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73
헬 다이버즈 072화
72화
보노아르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조명은 개인적인 작업을 우선시 하고픈 마음이 조금 더 강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사를 게을리할 생각은 없었다. 맡은 임무를 그렇게 쉽게 내팽개칠 만큼 몰상식한 건 아니니까. 게다가 작업을 위해 환경 조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단서’로 이어질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방식이 아니면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이 심도 전체를 이 잡듯이 뒤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데 아까운 슈트의 동력을 낭비하기보단 작업과 조사를 병행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만일의 사태도 대비해야 하니까.’
[200m 심도의 환경 변화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대단.]“정말 데이터와 맞는 게 하나도 없어?”
[200m 심도 환경 조사 연구 결과와 현 상황의 일치율이 5% 미만임을 확인.]그나마 강가는 멀쩡했기에 5%라도 일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고 해도 상관없어. 숲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딱히 위험한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핵심 작업환경인 강가에만 변화가 없다면 그걸로 충분해.’
울어라, 곡괭이! 뚫어라, 파일 벙커!
어느덧 걷고 또 걸어서 강의 하류에 도달한 조명은 주위의 지형을 살폈다.
바다처럼 넓은 해양으로 이어지는 강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강의 최하류에는 거대한 호수가 존재했다.
그런 주제에 물이 쉽게 빠졌다 채워졌다 하는 것인지, 강둑에는 침전물이 새롭게 쌓인 것 같은 흔적이 있었다.
이곳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숲이다 보니, 상당량의 물을 식물들이 빨아들이는 듯했다. 그러니 호수의 수위가 높아졌다가 낮아지기를 반복한 것이리라.
“자, 그럼 패를 까보실까. 짜라라, 짜라라, 쿵짝짝 쿵짝짝~”
일단 작업환경이 갖춰지면 그다음부터는 우물을 찾듯이 무대포 채광으로 시작한다.
마침 침전물이 가득 쌓인 곳을 발견했겠다, 작은 돌이나 커다란 암석 따위는 모두 물에 휩쓸려 저 아래에 가라앉은 상태였으니 강둑을 파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충 발길질로 수면을 걷어차서 채광 지점에 물을 뿌렸다.
안은 검은 물이 뿌려지자 금방 축축해졌는데, 이때 파일 벙커를 순서대로 때려 박아 틀을 잡았다.
우주에선 어쩔 수 없이 파일 벙커만 사용해야 했지만, 근처에 물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채광 지점을 무르게 만들 수 있었다.
수원 근처에서 채광을 할 때는 그런 장점이 있는 반면, 당연히 단점도 존재했다.
지하수가 고여 있는 빈 공동을 파내는지라 그 루트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물을 잔뜩 머금은 지반이 너무 무른 탓에 쉽게 붕괴할 위험도 있었다.
대신 오래전부터 침전물이 많이 쌓여 퇴적층을 형성한 탓에 일단 채광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뭐든 기대해 볼 수 있다. 단단한 퇴적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나 협곡의 광맥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화금석이 나오면 좋겠는데. 가격을 제일 후려치기 쉽거든.”
[AI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망에서 다운로드한 ’11월 차 최고 효율 파밍표’를 살펴보심은?]“웃차! 최고 효율 파밍표가 뭔데?”
[다이버가 헬 게이트 내에서 채광, 채집, 채취할 수 있는 모든 사물들 중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을 긁어모은다는 의미를 파밍이라고 하는데, 자칭 대학생은 어디 가셨는지?]“아, 게임 용어적인 의미? 그건 나도 알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한 삶을 살아왔지만, 조명도 현대 사회인들이 즐겨 하는 게임에 대해서 아주 모르진 않았다.
정확히는 자신의 형편상 게임을 즐길 수 없어, 옆집의 와이파이를 훔쳐서 유뉴브(Younoob)로 곧잘 게임 영상들을 감상하곤 했다.
특히 실시간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 혹은 BJ들이 실황 중계로 게임을 하는 모습은 썩 괜찮은 컨텐츠였다.
일종의 대리 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알바와 학업에 지친 조명은 익명 A 시청자로서 여러 방송들을 보며 심신을 달래곤 했다.
하지만 그 짓도 최근에는 접었다.
“하아!”
퍼석! 퍼석!
헬 다이버의 일이 바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오히려 대리 만족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해양 플랜트를 돌아다니며 국제 거래를 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최고급 PC나 TV 등을 주문해서 개인 룸에 설치했다.
그때부터 만족감이란 건 상대적임을 깨달았다.
