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77
헬 다이버즈 076화
76화
보노아르는 조명이 삽 하나를 들고 얼쩡대는 멍청이인 줄 알았겠지만, 사실 놈을 뒤쫓으면서 준비해 둔 전략이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트 팩의 엔진 출력을 순간적으로 높여 단숨에 달려드는 것이었다.
“남자는 박력!”
등 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제트 팩은 일단 소음이 굉장히 적었다. 출력을 상승시키지 않으면 분사구에서 빛이 새어 나올 걱정도 없기에 은폐가 그리 어렵진 않았다.
그 덕분에…….
“컥?!”
불과 0.5초라는 찰나의 순간, 조명은 보노아르의 코앞까지 돌진해 흉갑을 후려칠 수 있었다.
“제트 팩을 그렇게 무식하게 사용하다니!”
“이거 부숴 먹으면 맞아 죽는다는 건 나도 알아. 근데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이 고프닉(Gopnik) 새끼야!”
채광에 쓰이는 장비들은 그 내구성이 슈트 못지않다. 그렇기에 곡괭이나 삽은 단순한 도구처럼 보여도 잘만 휘두르면 무시무시한 흉기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보노아르의 슈트 흉갑은 삽날에 맞아 움푹 파인 상태였다.
러시아제답게 티타늄 합금을 꽤나 사용한 듯해 하나하나 박살 내려면 고생깨나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조명은 한숨을 쉬긴커녕 들뜬 마음으로 삽을 붕붕 휘둘렀다. 고생하는 만큼 실컷 두들겨 팰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빌어먹을 동양인 놈! 사지를 하나씩 끊어주마!!”
키이이이잉!
불의의 일격을 당한 보노아르가 홧김에 소형 전기톱을 맹렬하게 회전시켰다.
제아무리 튼튼한 슈트라도 단숨에 잘라낼 수 있게 하는, 문자 그대로 뼈와 살을 내주고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극악한 도구였다.
“공사판에서 굴러본 적도 없는 새끼가 전기톱을 들고 설치네.”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다이버.]“아니, 그냥 고까워서 그래. 저런 건 전문가들이 다뤄야 멋있어 보이거든. 저런 놈이 아무렇게나 휘둘러 봐야 폼이 안 난다고.”
조명은 한때 공사판에서 배운 각종 기술들이라면, 먼 미래에 멋있는 맥가이버 아저씨로 거듭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상상했다.
여우 같은 아내가 원하는 물건이 있다면 뚝딱뚝딱 만들어주고, 토끼 같은 자식들을 위해 각종 장난감과 놀이기구를 만들어주는 맥가이버 아저씨.
장담컨대, 신랑감 후보 중 블루 오션 직업일 것이다.
‘그렇게나 멋진 도구를 저 새끼는…….’
열이 잔뜩 오른 보노아르는 조명의 머리 위에서부터 다짜고짜 전기톱을 아래로 내려찍었다.
전기톱의 날은 의외로 섬세해서 강한 충격에 취약하다. 나무를 벨 때도 도끼처럼 크게 휘둘러서 베는 게 아니라, 나무의 겉면에 갖다 댄 다음 천천히 깎아 들어가듯이 베는 게 맞다.
강한 충격으로 단단한 물체와 날이 부딪치게 만든다?
그랬다간 작업반장에게 복날 개 패듯 두들겨 맞는 거다.
“이곳에는 작업반장이 없으니, 대신 내가 패줘야지.”
파일 벙커가 내장된 두꺼운 팔목 보호대를 들어 전기톱을 막아내자…….
칵! 카가가가가!
엄청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마구 튀어 오르는 스파크와 팔 전체가 떨릴 정도로 강한 진동이 조명을 덮쳤다.
하지만 슈트마저 베어내는 전기톱이라고 한들, 두꺼운 파일 벙커가 내장된 팔목 보호대를 단숨에 절단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충격으로 인해 날이 상하면서 회전이 막혀 버렸다.
“뭣?!”
“장비가 네 애인이라고 아무도 안 가르쳐 주든?”
삽을 휘둘러 놈의 복부에 한 방,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놈의 뒷목을 잡아 니킥을 한 방 꽂아 넣었다.
다이버들 간에 전투가 일어날 경우는 거의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순전히 슈트의 성능이 높은 쪽이 승리하기 마련이다.
