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8
헬 다이버즈 007화
7화
“소장님, 11500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뭐?”
“그게… 조금 전에 1급 통제관의 훈련구역 통제 요구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정말 잠깐이지만, 하필 그걸 신청한 통제관이 11500이었습니다.”
“그 망나니가? 벌써 후보생 여럿 갈아 치우고 백수 한량처럼 지내는 줄 알았더니, 또 용케 후보생 하나를 물었군.”
모니터 숫자만 해도 수백 개에 달하는 모니터링 룸에 들어선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홀짝이며 그를 씹어 댔다.
기분 좋게 오후 근무를 시작하려는 마당에 자신과는 영 맞지 않는 양반의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 감미로워야 할 커피의 향이 청국장마냥 구려지는 느낌이었다.
“대체 누구야, 그딴 놈의 후보생이 된 게?”
“자료를 확인해 보니, 오늘 막 입대한 신입 후보생입니다. ‘후보생 자원입대’ 코스로 들어온 일반인입니다.”
“내력은?”
“친척은 있지만 부모는 모두 사망, 보육원 출신의 평범한 20대 청년입니다.”
“난 또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싶었네. 저건 그냥 소모품이잖아?”
부하 모니터링 요원의 보고에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했다.
해양 플랜트에서 통제관이란 존재는 특별하다. 그중에서도 1급 통제관이란 감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그 언저리에 도달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그런 자들도 일단은 통제관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후보생을 키워내 헬 다이버로 만드는 일에 도움을 주고는 있다.
하지만 급이 낮은 통제관들에 비해 유독 눈이 높은 1급 통제관들은 어지간한 후보생으론 만족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재능충만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능충인 것 같지도 않고, 특별한 것도 없는 천애고아를 그 사고뭉치 1급에게 맡겼다? 그건 누가 봐도 사고뭉치 1급의 짓궂은 일을 대신 당해줄 고기 방패에 불과했다.
“그 빌어먹을 놈은 지난번에도 유망주 후보생 하나를 아작 내놓더니, 이번엔 또 무슨 낯짝으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건지 모르겠네.”
“훈련 구역에서 들어온 간략한 보고에 의하면, 이번에 새로 배정받은 후보생을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합니다.”
“교육? 교유우우우욱? 지랄 이단 옆차기 하고 자빠졌네!”
남자는 커피를 마시다 말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평범한 통제관이 그런 사유로 훈련 구역의 입장 혹은 통제를 요구했다면, 딱히 불평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인간들의 수준에 알아서 맞춰주니까.
하지만 식별 코드 11500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수준에 맞추기는커녕, 상대인 인간이 그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
일전에도 담력을 시험해 보겠다며 유망주 하나를 훈련 구역으로 끌고 들어가선, 총탄이 빗발치는 장소 한복판에 던져 두지 않았던가.
당연히 총을 쏴보기는커녕, 그런 상황에 놓여본 적도 없는 일반인이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린 유망주는 그대로 놈의 손에 붙들려 바다 한복판에 던져졌다.
그걸 아슬아슬하게 군이 구출해 냈기에 망정이지. 지금도 그때의 일만 생각하면 남자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이가 갈렸다.
모든 통제관은 국가의 입장에서 특별 대우를 해줄 만큼 특별한 존재이지만, 그놈만큼은 특별하게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저 물을 흐리는 한 마리 미꾸라지일 뿐이라면 벌써 처리했겠지만, 상대가 고래라서 문제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이 해양 플랜트에서 통제관들이 지니는 권력과 무력은 절대적이다.
5년 전, 헬 게이트의 등장과 함께 갑자기 인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정체와 신분, 무엇 하나 밝혀진 것이 없다. 처음부터 제각기 다른 방호복이나 우주복, 잠수복 따위를 걸치고 등장한 괴짜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괴짜들이 인류의 손을 잡고 헬 게이트에 잠화(潛火)하기 위한 헬 다이버들을 키워내고 있었다. 인류에겐 없어선 안 될 인재이며, 또한 전략적인 무기이기도 했다.
