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 Divers RAW novel - Chapter 9
헬 다이버즈 008화
8화
빠빠! 둠칫! 빠빠빠! 움치기 둠칫!!
“아오! 제바아아아알!”
조명은 개인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기상나팔을 클럽 음악풍으로 부르짖는 알람 시계를 던져 버렸다.
기세 좋게 던져진 알람 시계는 그대로 박살 날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을 가볍게 낚아채는 인물이 있었다.
“기상 시간입니다, 후보생. 신속한 환복과 함께 구보 준비를 하십시오.”
어느새 조명의 침상 앞에 모습을 드러낸 통제관은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른 한 손에는 조명이 집어 던진 알람 시계를 들고 있었다.
그 특유의 거슬리면서도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아침부터 들으니, 조명의 기분이 급속도로 다운되었다.
‘내게 자유란 없는가…….’
조명이 이 해양 플랜트에 들어온 지 정확히 6일 동안 매일 아침마다 지금과 같은 광경이 반복되었다.
조명이 배정받은 개인 룸은 딱 다섯 평 넓이의 작은 방이었다.
그마저도 침대와 좁은 화장실, 그리고 자그마한 싱크대와 미니 냉장고까지 딸려 있어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여기서 더욱 놀라운 점은,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 훌륭한 개인 룸이면서 에어컨 대신 낡은 선풍기 한 대만이 비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누구는 탈탈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에 의존해 열대야를 버티며 겨우 잠들었는데, 통제관이라는 양반은 어디서 사 온 건지도 모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대고 있었다.
방호 마스크 아래의 작은 구멍에 빨대를 밀어 넣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인간처럼 뭘 먹긴 하는 모양이었다.
“환복.”
“환복!!”
미필자였던 조명이 고작 6일 정도로 이곳의 삶에 익숙해질 리가 없다.
첫 3일간은 알람을 듣고도 일어나지 못해 옆구리를 얻어맞으며 깨어났고, 4일째부터는 환복이 느리다는 이유로 또 옆구리를 맞았다. 그리고 6일째에 이르는 오늘도 하마터면 옆구리를 맞을 뻔했다.
“빠릿빠릿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본 통제관은 성실하고 계획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직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후보생의 적응력은 그런대로 봐줄 만합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노력하는 자는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노력을 하는 것. 본 통제관이 작게나마 도와드리겠습니다. 상점 2점 적립이면 충분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놈의 상점, 상점…….
조명은 아주 잠시나마 행복했던 유치원생 시절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도 유치원 선생님들이 착하게 지낸 아이들에겐 상으로 도장을 찍어주곤 했다. 도장을 열 개 채우면 과자나 사탕 같은 공짜 간식을 받을 수 있기에 순수하게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 선생님이 찍어주던 도장 수첩과는 조금 다르지만, 조명의 목에도 해양 플랜트 내의 신분증 같은 금속 카드가 걸려 있었다.
새하얀 흰색 카드에는 조명의 이름과 직책, 그리고 담당 통제관과 현재 보유한 상점이 실시간으로 기재되었다.
현재 조명이 보유한 상점은 15점이었다. 첫날에 기록한 상점만 해도 5점인데, 이 짧은 기간 동안 벌써 10점이나 더 모은 것이다.
물론 조명은 기지 내의 다른 사람과 어울릴 시간도, 상점의 사용처가 무엇인지 알아볼 여유도 없었다.
하루의 시작은 기상과 동시에 환복이며, 그 뒤에는 끝없는 훈련으로 이어지니까.
“구보 전에 몸을 푸는 것은 상식입니다. 후보생은 지난 5일간 이 사실을 확실히 깨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구보라 하면 연병장이나 영내 구보 코스를 도는 것을 상상하겠지만, 통제관이 조명을 이끌고 간 곳은 후보생들의 전용 훈련 구역이었다.
일전에 구토가 나올 정도로 뒹군 훈련 구역이 아니라, 그저 조명과 같은 후보생들이 아침부터 온갖 기이한 쇼를 벌이는, 운동장에 가까운 장소였다.
사실 등산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약수터 명소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 미친놈은 또 저러고 있네.’
뜨겁게 달군 금속 훌라후프를 허리에 감고 미친 듯이 돌리고 있는 또래의 청년이 보였다. 허리 놀림이 너무 대단한 나머지 땀을 흩뿌리는 그 모습마저 ㎝의 한 장면 같았다.
그런가 하면 철봉 위에서 신축성 있는 전신 슈트 차림으로 기계체조를 하는 여자도 있었다.
