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85
헬 다이버즈 084화
84화
오전 9시 정각.
아침 식사 후, 사전 브리핑까지 끝마친 조명은 통제관들과 함께 항공 갑판의 캐터펄트로 향했다.
조명이 정확히 뭘 하는지 자세히 아는 사람은 적어, 이번에도 조명이 캐터펄트를 이용해 시험 잠화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조명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 통제관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했다.
3급 통제관의 과오를 청산한 것은 분명 추켜세워 줄 만한 공적이긴 하나, 단번에 그 단계가 올라 버렸다. 그렇다고 조명을 보내지 않자니 ‘자격’을 갖춘 헬 다이버가 없다.
아니, 그 비스무리한 헬 다이버라면 얼마든지 준비되어 있지만, 이는 독립 탐사대 측에서 단호히 거부했다. 그들과 조명을 함께 행동하게 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 때문이었다.
“후우.”
언제나처럼 헬멧을 착용하자 부드러운 안감이 머리를 감싸주었다.
이윽고 수리가 끝난 5레벨 부분 구현화 슈트가 빠른 속도로 전신을 감쌌다.
마지막으로 접이식 외골격을 펼쳐서 장착하자, 외골격의 신호를 수신한 나노 반응 장갑들이 UFO처럼 날아들었다.
찰칵찰칵.
제멋대로 슈트의 취약점들을 감싼 반응 장갑판은 은은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다만, 빛이 그렇게 세진 않아서 눈살을 찡그릴 정도는 아니었다.
“이것도 잊어 먹으면 안 되지.”
조명의 흉갑 앞에 666이 소총 한 자루를 꽂아주었다. 주로 장비나 건축물에 관심을 보이는 8282와는 달리 철저하게 무기만 취급하는 666이 손수 제작한 소총이었다.
“틈틈이 사격 훈련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익숙하진 않은데요.”
“없는 것보단 낫잖아.”
그 말대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려면 역시 제대로 된 화기가 필요했다.
언제까지 몸을 망가뜨려 가면서 적과 육탄전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번에는 조명도 크게 반발하지 않고 소총을 챙겼다.
1004는 캐터펄트의 발사대에 오른 조명의 바이탈을 꼼꼼하게 체크해 주었다. 슈트 안에는 1004와 8282가 챙겨준 초소형 의약품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평소처럼 과묵한 13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고, 11500 역시 별말하지 않았다. 일행과는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한 5882가 라이터를 켜는 듯한 손 모양을 해 보이며 조명을 응원해 주었다.
2급 통제관들은 따로 조명을 배웅하러 오진 않았다.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여섯 시간가량 들어야 했던 조명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음보다도 패배를 더 끔찍하게 여긴다. 그들에겐 전쟁이 전부고, 설령 죽음을 피할 수 없을지라도 거기에 부끄러움 한 점 없다면 영광스러운 최후라며 추켜세우는 이들이었다.
패배는 곧 불명예이며, 불명예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그들은 많은 것을 잃어야 했다. 그것이 참을 수 없는 상처이자 치욕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나온다는 건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그걸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조명은 몸을 낮춰 자세를 잡았다.
캐터펄트에서 멀찍이 떨어진 안전 담당관이 수신호를 보내자, 컨트롤 타워에서 캐터펄트에 전력을 공급했다.
안전 담당관의 팔이 아래로 떨어지고, 이륙해도 좋다는 신호가 떨어졌다.
그 순간, 무지막지한 폭음과 함께 조명을 태운 발사대가 음속에 가까운 수준으로 쏘아져 나갔다.
무거운 전투기도 아니고, 고작 인간 한 명 날려 보내는 것이다. 괴물 같은 출력을 자랑하는 독립 탐사대의 해양 플랜트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다행히 환경적인 요소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조명은 무사히 목표 지점을 향해 빠르게 낙하했다.
1㎞에 해당하는 화표면을 파고들어 불쾌한 막을 찢고 들어가자, 익숙한 헬 게이트의 분위기가 확 느껴졌다.
『착용자 확인』
― 생체 식별 코드 확인
― 헬 다이버 서포트 시스템 온라인
― 착용자 ID : 박조명(Light Park)
― 남은 복무일 수 : 없음
― 사유 : 헬 다이버로 전직(프리랜서)
― 신체 상태 : 근육!
― 정신 상태 : 근육!
― 감지되는 강화 능력 : 열 내성 초강화, 정신이상 내성 초강화, 체력 회복률 초강화, 체외 에너지 변환 및 흡수율 기본 강화, 근육!
― 종합 평가 : 3대 몇 백 치시는지?
“3대 600 친다, 이 새끼야!”
AI의 비아냥을 맞받아친 조명은 무언가로부터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몸을 뒤틀었다. 시공간이 뒤틀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게 물들어 있던 시야가 마침내 밝은 광채를 마주했다.
조명은 주위에 펼쳐진 푸른 하늘, 솜사탕처럼 부드러울 것 같은 거대한 구름과 눈부시도록 빛나는 태양을 보았다.
‘지구의 환경과 흡사하다!’
푸른 하늘은 대기의 존재를 의미하고, 구름은 기압과 대기 중의 수분 존재 유무, 그리고 대기의 흐름(바람)을 의미했다. 거기에 지나치게 붉지도, 푸르지도 않고 적당히 희게 빛나는 태양은 지구의 그것과 판박이였다.
‘이만한 고고도에서 낙하해 보기는 처음이네.’
우주에서 낙하한 경우도 지표면으로부터 그리 멀지는 않았다.