헬 게이트가 열린 지 5년이 되는 지금, 맛있는 떡밥과 일확천금을 손에 넣기 위해 근처로 모여든 물고기는 총 일곱이다. 무려 일곱이나 되는 놈들끼리 서로 조금이라도 많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한바탕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나라들이 동해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이다.
러시아, 미국, 한국, 일본, 호주, 영국, 그리고 중국.
개중에도 영국과 호주는 보유한 해양 플랜트가 따로 없지만, 가장 규모가 큰 미국 해양 플랜트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가장 규모가 작은 한국 해양 플랜트는 다른 강대국에게 힘으로 밀리지 않기 위해 헬 다이버들의 질을 높이려 노력했다.
그 결과, 타 국가들이 해양 플랜트의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경쟁할 때, 한국은 헬 다이버를 직접 키워낼 수 있는 통제관들을 집중적으로 회유해서 해양 플랜트 내에 끌어들였다.
확인된 숫자만 해도 약 10만 명에 달한다는 통제관들 중 한국 해양 플랜트가 보유한 통제관은 대략 1만 명. 다른 나라들에 비해 통제관들의 머릿수만이 아니라 수준도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10만 명의 통제관들 중에서도 으뜸이라고 알려진 1급 통제관, 아무리 많아봐야 백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자들을 한국은 무려 열 명이나 손에 넣었다.
그런데 막상 손에 넣고 보니 1급 통제관이란 것이 여간 다루기 힘든 게 아니었다.
훌륭한 헬 다이버를 키워내기 위해선 적성에 맞는 후보생이 필요하다며 시도 때도 없이 갈아 치우질 않나, 그나마 합격점을 준 후보생마저도 너무 험하게 굴려 헬 다이버가 되기도 전에 망가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 악독한 환경을 겪으며 승격한 자들은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헬 다이버가 되었지만, 그 수는 고작 다섯. 1개 잠수팀의 최저 인원인 여섯 명에도 못 미치는 수였다.
“지난 5년간 헬 다이버라곤 단 한 명도 키워내지 못한 놈이 고작 신삥 하나 훈련시키겠다고 아주 난리군, 난리야.”
“소장님, 이대로 감시를 계속합니까?”
“집어치워. 고작 이런 일로 해양 플랜트의 감시 체계 일부를 낭비하면 나중에 감사팀에서 우리 머리통을 쪼개 버릴 텐데, 뭣 하러 아까운 인력을 낭비하려 해? 그냥 무시해. 어차피 저 신삥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또 바다에 버려지거나 하겠지. 그럼 그때 저놈에겐 더 이상 후보생을 맡길 수 없다고 강력하게 건의해서 진짜 백수로 만들어 버리면 그만이야.”
“하지만 무력을 사용해서 군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건 못해. 놈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간들을 공격한 적이 없거든.”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통제관들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저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장은 어느새 식어버린 커피를 후루룩 마셔 버렸다.
그는 헬 다이버 출신이 아니지만, 헬 다이버들이 헬 게이트 내에서 채취해 온 각종 자원과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신체를 강화한 리인포스 휴먼(Reinforce Human)이었다.
다만, 헬 다이버의 자질이 없어 그 어떤 통제관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이 유일한 결점일 뿐, 전투 능력은 오히려 숙련된 헬 다이버와 동격이거나 그 이상 가는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도 통제관의 앞에 직접 나서서 욕설을 퍼부으며 불평불만을 토로할 정도의 자신은 없었다.
순수하게 육체적인 능력이 부족하니까?
단지 그런 이유였다면 그냥 미친 척하고 한 번쯤 들이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저들도 나약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화풀이를 받아줬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었다.
―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상 절대 통제관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것이 최근 학계에서 내놓은 정설이었다.
분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증명된 사실이기도 했다.