여성은 보통 자외선에 민감한 편인데, 그녀는 바깥에서 땀 흘리며 허공에 몸을 던지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그렇듯 이곳의 모두가 기인열전 못지않은 광기의 훈련을 강행하고 있었다. 조명이 보기엔 그냥 광대 집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후보생은 저것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듭니까?”
“잘 못 들었습니다?”
“저 미련하고 무지몽매한 것들이 행하고 있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헛짓거리’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느냐, 이 말입니다.”
“그게… 일반인인 제 입장에서 보면 일단 대단해 보입니다.”
“대단해 보인다? 어쩐 점이 말입니까?”
“일반인이라면 지금쯤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일사병으로 실려 갔을 텐데, 모두들 멀쩡하게 버티고 있잖습니까. 저라면 1분도 못 버틸 겁니다.”
사실 10초도 버틸 자신이 없다.
어느덧 8월로 접어든 동해 한복판의 날씨는 기가 막히다 못해 코가 막히는 수준이었다.
내리쬐는 뙤약볕이 너무 강한데, 건물 외부에선 햇빛을 막아줄 그늘 같은 게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굳이 불로 달구지 않아도 금속류는 미친 듯이 뜨겁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지면은 시시각각 기를 빨아먹었다.
‘그런데 왜 다들 통제관과 동행하지 않은 거지?’
구보 전, 몸을 풀기 위해 통제관을 따라 도수체조를 하던 조명이 의문을 품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지난 5일간 훈련을 받는 내내 다른 후보생들은 많이 봤지만, 정작 그들을 가르치고 서포트하는 통제관의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뭐,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조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요 며칠간 구보를 할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자신도 저 기인들과 별다를 바 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10초 이상 버티면서.
“좋습니다. 몸을 풀었으니 이제 구보를 합시다. 후보생은 통제관의 지시에 따라 지압판 코스 200m 구보를 준비합니다.”
“…준비.”
“그럼 행군간에 군가를 실시합니다! 군가는 ‘지옥의 불기둥’!”
평범한 지면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닌, 훈련장 외곽을 둥글게 감싼 200m 지압판 코스 위를 달린다.
안전을 위해 신발을 신으라는 말은 따로 없지만, 그렇다고 벗으라는 말도 없었으니 조명은 신발을 신고 움직였다.
‘윽! 젠장!’
그럼에도 특유의 통증이 발바닥을 타고 전기처럼 흘러 들어왔다.
첫날 이후, 통제관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훈련 커리큘럼을 따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건 정말 버티기 힘들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지압용 돌을 밟으며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냥 혼자 뛰는 것뿐이라면 적당히 돌을 피해가면서 움직였을 텐데, 하필 바로 옆에서 통제관이 함께 구보를 했다.
지옥의 불기둥인지 나발인지 하는 자작 군가까지 부르면서.
“내 아랫도리는 화끈하다!”
“내 아랫도리느으으은… 화끅! 하다!!”
“지옥의 불길보다도 뜨겁다!”
“지응오오오옷! 불길보다도! 뜨어어업다!!”
구보라곤 하지만 느린 속도로 달리는 건 아니었다. 아줌마들이 곧잘 선보이는 파워 워킹을 하듯이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여 걷는 것이 바로 11500 통제관만의 구보 방식이었다.
지압판 위만 아니었더라면 정말 편했을 텐데.
“여름에도 축 늘어지지 않는다!”
“여르으으윽! 쭈우욱! 늘어직… 아오!!”
“후보생, 군가의 가사가 틀렸습니다! 한 바퀴 추가합니다! 겨울에는 쪼그라들지 않는다!!”
“으윽… 겨울에는 쪼그라아아 들지 않는다아아악!!”
“잘 들리지 않습니다!”
“겨울에도 쪼그라들지 않는다!!”
‘흐앗! 차!’, ‘뜨아아앗!’ 같은 야생적인 포효를 내짖으며 조명은 죽기 살기로 뛰듯이 걸었다.
그랬다. 여기서 뭘 더 숨기랴.
지난 5일간 조명이 한 훈련의 대부분은 바로 이 지압 코스 무한 뺑뻉이였다는 것을.
‘차라리… 차라리 근력 운동이 더 낫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빨리 근력 운동으로 넘어가야 해!!’
아무리 발이 퉁퉁 부어오르고 염좌가 생겨도 이 지옥 같은 훈련은 군가를 제대로 부르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뜨겁게 달아오른 금속봉을 계속 움켜쥐고 있는 것과 같았다.
