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83
헬 다이버즈 082화
82화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고.”
“얼쑤.”
조명이 한마디 툭 던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서 창환이 시큰둥한 어조로 장단을 넣었다.
꼭 이럴 때만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녀석은 조명이 한마디 더 안 하나,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조명은 슬쩍 옆자리의 창환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대체 왜 저 사람들까지 여기에 있는 거냐?”
“자세한 건 나도 몰라. 통제관님들이 우리더러 친목이나 다져 보라던데?”
“친목은 얼어 죽을 놈의 친목. 대부분 외국인인데다 이미 팀에 소속된 헬 다이버들뿐이잖아. 같이 잠화를 할 것도 아닌데, 웬 친목?”
“난들 알겠냐. 뭣하면 리더인 네가 직접 물어보지그랬어?”
“요 며칠간 1급 통제관들 모임에 불려 나가서 재롱 잔치 하고 온 나한테 그게 할 소리냐?”
“…미안.”
창환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기야, 유독 타인과 잘 어울리는 창환조차 이러고 있는데, 리더인 조명도 진이 다 빠진 상황이었다. 이런 마당에 식당에 여러 헬 다이버들이 모여 있으니, 분위기 케어가 안 되는 것도 당연했다.
“형찬 선배는 외국인들도 자주 만나던데, 그 사람이라면 이 분위기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 그건 안 돼. 형찬 선배한테는 따로 맡긴 일이 있거든.”
조명은 단호하게 창환의 말을 잘라냈다.
며칠 전에 확인해 보니, 조명의 비밀 계좌에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이 쌓여 있었다. 기업들이 1차 세탁을 한 자원 대금을 통제관들이 한 번 더 세탁해서 독립 탐사대의 전용 계좌에 보관해 둔 것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금액이 무려 18억. 일을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20억에 가까운 금액을 벌어들였으니, 조명은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다.
이 기세라면 연봉으로 계산했을 때 못해도 30억 이상은 뽑을 수 있다는 얘기. 10년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 절반인 5년만 일해도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조명은 좀 더 효율적으로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형찬에게 이것저것 맡겨둔 상태였다. 기업인인 그의 정보를 적극 활용해서 뜰 것 같은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한다거나, 괜찮은 대기업들의 주식도 좀 사두는 형태로.
그 외에도 자잘하게 부동산 투자를 해두었다. 인류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 자연스럽게 출산율도 오르는 중이고, 그 덕분에 침체기였던 부동산 시장도 조금씩이나마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고작 몇 년 묵혀두기만 해도 제법 큰 시세 차익을 볼 수 있을 거란 말에 믿고 투자했다.
사실 그런 쪽으로는 완전 젬병인 조명이기에, 형찬의 말을 신뢰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통제관들은 그런 쪽으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딱히 도움받을 일도 없고.
‘게다가 손해 볼 일은 절대 없지.’
형찬은 대체 뭐가 그리 겁에 질린 것인지, 그저 복잡한 계약이나 법적 절차들의 설명을 들으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조명에게 ‘혹시 손해가 나면 전부 메꿔주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
돈 많은 기업인이 손해까지 확실하게 메꿔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도 너무 받기만 하면 미안하니, 그가 필요한 게 있다면 조명도 적극 도와주기로 합의했다.
‘예를 들면 힘이라든가.’
단순무식하긴 하지만, 조명에겐 걸맞은 힘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 ‘배경’에서 나오는 힘이지만, 조명 개인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힘이기도 했다.
이번 1급 통제관들의 모임을 순회 공연하면서 그들에게 단단히 눈도장을 찍어두었는데, 하나같이 조명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는 자들뿐이었다.
특히 조명의 1회 대여권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는데, 조명은 그 점을 적극 공략해서 그들의 위세를 등에 업을 각오도 했다.
뭣하면 1일 정돈 자신을 대여해 줘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인지 소집 회의 이후, 사흘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1급 통제관들 몇몇은 이곳에 남아 부어라 마셔라 하며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과 함께 온 수행원들은 친목 도모라는 이유로 조명들과 어울리게 된 것이 현 상황이었다.
“내가 정비팀에서 보트 한 척 빌려서 근처 해양에서 놀자고 했더니 뭐라고 대답한 줄 알아?”
가만히 있던 창환이 뜬금없이 어제의 일을 꺼냈다. 그건 꽤 유명했기에 조명도 알고 있었다.
“‘놀아도 된다’는 명령을 받지 못했대.”
“…….”
“그 소리 듣고 나는 얘네는 진짜 아니구나 싶었지. 저걸 봐. 일과 시간 내내 제복만 입고 있잖아. 심지어 게스트 전용 숙소를 청소하러 갔던 아주머니한테 들었는데, 잠잘 때도 예비용 제복을 입고 자더래.”
“확실히 그건 좀…….”
거기까진 못 들었는데, 막상 듣고 나니 조명도 뜨악했다.
조명은 저 제복을 승급식에 딱 한 번 입고 난 후, 지금까지도 옷장에 처박아둔 상태였다.
