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71
헬 다이버즈 070화
70화
『착용자 확인』
― 생체 식별 코드 확인
― 헬 다이버 서포트 시스템 온라인
― 착용자 ID : 박조명(Light Park)
― 남은 복무일 수 : 없음
― 사유 : 헬 다이버로 전직(프리랜서)
― 신체 상태 : 피로도 UP!
― 정신 상태 : 예민함
― 감지되는 강화 능력 : 열 내성 초강화, 정신이상 내성 초강화, 체력 회복률 초강화, 체외 에너지 변환 및 흡수율 기본 강화
― 종합 평가 : 슈트에 비축된 자극 영양제는 유사시의 사고가 발생할 것에 대비한 것이지, 심심하면 까 먹으라고 주는 게 아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AI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조명은 수동으로 슈트를 조작해 자신에게 자극 영양제를 투여했다.
헬 게이트 내에선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는 헬 다이버들을 위해 고농도의 영양제가 따로 준비되는데, 꼭 배고플 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잠도 못 자고 불려 나왔을 때, 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극 영양제를 투여하니 살짝 피곤하던 몸이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침침해지고 있던 눈도 초롱초롱해져, 향후 열두 시간 동안은 문제없을 것 같았다.
조명은 언제나처럼 불쾌하기 짝이 없는 막을 뚫고 심도 200m 구역에 낙하했다.
지금껏 돌아다니던 구역과는 달리, 200m 심도는 극도로 광량이 적었다.
괴상하기 짝이 없는 나무와 수풀이 자리 잡은, 어두컴컴한 밀림. 그 한복판에 착지한 조명은 라이트부터 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늘에 태양은 없었다. 게다가 달이나 별조차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검은 하늘은 아니었다.
군청색에 가까운 하늘 아래, 주변 환경은 간신히 가까운 위치의 사물을 구분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만약 라이트 불빛이 아니었다면 눈뜬장님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보통 식물의 군생지라면 당연히 빛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마련인데, 조명의 그런 고정관념은 이미 오래전에 깨진 상태였다.
사시사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곳에서도 괴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고, 햇빛이 작열하다 못해 지면이 펄펄 끓어오르는 곳에서도 괴생명체가 존재했다.
하물며 빛이 거의 없는 곳이라고 한들, 식물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광합성을 해야 살아가는 지구상의 식물과는 다른 형태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단거리 생체 신호 확인. 러시아의 AI 모델 ‘봄바(Bomba)’와의 연락 신호를 확인. 본 AI가 권장하는 선택지를 들어보실는지?]“말해봐.”
[1번, 쌩깐다. 2번, 무시한다. 3번, 차단한다.]“…헛소리 말고 받아. 그 양반이 이번 조사대의 실질적 리더니까.”
몇 차례의 투덜거림이 이어졌지만, 곧 AI는 보노아르 주코브와 통신을 연결해 주었다.
다행히 조명과 상당히 가까운 지역에 낙하한 듯, 그는 기쁜 어조로 합류를 요청해 왔다.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됐나요?”
[연락을 계속 취하고 있지만, 아직 무전을 받지 않은 상태야.]생긴 것과는 달리 살짝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답하는 보노아르였다.
설마 연합 조사대로 참여한 이들 중 두 명이나 동시에 연락이 안 될 거라곤 예상치 못한 것이리라.
“일단 신호는 계속 보내는 게 좋겠어요. 낙하 도중에 사고가 발생해서 연락을 취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으니까요.”
절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팀의 분열이 일어나는 걸 원치 않은 조명은 ‘만일’을 강조했다.
보노아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조명의 의도를 알아챈 것인지 일단 그러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의 위치는 조명으로부터 서쪽으로 230m 남짓 떨어진 장소였는데, 숲을 관통하는 강가 근처에 아슬아슬하게 착륙했다고 한다.
미로만큼이나 복잡한 숲속에서 가장 쉽게 빠져나가는 방법은 고지대로 향하거나, 강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 물론 조명들의 경우엔 탈출이 아니라 조사가 목적이지만.
‘강이란 건 아무래도 생명체가 꼬이기 쉬운 장소니까.’
재미있게도 강의 하류로 향할수록 퇴적물이 많이 쌓이고, 근방에선 광맥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천생 일꾼인 조명에게 강가는 또 다른 노다지였다.
