놈들이 지속적으로 변이하고 있다.] [허가할 수 없다. 즉시 복귀하라, Detection Dog. 반복한다. 즉시 복귀하라. 현재 군에서 주관하는 모든 작전은 중지되었다.] [이주선에도 판데믹이 발생했습니다. 이제 곧 감염체가 득시글거리는 이주선이 식민 행성에도 들이닥칠 거란 말입니다!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감염되지 않으려면 육체를 포기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맡은바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 보이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HP―XOIV를 호위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