“흐으으읏!”
파가각!
사람 한 명은 쉽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입구를 만들고, 그 중심부를 곡괭이로 내려치면서 굴을 파냈다.
그러면서도 너무 갑작스럽게 아래 방향으로 굴을 파면 행여나 물이 차오를 가능성이 있기에, 숲의 지반으로 이어지게끔 길을 텄다.
강가를 중심으로 100m 간격 정도가 텅 비어버렸지만, 대신 식물들의 잔뿌리나 지반으로 파고든 나무줄기들이 그득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들은 조명에게 달려들지 않았는데, 혹시 몰라 삽날로 쳐서 죄다 끊어냈다.
일정 구간까지 파고들자, 슬슬 지반도 바싹 마르다 못해 단단하기 짝이 없는 암반으로 변했다.
여기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뺀질뺀질한 벽창호 엘리트도, 비협조적인 두 연놈도 날 방해하지 않는 지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만의 시간이다!’
나중에 희귀 자원만 잔뜩 캐온 나를 두고 사람들이 왜 자원만 주구장창 캐다 왔느냐고 물었을 때의 모범 답안도 준비해 두었다.
― 댁들이 통상 작업 하고 오라면서?
조명에게 있어서 통상 작업이란 곧 채광. 채광이 곧 인생이고, 삶의 낙이었다.
하루 종일 공사판 막노동 뛴 것과 같은 고생을 해서 벌어들이는 액수의 차이가 적게 잡아도 수십 배, 많게 잡으면 백 배도 찍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게 어찌 인생이 아니고, 삶의 낙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철컥, 쾅!
암반을 곡괭이로 살짝 깨놓은 뒤, 그 흠에 파일 벙커를 쑤셔 박고 냅다 격발시켜 버렸다.
파가가가가각!
먼지와 돌 부스러기가 요란하게 튀어 올랐지만, 슈트를 착용한 조명에게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번 구멍이 뚫린 암반은 또다시 깨지고 구멍이 뚫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항복해 버렸다.
“이렇게나 잔뜩 흘려 대다니, 그렇게 좋더냐?!”
조명은 발밑에 쌓인 돌 부스러기들을 보기만 해도 행복했다.
암반을 뚫고 아래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드러나는 치부(恥部),
삽으로 거추장스러운 돌 조각들을 걷어내고 나면, 그 안에서 빛나는 원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호흡이 거칠어지고 손놀림은 더욱 빨라진다.
“흐흐, 흐흐흐…….”
[휴먼, 미쳤습니까?]참다못한 AI가 한마디 했지만, 조명은 개의치 않았다.
암반을 박살 내고, 광맥에 무혈입성(無血入城)하여 원하는 것을 쟁취한다.
실로 마초틱하면서도 똑똑하게 계산적인 행동거지 아닌가.
남들이 뭐라고 해도 조명은 그게 백번, 천 번 맞다며 자신할 수 있었다.
마침내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 광맥의 앞에 당도한 조명은 곡괭이를 들어 올렸다.
“내 곡괭이를 봐줘. 어떻게 생각해?”
[크고 흉물스럽습니다.]기계임에도 노망이 든 것인지, AI는 평소의 천박한 말투 따윈 집어던지고 진심을 담아 정색했다. AI에게 진심이 있기야 하겠느냐마는.
“네가 말한 그 파밍표에서 최고 효율의 수집물이 뭔지 아직 듣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안 들어도 될 것 같아.”
[눈앞의 화금석 덩어리들이면 확실히 돈깨나 만질 수 있을 겁니다.]“그렇지? 이걸 안 캐고 내버려 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게 맞지? 역시 저 벽창호 안 따라가고 혼자 내려오길 잘했어!”
이게 다 내 거다.
그런 생각이 뇌를 지배한 탓에 조명은 손에 침 뱉는 시늉을 한 뒤, 있는 힘껏 곡괭이를 휘둘렀다.
파싯!
‘파싯?’
‘따각!’이나 ‘까앙!’도 아니고… 파싯?
조명이 슬쩍 채광 지점을 바라본 순간, 곡괭이의 날 끝이 덜덜 떨린다 싶더니 곧 붉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일부러 고무호스를 밟아 일격에 수돗물을 터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시야를 뒤덮은 붉은 액체에 조명은 크게 당황했다.
“뭐, 무슨! 광맥에서 피가… 아니, 돌이 피도 흘리나?!”
[피가 아닙니다, 다이버.]“썅! 그럼 뭔데?! 아니, 그보다 너 되게 낯설다?”