우선 안정적인 낙하를 위해 사지를 크게 벌리자 공기저항 면적이 넓어지면서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거라면 천천히 지상을 훑으면서 낙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구름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지상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뭔가 많았다. 너무 많아서 조명의 시야에는 전부 담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문명!’
3급 통제관들이 외딴 별에 건설한 기지와 달리, 이번에는 토착 행성에 제대로 자리 잡은 인류의 문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작게 보이지만, 고도가 낮아질수록 인류의 문명이라 추정되는 도시와 높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보다 훨씬 더 진화된 문명이다.’
우선 도시의 규모부터 달랐다.
눈곱만큼 작은 건물보다 거대한 건물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로 고층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그런데 고층 건물들이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조금 구시대적인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 딱 그런 광경이 조명의 아래에 펼쳐져 있던 것이다.
‘대단한걸. 어쩌면 2급 통제관들이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는 군인이었을 뿐이고, 그들 전체의 문명은 3급 통제관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크게 발전했던 건 아닐까?’
조명은 바이저에 확대경 기능을 추가해서 도시 내부의 풍경을 샅샅이 훑었다.
정말로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지면 위를 떠다니는 미래형 차량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매연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는데, 분명 매연을 발생시키지 않는 천연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리라.
‘고작 도시 하나가 이 정도인데, 국가 단위로 보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세계인 거지?’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세계가 제대로 손도 못 써보고 멸망한다는 것이다. 조명은 지금부터 멸망하는 세계에서 능력껏 극소수 혹은 대다수의 인간을 구해야 한다.
현재 지구에 정착한 통제관들은 이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존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 이곳에선 찾을 수 없다.
이미 뒤틀린 시공간에서 벗어나 현재에 존재하는 이들이 정상적인 시공간에서 고립된 이상 지역에 존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만약 양쪽 모두 똑같은 존재가 존재한다면, 타임 패러독스보다도 훨씬 더 지독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모양이었다.
‘슬슬 착지하자.’
제트 팩의 역분사 기능을 이용해 조금씩 낙하 속도를 떨구기 시작했다.
갑자기 슈트 차림의 인간이 도시 한복판으로 뛰어 들어봐야 좋을 것이 없으니, 도시의 외곽에서 조금 떨어진 평원에 착지하기로 했다.
거대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그보다도 몇 배는 더 거대한 평원이었는데, 그 대부분이 경작지나 목축지였다.
황금의 파도가 물결치는 경작지, 반대로 초록빛으로 우거진 목축지.
어딜 어떻게 봐도 도시와는 언밸런스한 구성이지만, 이 세계의 인류는 거주지와 생산지를 결벽증 환자처럼 철저하게 구분해 두길 원하는 것 같았다.
설마 도시와 연결된 도로를 제외하면 죄다 생산지로 사용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기술의 발전과 식량 사정 문제는 모두 해결한, 실로 이상적인 인류의 미래도야.’
완벽하게 속도를 늦춘 조명이 경작지 한복판에 착지한 순간, 갑자기 시야가 황금빛 벼로 물드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벼가 왜 이렇게 커?!’
단순 높이로만 잡아도 벼의 크기는 2미터를 훌쩍 넘었다.
지구와 같은 형태의 경작지이기에 기껏해야 허리가 묻힐 거라고 생각했건만, 크나큰 착각이었다.
[지구의 벼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영양분을 과포화 수준으로 저장하도록 DNA 단계에서 설계된 벼입니다.]오랜만에 떠드나 싶었더니, 그새 통상 모드를 제치고 튀어나온 안전 모드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확실히 지구의 벼와는 달라. 이 정도면 슈퍼 벼가 아니라 초메가 하이퍼 암스트롱 제트 캐논 벼잖아.”
[DNA 샘플을 채취하는 것을 권장합니다.]“그래. 지구에 가져가면 도움깨나 되겠어.”
자신의 키보다도 높은 벼의 이삭을 털어 샘플 용기에 챙긴 조명은 슬슬 이 천혜의 미로에서 빠져나가기로 했다.
바로 앞에서 누군가가 벼의 벽을 헤치고 나오지만 않았더라면.
“댁은 뉘슈?”
“…….”
그곳에는 벼보다도 두 뼘 정도는 더 큰 후줄근한 셔츠에 멜빵바지 차림의 거대 근육남이 서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머리였다!
‘대머리가 날 잡아가고 있어.’
조명은 대머리거한에게 뒷덜미를 붙들린 채 숲이나 다름없는 벼를 헤치고 나가 작은 오두막에 도착했다.
고공 낙하를 시도할 때는 제대로 보이지 않던 집인데, 오두막의 지붕도 볏짚과 황토 따위를 엮어 만든 구시대적 오두막인지라 눈에 띄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그것 말고도 오두막의 사방팔방이 바람에 흔들리는 벼뿐이라 분간이 가지 않았다는 말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어찌 됐든 조명은 대머리의 발모제 특효약으로 쓰일 제물마냥 힘없이 끌려 들어갔다.
‘나는 맛없다고 변명해 볼까?’
처음 너무 당황해서 말할 타이밍을 놓친 탓에 그의 의심을 사서 붙들리고 만 조명이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한 명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말까지 통하니, 여차하면 신중하게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선택지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인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아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말을 건다고 해서 그걸 알려줄 것 같지는 않으니,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나 왔어, 여편네!!”
천장이 최소 4~5m에 달할 법한 오두막에 들어선 그는 우렁찬 함성으로 자신의 귀가를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