슈트의 출력과 내구도가 알파이자 오메가이니까.
“큭!!”
“참지 말고 소리 질러. 그래야 더 패는 맛이 있지.”
자동 번역 기능 때문에 조명의 말투는 약간 기계적인 어조로 들렸을 것이다. 게다가 목소리까지 시원찮으니, 마치 노골적으로 귀찮아하는 것 같은 태도로 비춰졌으리라.
“까불지 마라, 원숭이 새끼야!!”
팔목 보호대를 절단하다 도중에 막혀 버린 전기톱을 포기하고, 보노아르는 양손으로 조명의 어깨를 붙잡아 있는 힘껏 머리를 들이받았다.
헬멧과 헬멧이 부딪치자, 터어어엉! 둔중한 충돌음과 함께 충격파가 일었다.
착용자의 뇌진탕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헬멧 안쪽에 약간의 공간 장갑이 존재하는데, 충격과 빈 공간이 서로 공명하면서 굉장한 소음을 발생시킨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있는 힘껏 박치기를 때려 박은 탓에 피해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조명과 보노아르 모두 AI들의 ‘충돌 피해 발생’ 경고를 받으면서 서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헬멧은 가장 튼튼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지만, 내부에 보관된 AI 칩과 복잡한 처리 장치들이 피해를 완전히 상쇄시키는 것은 아직 불가능했다.
따라서 AI들이 입는 피해는 고스란히 다이버들이 리스크로 떠안는 것이었다.
[3번, 7번 구동부 자동 제어 장치 파손.] [제트 팩 자동 제어 장치 파손.] [파일 벙커 격발 장치 파손.] [그 외 셧다운된 두 개의 시스템 복구를 위해 본 안전 모드는 일시적인 복구 작업에 들어갑니다.] [복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서포트할 수 없으니 주의하십시오, 다이버.]“생명 유지 기능에만 문제없으면 돼!”
다이버의 목숨 줄인 생명 유지 기능이 손상되면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탈출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룰이 있었다.
다행히 룰을 깨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조명은 박살 난 팔목 보호대를 해체하고 던져 버렸다.
묵직한 파일 벙커가 해체되자, 움직임이 한결 편해졌다.
“넌 이제 뒈졌다, 보드카 새끼.”
정작 머리통을 처박은 건 본인이면서 피해가 더 컸던 모양인지, 보노아르는 움찔움찔 몸을 떨고 있었다.
녀석은 조명이 접근하는 것을 눈치채곤 재빨리 팔목 보호대에서 군용 단검을 뽑아 들었다. 일반적으로는 괴생명체의 샘플을 채취할 때나 해체 용도로 쓰이는데, 보노아르는 사람을 해체하는 게 더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삽의 리치가 더 길었다.
“또 깝쳐 봐! 또 깝쳐 보라고, 새끼야!!”
삽날 끝으로 놈의 상체를 찔러 밀어낸 뒤, 부드럽게 스윙을 하듯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단검의 칼날과 삽날이 격돌하면서 카앙! 거슬리는 마찰음이 조명의 귓가를 자극했다.
몇 번의 공방 끝에 보노아르는 딜레이가 긴 삽이 자신의 헬멧을 스치고 지나간 틈을 타 손잡이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완전히 꿰뚫리진 않았지만, 놈이 필사적으로 삽자루를 붙들고 있어 더 이상 삽을 휘두르는 건 불가능했다.
[시스템 복구 완료. 구동부 제어 가능.]“구동부 출력 높여!”
[출력 상승.]두 사람이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조명이 삽자루를 놓자마자 보노아르는 삽을 멀리 던져 버렸다.
더 이상 무기라곤 남아 있지 않게 되었지만, 조명은 단숨에 끌어 올린 구동부 출력을 이용해 보노아르를 몰아붙였다.
“끄으으으으…….”
5레벨 부분 구현화 슈트의 최대 장점. 그것은 우월한 생명 유지 기능이 아닌, 부분적으로 구현화된 슈트의 몇몇 부품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벌써부터 삐걱삐걱대면서 구동부의 부품들이 파손되기 시작했지만, 조명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보노아르의 양팔을 움켜쥔 채 돌진했다.
녀석이 착용하고 있는 슈트 역시 러시아제의 4레벨 슈트지만, 기동성을 살린 물건이기에 내구도는 형편없었다.