고작 구보일 뿐인데 사람 하나를 폐인으로 만들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오오, 나는야 지옥의 카사노바!”
“오오, 나는야 지옥의 카사노바!”
조명은 기어코 군가를 따라 부르며 기존 목표인 다섯 바퀴에 한 바퀴를 추가해서 총 여섯 바퀴를 성공적으로 돌았다.
일전에는 적게 잡아도 열 바퀴, 많이 잡으면 의무실에 실려 갈 것을 감안하고 스무 바퀴를 돌기도 했다.
사실 다치면 구보를 뛰지 않아도 될 거란 생각에 일부러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의무실에 실려 가기만 하면 정체불명의 약에 의해 깔끔하게 낫는 터라 모든 수작은 수포로 돌아갔다.
“흐억… 컥! 후우……!”
“훌륭합니다, 후보생. 오늘은 가사를 한 번밖에 틀리지 않았으니, 내일부턴 안정적인 구보가 가능할 겁니다. 본 통제관은 후보생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큽니다.”
“카, 캄샤… 아니, 감사합니다.”
“현재 시각은 오전 8시 30분입니다. 바로 근력 향상 코스로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점심 전인 11시 30분까지 코어 근육을 단련할 수 있을 겁니다.”
통제관은 다시 지압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라가서 헬 플랭크(Hell Plank)를 시작하십시오.”
“…시작.”
지압판 위에서 훈련이 이루어진다는 건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조명은 이거라도 어디냐며 힘없이 웃었다.
힘들게 구보를 할 때마다 찌릿찌릿 올라오는 통증을 참으며 군가까지 부르느니, 차라리 코어 근육 단련을 위해 제자리에서 버티는 것이 더 낫다고 느껴졌다.
‘실질적인 훈련을 시작한 지는 이제 겨우 5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몸에 변화가 느껴진다.’
바깥에선 아무리 프로틴 영양제를 처먹고 미친 듯이 운동을 한다 하더라도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에 큰 변화를 느끼기란 힘들다.
하지만 조명은 이곳에서 고작 5일간 굴렀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변화를 느꼈다. 가장 큰 변화를 느낀 건 바로 튼튼해진 기립근과 바로잡힌 척추였다.
‘플랭크는 코어 근육을 키우는 것에 큰 도움이 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립근의 증강과 척추 교정에도 도움이 된다.’
울퉁불퉁한 지압판 위에서 엎드리기 자세를 취한 조명은 뙤약볕을 그대로 맞으며 플랭크의 정자세를 유지했다.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땀은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머리에서는 열이 오를 대로 올라 혈관이 불거졌지만, 1세트를 끝내기 전까지 절대 자세를 풀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지압판으로 팔을 짓누르는 탓에 좋은 자극이 되고 있어. 이 또한 근육의 강화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통증을 이기지 못해 몇 번이나 넘어지고, 열기에 너무 노출된 나머지 기절하기도 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통제관은 조명을 붙들어서 다시 지압판 위에 올려두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상관없으니 하루에 정해진 운동량은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고집이었다.
조명이 눈물 콧물을 쥐어짜 내다 못해 건어물마냥 말라비틀어지더라도 의무실에 한 번 데려간 다음 다시 훈련을 강행시켰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의무실을 수십 번도 넘게 드나든 것은 아마도 조명이 최초일 것이다.
‘하지만 이젠 꼴사납게 의무실에 실려 갈 일은 없어!’
여전히 죽을 것 같은 통증이 뇌를 혹사시키는 건 매한가지였다.
이를 악문 탓에 잇몸에선 핏물이 뚝뚝 떨어졌고, 불거진 혈관과 충혈된 두 눈은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명은 당장 죽을 것 같아도 반드시 정해진 자세와 세트 시간을 지켜가며 운동했다. 설령 뼈가 부러지더라도 1분은 버티고 자세를 풀겠다는 의지가 다분했다.
“푸후우우우……!”
한 세트를 끝내면 지압판 위에 그대로 앉아 불편한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통제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확히 휴식 시간을 준수한 뒤, 다시 플랭크 운동을 재개했다.
세계 기네스북에 따르면 누군가 최대 여덟 시간 정도 플랭크 자세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조명은 지압판 위라면 자신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감히 생각했다.
알게 모르게 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
어딘가 미묘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차이가 느껴지는 기분.
조명은 지압판을 제집 안방마냥 구를 때마다, 의무실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그런 기분을 느꼈다.