우스꽝스러운 중세 시대 기사 복장을 갖춘 5급 통제관 한 명은 숙련된 헬 다이버 수십 명보다 우수하며, 잠수복을 입은 4급 통제관은 그런 5급 통제관의 몇 배에 달하는 신체 능력과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복을 착용한 3급부터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3급 통제관 단 한 명이 일시적으로 바다를 살짝 갈랐다는 보고가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기괴한 미래형 슈트를 걸친 거구의 2급은?
혹은 그들보다도 더 우위에 있는 1급은?
결론만 말하자면, 그들 모두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감히 논할 수 없다.
그렇기에 1, 2급은 통틀어서 전력을 따로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논외(論外)라고 분류만 해둘 뿐이다.
“저 신삥 놈은 지금 자기가 어떤 놈의 손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지. 불쌍한 새끼.”
딱 봐도 얼빵해 보이는 저 청년 또한 다른 후보생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망가진 고물 신세가 될 것이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통제관들이 모여 일을 하거나 물물거래를 하는 자그마한 항구에 두 사람이 등장했다.
한 명은 알아주는 꼴통 1급 통제관, 11500.
또 다른 한 명은 듣도 보도 못한 신입 후보생, 혹은 11500의 마수에 걸려든 불쌍한 고기 방패.
“저 애는 얼마나 버틸 것 같아?”
“2주?”
“에이, 2주는 너무 많다. 난 1주.”
“2주가 너무 많으면 1주도 충분히 많은 건데? 좋아, 난 3일!”
담당하는 후보생들에게 잠시 개인 시간을 내준 통제관 네 명이 커다란 카페에 자리 잡은 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쑥덕거렸다.
이곳에는 흰 우주복을 입고 있는 통제관부터 거무튀튀한 잠수복을 입고 있는 통제관, 중세 시대 기사풍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갖춘 통제관들까지… 다양한 면면이 모여 있었다.
흰 우주복을 입고 있는 통제관은 3급을 의미하는 붉은색 카드를 가슴팍에 달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각각 4급인 잠수복과 5급을 의미하는 풀 플레이트 아머가 나란히 자리 잡았다.
인간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지닌 그들이지만, 지난 5년간 인간과 함께 어울리다 보니 여러 문화에 물들고 말았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고 있는 문화는 하필 내기 문화였다.
“진 통제관들이 이긴 통제관의 후보생들에게 상점 1점씩 몰아주기 어때?”
“좋네. 안 그래도 후보생들이 요즘 상점 언제 주나 하고 눈을 반짝이면서 기대하고 있던데. 한 명당 3점씩 몰아서 주면 기절초풍하겠어.”
“후후, 귀엽지 않아? 다른 건 쳐다보지도 않고 우리가 주는 상점만 원하고 있잖아. 난 그래서 후보생 성적으로 상점 지급을 정하고 있어. 그렇게 해야 죽어라 노력하거든.”
“후보생에게 상점을 함부로 주면 안 되는 건 맞지만, 그건 좀 잔인한데?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 이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는 인간들이 많아.”
“그럼 결국 거기까지인 거겠지.”
우주복을 입은 3급 통제관이 코웃음을 쳤다.
자신이 전담하고 있는 후보생만 해도 다섯 명이나 된다. 그들 모두 적당한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사실 3급의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맡아서 키우고 있는 것은 통제관으로서의 입지를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헬 다이버로 승격한 인간들은 그를 위해 기꺼이 헬 게이트로 뛰어든다.
그곳에서 찾아낸 수많은 보물과 응집된 에너지 결정체. 그것만 대량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나약한 인간들을 상대로 상점을 조금 베풀어주는 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슬슬 돌아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이곳에서 그들은 어미 새다.
열심히 가르치고, 훗날 훌륭하게 성장한 자식들에게 편히 앉아 먹이를 받아먹는 어미 새.
그걸 위한 ‘통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