소집 회의에 불려 나갔을 때도 구태여 제복을 입지 않은 이유는 지나치게 갑갑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팀원들조차 제복 대신 말끔한 사복을 갖춰 입는 선에서 그칠 정도였다.
“쟤네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꼭 기계 같아. 분명 우리랑 똑같이 숨도 쉬고, 먹고 자고 싸는 애들인데…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는 느낌이야.”
자유 시간인 지금, 식당에는 그들만이 존재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끼리 모이면 괜찮은 주제 하나를 꺼내서 대화한다거나, 아니면 상대방에게 추근대면서 친밀도를 높이려고 애쓰지 않는가.
한데 저들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딱 휴식만 부여받은 기계 병사들처럼, 그저 식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전부였다. 조금 전부터 유심히 지켜보았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각자 다른 통제관들의 수행원들인데 태도는 하나같이 똑같아.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조명이 지금까지 확인한 1급 통제관들은 모두 개성이 넘치다 못해 폭발하는 수준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조명의 바지를 벗기려 드는 양반이 있는가 하면, 조명에게 노래를 부르게 한 다음 심사위원을 자처하며 점수를 매기는 이도 있었다.
물론 점수도 그냥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었다. 열 명의 심사위원에게서 총합 90점 이상을 넘기지 못하면 벌칙이라며 폭탄주를 넘겼다. 반대로 90점을 넘기면 이상한 아이템 따위를 건네주곤 했다.
본래는 후보생들만 접할 수 있는, 상점 자판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그들은 아무렇게나 꺼내서 팍팍 넘겨주었다.
그토록 개성이 넘치는 양반들의 밑에 대체 어떻게 저런 기계 같은 수행원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건지, 조명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공과 사는 철저하게 구분하니까?
그래서 미친 듯한 훈련과 압박으로 수행원들의 감정을 완전히 죽여 버렸으니까?
나름 그럴듯하지만,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인간의 감정이란 건 그렇게 쉽게 억제가 되는 게 아니야.’
어마어마한 훈련량과 인내를 동반하는 고통, 절대로 냉정을 잃어선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주입된 특수부대나 첩보 요원들조차 사람이기에 감정이 존재한다.
하루 종일 제복만 입고 있으면 갑갑하다고 느낄 테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심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눈에 띄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들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그 어떤 반응도 볼 수 없고,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플레이 보이인 창환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친목 도모를 포기한 것이다.
‘뭐, 저들에게도 저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
1급 통제관이 어디 보통의 존재들인가. 인간의 사고방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비정상적인 존재들이 바로 1급 통제관이다.
조명이 그들과 가깝게 지낸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듯, 저 수행원들만이 알고 있는 1급 통제관들의 또 다른 면모가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파고드는 건 역시 부담스럽기에, 조명은 이내 그들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끊어버렸다.
어차피 며칠 뒤면 곧 돌아갈 사람들이다. 하물며 친목 도모조차 비협조적인데 이 이상 뭘 더 바라겠나.
조명이 자리를 뜨는 그 순간까지도 창환은 식탁에 널브러진 채 아쉬움을 토로했다.
“아쉽다, 진짜 아쉬워. 예쁜 애들도 있고, 멋진 놈들도 있는데… 왜 어울리질 못할까…….”
“포기해. 쟤들은 저게 좋아서 저러고 있는 거겠지. 자기들도 딱딱한 거 싫어했다면 벌써 우리랑 어울렸을 거 아냐.”
“1급 통제관들이 ‘놀아라’라고 명령한다면, 진짜 놀아줄까?”
“…가능성은 있을 것 같은데, 솔직히 보고 싶진 않아.”
저런 애들이 ‘놀아라’라고 명령받으면 어떻게 놀지 안 봐도 빤했다.
정말 기계적으로 게임이나 운동을 하거나, 흔들리는 보트를 타고 수영이나 낚시를 하겠지. 조금의 감정 변화도 없이!
그런 광경이 눈에 선한 나머지, 조명은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자신도 딱히 놀이에 적극적인 타입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딱딱하진 않다.
‘정보 수집이나 하러 가자.’
조명에게 주어진 다음 목표가 2급 통제관들의 과오 중 하나를 처리하러 간다는 것임이 공개되었다.
덕분에 독립 탐사대 소속의 다른 헬 다이버들도 조명이 어떤 일을 하는지 대략적이나마 설명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독립 탐사대 소속의 사람들에게도 적잖은 격려나 응원을 받고 있었다.
조명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으니 일단 응원하고 보는 것이다.
‘그게 또 은근히 부담스럽단 말이지.’
내부 사정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은 그냥 순수한 선의겠지만, 정작 응원을 받는 입장인 조명은 가슴 한 켠이 쿡쿡 쑤셨다.
묘한 압박감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 없던 조명은 그들의 반응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차라리 욕을 해준다면 조금쯤은 흥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좀…….”
1급 통제관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신도 슬슬 미쳐 가는 건가 싶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2급 통제관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전투 지휘본부에 도착했다.