드그그그그극!
자갈밭 위에서 몇 미터나 밀린 보노아라는 결국 뒤로 넘어갔다.
맨몸 승부였다면 조명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겠지만, 좋은 슈트 놔두고 맨몸으로 치고받을 이유가 어디 있겠나.
“너, 너 이 새끼……!”
“그러게 내가 선택지를 줄 때 하나를 골랐어야지. 괜히 사람 열 받게 만들어놓고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 그랬어?”
마운트 자세로 보노아르를 짓뭉갠 조명은 주먹으로 몇 번이나 후려쳐서 놈이 쥐고 있던 단검을 떨구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도 격렬한 반항이 이어졌지만, 슈트의 성능상 조명은 절대적 우위를 취하고 있었다.
“일단 좀 맞자.”
빡! 빡!
가드조차 올릴 수 없는 상태의 보노아르에게 조명은 인정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제아무리 튼튼한 헬멧이라도 몇 차례나 반복적으로 가격당하니, 역시 버티질 못했다.
방탄유리보다도 강도가 높은 바이저는 금이 쩍쩍 가버렸고, 쌈빡하게 잘 빠진 둥근 헬멧은 군데군데 찌그러져서 공간 장갑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물론 단순한 타격으론 큰 피해를 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조명은 그나마 가장 연약한 슈트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목을 돌려야 하는 이유로 두꺼운 장갑이 자리 잡을 수 없기에, 모든 슈트의 약점은 항상 목덜미였다.
일부 슈트들은 흉갑의 상판 보호대를 좀 더 높게 설계해서 목을 가려주긴 하지만, 그래도 목이 약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커, 커허!!”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쉴 새 없이 두들겨 맞는 것만큼이나 서러운 것도 없거든.”
목이 졸리면서 두들겨 맞아본 경험이 있어야만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숨이 막히는 것도 편하게 막히는 게 아니다. 주기적으로 흉부를 두들겨서 폐를 압박해 준다. 이러면 헛숨을 쉬게 되는데, 그때 경동맥을 살짝 압박해 주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물론 조명은 보노아르가 죽지 않도록 잘 조절하면서 전신을 마사지하듯 철저하게 두들겨 패주었다.
수십 대를 넘게 두들겨 팼을 즈음에는 슬슬 장갑이 망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근처에 내팽개쳐져 있던 삽을 가져와서 다시 두들겼다.
아예 작정하고 놈을 거꾸로 눕힌 다음, 엉덩이를 삽의 평평한 면으로 타작하기도 했다.
“코리안 곤장 맛이 어때? 이러니까 막 자기 잘못을 다 고하고 싶어지지 않아?!”
“웃기지… 마라! 이딴 짓을 해도 넌 결국……!”
“나중에 안 좋은 꼴 당할 거라고? 근데 어쩌라고. 지금 안 좋은 꼴을 당하는 건 너지 내가 아닌데.”
놈의 엉덩이 장갑도 삽으로 박살 낸 후엔 더 때릴 곳을 찾기 위해 발로 굴리면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여기 아직 덜 맞았네.”
“으윽!”
“이거 봐라? 여기도 아직 흙이 안 묻었잖아?”
“컥!”
누가 사람으로 축구를 할 수 없다고 했나.
조명은 아예 작정하고 보노아르의 몸을 이용해 축구부터 배구, 농구까지 즐겼다. 나중엔 둥근 자갈 몇 개 골라서 야구나 골프를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조명은 보노아르를 몇 시간 동안 실컷 가지고 놀았다. 온몸 구석구석, 뼛속 깊이 자신의 손맛이 새겨질 만큼 두들겨 팼다. 혹시라도 기절해서 반응이 없다 싶으면, 슈트에 내장된 자극 영양제를 투여해서 강제로 깨워 다시 두들겨 팼다.
“후우, 10년 묵은 체중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야.”
[총 794회의 타격과 26회의 투석을 행하셨습니다.]“…죽었나?”
[범죄자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슈트의 생명 유지 기능이 아슬아슬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분명 군데군데 부러지고, 퉁퉁 붓고, 터졌겠지.
굳이 슈트를 해체해 보지 않아도 보노아르가 어떤 꼬라지일지 조명은 쉽게 짐작 가능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맞을 짓을 했으니 맞은 것이고, 결과적으로 죽지도 않았으니 예정대로 아닌가.