“지금 합류할게요.”
[조심하도록 해. 이곳은 광량이 극도로 적은데 기온은 이상하리만치 높은 곳이야. 심도 200m의 환경 연구는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보노아르는 과연 엘리트답게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조명은 커다란 부채처럼 축 늘어진 이파리를 밀어 헤치며, 그의 충고를 질문으로 되돌려 주었다.
“200m 심도에 내려와 본 적이 있나 보죠?”
그의 프로필을 본 것으로 조명은 보노아르의 행적을 전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맞아. 몇 번인가 내려온 적이 있었어.]그의 최고 잠화 기록만은 ‘알 수 없음’ 표기가 되어 있었다.
“전 다이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혹시 제가 주의해야 할 게 또 있을까요?”
[바닥을 면밀히 주시하도록 해. 이곳의 식물들은 하나같이 뿌리가 상당히 굵어. 돌부리처럼 툭 튀어나온 것들이 많으니,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시선을 슬쩍 아래로 향하니, 정말 돌부리처럼 툭 튀어나온 뿌리들이 상당히 많았다.
촉수처럼 괴상하게 뒤틀린 뿌리들이 있는가 하면,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도 굵은 뿌리도 있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굵은 뿌리에 덩굴처럼 친친 감긴… 실핏줄 같은 뿌리도 보였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뿌리가 기형적으로 발달한 건가?”
[식물 대백과 사전을 검색해 보는 건 어떠신지?]“휴학을 하긴 했지만, 나도 일단 대학생인 몸이야. 동식물의 기본적인 생태에 대해선 안다고.”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하고 튀어나온 AI에게 핀잔을 준 조명은 훌쩍 뿌리를 뛰어넘었다.
이곳의 기온은 31도로, 광량이 극도로 적은 것치곤 굉장히 높은 기온을 자랑했다.
헬 게이트는 심도와 좌표에 따라 환경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더니, 단순히 환경의 구조가 달라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괴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단순히 명예만 보고 내려오기엔 너무 괴상한 구간이다.
“이쪽이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원뿔 형태로 솟구친 거대한 버섯을 지나친 순간, 가로 폭이 10m쯤 돼 보이는 강 옆에 자리 잡은 보노아르가 맞아주었다.
AI들끼리 무어라고 떠들어 대는 것인지, 서로의 헬멧에 부착된 헤드라이트의 색이 밝은 백색에서 푸른색으로 잠시 바뀌었다.
보노아르는 휴대용 통신 장비를 강가의 자갈밭 위에 설치해 둔 참이었다.
“아직도 두 사람과 연락이 되지 않았나요?”
“그래. 네 말대로 낙하 중에 발생한 사고로 연락이 불가능해졌을 가능성이 높겠어.”
사실은 당사자들이 일부러 연락을 무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는 건 역시 경험 많은 연장자다웠다.
이 시점에서 조명은 분위기 반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어떡할까요? 일단 브리핑에서 들은 대로 평범하게 작업을 하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주변을 수색하면서 두 사람의 생체 신호를 추적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시킨 대로 일만 할 것인지, 아니면 아까운 시간을 쏟아가며 비협조적인 두 사람을 찾아낼 것인지를 물었다.
플랜트 키퍼는 딱히 누군가를 팀의 리더라도 정해주지 않았지만, 조명은 일단 잠정적으로 그를 팀의 리더라 여겼다.
그렇기에 자신은 어디까지나 제안을 하는 대원의 입장을 고수했다.
“연합 조사대이면서 단 네 명밖에 파견되지 않은 이유는, 저마다의 개성이 강해서 포지션을 쉽게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즉석에서 짠 조합이라도 팀 구실을 한다는 거지. 사다유키는 서포트, 샤오는 스카웃, 너는 마이너라고 한다면 딱딱 맞잖아? 하지만 두 명이나 빠져 버리면 팀이 성립되질 않아. 그럼 조사대가 편성된 것도 의미가 없어져.”
최대한 좋게 말하려는 그였지만, 결국 돌아온 대답은 ‘인원이 부족하니, 모두 합류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협조적인 둘은 내버려 두고 편하게 강가 근처에서 작업을 할 생각이던 조명은 숨김없이 인상을 찡그렸다.
심도 200m라면 어딜 파서 뭘 캐내든 굉장히 값진 물건일 텐데.