전투 지휘본부는 유사시 독립 탐사대를 지킬 수 있도록 2급 통제관과 자경단으로 구성된 준군사조직의 지휘부였다.
일단 제멋대로 붙인 직책이긴 하지만, 666이 본인 입으로 자신이 총사령관이라며 좋아라 하던 것이 떠올랐다.
666의 지휘하에 독립 탐사대 내부의 치안과 외세의 침입 저지, 격퇴 등을 도맡는 전투 지휘본부엔 2급 통제관들이 득시글거렸다.
풀 플레이트 아머 차림의 중세 기사 같은 5급 통제관들이 말단 졸병, 잠수복 차림의 4급 통제관들은 정보 수집이나 식량 확보를 맡는 일꾼, 우주복 차림의 3급 통제관들은 개발이나 연구, 관측을 맡는 과학자.
이것이 세간에 잘 알려진 통제관들의 계급 차에 따른 보편적인 직책이었다.
여기서 2급과 1급은 조금 다르게 분류되는데, 우선 2급 통제관들은 모두 군인으로 취급한다. 이들의 복장이나 무장, 태도를 보면 죄다 군인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언뜻 5급 통제관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2급 통제관들은 현대 지구의 군인들처럼 체계적이고 효율적이며, 또한 첨단화가 완료된 미래형 군인이었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1급 통제관이 ‘지휘관’이 아니라, 2급 통제관 중에서도 특출 난 자들이 지휘관으로 선발되어 다른 2급 통제관들을 지휘하는 형태를 띤다는 점이었다.
기본적으로는 1급 통제관들의 명령에 거스르지 않지만, 충성심은 오직 2급 지휘관에게만 바친다는 느낌이었다.
덧붙여서 1급 통제관들은 굳이 말할 것도 없이 괴짜 중의 괴짜였다. 현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개성으로 똘똘 뭉친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흠흠!”
지휘본부에 들어서기 직전, 조명은 목을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2급 통제관들과는 그리 가깝게 지내지 않았는데, 우선 뼛속까지 군인인 양반들이라 군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조명은 살짝 꺼려지는 존재들이었다.
조명은 현재 군의 전산상으로는 전역자지만, 실질적으로는 군대 문화라곤 거의 느껴보지 못한 미필에 가까웠다.
후보생으로 활동한 것도 한 달 남짓한 시간인데, 대체 어디서 군대 문화를 겪어봤겠나. 그 흔한 갑질이나 갈굼마저도 1급 통제관들을 등에 업은 조명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이윽고 자동문이 양옆으로 갈라지면서 지휘본부 내부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훗, 좋은 근육이다.”
“프로틴을 더 가져와라. 1분이라도 쉬면 근.손.실이 일어난다구?”
“백만 스물하나… 백만 스물둘……!”
“내 이두박근을 봐줘. 어떻게 생각해?”
“3대 5,000을 못 치겠다고? 그럼 넌 언더 아머를 입을 자격이 없다!”
1급 통제관들의 모임과는 다른 의미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2급 통제관들은 이상할 정도로 하나같이 덩치들이 컸다. 원래 군인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헬 다이버들과 비슷한 형태의 튼튼한 슈트를 착용하고 있으면서도 거대한 덩치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매일같이 운동과 전투 훈련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운동을 안 하면 죽어버리는 개복치인 양, 하루가 멀다 하고 운동을 해 댔다.
바로 이게 조명이 2급 통제관들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환영한다, 솔저.”
“……!”
어느새 조명의 옆으로 다가온 2급 통제관 한 명이 우람하기 짝이 없는 팔을 조명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다이버를 다이버라고 부르지 않고, 솔저라고 부른다는 점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뭘 그렇게 쫄아 있나. 1급 통제관들 앞에서 당당하던 네 모습은 대체 어딜 간 거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오, 오늘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2급 통제관님들의 이야기를 조금 들어보고자…….”
“즉, 우리와 친목을 다지고 싶어서 왔다?”
“아니, 친목이라기보단… 예, 맞긴 한데요, 정보가 좀 필요해서…….”
“하하! 그게 곧 친목 도모지!”
쾅! 쾅!
그가 조명의 어깨를 두들겨 대는 통에 하마터면 어깨가 그대로 탈골될 뻔했다.
“그럼 일단 솔저에게 어울리는 언더 아머부터 찾아야겠군. 하사! 이 큐트한 솔저에게 걸 맞은 언더 아머를 사 와라!!”
“예쓰얼~!”
프로 역도 선수들도 진땀 뻘뻘 흘리며 들 것 같은 초중량 역기를 한 손으로 덤벨처럼 흔들고 있던 통제관이 그대로 달려 나갔다. 4급 통제관들이 일하는 의류 제작 업소로 향한 것이 분명했다.
“그럼 운동이라도 하면서 오붓하게 이야기해 볼까, 솔저.”
‘안 돼… 제발!’
필요한 정보만 얻고 갈 생각이었는데, 졸지에 프로틴 영양제를 뚝배기째 원샷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