“휴, 징글징글한 놈. 그렇게 처 맞으면서도 잘못했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안 하더라.”
[어차피 귀환하면 자신이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이걸 회수하는 거지.”
조명은 유일하게 건드리지 않은 헬멧의 뒤통수, AI 칩을 넣어두는 보관 케이스를 열어 녀석의 칩을 회수했다.
본래 AI 칩은 타인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지만, 이 경우 조명이 보노아르를 실컷 두들겨 패는 과정에서 헬멧의 잠금 장치를 박살 내버렸다. 자물쇠가 망가진 금고에서 돈 꺼내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나.
“마음 같아선 그 두 사람의 시신도 가져가고 싶지만… 그건 안 되겠지.”
샤오펑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보노아르의 수작질로 인해 슈트까지 망가졌을 테니 추적도 힘들 터.
사다유키 미나미의 시신은 너무나도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라 헬 게이트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후에 내려오게 될 뒤처리반이 회수해 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헬 게이트의 등장으로 명목상 세계의 국가 간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을 줄이야.”
[국가 간의 경쟁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경쟁 국가의 유망주나 실력자를 제거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계략이었습니다.]“그래그래, 그런 새끼들 때문에 그냥 선량하게 돈만 벌고 싶은 사람들도 이런 개고생을 하게 되는 거지. 세상 참 살기 좋다. 그치?”
[본 AI에게 ‘삶’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은 겁니까?]“집어치워.”
‘농담도 못하나’ 하고 한마디 덧붙인 조명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보노아르의 라이프 라인을 건드리려다 말았다.
한창 힘 빼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강가에는 아직도 괴상한 식물이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건 뭐지?”
[초고농도의 에너지가 집약된 변종 생명체입니다. DNA 구조가 상당히 변질되어 있습니다.]“초고농도 에너지라면… 일전에 우주에서 만난, 그런 것과 비슷하다는 거야?”
[다릅니다. 저 변종 생명체는 순수한 에너지를 물질로 구성하여 체내에 저장해 두는, 일종의 ‘저장고’입니다. 자신이 직접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방출할 일도 없는, 그저 저장하는 능력만을 갖췄을 뿐인 변종 생명체입니다.즉, 그런 목적으로 설계되었을 뿐인, 로봇 같은 생명체라는 의미였다.
그러다 문득 저장이라는 단어에 이끌린 조명이 보노아르의 라이프 라인에 전기신호를 먼저 보냈다.
이후 하늘로 끌려 올라간 보노아르가 먼저 구출되자, 조명은 우두커니 서 있는 녀석의 뒤로 다가갔다.
“뭘 저장해 둔다는 건, 그게 엄청 귀중하다는 의미지. 이렇게까지 개고생을 했는데, 나도 보상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보노아르는 분명 전기톱으로 변종 생명체의 등을 가르려 했다.
조명은 망설일 것 없이 자신의 전기톱을 뽑아 그것의 등을 조심스럽게 갈라냈다.
기분 나쁜 식물의 뿌리나 줄기 같은 것들이 잘려 나가면서, 끈적한 산성액들이 뚝뚝 떨어졌다.
그 틈새로 보이는 것은… 인간으로 치면 심장이 있어야 할 곳에 대신 자리 잡고 있는 무언가였다.
“…구슬?”
고작 알사탕만 한 구슬은 매우 붉었다.
어찌나 붉은지, 인간이 피를 흘린 것을 한데 모아두면 딱 이런 색이 나오지 않을까 싶을 만큼 붉었다.
그런 주제에 묘하게 표면이 매끄럽고, 젤리처럼 살짝 말랑말랑한 느낌까지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선지를 구슬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다.
딱히 위험해 보이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조명은 안전 모드에게 의견을 요구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을 해봐.”
딱히 먹겠다는 소리를 한 적도 없는데 절대 먹지 말라니.
“그거 알아? 인간은 원래 하지 말라고 할수록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동물이야.”
조언을 하랬더니 먹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먹고 싶어진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청개구리의 법칙이다.
조명은 헬멧의 마스크 일부를 해제하고 단숨에 구슬을 입에 넣었다.
딱히 기대한 건 아니지만, 놀랍게도 딸기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