그걸 수납함에 가득 채우는 건 고사하고, 귀찮게 자발적 미아 둘을 찾아나서야 한다니.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지.’
나중에 되도 않는 이유로 책임 운운을 할 수 있으니, 조명은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그럼 합류 지점을 정하고 따로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그 편이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그건 너무 위험해. 비효율적이긴 해도 안전을 위해서 함께 다니는 편이 좋겠어.”
“하지만 작업 제한 시간이 걸려 있는 지금, 사람 둘을 찾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줄 알고 비효율적으로 탐색하겠다는 건가요?”
“소실자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선 최소한 둘 이상은 함께 붙어 다녀야 해.”
작업 우선인 조명과 팀의 합류를 우선하는 보노아르가 의미 없는 실랑이를 몇 분이나 더 이어 나갔을 즈음, 고요하던 통신 장비가 거슬리는 소음을 내뱉었다.
[거기… 치직… 누구 없…….]“…….”
“…….”
[너무 어둡…….] [길을… 치직… 찾을 수가…….]일본어가 자동으로 번역되었지만, 그 음색은 틀림없이 여성의 것.
즉, 사다유키의 음성이었다.
“위치!”
“뭐?!”
“위치 불러봐요! 지금 탐지 범위에 들어왔을 것 아니에요!”
“그, 그래. 여기서 북쪽으로 약 1.3㎞가량 떨어진 곳에서 생체 신호가 잡혀!”
조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제트 팩의 잠들어 있던 엔진을 일깨웠다.
샤오펑이 스카웃, 사다유키 미나미가 서포트, 조명이 마이너라면, 보노아르 주코브의 포지션은 무엇이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그는 감독관 포지션을 맡은 것이다.
팀원들 중 누구보다도 뛰어난 경력에 더해진 노련미, 그리고 최고 연장자라는 위치와 통신 및 탐지 능력에 치중한 슈트 장비, 마지막으로 팀원들의 합류를 고집하는 성향.
이 정도면 현장 지휘관이라기보단 현장 감독관에 가까웠다.
‘북쪽으로 약 1.3㎞.’
거리와 대략적인 위치를 알았다고 한들, 어두컴컴한 숲속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 건 정말 힘들다.
그래서 조명은 최대한 높이 날아올랐다. 여차하면 곧장 날아서 보노아르가 불러준 위치 근방을 이 잡듯이 뒤져 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조명이 하늘에서 1.3㎞가량 떨어진 위치를 내려다보았을 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숲이…….”
움직이고 있었다.
본래는 절대로 움직여선 안 될 것들이, 마치 서로 짜고 치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미친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거대한 나무는 아래로 푹 꺼지고, 수풀과 덩굴이 마구 솟아나 나뭇잎을 대신해 숲을 뒤덮었으며, 어떤 나무들은 뿌리와 함께 통째로 이동했다.
단순히 좌우로 움직이는 것만이 아닌, 모든 식물들이 불규칙적인 움직임으로 위치를 바꾸거나 뒤엉켜 천혜의 미로를 만들어냈다.
거기까지 걸린 과정이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심도 200m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데이터가 있어?”
혹시 몰라 센서를 통해 이 광경을 함께 보고 있을 AI에게 물었다.
물론 돌아온 대답은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지?]하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만약 심도 200m에서 갑자기 환경이 제멋대로 바뀐다는 데이터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잠화하기 전에 그런 정보부터 가장 먼저 들었을 테니까.
[이상 사태임은 확실. 그보다 서둘러 착륙할 것은 권고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무슨…….”
AI에게 되묻는 그 순간, 식물들의 대대적인 움직임에 의해 발생한 흙먼지를 뚫고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왔다. 노리는 것은 정확히 조명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공중 곡예로 피해냈지만, 채찍처럼 날아든 그것은 조명이 자리하던 허공을 마구 헤집다가 결국 지상으로 돌아갔다.
[데이터 검색 결과, 과거에 본 심도에서 휴대용 제트 팩을 사용한 다이버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음.]조명 역시 지상으로 되돌아가면서 AI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갑자기 숲 전체가 변한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공격을 받은 것, 이곳에서 제트 팩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 최초라는 것.
그것들이 무슨 연관이 있으며,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조금 전의 사태로 미아 상태인 둘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