[녹물입니다.]“쇠가 녹슬었을 때의 그 녹?”
[예.]“아니, 그렇다고 해도 말이 안 되지. 무슨 물기라곤 하나도 없는 장소에서, 그것도 광맥 속에서 녹물이 터져 나온다는 게 말이 돼?”
[원인은 판명할 수 없습니다만, 정밀 분석을 실시해 보시겠습니까?]“그렇게 해. 가능하면 그 벽창호에게도 연락을 넣어서 작업에 차질이 생겼다고… 아니, 이건 좀 염치없나?”
[현재 통신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갑자기 통신이 불가하다는 말에 조명은 허리춤까지 차오른 붉은 녹물 속에서 의문을 표했다.
“어째서?”
[본 AI는 안전 모드 모델이기 때문입니다.]‘전환한 적 없는데?’
조명이 무어라 더 말하려던 순간, 안전 모드가 한마디를 더 이었다.
[통상 모드가 본 안전 모드에게 제어권을 이양했습니다.]아무래도 어지간히도 조명의 뻘짓이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린 조명은 기분 나쁜 녹물의 정밀 분석부터 명령했다.
“젠장, 신성한 작업에 초를 치고 지랄이야. 대체 왜 녹물이…….”
[녹이 슬 만한 쇳덩어리가 있고,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으며, 또한 빈 공간 속에 갇혀 있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말이야 쉽지, 그럴 가능성이 실제로 얼마나 되겠어? 빌어먹을.”
그래도 혹시 몰라 불편한 자세로 광맥을 몇 번인가 더 두들겨 보았지만, 조명이 손에 쥘 수 있는 광석의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겉으론 두터운 광맥처럼 보여도, 조금만 파내도 금세 무너지며 뒤쪽의 빈 공간이 드러난 것이다.
마치 누군가가 교묘하게 광맥의 겉면만을 떼어내서 비밀의 벽으로 세워둔 것 같았다.
“염병…….”
빈 공간 속으로 라이트를 비춰봐도 보이는 거라곤 녹물을 잔뜩 머금은 것 같은 나무뿌리 몇 개와 암반으로 막힌 벽이 전부였다.
기껏 열심히 파고들어 왔는데 소득이 없자, 조명은 두더지처럼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운이 없어 자리 선정에 실패했을 뿐, 다른 곳을 파내면 괜찮은 노다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가 다시 곡괭이를 들어 올렸을 때, 작업 시간은 어느덧 두 시간째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까지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그다음을 넘본다.
언제까지고 부와 권력, 명예를 휘두르면서 즐길 수 있기 위해 불로장생을 원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떼돈을 벌어들인 기업인들, 혹은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린 선각자들.
그들 모두 하나같이 원한 것이 있으니, 바로 건강한 육체와 매우 긴 삶이었다.
역사에 따르면, 진시황제는 불로초를 찾기 위해 어마어마한 자금과 인력을 갈아 넣었다고 하며, 현대에 이르러선 매년마다 억 단위의 영양제와 각종 약들을 먹어가며 목숨을 연명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삶의 끝을 뒤로 미룰 수는 있을지언정, 완벽하게 역천할 수는 없는 법.
헬 게이트의 등장으로 의학 기술 또한 크게 발전했다지만, 여전히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난이도가 가장 어려운 것은 암 같은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수명이 다해 죽어가는 자를 연명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연명도 그냥 연명이 아니다. 낡고 쭈그러든 육체는 뽀송뽀송한 아기처럼 탱탱해지고 튼튼해지게끔 되돌려야 한다. 그에 따른 어떠한 부작용이 있어선 안 되며, 또한 그 혜택은 오로지 상류층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기술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할까?
현 인류에겐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가질 수 없으면 더욱 탐이 나고, 손을 뻗으면 당장에라도 닿을 것 같으니 더더욱 미련을 가지기 마련이다.
핵심 권력층은 그런 ‘기술’이 없다면, 그런 ‘물건’을 찾아오게끔 명령했다.
진시황제가 사람을 불로장생시키는 기술을 연구하라고 한 것이 아닌, 불로초를 찾아오라고 명령한 것처럼.
그래서 헬 게이트가 잠재적인 정답으로 지목되었다.
‘그곳이라면 정말 불로초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진귀한 물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망상에 가까운 가설이 기어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랬기에 현재 인류가 도달한 심도 중 가장 많은 식물이 자생하고 있는 심도 200m가 집중 공략 대상이 되었다.
그곳에 정확히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